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가끔은 눌러줄 필요도 있다.-7-
가끔 생각한다. 코스요리, 혹은 나오는 순서가 따로 정해진 요리를 만들 때 가장 공들여 만들어야 하는 메뉴는 무엇일까?
물론 정석적인 대답은 모든 메뉴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겠지만, 요리사도 사람인 이상 모든 요리에 똑같은 수고를 들인다는 건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다. 로봇 요리사라도 나온다면 또 모를까…….
'아니, 그건'공을 들인다'는 말하곤 묘하게 차이가 있나.'
실제로 독신 가정을 위한 가정용 요리 로봇이 상용화 된 뒤로도 요리사의 수는 줄어들긴 해도 결코 없어질 조짐은 없었으니까.
아무튼, 자신이 정한 기준에 합당한 수준의 퀄리티를 뽑아내는 선에서 우리 요리사는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와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여 어떻게 집중해야 하는가.
혹자는 말한다. 가장 중요한 건 메인이라고. 메인이야말로 요리의 심장. 메인의 급이 다른 메뉴와 대동소이하다면 메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자격이 없다.
흠. 맞는 말이다. 나도 옳다고 생각한다. 가장 주된main 요리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건 아니니까. 나도 평범한 때에는 주로 메인디쉬에 힘을 쏟을 때가 많다.
한편,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애피타이저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메뉴라고. 애피타이저란 전채. 요컨대 고객이 가장 먼저 먹는 음식.
사람에게 있어 첫인상이 향후의 관계에 적잖이 커다란 영향을 미치듯이, 애피타이저가 그날의 요리에. 그 너머 가게 자체의 인상에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알기에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예를 들어 파티처럼 한 번의 식사가 오랜 시간 지속되는 장소에서 중요한 건 후에 나갈 요리보다 먼저 선보일 요리다.
고객이 식사를 시작한 뒤 가장 처음 받는 세 번의 접시가 파티 전체의 성공을 좌우한다는 호텔의 격언도 있으니까.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말한다. 디저트만큼 중요한 코스도 없다. 디저트는 고객이 가장 마지막에 먹는 음식임과 동시에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음식이므로, 디저트가 훌륭한 매장의 재방문율은 그렇지 않은 가게보다 높다는 통계마저 있으니까.
사실 통계 이야기는 부정확한 정보이므로 거기에 대해선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그 외의 이야기라면 분명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처럼 마무리가 미흡하면 무엇이든 한 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다.
훌륭한 디저트로 코스를 완벽하게 끝마치는 것 또한 분명 요리사의 덕목이다.
자, '그래서 그것도 옳고 이것도 옳다면 대체 어쩌라고?'라는 의문도 당연히 들겠지.
거기서 내 의견을 조금 첨언 하자면, 무엇을 선택하여 집중하는지는 어디까지나 요리사에 선택에 달린 것이고, 거기서 내 선택의 기준은 때에 따라 바뀐다.
앞서 말했다시피, 메인을 중요시해야 하는 자리가 있고 애피타이저를 중요시해야 하는 자리가 있다.
디저트도 마찬가지다. 그곳이 어떤 자리냐에 따라서 내 선택은 바뀐다.
만찬회라면 메인에 공을 들인다.
간단한 입식立式 파티라면 애피타이저에 공을 들인다.
그리고 디저트라면─
'이럴 때지.'
정말로, 정말로 고객에게 제대로 된 마무리를 각인시켜 드리고 싶을 때.
앉은 자리에서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행복한 기분으로 귀갓길에 오를 수 있도록.
예컨대, 아무리 식욕이 강한 사람이더라도 마지막 디저트를 먹은 뒤에는 당분간 밥 생각이 머리에서 싹 가실 정도로 강렬한.
그런 각인을 박아 넣을 수 있도록.
나는 그럴 때에 디저트에 정말 공을 들인다.
이건 매장 이미지에 그다지 크게 좋은 방법은 아니다.
생각만 해도 배가 고파지는 식당과 생각만 해도 배가 불러오는 식당. 보통 고객이 주로 찾게 되는 식당은 전자니까.
'뭐, 이것도 찾는 사람만 찾는 고급 식당이라면 별문제는 안 되지만.'
어쨌든, 디저트에 공을 들일 때 집중해야 할 키워드는 '만족도'다.
본래 고급 식당이란 명패를 붙이고 있는 곳은 고객의 만족도를 상당히 빡빡하게 관리한다.
식사 자체는 정말 맛있지만, 한입 더, 한 숟갈 더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에서 공급을 끊는다.
이런 방침에는 매장의 재방문율을 높이는 효과도 있지만, 그 외에도 다음에 나올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그만큼 크게 올리기 위한 노림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그 만족도를 10할. 아니, 그 이상으로 끌어 올려 버리면, 먹는 사람은 과연 어떤 상태가 될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작금의 상황이었다.
"디저트. 저는 디저트가 이번 승부를 갈랐다고 봅니다."
***
디저트가 이번 승부를 갈랐다.
양리청 심사위원은 그렇게 말했다.
"우선 아까 아쿠아파바에 대한 설명을 듣느라 저희가 채 말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바로 이 디저트입니다. 지금은 이미 다 먹어 표본을 따로 보여드릴 순 없지만……."
잠시 말을 끊고 우릴 향해 시선을 보내는 그였으나, 그렇게 봐도 우리가 딱히 요리를 남긴 건 아니니까 뭘 도와줄 순 없는 노릇이다.
단념한 듯 고개를 돌린 그가 말을 잇는다.
"제가 말하는 디저트의 차이란 바로 디저트를 먹은 뒤 두 코스에서 느낀 완결성에 기인합니다. 혹시 자료화면을 잠시 요청해도 괜찮을까요?"
양리청 심사위원의 요구에 발 빠른 방송팀은 어느새 준비한 시식 때의 정지 화상을 전광판에 비춘다.
"여기, 보시다시피 한국팀의 디저트는 모노크롬 큐브 형상이 인상적인 양갱이었죠. 아래 깔린 소스는 단맛보다 신맛이 훨씬 강한 시럽이었습니다. 단맛과 신맛은 궁합이 잘 맞습니다. 좋은 선택이었죠. 그렇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어요."
이게 끝이 아니다? 의문 어린 프랑스팀의 시선에 양리청 심사위원이 다시금 입을 달싹여 방송팀에게 연락을 보낸다.
잠시 후, 전광판에 나온 장면은 심사단이 디저트를 먹는 도중 디저트의 단면이 드러난 모습이었다.
흑백 모노크롬 큐브. 사선 방향으로 잘린 단면은 당연히 겉면과 똑같은 큐브 모양이어야 할 터.
"아……!"
"설마……."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큐브의 단면은 그냥 큐브가 아니었던 것이다.
큐브의 단면 중심, 손톱만 한 너비의 공동. 그리고 그 공동에서 조금씩 흐르는 보기만 해도 씁쓸한 진한 녹색의 액체.
리청연 심사위원은 뜸 들이지 않고 그 정체를 만천하에 밝힌다.
"보시다시피, 저 양갱 속에 담긴 액체는 말차입니다. 정확히는, 아주 진하게 우린 말차로 만든 무스죠."
'정답.'
리청연 심사위원의 말대로, 저 액체의 정체는 말차다. 그것도 물과 찻잎의 비율을 일부러 어그러뜨려 굉장히 진하지만, 그 대신 쓴맛 또한 엄청나게 강하게끔 우린 말차.
그냥 먹으면 떫어서 먹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맛을 거품과 섞어 비교적 순하게 만들고 액체질소 냉장기로 급속냉장하여 더더욱 쓴맛을 강조한 말차무스를 속을 비운 양갱 큐브 안에 넣어 만든 것이 바로 우리의 디저트.
"사실, 저는 당초 양갱은 단품인 디저트로 사용하기에 단맛이 너무 과하리라 생각했습니다만, 그 불안을 이 말차 무스가 아주 단단히 잡아주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말차의 떫은 맛을 신맛이 없애면, 단맛이 신맛에 아린 혀를 달래주는, 훌륭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죠."
말하자면, 한 접시의 디저트로 잘 꾸민 디저트 한 세트를 먹은 것 같은.
아니, 실제로도 디저트 한 세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코스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데에 아주 적합한 메뉴다.
"제가 한국팀을 고른 이유입니다. 두 팀 다, 전주로 시작하여 절정에 치달을 때까지는 결코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마무리에서 보다 훌륭히 막을 내린 쪽은 한국팀이다. 제 판단은 그랬습니다."
만약 프랑스팀에서 대단치 않은 품질의 홍차나 커피나마 준비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티tea는 본래 하나의 메뉴 안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반대로 티의 역할을 색다른 발상으로 하나의 접시에 눌러 담은 한국팀의 승리.
하나의 메뉴를 고안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전체의 흐름을 본 넓은 관점이 쥐여 준 승리였다.
'…… 라고, 뭐. 본인은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게 좀 다르단 말이지.
아직 양리청 심사위원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심사단 전원이 제대로 알지 못한 부분이 남았다.
내가 일부러 맛을 아주 강하게 만든 건 말차 무스만이 아니다.
말차 무스를 감싼 흑백 양갱도.
흑백 양갱 아래 깔린 산딸기 시럽도.
본래 양갱을 만들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설탕을 사용해 과한 단맛을 가미한 양갱이었다.
본래 시럽을 만들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의 구연산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강한 신맛을 연출한 시럽이었다.
너무도 과한 단맛, 신맛, 쓴맛.
과한 맛은 맛의 균형을 망친다. 하지만 나는 서로의 상호보완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혀에 가한 충격만큼은 뇌가 인식하는 것과 달리 고스란히 남는다.
'아마 적게나마 미각에 영향이 있었겠지.'
그뿐만이 아니다.
과한 당분은 그 자체로 사람의 식욕을 누른다.
단순한 맛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몸에 작용하는 과학이 바로 그러하다.
양갱처럼 단 음식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혈당치가 오른다. 내가 만든 양갱은 더더욱 그렇다.
한순간에 혈당치가 과다하게 오르면 뇌는 영양의 보급을 더 이상 원치 않게 되고, 이는 곧 식욕의 감퇴로 이어진다.
이는 결코 몸에 위험한 반응이 아니다. 평범하게 사람의 배가 불러지는 과정일 뿐이다.
'다만, 난 그 과정을 조금 더 빠르게 가속한 거지.'
고작 주먹 반절만도 못한 크기의 양갱이 신체대사를 가속했다고 해봐야 그 절댓값은 뻔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 요리는 적긴 해도 확실하게 심사위원에게 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딱히 눈치를 못 챘겠지.'
실제로, 세 명의 심사위원 중 프랑스팀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효과를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눈앞의 요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그들은, 특히 양리청 심사위원 같은 경우는 '대만 사람으로서 식사를 차로 마무리하는 습관이 평가에 영향을 끼쳤다'고 멋대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딱히 착각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 효과 또한 노린 바이긴 하니까.
하지만 그들이 미처 눈에 담지 못한 곳에서 내 책략이 암약했을 뿐이다.
보다 포만감을 강하게 주는 두부 따위의 건더기가 다량 들어간 된장찌개.
감자와 튀긴 누룽지 따위의 포만감이 가득한 탄수화물.
거기에 더해 앞서 말한 양갱까지.
양리청 심사위원의 착각이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의 말에도 분명 정답은 있었다.
'관점의 승리라고?'
정확하다. 그의 말대로, 우리의 승리는 관점의 승리였다.
그것 하나만큼은 과연 그 말이 옳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 했다.
"시합 종료오오오! 시작부터 시드권을 보유한 두 강팀! 두 다크호스가 맞붙는 파란의 전개로 시작한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 그 개막전에서 영광의 승리를 쟁취한 팀은─!!"
내 끄덕임이 신호가 됐는지, 아니면 뒤쪽에서 무언가 따로 언질을 준 것인지.
양리청 심사위원의 말이 끝나고 돌아온 긴 침묵을 깬 MC가 스테이지 중앙을 가르며 외친다.
"한국팀! 한국팀이 1회전을 이겨내고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승리를.
"…… 하아."
젠장. 이게 1차전이란 말이지?
"거 더럽게 힘드네."
알고는 있었지만. 쉽지 않은 대회가 되겠는걸.
수천 관중의 환호와 갈채 앞에서, 나는 그저 웃음 뒤로 암울함을 감추며 손을 흔들었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 개막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