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개막전.-6-
브레센 크루통 드 셀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생김새를 하고 있다.
돔처럼 볼록 솟은 반구형의 무언가. 그 위에는 이파리, 넝쿨, 과일, 실타래 따위의 장식이 올라가 있다. 다만 그 색을 보고 빵처럼 밀가루 반죽이 구워진 것이리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반쪽자리 구체의 정체는 짐작했다시피 밀가루 반죽을 덮고, 같은 반죽으로 모양을 만들어 함께 구운 물건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보통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소금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함유한 반죽이라는 것.
본래 밀가루 반죽은 유분과 수분을 빨아들이는 성질을 갖는다. 그렇기에 평범한 반죽을 이처럼 사용해 닭을 구우면 엄청난 육즙과 기름의 손실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닭은 제 본연의 맛을 잃게 된다. 마치 물에 너무 오래 담가둔 수박 쪼가리에서 단물이 싹 빠져 버리는 것처럼.
그러나 이 소금반죽은 다르다.
다량의 소금과 계란 흰자로 만들어진 소금반죽은 평범한 밀가루 반죽과는 반대로 제 속에 수분이 침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면 반죽이 그대로 튼튼한 껍데기가 되고, 또 찜통이 되어 육즙이 새어 나가는 일 없이 모든 맛이 닭 속에 응축된다.
'어느 의미로는 프랑스판 거지닭이지.'
찬혁이 속으로 중얼거린 말처럼, 연잎으로 감싸 진흙을 발라 불 속에서 통째로 굽는 중국의 대표적인 닭 요리 중 하나인 거지닭과 이 브레센 크루통 드 셀은 원리적으로는 분명 비슷한 면이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빈자가 훔친 닭을 숨기기 위해 닭을 땅에 묻고 그 위에 불을 지폈다가 탄생했다는 설화가 있는 거지닭과 프랑스 부르주아 귀족주의의 산물인 고급 프렌치 사이에 이토록 많은 공통점이 있단 사실에 찬혁은 새삼스레 경탄한 표정을 짓는다.
상대편의 요리가 심사 중일 때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어디 있느냐 싶겠지만, 사실 찬혁은 딱히 심사 과정을 안 보더라도 어떤 평가가 나올진 잘 알고 있었다.
'뭐, 보나마나 좋겠지.'
한때 프렌치, 이탈리안 전문가를 꿈꾸던 찬혁이다. 당연히 유명하다는 요리는 얼마든 접해왔고, 그중에는 로랑 마틴의 시그니처인 브레센 크루통 드 셀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요리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 그 시대에도 전통 프렌치로서 큰 사랑을 받는 메뉴였다.
'그럴만한 요리야.'
누벨 퀴진의 극의를 담았다고 할 수 있는 요리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맛 또한 흠잡을 곳 없이 뛰어났다는 것이 찬혁의 생각이었다.
물론 찬혁의 주된 활동 영역과 출신을 생각하면 완벽하게 객관적인 시선은 될 수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요리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니까.
뛰어난 요리라도 그게 곧 완벽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게 요리다.
그건 브레센 크루통 드 셀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기에 이길 방법이 없는 완벽한 요리처럼 보여도, 그 속엔 분명 피해갈 수 없는 구조상의 허점이 생긴다.
과연 그 허점을 로랑 마틴 본인이 스스로 알아채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찬혁의 승패가 갈릴 터. 그러나 찬혁은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로랑이 그러지 못 하리란 것을 말이다.
'수십 년 뒤에도 변하지 않은 게 지금 변할 리가.'
물론 그 말을 정면으로 맞받아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본인이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수만 키로 떨어진 타국까지 자기 탓에 변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찬혁이었다.
찬혁이 자신의 요리를 슬슬 마무리하기 시작했을 때쯤, 비로소 심사단 또한 로랑의 요리를 시식하기 위해 식기를 집어 들었다.
***
브레센 크루통 드 셀은 기본적으로 닭 요리이며, 겉을 둘러싼 소금반죽은 어디까지나 요리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즉, 먹을 때에는 버려지는 부분이라는 뜻이다.
요리의 본래 취식법에 걸맞게, 날카로운 톱니가 돋은 나이프로 바닥에 깔려 쟁반 역할을 하는 반죽과 뚜껑 역할을 하는 반죽이 만나는 곳을 잘라낸 로랑이 은쟁반의 뚜껑을 여는 웨이터처럼 조심스레 딱딱하게 구워진 반죽을 들어 올린다.
"우와……."
"냄새가 무슨……."
별다른 재료도 없이 속을 채운 닭을 구운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향.
요리를 구울 때 오븐에 같이 넣었던 훈연칩 또한 제 역할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코를 자극하는 최상급 품질을 자랑하는 브레스의 자체적인 육향이 스테이지 너머의 관객석까지 퍼져나간다.
"해체하겠습니다."
로랑 마틴은 언어를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 감탄사에 내심 미소를 지으며 고기용 집게와 나이프를 들었다.
"흡."
마치 빛살이 스치듯, 초승달처럼 휜 칼날이 황금빛 기름땀이 맺힌 닭 위를 단숨에 내달린다.
닭의 뼈와 살, 근육과 힘줄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기에 가능한 기행.
달군 나이프를 버터에 갖다 댄 듯, 닭의 갖가지 부위가 아무런 저항감도 없이 뚝뚝 잘려 정육점의 견본품처럼 나열된다.
가슴, 안심, 목, 척추, 날개, 허벅지, 다리.
작은 나이프로 살과 뼈를 분리한 로랑은 모은 부위를 삼등분하여 미리 소스로 장식한 접시 위에 올리곤 몇 가지 장식과 함께 플레이팅을 끝마쳤다.
"본래 이 반죽은 너무 짜서 먹을 수도 없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훌륭한 조미료가 되기도 합니다."
딱딱하게 구워진 소금 반죽의 겉면만을 떼어내 향신료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든 뒤, 그것을 조심스럽게 고기 위로 흩뿌리며 로랑이 말을 잇는다.
"이렇게 가루를 낸 구운 반죽은 훈제향과 구운 밀가루의 고소함, 그리고 닭의 향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훌륭한 조미료로 변하죠."
가금류와 궁합이 좋은 하얀 크림소스와, 반대로 강렬한 붉은빛을 띤 와인 크랜베리 소스.
그 위로 뿌린 구운 소금반죽 가루.
맛과 멋.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플레이팅과 연출에 심사단이 박수로 화답한다.
뒤이은 시식에서도 그 평가는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이미 같은 요리를 과거에 한 번 먹어본 경험이 있습니다만, 그 경험마저 무색해지는 충격이 있군요."
"드뷔에 셰프의 시그니처를 도구도, 재료도 부족한 타지에서 거의 원형 그대로 재현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드리고 싶습니다."
"브레스 특유의 부드러운 육질과 쫄깃한 껍질, 그리고 기름기가 잘 살아 있어요. 속에 채워 같이 익힌 가니쉬도 육즙과 향미를 듬뿍 머금어서 굉장한 일체감이 듭니다."
칭찬의 세례. 그 이상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악평은커녕 작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심사평 하나조차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이래야지.'
로랑은 진심으로 그 평가가 당연하다는 듯 만족스런 표정도 없이 그저 담담하다. 실제로, 이 요리는 이미 미쉐리에서 별 세 개를 준 메뉴다.
물론 미쉐리의 평가 기준에는 맛 이외에도 레스토랑 자체의 분위기나 청결, 접객 따위가 섞여 있긴 하지만, 결국 절대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뭐래도 요리 자체의 맛.
말하자면 이 심사는 작문대회에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소설이나 시 따위를 그대로 써서 낸 것과 진배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작가 본인이 말이다.
너무 치사한 거 아니냐고 억울해할 것도 없다. 애당초 주제를 정한 것은 상대팀인 찬혁이었으니까.
닭이라는 주제를 꺼내 들었을 때부터 이 요리가 나오리란 것을 조금은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꺼낼 줄은 몰랐겠지.'
깔끔하게 빈 심사단의 접시를 걷으며 로랑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찬혁을 곁눈질했다.
어차피 이 요리가 나온 이상 자신의 승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 이젠 패배를 깨달은 상대가 어떻게 발버둥을 치나 구경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으므로.
"……?"
그러나, 로랑의 시선이 향한 곳에선 그가 기대하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지 않았다.
절망하여 죽상이 된 도전자의 꼴사나운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완성했습니다."
"류찬혁 선수! 드디어 류찬혁 선수의 조리 완료 선언이 나왔습니다!"
그곳엔 그저 자신이 만든 요리가 최고라고 믿는, 자부심 가득한 한 명의 요리사만이 있을 뿐이다.
***
조리 완료를 선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이팅을 마친 찬혁이 자신의 요리가 담긴 접시를 심사단 앞에 내려놓는다.
천재 요리사라며 명성이 자자한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에서 가장 화제를 끄는 소년.
과연 그 명성에 걸맞은 요리를 보여줄 것인가. 그런 기대감을 품고 요리를 바라본 세 명의 심사위원은 이윽고 눈앞에 놓인 요리의 모습에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응?"
"저기, 이게 전부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찬혁의 요리는 튀김이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던 심사단이다. 애당초 MC가 그토록 크게 치킨을 만들고 있다며 외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정말 치킨을 만들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찬혁이 내온 요리의 겉모습은 단순한 치킨이라고 볼 수는 없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한입 크기보다 살짝 더 크고 두툼한, 동그란 원판 모양의 튀김이 한 줄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
한국 사람이 보았다면 아마 '자른 김밥에 튀김반죽을 묻히고 튀긴 것 같다'는 감상이 나왔을 것 같은 모양.
그러나 그 요리에서 풍겨오는 닭튀김 특유의 고소한 내음은 저를 닭을 튀겨 만든 것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생긴 건 꼬르동 블루와 비슷한 느낌인데……."
"그냥 꼬르동 블루였다면 굳이 이렇게 개별적으로 튀길 이유는 없겠죠."
"그건 그렇다 쳐도 간단한 소스조차 없다니……."
그 말대로, 찬혁의 요리는 볶은 아스파라거스와 칼솟을 직화로 구워 껍질을 벗겨낸 칼솟타다 따위의 간단한 채소 가니쉬와 닭튀김 정도가 접시 위에 놓인 모든 것이었다.
쉽게 물리는 튀김 요리에는 그것을 해소해줄 소스가 필요한 법인데 간단한 찍어 먹는 소스조차 보이지 않는다.
의아함 반, 실망 반.
애매모호한 감정이 섞인 얼굴을 한 심사단이 뒤이어 서로를 보며 눈빛을 교환한다.
그 속에 담긴 뜻이 무엇일지는 그들만이 알겠으나, 그게 좋은 뜻만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시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 그런데 그 전에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죠?"
식기를 든 심사단이 요리에 나이프를 가져다 대기 직전 끼어든 찬혁의 말에 그들이 시선을 돌린다.
"다른 건 괜찮지만, 메인은 자르지 말고 한입에 드시는 게 좋습니다."
그게 더 맛있거든요.
웃음 섞인 찬혁의 말에 심사단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으나, 하는 수 없이 요리에서 나이프를 거두고 포크를 앞세웠다.
포크로 고기를 찌르니, 예상한 대로 바삭바삭하게 익은 튀김옷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건 오히려 그다음이다.
튀김옷을 뚫은 포크의 날카로운 첨단은, 직후 과장을 좀 섞어 솜사탕을 파고든 것 마냥 저항 없이 동그란 원판 속으로 쑥 들어간다.
넓은 부분을 찍은 한 심사위원의 포크가 반대쪽으로 살짝 튀어나올 정도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상천외한 부드러움.
대체 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이런 질감이 느껴지는가를 고민하는 것도 잠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심사단은 포크로 찍은 닭튀김을 그대로 입으로 집어넣는다.
반죽에 칠리파우더를 소량 섞은 듯 살짝 매콤함이 느껴지는 튀김옷을 탄탄한 이가 위아래에서 동시에 압착한 그 순간, 바삭바삭한 튀김옷이 얇은 감자칩처럼 '와삭!'소리와 함께 부서지며 제 속살을 그들의 입 속에 풀어헤쳤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세 명의 심사단이 동시에 깜짝 놀라 두 눈을 치켜뜨며 저도 모르게 입속에 들어간 요리를 꿀꺽 삼키고는, 동시에 경악하며 외쳤다.
"아니, 잠깐만. 없지 않아!"
"다가 아니에요, 이거!"
"있어! 없는 줄 알았는데, 있어요!"
대체 얼마나 놀란 것인지, 문장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계속해서 꺼내는 세 사람.
이를 보고 반대로 더더욱 깜짝 놀란 통역가가 그들을 돌아보며 어떻게 이 말을 통역하냐는 듯 시선을 보내자, 간신히 제정신을 되찾은 포보스 출신의 심사위원이 말을 이었다.
"소스! 소스가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있었던 거예요! 소스가! 튀김 안에!"
튀김 안에 소스?
그 발언에 관중이 놀라고, 그 뒤를 이어 이번엔 미쉐리에서 나온 심사위원이 외친다.
"소스만 있는 게 아니에요! 뭔가 다른 게, 안에 잔뜩 있어요!"
말이 이어질수록 도통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
관객과 상대인 프랑스팀, 로랑 마틴, 그리고 한국팀마저 도통 무슨 소리냐는 듯 호기심이 잔뜩 담긴 시선을 향하는 곳에서.
이 모든 비밀을 아는 단 한 사람. 찬혁만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