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24화 (324/403)

324. to the next stage.-2-

다사다난한 첫 번째 시합이 이제야 완벽한 끝을 맞이했다.

간단하게 옷을 고쳐 입고 스테이지로 올라가 관객 앞에서 행한 간단한 승자 인터뷰.

딱히 특별한 인터뷰는 아니었다. 이전에 했던 인터뷰와 대동소이한 질문밖에 없었으니까.

대단한 실력이었다, 나이도 어린데 대견하다, 어떻게 그런 솜씨를 길렀느냐, 다음 목표는 무엇이냐 등등.

아마 내 인터뷰 내용으로 위키를 만들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만큼 여러 번 대답한 내용이었지.

'덕분에 이거저거 생각할 필요 없어서 편하긴 했고.'

우승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엔 행사장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환호성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 외에는 평범한 대담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 오늘 일정은 일단락됐으니까……."

인터뷰까지 끝마치고, 대기자용 샤워실에서 대충 땀에 젖은 몸을 닦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 한결 상쾌해진 기분이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짐을 정리하던 나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계시던 교장 선생님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웃으신다.

"오늘은 정말 잘 했습니다. 아주 고생 많았어요."

"아니요. 고생은 다 같이했죠."

"찬혁 학생은 개인전까지 했으니, 우리보다 두 배, 세 배는 힘들었을 거 다 알아요."

사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

안 그래도 개인전 때 무리한 여파가 단체전까지 따라오는 바람에 팔다리가 다 떨리더라고. 어찌나 근육이 뜨거워졌는지 쪄죽어도 온수 샤워를 고집하는 내가 냉수마찰을 자진하여 했을 정도니까.

그렇다고 그걸 내색할 수도 없어서, 나는 그냥 가만히 웃을 뿐이다.

교장 선생님은 내 웃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날 보며 마주 웃으시곤 이어서 말씀하셨다.

"저는 학교 업무가 있어서 오늘은 이만 돌아가려는데, 찬혁 학생은 따로 일정이 있나요?"

"아뇨. 당분간은 대회에 집중하고 싶어서 일정은 비워뒀습니다. 다만……."

"다만……."

"아직 할 일이 남아서요."

일단 우리에게 여유가 없는 건 아니다.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시간이 있다. 대회 일정이 제법 느슨하게 잡힌 덕이다.

한국에서 치러지는 16강전은 하루에 세 시합 씩, 6일에 걸쳐 진행된다. 한 번의 시합에 짧으면 세 시간, 길면 네다섯 시간이 걸리니 당연히 하루 만에 모든 시합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오늘은 이미 개막전인 우리들의 시합이 끝났으니, 앞으로 남은 건 두 시합.

그리고 바로 다음 시합의 승자가, 8강전에서 우리의 상대가 되겠지.

"오늘 있을 시합은 일단 전부 현장에서 직관하고 가려고요."

물론 녹화된 자료 영상으로 나중에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란 것도 있는 법.

적어도 오늘 시합은 보고 가는 편이 다음 상대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과연…… 역시, 찬혁 학생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항상 모자란 팀장을 도와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뭘요. 교장 선생님 고생하시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레시피의 근저를 잘 다듬어 탄탄한 기초를 만들어주시는 교장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당장 이전 시합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테지.

이러나저러나 항상 명성에 뒤떨어지지 않는 능력을 선보이시는 분이다.

"그럼 잠시 작별할 시간이 됐네요. 이따 뒤풀이 때 다시 봅시다."

"예."

떠나시는 순간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저녁에 있을 뒤풀이를 기약하며 떠나시는 교장 선생님을 배웅한 나는 잠시 행사장 뒤편의 관계자 전용 통로를 서성였다.

"다음 시합은 점심시간 지나서 한다고 했었지."

그 때문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사람으로 북적이던 행사장이 제법 썰렁하다.

관객들도 우리의 시합을 보며 적잖게 배가 아팠을 거다. 원래 식욕이란 게 정말 끝에 달하면 아파지거든. 실제로 경험해본 내가 말하는 거니 틀림없다. 뭐, 나야 다른 이유 때문에 굶고 살았던 거지만.

아무튼, 시간 때울 곳을 찾아 적당히 거리를 쏘다녔다. 시간도 때울 겸 밥 먹을 곳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내 나는 그 목적을 이루는 게 쉽지 않으리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

행사장에서 버스 정류장 한 개 정도의 거리만큼 떨어진 시내에 도착하니, 눈에 보이는 식당 간판을 달고 있는 건물이란 건물은 죄다 사람이 더럽게 많다는 걸 깨달은 탓이다.

"아."

그야 그렇겠지. 배고픈 사람들이 올 곳이라곤 근처 식당가 말곤 없을 테니까. 내가 생각이 짧았다.

'그러고 보니 이 대회로 얻는 경제효과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크다고 했었나?'

괜히 지자체에서 흔쾌히 촬영 허가를 때려준 게 아니었다. 하긴, 관광객이 이렇게 많이 몰리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알바밖에 없겠지.

"하아, 하는 수 없지."

결국 내가 향한 곳은 근처에 있던 pc방이었다. 왜 하필 pc방이냐고? 이게 전부 시대가 좋은 덕분이지.

요즘 pc방은 어지간한 분식집보다 밥 퀄리티가 괜찮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건 덤이고.

'게다가 지금 내가 저렇게 사람 많은 데 가면…….'

분명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만큼 난장판이 되리라. 자신감 과잉 아니냐고? 차라리 정말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리하여 식당을 뒤로하고 pc방에 도착한 나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밥부터 주문했다. 솔직히 엄청 배고팠다. 몇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라면 세트에 햄버거 정도를 추가한 단촐한 식단이었지만, 원래 요리사라는 게 이런 걸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너무 잦기에 별문제는 없었다.

막 끓인 탓에 아직 후끈후끈한 라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후후 불어 식히는 동시에, 손은 컴퓨터의 마우스를 잡는다. 요리를 하며 양손을 자유로이 쓸 수 있게끔 훈련한 성과가 이럴 때 나온다. 굉장히 쓸데없는 재능낭비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아무튼, 많고 많은 장소 중 일부러 pc방을 찾은 이유는 비단 라면이나 먹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2회전 대진표. 그걸 확인하러 온 거지.'

프랑스와의 대결 탓에 그쪽에는 신경을 못 쓰고 있던 터라, 나는 멍하니 면을 씹으며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된 대진표를 찾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내 눈앞에 놓인 문자열에 잠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주륵

"…… 이건 또 뭐야."

입에 물려 있던 면이 그대로 흘러 대접에 툭 떨어졌다. 하지만 내게 그걸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었다.

눈앞에 있는 정보는, 내 한 끼 식사 같은 건 가뿐하게 잊게 할 만한 충격을 담고 있었기에.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 16강전 두 번째 시합. 그 상대는…….

"거, 자리가 좀 안 좋은 거 아니냐……."

인도vs영국.

이번 시합 시청률도 장난 아니겠구나.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

인도와 영국은 사이가 나쁘다.

'나쁘다'라는 짧은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정말 형용하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또 반대로 그 한마디 만으로 두 국가 사이의 관계를 얼추 설명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과 일본 같은 관계라고 해야 할까. 불과 백 년도 안 된 과거에 침략자였던 국가와 피해자였던 국가가 서로 사이가 좋길 바라는 게 어불성설이겠지만.

그러다 보니 영국과 인도가 어쩌다 붙을 일이 생겼다 하면 양국의 인터넷은 그야말로 불판 그 자체가 된다.

그게 스포츠 경기가 됐든, 아니면 사회적 이슈가 됐든.

'…… 이거 뭔가 말할수록 우리나라 이야기 같네.'

예선에서 지더라도 일본을 이기면 별 불만 없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 아닌가. 반대로 준우승을 해도 일본한테 지면 난장판이 되지만.

아무튼, 그런 두 나라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문에 두 나라가 맞붙는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관계없는 다른 나라 사람이더라도 저절로 시선이 가게 되기 마련.

이번 경우도 십중팔구 크게 다를 것 없는 전개가 되겠지.

그렇다는 건…….

"큰 거 하나 오겠는데."

아까 우리가 치른 개막전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을 시합이 될 것 같았다.

두 나라 다 시드권을 가지고 있던 개막전과는 달리 이번에 시드권 국가는 인도뿐이지만, 영국 또한 참가하는 면면을 보면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에 참여하기 전부터 이미 세계적인 유명세를 갖고 있던 윌리엄 램든 셰프나, 아예 자신만의 고정 프로그램을 가진 반 뱅던 셰프 등등.

아마 유명세만 따지면 인도팀 전체를 합쳐도 영국팀의 한 사람을 이기기 힘들지도 모른다.

단순히 내가 인도 쪽 셰프 사정에 대해 잘 모르는 탓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애당초 나와 대다수의 관객 사이에는 어지간한 교수와 대학 새내기 이상의 지식 차이가 있다.

자국민이라면 또 모를까, 평균적인 정보량은 분명 내가 더 높으리라. 뭣보다 난 대회에 앞서 상대팀의 정보조사까지 했으니까.

그런 내가 보아도 두 팀의 유명세에 분명한 차이를 느낄 정도인데, 다른 사람에겐 과연 어떻게 보일까. 그 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생각보다 황밸인데 이거?'

실력 있는 팀이라는 증거인 시드권을 보유한 인도팀.

유명세만큼은 그런 인도팀을 압도하는 팀원이 그득한 영국팀.

두 팀의 실질적인 실력 이전에, 양국의 국가 관계나 비교 거리만 가져와도 충분히 재밌는 그림이 펼쳐진다.

'다음 시합, 생각보다 볼만할지도.'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탓에 면이 퉁퉁 불어 버린 라면과 다 식어서 퍼석퍼석해진 햄버거를 콜라로 넘기며, 나는 머릿속 주판을 튕기기 시작했다.

과연 두 팀 중 더욱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할 팀은 어느 쪽일까.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에게 이기고 싶은 두 팀. 과연 어느 쪽이 이겨서, 위로 올라올 것인가.

'어느 쪽이냐.'

우리의 다음 상대는.

모니터 화면 속 유니언 잭과 삼색 가로 줄무늬가 맞부딪치는 모양을 보며, 나는 마지막 남은 국물을 들이켰다.

사실, 이미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

점심시간이 지난 뒤, 내가 예상한 대로 제2시합은 오프라인, 온라인을 가릴 것 없이 엄청난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막을 올렸다.

혹시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가져온 태블릿으로 튼 방송의 채팅창에서는 초당 수십, 수백의 영어로 된 채팅이 올라오는 판국이라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단순한 채팅 때문에 방송사에서 관리하는 서버에 렉이 걸릴 정도였기에, 얼마 가지 않아 채팅창이 잠기며 사용불가로 바뀌었다.

"화력 엄청나네……."

변장을 위해 쓴 모자와 마스크 아래로 식은땀이 살짝 흐른다.

확실히, 인구수를 억 단위로 세야 하는 나라의 화력은 다르다 이건가. 그들 중 몇 명이나 이 방송을 보고 있을지는 모르겠다마는, 적어도 어지간한 나라의 총 인구와 비슷한 수는 되리라.

'그나저나…….'

잠시 시선을 돌려 바라본 스테이지.

영국팀은 이미 스테이지 위로 나왔건만, 이상하게도 인도팀의 팀원은 아직 스테이지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시합 개시 시간이 거의 다 된 이때 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인도팀.

MC와 심사단, 심판까지 난처한 표정이 되어 인도팀의 자리를 바라보던 그때, 드디어 기다리던 그들이 스테이지 위로 나온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스테이지 위로 올라온 인도팀 셰프는 고작 한 사람 뿐이다.

심지어, 그는 기다리던 상대 팀이나 관객에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오직 백스테이지 방향을 바라보며 무어라 소리치고 있을 뿐이다.

마치…….

'저거 꼭…….'

마치, 크레인 기사가 화물을 인도하는 걸 돕는 사람처럼.

그 행동에 담긴 수수께끼는 이윽고 밝혀졌다.

그 셰프가 나온 방향. 백스테이지 뒤에서, 한 번 보면 좀처럼 잊지 못할 물체가 출현했기에.

"…… 뭐야, 저거."

굴…… 뚝?

돌로 된 굴뚝이, 셰프 네 명의 손에 들려 스테이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 아니, 진짜 뭔데?

답해주는 이는 없이, 관객의 의문은 스테이지 위로 흩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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