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12화 (312/403)

312. 개막전.-5-

"호오."

브레센 크루통 데 셀. 과연. 그걸 들고 나왔나.

'거 참, 정말로 이쪽을 제대로 밟아주겠다 그거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브레센 크루통 데 셀. 소금 크러스트로 감싸 구운 브레센.

로랑 마틴의 레스토랑을 가본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는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 설마 많고 많은 메뉴 중에 저걸 꺼낼 줄이야.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시그니처 메뉴의 레시피를 노출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르나?'

정말 모르고 한 짓이라면 상당한 멍청이다. 그게 아니면 그런 걸 생각하지 못할 만큼 상당히 화가 났다는 뜻이거나.

그러나 레시피 노출이 어쨌건, 로랑 마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건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저 브레센 크루통 데 셀이 상대하기 벅찰 만큼 대단한 요리란 것이다.

소금 크러스트로 감싸 구운 브레스.

사실 이 요리는 이름값에 비해 그 조리 과정 자체는 단순하다.

밀가루, 소금, 흰자. 이 세 가지 재료만을 이용해 빚은 반죽으로 감자나 견과류, 과일, 향신료, 조미료 따위로 속을 채운 브레스를 감싸 오븐에서 굽는다. 그게 다다.

그 외에 뭔가 다른 엄청난 비법 같은 건 없냐고?

글쎄…… 아마 속을 간할 때 쓰는 재료라던가 향신료의 배합에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 외에 다른 특별한 조리법 같은 건 그다지 없다고 봐도 좋겠지.

다만 명심해둬야 할 사실은 딱히 조리법이 복잡하다고 맛있는 요리가 나오는 건 아니란 것이다.

레시피가 정말 단순한 요리여도 맛있는 요리는 얼마든 있다.

일례로 평범한 사람이 보기엔 식초 섞은 밥에 와사비와 회 한 점 올린 게 전부인 초밥 같은 요리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듯이.

결국 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건 만드는 이가 얼마나 디테일을 잘 보충해주느냐에 달렸다.

브레센 크루통 드 셀 또한 마찬가지.

프랑스의 조리법의 큰 갈래 중 하나인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의 정신을 실천한 요리가 바로 저것이다.

버터나 향신료, 조미료가 본디 재료가 가진 맛을 죽일 정도로 과다하게 사용되던 옛 정통 프렌치와는 달리, 보다 웰빙하게, 갖은 채소와 과일 같은 건강한 재료를 다량 이용하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

이미 조리법이라고 하기 보단 일종의 요리적 사상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게 바로 누벨 퀴진.

그러나 단순하다고, 웰빙이라고 얕봐선 안 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단순과 웰빙이 꼭 맛이 덜하다는 말과 직결되는 건 아니다.

충분히 좋은 재료는 오히려 과도한 조미가 방해만 될 뿐이다.

이를테면 정상급 축구 선수를 조기 축구 좀 차본 아저씨가 돕겠다고 나서 봤자 껄끄럽기만 한 것처럼.

그리고 브레스는 충분히 그런 정상급 자리에 위치한 식재료다. 정확히는, 브레스만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품질로 유명한 프랑스산 밀가루.

세상에서 가장 짠 바다, 사해에서 채취한 최고급 소금.

로랑 마틴의 요리는 재료만을 따져보면 이미 국가대표팀 뺨치는 수준의 팀을 만들고도 남았다. 물론 재룟값도 그만한 팀을 꾸릴 수 있을 만큼 들었겠지만.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이쪽도 재료에 약간의 손색은 있을지언정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커다란 수준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선수풀이 조금 딸린다면, 그걸 해결하는 게 감독의 일.

달리 말하자면 이 시합은 류찬혁 감독과 로랑 마틴 감독의 전술전략 대결.

그런 점을 꼬집어 말하자면, 로랑은 현재 선수들의 능력을 믿고 그들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만을 제시한 선수 친화형 감독이 되겠지.

'어이, 너.'

그런데 이걸 어쩌나.

그건 실수다. 감독 사이의 전술전략 대결에서 로랑 마틴은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

두뇌 싸움의 기본은 상대에게 자신의 수를 읽히지 않는 것이다.

그럼 점에서 로랑의 선택은 '수를 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치트키다.

왜냐? 어차피 숨긴 수가 없다면 그걸 밝혀내겠다고 고민해봤자 무용지물이니까.

레벨링만 잔뜩 한 RPG정글러가 대놓고 갱을 들어와도 정면승부로는 이기기 힘든 것처럼,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녀석만이 고를 수 있는 전술.

뻔하지만, 대처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나 로랑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하는 건 1대1 개인전이지만, 우리의 손에서 태어나는 요리는 결코 한 가지 면모만을 갖지 않는다는 것.

상대가 가장 강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반대로 취약한 부분이 어디인지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상대의 수단은 알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어떻게 반격을 가하느냐. 어떤 대항책을 내놓느냐 뿐.

요리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고, 저쪽은 이미 자신의 길을 골랐다.

내게는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아직 많이 남았다.

폭넓은 선택지가 내 강점.

지금이야말로 그 강점을 발휘할 때다.

***

로랑의 조리대는 찬혁이나 박종원, 심사단이 예상한 모습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속을 채운 브레스를 소금 반죽으로 감싼 뒤, 남는 반죽으로 화려한 장식을 가미하여 그대로 오븐에 넣는 것으로 대부분의 조리는 끝.

그 뒤에는 와인이나 루 따위를 이용한 고기에 곁들여 먹을 소스 등을 준비하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기에, 자연스레 그들의 시선은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듯 보이는 찬혁에게로 향한다.

닭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프렌치를 상대로 과연 찬혁은 어떤 요리를 꺼내 들까. 어떤 조리로 그들을 놀라게 할까.

찬혁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박종원이나 몇몇 관중은 그런 기대감을 담아 찬혁을 바라보았고, 그 직후, 그들은 앞선 생각처럼 크게 놀랄 수 있었다.

그게 긍정적인 놀라움이냐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는 않았지만.

"류, 류찬혁 선수……!"

찬혁은 현재 누가 보더라도 무슨 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기에 확신할 순 없었지만, 한국인이라면 찬혁이 하는 일련의 행동을 보고 저것이 어떤 요리인지 모를 리가 없다.

일정한 크기, 일정한 모양을 한 닭고기에 밀가루를 묻히고, 걸쭉한 반죽 속에 담갔다 뺀 뒤 팔팔 끓는 기름에 집어넣는다.

그렇다. 한국 사람이 그 조리 과정을 보고 요리의 정체가 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아, 아앗……!"

"실화? 아니, 진짜로?"

"찬혁아……."

박종원, 심사단, 관중, 심지어는 같은 팀원들까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탄식을 흘리는 그들 앞에서, 간신히 말문을 튼 MC가 외친다.

"류찬혁 선수! 치킨! 치킨입니다! 프라이드치킨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 찬혁이 만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인의 저녁 친구, 치킨이었다.

최고의 프렌치에 비하기에는, 비교적 이름값이 초라한 메뉴이지 않을 수 없었다.

***

"치킨이라고……?!"

로랑은 이해할 수 없는 한국 MC의 외침 속에서 그나마 귀에 들어온 소리를 듣고 믿기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 진짜 치킨이잖아.'

로랑의 시야에선 찬혁의 조리대가 일정 부분 가려진 탓에 모든 작업 상황이 보이진 않았으나, 끓는 기름소리와 튀기는 기름방울, 결정적으로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를 통해 찬혁이 정말로 치킨을 만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 하하. 하하하하!"

오븐으로 브레센 크루통 드 셀을 구우며 소스를 준비하고 있던 로랑은 저도 모르게 손에 든 주걱까지 떨구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닭으로 승부를 보재서 얼마나 대단한 걸 보여줄까 조금은 기대했더니.'

치킨? 프라이드치킨이라고?

이 정도면 확신할 수 있다. 저놈은 분명 사람을 얕볼 대가리도 없는 멍청이가 분명하다.

'세계 최고의 미식인 프렌치 앞에서 고작 깜둥이 놈들이나 해 먹던 요리로 덤비겠다고?'

세상 어느 개그맨도 이만큼 사람을 웃기게 만들진 못할 것이다.

치킨이 맛이 없는 요리는 아니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말이 있는 만큼, 밑간한 고기를 적절하게 튀긴 요리가 어떻게 맛이 없을까.

하지만 요리에는 격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아무리 맛있는 치킨이라고 한들 치킨 한 접시에 막대한 돈을 지불 해가며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로랑 자신이 만든 브레센 크로통 드 셀이라면 한 접시를 먹기 위해 수백, 수천 유로를 기꺼이 지불 하고자 하는 사람은 지천에 가득하다.

그것이 바로 격. 일류 요리사는 고객에게 돈을 달라 사정하지 않는다. 반대다. 고객이 돈을 들고 찾아와 그들에게 사정하며 제발 당신이 만든 요리를 한 입만 먹게 해달라 사정하게 만들 수 있어야 일류.

그것이 로랑의 사상이고, 신념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에게 사사한 요리 기술은 그런 사상을 이루기 위한 도구.

─띵!

시간에 맞춰 완성한 소스를 소스 그릇에 담던 그때, 마침 딱 좋게 오븐의 타이머가 끝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좋아."

완벽한 빛깔로 구워진 브레센 크로통 드 셀의 반죽을 보며 로랑이 웃는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저런 멍청한 놈 상대로 꺼내기엔 조금 아까운 요리가 아니었나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어차피 이긴다면 최대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이겨야 그림이 살지 않겠는가.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은 이 자리에서 다시금 자신을 위한 레드카펫이 된다.

이 요리가 바로 그 첫걸음이 되리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 로랑은 자신의 자리에 놓인 부저를 울렸다.

─빠아아앙!

자동차의 클락션을 닮은, 혹은 부부젤라의 나팔소리를 닮은 소리가 행사장을 휩쓸고, 그 뒤를 관중의 함성이 뒤따른다.

"시합 개시 후 72분이 지난 지금 이 순간! 프랑스팀 대표 로랑 마틴 선수가 종료 부저를 울립니다! 먼저 요리를 완성한 건 프랑스팀, 로랑 마티이이인!"

MC의 호명을 퍼레이드의 환호 삼아 심사단 앞으로 나선 로랑이, 자신의 요리를 그들 앞으로 내밀었다.

"브레센 크루통 드 셀. 완성했습니다."

심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의 심사단은 총 세 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쉐리 타이어, 더 베스트, 포보스 트라벨 가이드.

미식 정보로는 그 유명세를 따를 자가 손에 꼽는 유명 기업에서 직접 파견한 인물들.

그들은 전부 은퇴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 신상정보가 회사 내에서도 기밀이었던 비밀 평가단 출신의 사원들이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국적 불문, 나이 불문, 성별 불문, 오직 추첨으로 뽑힌 사원만이 심사단석에 앉을 수 있으며, 이마저도 심사 중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매 시합마다 새로운 인원으로 교체된다.

미식 잡지의 비밀 평가단이었다는 것만 빼면 아무런 연관성도, 일면식도 없는 세 명의 심사단.

그러나 그들에게 지금 이 순간 공통점이 하나 발견됐다.

그건 바로, 그들 모두가 로랑 마틴이 내놓은 요리를 이미 이전에 먹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제가 이전 심사하러 갔을 때와 비교해도 틀린 점을 찾을 수가 없네요."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드뷔에 마틴의 브레센 크로통 드 셀이에요."

프렌치의 거장, 드뷔에 마틴의 후계자를 자칭할만 하다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들이, 비로소 심사를 시작했다.

이 순간, 찬혁을 응원하던 이들은 불안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대단한 요리를 먼 타국에서 그대로 재현해냈다는데, 과연 찬혁이 이길 수 있을까.

그러나 정작 그 장본인인 찬혁은 누구보다 공신성 있는 심사단의 첫 평가를 듣고 오히려 깊게 확신했다.

'이길 수 있다.'

저게 정말 드뷔에 마틴의 요리를 부족한 점 하나 없이 그대로 재현한 요리라면, 반드시 이길 수 있으리라고.

누구의 시선도 향하지 않는 조리대의 그림자 뒤에서, 찬혁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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