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21화 (321/403)

321. 가끔은 눌러줄 필요도 있다.-6-

프랑스팀의 요리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훌륭한 요리였다.

당근과 샐러리 따위의 야채를 다져서 건조 시킨 가루를 프랑스산 밀가루와 섞어 반죽해 만든 수제 야채 크래커. 그 위에 얇게 저민 아보카도와 토마토를 얹고 잘게 다진 견과류를 뿌려 작은 바질로 장식한 까나페.

양송이를 푸드 프로세서를 사용해 아주 미세한 굵기로 다져 올리브 오일로 볶은 머쉬룸 딕션과 라지 다이스 크기로 자른 버섯을 와인에 졸인 뒤 오븐에 구워 풍미를 응축시키고 수분을 날린 샹피뇽뱅Champignons au vin을 데친 양배추로 말아 밀가루옷을 입혀 고온의 기름에 짧게 튀긴 캐비지롤.

마지막 후식으로 비건 쇼콜라와 두유를 이용해 만든 브라우니까지.

세 가지 메뉴 모두가 당장 파리의 1류 레스토랑의 정식 메뉴로 나와도 전혀 손색이 없을 퀄리티였다.

당연히 심사단의 평가 또한 극찬 일색.

이번에는 한국팀과 달리 걸고넘어질 말썽 같은 것은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심사단은 더욱 거리낌 없이 프랑스팀의 요리를 맛보며 평가를 이어나갔다.

"아주 훌륭한 오르되브르에요. 씹을수록 야채의 맛이 강렬하게 다가오네요. 거기에 이 아보카도도 아주 좋아요. 완벽한 후숙 과정을 거쳐서 마치 최고급 버터를 혀로 녹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토마토와 바질, 거기에 레몬즙을 섞은 허브 드레싱이 얼핏 무거운 아보카도의 맛을 아주 상쾌하게 마무리합니다."

오르되브르.

"이 캐비지롤은…… 제가 여태껏 먹은 캐비지롤이란 요리의 이미지를 아주 간단하게 뒤바꾸는군요. 하나의 재료로 두 가지 맛을 극적으로 연출한 머쉬룸 딕션과 샹피뇽뱅. 그리고 그 속에서 은은하게 존재감을 어필하는 월넛. 드레싱에 사용한 헤이즐넛 오일이 견과류의 향이 버섯에 밀리지 않게끔 도우며 상호적인 상승작용을 일으킵니다. 훌륭해요."

"특히 상피뇽뱅과 드레싱에 사용한 와인 비네거 사이에도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어요. 소비뇽 블랑 품종의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과 비네거를 사용한 거죠? 겉을 살짝 튀겨서 혹시 모르게 생길 묵직한 맛을 잘 잡아내는 탁월한 선택입니다."

메인.

"비건 브라우니…… 비건 베이킹은 언제나 한 가지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죠. 식물성 재료가 가진 특유의 비린맛. 동물성 재료라면 고민할 이유도 뭣도 별로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건 셰프는 항상 골머리를 싸매야 하죠. 하지만 이건…… 대단해요. 정말로 대단합니다. 빵과 케이크에는 프랑스를 따라갈 나라가 없다. 그게 진실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 맛이에요."

디저트까지.

세 가지의 메뉴에 연달라 비평 하나 없는 칭찬만 가득하자, 그 심사를 듣고 있던 관중 사이에 적막한 불안감이 감돈다.

관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한국인, 그들이 자국 팀의 위기를 느낀 탓이다.

프랑스팀은 딱히 이에 대해 별달리 스트레스를 느끼진 않았다.

어차피 홈팀과의 경기가 이런 양상이 되리란 건 당연한 일이였고, 관중의 분위기가 심사에 무언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게 프랑스팀이 아무런 압박감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절벽 끝자락에 간신히 발만 디디고 있는 상태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양보할 곳도 없다. 아마 절박함을 따지자면 지금 이 순간 그들보다 더한 사람은 없으리라.

특히, 헬레나 피에르는 아마 태어나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심각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팀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갑작스레 맡게 된 오더.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도 모르던 레귬 조리법을 들고나온 한국팀에 대한 압박감.

'아쿠아파바 같은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그만큼 훌륭한 조리법이 있다는 걸 알고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 헬레나 피에르는 아쿠아파바를 '못' 쓴 게 아니다. '안' 쓴 것이다.

아쿠아파바라는 조리법이 가진 커다란 문제점을 다른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계란 흰자로 머랭을 만들면 필연적으로 빵에 계란의 비린내가 밴다. 다만 바닐라빈을 첨가한다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기에 모두가 그 방법을 부담 없이 사용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쿠아파바 또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다. 바로 비린내.

말만 들으면 계란과 같은 단점인 것 아니냐 묻겠지만, 머랭과 아쿠아파바 사이의 비린내는 그 성격이 아주 다르다.

바닐라빈으로 간단히 가릴 수 있는 계란 비린내에 비해 콩물을 우렸을 때 나오는 비린내는 그 흔적을 지우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예를 들어 헬레나 본인이 만든 저 두유를 사용한 브라우니조차 주재료가 초콜릿이 아니었다면 결코 두유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초콜릿의 맛이 아주 강해서 망정이지, 다른 재료로는 콩의 비린내가 쉬이 가려지지 않으니까.

'대체 어떻게…….'

아쿠아파바 기법은 현대에 들어 비건을 위한 식단이 더 많이 발달한 서양에서도 극히 일부 레스토랑에서나 사용하는 기법.

그런데 한국의, 그것도 레귬을 특별히 파고든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소년이 어떻게 저런 조리법을 알고 사용했단 말인가. 심지어 단점마저 완벽히 해결해서!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상대와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본체 소심한 성격인 헬레나에게는 굉장한 부담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대의 '모르는 점'을 꺾을 수 있다면, 승기는 오히려 이쪽에 있다.

모르는 지식이 반드시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월등히 나으리란 보장은 없는 법이다.

세상에 '반드시 이렇게 만드는 게 더 맛있는 조리법' 같은 건 없다.

비교적 최신 조리법인 수비드로 익힌 스테이크보다 선사시대부터 있던 직화로 구운 스테이크가 더 맛있을 수도 있는 것처럼.

중요한 건 조리법이 아닌 조리하는 인물의 실력, 그리고 조리하는 식재료의 품질.

둘 중 어느 하나도 결코 상대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헬레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제법 타당한 논리적 입각 아래 도출된 결론이었다.

아쿠아파바에서 단점을 제거하는 건 난해한 기술이긴 하지만, 결국 머랭은 머랭이다.

머랭을 쓴다고 훌륭한 요리가 된다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요리는 머랭쿠키일 테니까.

다만 이 시점에서 헬레나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의 메뉴에서 정말로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란 사실을.

적막하게 가라앉은 행사장의 분위기 속. 심사가 끝난 뒤에도 오랜 토의를 반복하던 심사단이 비로소 다시금 마이크의 전원을 켠다.

─삐이잉─

귀가 먹먹해지는 이명이 행사장을 채우자 좌중의 시선이 자연스레 심사단에게로 향했다.

기대와 불안, 설렘과 꺼림.

극단에 대치된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뒤섞여 심사단에게 쏟아져 내린다.

감정의 홍수를 정면으로 맞닥뜨린 심사단은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막, 의견 조율이 끝났습니다."

"우선 결과를 말씀드리기 앞서, 이것이 저희에게도 매우 힘든 결정임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저희는 마지막까지 의견을 하나로 통일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결과를 발표할 때에는 심사위원 각자가 선택한 팀과, 그리고 그 팀을 선택한 이유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평가가 갈렸다!

단 몇 마디 말로 이 승부가 팽팽한 접전이 될 것임을 직감한 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과연 승리는 누구인가.

기념될 개막전은 과연 여기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이겨낸 프랑스팀이 다시 한번 한국팀과 최후의 자웅을 겨룰 것인가.

폭약에 이어진 도화선에 불이 타들어 가듯 고조된 긴장감이 행사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심사단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

심사단 중 가장 먼저 발언을 시작한 심사위원은 포보스 사 출신의 미식부 기자, 토드 베이커였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마음이 쏠린 쪽은 한국팀의 요리였습니다."

토드의 발언이 한 차례 끊어짐과 동시에, 전광판에 비추던 세 심사위원의 사진 중 토드의 사진 아래 있던 빈칸을 태극기가 차지한다.

하얀색 배경에 태극무늬가 인상적인 국기가 전광판 한편을 차지하자마자 보이지 않는 스위치라도 누른 듯 환호성을 내뿜는 관객들.

잠시 후, 환호성이 간신히 가라앉은 뒤에야 토드는 말을 이을 수 있었다.

"먼저 말해두는 사실이지만 저는 두 팀의 요리가 분명히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봅니다. 만약 여기서 판정이 갈린다면, 그건 아마 요리의 우열보다는 심사위원 개인의 호불호에 따른 결과겠죠."

이 의견에는 다른 심사단 또한 동의하는 바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의견이 갈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제가 한국팀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메인인 폴더 감자전의 영향이 컸습니다. 제 개인적 사견이지만 한국팀이 만든 요리의 원형이 되는 감자전이라는 요리와 비슷한 요리가 미국에도 있습니다. 해시브라운이라는 요리입니다."

실제로 해시브라운과 감자전은 전분을 넣느냐 빼느냐로 조리법이 갈릴 뿐, 나머지 조리과정은 대단히 유사한 요리였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해시브라운과 이 폴더 감자전은 식감도, 맛도 전혀 달랐습니다. 전자가 살짝 투박한 맛이 있는 가정식 같은 느낌이라면, 후자는 마치 고급 케이크를 먹는 것 같았죠. 감자 요리의 새로운 지평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라면, 제가 한국팀을 택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국팀을 골랐는가. 토드의 해답은 된장찌개, 정확히는 메인과 다른 한 가지 메뉴와의 조화. 마리아주에 있었다.

"이런 형식의 메뉴를 제 나라의 말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감이 안 잡히는군요. 사이드 디쉬…… 아니, 그보다는 더 가까운…… 그래요. 서브 디쉬. 제게 한국팀의 두 가지 메뉴는 말 그대로 아주 절친한 메인과 서브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메이저리그의 투수와 포수처럼, 프리미어 리그의 투톱처럼.

하나가 하나를 완벽히 보조해 1+1라는 식에서 2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조합의 힘.

서로가 서로만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마법 같은 조화. 된장찌개와 폴더 감자전의 관계가 참으로 그러했다.

"첫 번째 주제에서 선보인 메뉴처럼 몇 번을 씹던 항상 새로운 자극이 되는 식감. 그리고 각 메뉴 사이의 연계성에서 한국팀의 메뉴는 프랑스팀 이상의 조화를 선보였습니다. 그게 제가 한국팀을 고른 이유입니다."

그 후 마이크를 내려놓은 토드의 뒤를 이어, 이번에는 미쉐리 타이어의 미쉐리 가이드북 평가단 출신 가브리엘 뒤용의 평가가 이어졌다.

"제 선택은 프랑스팀의 요리였습니다. 편파적으로 보일 수 있으리란 것은 이해합니다만, 죄송스럽게도 이건 제가 아직 한국식 테이블 매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인인 그가 프랑스팀을 선택하는 모습은 분명 뭍 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밖에 없는 사항이었으나, 요리의 주관이란 본래 그러한 것이었다.

사람에겐 익숙한 음식이란 것이 있고, 입맛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고 싶어도, 평가 자체에 주관적 점수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요리였으니까.

"두 가지 메뉴를 동시에 먹는다는 발상이 제게는 조금 난해 한 부분이었습니다. 토드 심사위원의 평가대로 두 메뉴의 마리아주는 분명 뛰어났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메뉴 한 가지의 완결성을 위에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는 관객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와 같이 먹어야만 맛있는 요리와 그것만 먹어도 충분히 맛있는 요리.

요리 자체의 완성도를 따지면 분명 후자의 경우가 더 높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이것은 다만 두 팀이 각각 선택한 컨셉의 차이에서 발생한 엇갈림이었고, 프랑스인인 가브리엘에게는 요리 자체의 완성도가 높은 쪽이 나은 평가를 받기에 적합한 팀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단일의 메뉴로 나누어도 손색이 없던 프랑스팀의 메뉴와 달리, 한국팀의 요리는 메인은 분명 뛰어났습니다만 된장찌개 자체의 결정력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프랑스팀을 선택한 이유는 이상입니다."

여기까지 두 팀의 점수는 1:1. 처음 토드가 언급했듯이, 심사단의 기준은 이미 요리 자체의 수준보다 심사단 개인의 호불호로 바뀌어 있었다. 두 팀의 메뉴가 대등한 수준이었던 탓이다.

세 심사위원 중 두 사람의 평가가 끝나고, 드디어 배턴은 마지막 남은 심사위원인 더 베스트의 미식 랭킹지의 편집자. 대만 출신의 양리청에게 돌아온다.

이 승부의 마지막 결말이 자신의 손에 들렸단 사실이 부담스럽게 다가온 것일까, 살짝 굳은 표정의 양리청이었으나, 이미 속으로 결정을 끝낸 그는 작두 위에 걸린 밧줄을 건너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 선택은……."

스테이지 위 열 명의 선수.

관객석에 앉은 수천의 관중.

시선의 해일 앞에서, 양리청의 시선이 향한 곳은─

"한국팀. 저는 한국팀을 선택했습니다."

한국팀이 선 방향이었다.

두 팀의 표정이 극명하게 갈린다.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지를 뻔 한 입을 틀어막는 한국팀과, 대체 어째서냐는 듯 일그러진 프랑스팀.

그들의 앞에서 양리청은 이전의 두 사람과는 전혀 다른 화제를 꺼내든다.

"제가 선택한 기준은 다른 두 분과는 다릅니다. 제가 한국팀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잠시 말꼬리를 늘린 양리청이 두 팀을 훑어보고 말을 끝맺었다.

"디저트. 디저트가 제 마지막 선택을 도왔습니다."

디저트?

다른 두 심사위원에게선 언급조차 없던 디저트가 대체 왜?

헬레나가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을 향하고.

됐다.

찬혁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찬혁이 겉으로 내보인 보검에 눈을 빼앗긴 그들에게, 반대 소매에 숨긴 비수가 박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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