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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
"감자전……?"
특이한 네이밍 센스다. 찬혁이 읊은 요리의 이름을 들은 심사단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러나 관객석의 대부분을 차지한 한국인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니, 조금 다른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이름이 한국팀의 메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들 사이에 대세를 이룰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 국내의 한 패스트푸드 업체가 온갖 어그로를 끌며 출시한 비슷한 이름의 제품과 그 모양새가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다.
반달 모양으로 접힌 번과 몇 가지 채소, 소스로 이루어진 내용물.
번의 역할을 한 것이 겉이 바삭하게 익은 감자전일 뿐이지, 구성은 말 그대로 판박이였다.
그래서일까, 몇몇 사람들은 몇 년 전의 향수를 되살리는 모양새에 흥미를 갖기도 했으나 대다수의 관중의 얼굴에는 '저거 괜찮나' 싶은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해당 제품은 출시 당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모양과 이름이 비슷할 뿐, 내용물은 다르다는 건 당연히 알지만 정착된 이미지란 그리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내막을 알 리 없는 심사단은 그저 단순한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감자전…… 간 감자와 전분을 반죽해서 팬케이크처럼 구워 먹는 요리 맞죠? 먹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없네요. 그럼 폴더라는 건…… 아, 폴더처럼 접어서 그 사이에 내용물을 끼워 먹는다는 뜻인가요?"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특이한 것 같았지만 다시 보면 나름 그럴듯한 이름이네요."
이름과 생김새만 보아도 어떠한 연유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기에, 심사단은 별다른 의심 없이 본인들의 생각이 맞다고 확신했다.
관중의 반응이 오묘하긴 했지만, 특별히 관심을 두진 않았다.
사실 그들에겐 관중보다 당장 눈앞의 음식이 가장 맛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그들은 심사단. 관중의 호응을 끌어내는 일은 그들의 역할이 아니다.
"그럼, 시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들의 사명은 먹고 평가하는 것. 제 임무를 다하기 위해, 심사단은 이번에도 식기를 든다.
솔직히 말해서, 직업 만족도는 대단히 높은 역할이었다.
***
'채식치고는 꽤 무거운 요리일 것 같은데.'
본격적인 시식을 앞두고, 포보스 출신의 영국계 미국인 기자 토드 베이커는 작게 헛숨을 들이켰다.
소년기를 영국에서 자라 열 살이 넘을 무렵부터 미국에서 거주하기 시작한 토드는 저 끔찍하던 소년기 영국의 식생활을 되새겼다.
영국의 식생활은, 추억으로 곱게 포장하여 좋게 말하려 해도 당장 땅에 내팽개치고 싶은 기분이 들 만큼 끔찍했다.
학교의 급식은 지금 당장 영양사를 끌고 와 부당한 죽음을 맞이한 식재료 앞에 무릎 꿇려야 하지 않는가를 친구와 진지하게 토론하게 만들 수준이었고, 자국의 요리를 파는 식당은 어떻게 문을 안 닫는 건지 인생의 철학적 의문으로 남을 정도였다.
아마 그가 포보스의 미식가이드 부서에 몸을 담게 된 것도 그런 어린 시절의 끔찍한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왜 지금 이 순간 그 시절이 떠올랐는가 하면, 바로 이 감자전이라는 요리가 과거의 아픈 기억을 건드린 탓이었다.
과장을 좀 보태 일주일 중 열네 끼 가량을 피시 앤 칩스로 연명하던 삶.
수분기를 모두 잃고 퍽퍽해진 생선과 기름에 절어 설겅설겅 씹히던 감자튀김의 악몽.
미국에 와서야 그 삶이 진정 지옥이었음을 깨달은 토드의 '가장 불호하는 식품 목록'의 최상위권에는 언제나 감자라는 이름이 차지할 공간이 남아 있었다.
오죽하면 어쩌다 햄버거 패스트푸드 식당을 가더라도 항상 햄버거와 음료를 단품으로만 주문하는 것이 토드라는 남자였다.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 감자로 만든 요리를 즐기며 먹을 수 있게 된 이후로도, 토드는 감자를 튀기거나 다량의 기름으로 익힌 요리만큼은 도저히 쉬이 입에 댈 수 없었다.
분명 옛날 먹은 그것과는 비교도 못 할 만큼 제대로 만든 음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약간이나마 맛과 식감이 비슷한 탓에 어쩔 수 없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기실, 이쯤 되면 숫제 트라우마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트라우마가 맞았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두 심사위원과는 달리 쉽게 폴더 감자전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토드는 후식인 양갱을 미루고 된장찌개를 먼저 맛보기로 결정했다.
'이, 이것도 어떤 의미로는 스프니까.'
본래 스프는 식전에 먹는 것이니 먼저 이쪽을 먹어도 테이블 매너를 어기는 일은 아니리라.
본래 뜨거운 음식은 적당히 식을 때까지 기다리고 먹는 것이 미국에서의 기본적인 식습관이지만 동양의 뜨거운 국물을 즐기는 문화가 있음을 아는 토드는 스스럼없이 수저로 된장찌개의 국물을 떠 입으로 옮겼다.
"오."
약한 단맛, 그리고 제법 강한 짠맛, 콩류의 고소함. 그리고 생각한 것 이상의 매운맛.
다시마 같은 해조류를 우려낸 듯한 감칠맛에 더해 갖은 채소와 버섯에서 우러나온 여러 종류의 맛이 콩의 고소함과 섞여 아주 괜찮은 맛으로 거듭난다.
'살짝 짠 게 흠이긴 한데…….'
음식을 굉장히 짜게 먹는 편인 미국인에게도 그렇게 느껴질 정도니, 이것 하나만을 계속 먹는 건 제법 힘든 일이리라.
몇 가지 건더기와 국물로 입을 적신 토드는 비로소 메인을 먹을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음……."
식기를 손에서 놓은 토드는 심사에 앞서 찬혁이 나눠주었던 버거용 냅킨을 들어 폴더 감자전을 감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
폴더 감자전을 집은 토드가 저도 모르게 외마디 경탄성을 내뱉는다.
시식은커녕 향을 맡거나 내용물을 살피기도 전인데, 왜 갑자기 놀라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집었을 때의 감촉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가벼워?"
가볍다. 그것도 토드가 깜짝 놀랄 만큼 가벼웠다.
폴더 감자전은 가장 긴 원 중심부의 길이가 한 뼘 이상이었다. 당연히 그에 비례해 너비 또한 상당하다.
적어도 활짝 펼친 손바닥이 전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너비.
아까 얼핏 들은 감자전의 조리법을 생각했을 때, 막말로 이건 과장 조금 보태 쟁반만한 너비에 1cm가량의 두께를 가진 감자튀김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적어도 주먹만 한 감자 두세 개 분량의 무게는 나가리라 생각했던 토드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일까. 실제로 들었을 때 느껴지는 무게는 그 절반 남짓.
눈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감각의 차이가 너무 커서 마치 착시현상이라도 겪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가볍지?"
실제 요리에는 감자전 자체의 무게만이 아니라 내용물의 무게까지 더해져야 할 터인데, 내용물의 무게까지 더해졌음에도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가볍다니?
또다시 등장한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의아한 눈으로 제 손에 들린 폴더 감자전을 바라본 토드는 결국 호기심을 잠시 뒤로 미루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은 것이다.
요리에 담긴 수수께끼는 전부 요리사의 구상.
요리가 맛있어지게끔 획책한 노력. 그렇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나 하나다. 직접 먹어보는 것. 그거면 된다.
─파삭!
와플 머신으로 압착하여 구운 덕분에 만들어진 바삭한 외피가 먼저 이에 닿아 포테이토칩처럼 부서지고, 이는 그 속살로 파고든다.
그 순간, 토드는 순간적으로 어째서 이 폴더 감자전이 그토록 가벼웠는가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다. 아니, 몸으로 느꼈다.
'부드러워!'
부드럽다. 잘 익은 감자요리를 먹은 사람은 보통 포실하다는 표현을 쓰지만, 토드는 개인적으로 그 식감이 아주 퍽퍽하다고 느꼈다.
씹을 때마다 입속 수분을 빨아들이는 감각, 전분덩어리가 설겅설겅 씹히는 식감, 목이 꽉 메는 답답함.
스튜처럼 수분이 많은 환경에서 조리한다면 모를까 반대로 식자재 내부의 수분까지 앗아가는 튀김이나 구이 같은 조리법이 가미된 감자 요리는 더더욱 그런 면이 심하게 부각된다.
'그런데 이건 전혀 달라.'
마치 뻥 뚫린 8차선 도로를 내달리는 듯 거침없이 속살을 파고드는 치아의 감촉.
부드러움이 죽지 않을 만큼 절묘한 쫄깃함.
마치 고급 밀빵이나, 혹은 케이크 중에서도 부드러운 쉬폰 케이크, 카스테라 따위를 먹는 듯하다.
그러면서 맛은 또 확연한 감자의 맛이 도니, 토드는 다시금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 뿐이다. 머리 주변에서 물음표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소금, 후추로 약하게 간한 감자전을 치아가 완전히 뚫고 들어간 직후, 이번에는 바삭했던 감자전의 표면을 씹을 때 이상으로 강렬한 반발력이 돌아온다.
─와그작!
한 번 튀긴 팝콘을 작은 사이즈로 응축하면 이런 느낌일까.
유독 딱딱하고 바삭한 과자를 씹은 식감, 쌀알의 고소함. 그리고 매콤한 소스의 조화.
베어 문 폴더 감자전을 씹던 토드는 이내 그 내용물의 정체를 눈치챘다.
'누룽지? 설마 튀긴 누룽지를 속에 넣은 건가?'
이 식감은 과거 토드가 중국에서 먹었던 누룽지탕의 식감과 아주 비슷했다.
그러고 보면 아까 찬혁은 와플 머신에 밥을 넣고 굽기도 했다. 당초엔 저게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누룽지를 즉석에서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든 누룽지를 고온의 기름에 단숨에 튀겨서 과자처럼 바삭하고 부담 없이 씹히는 식감을 연출해냈다.
'거기다 이 소스, 수제 케첩과 고추장을 섞어서 만든 거야.'
감자에는 뭐니뭐니 해도 케첩만큼 잘 어울리는 조미료가 없다는 것이 미국인의 정론. 그런 의미에서 누룽지와 감자의 맛을 동시에 살리는 이 소스는 특히나 그의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상추, 얇게 저며 물에 담가 매운맛을 뺀 양파 따위의 야채가 기름 특유의 느끼한 맛을 깔끔하게 잡아준다.
폭발하듯 펼쳐지는 다양한 식감의 향연.
예상하지 못한 맛.
속재료의 뛰어난 조화.
그리고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 방금 전에는 짜다고 평가했던 된장찌개다.
아무리 소스가 있다지만 전체적인 조미는 심심한 편인 폴더 감자전의 짠맛을 보충함과 동시에, 묘한 단맛이 느껴지는 감자전의 맛과 합쳐져 단짠단짠을 훌륭하게 성립한다.
폴더 감자전을 먹으면 된장찌개 한 스푼이 당기고, 된장찌개를 입에 머금으면 당장에라도 폴더 감자전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픈 충동이 자신을 사로잡는다.
그야말로 식욕의 선순환.
처음 느낀 감자를 향한 거리낌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토드는 말 그대로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격렬한 기세를 선보이며 제 앞에 놓인 요리를 게 눈 감추듯 입속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심사가 시작된 후 단 10분.
그의 앞에 접시에 올라간 음식이 전부 사라지는 데에는, 고작 그만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
"놀랍습니다."
시식이 끝난 후, 후식을 먹고 시원하게 물을 들이켠 토드가 첫 번째로 꺼낸 말이었다.
"식감, 맛, 각 메뉴와의 조화. 발상부터 결과물을 완성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놀랍다는 말로는 모자랄 만큼 놀랍습니다. 대단해요."
"감사합니다."
진심이 가득 담긴 칭찬을 받은 찬혁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토드가 이어서 말했다.
"저도 한때 채식을 공부할 기회가 있어 제법 다양한 채식을 먹어왔습니다만, 채식 메뉴를 먹고 이렇게나 만족스러운 적은 처음입니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포만감이 커요."
잠시 말을 고르던 토드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벽에 가득 쌓인 식재료 속, 흙빛으로 제 자태를 뽐내는 감자더미다.
"그렇게 포만감을 충실히 느낄 수 있던 건 분명 감자 덕분이겠죠. 하지만 궁금하네요. 분명 감자가 쓰인 곳은 방금 그 요리에서 번bun 역할을 하던 감자전일 거예요. 하지만, 맹세컨대 전 그토록 부드러운 감자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체 어떤 마술을 부리신 겁니까?
정말 그 답이 간절하다는 듯, 5살 아이 못지않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찬혁은 웃음으로 답했다.
"그 해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간단하다고요?"
이 요리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를 보고 간단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심사단을 향해 찬혁이 말을 잇는다.
"머랭을 썼거든요. 반죽에."
"…… 예?"
캐치볼을 던지듯 툭 건네진 찬혁의 말.
그러나 그 가벼운 투구는, 이내 전차의 화력투사를 뛰어넘는 충격으로 변하여 심사단을 덮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