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개막전.-4-
닭 요리.
찬혁의 입에서 나온 개인전 주제에 심사단의 얼굴이 굳는다.
요리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든 찬혁의 발언에 얼굴이 굳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심사단의 불온한 공기를 재빠르게 눈치챈 MC가 고개를 돌려 해설자 역할로 특별출연한 박종원에게 질문을 돌렸다.
"류찬혁 선수가 지금 주제로 닭 요리를 지목했는데요. 이 선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류찬혁 선수가 닭 요리에 자신이 있다는 뜻일까요?"
그러나 박종원은 MC의 질문에도 쉬이 답을 내리지 못하고 말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갑작스런 대화에 단절에 MC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맺힐 때쯤, 비로소 박종원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슨 생각으로 닭 요리를 주제로 선택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 그냥 류찬혁 선수가 닭 요리에 자신이 있어서 선택한 게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닭 요리에 자신이 있을 수도 있죠. 보통 일선에 오른 셰프는 업종에 따라 자신 있는 식재료가 몇 개씩은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건 어째서냐고 묻는 MC에게 박종원이 답했다.
"유명한 가게에는 당연히 유명한 메뉴가 있겠죠? 잘 나가는 식당은 하루에 같은 메뉴를 수백 개씩 팔기도 합니다. 한 요리를 매일매일 수백 개씩 판매한다. 이건 다르게 말하면 한 요리를 하루에 수백 번씩 연습하는 생활을 년 단위로 했다는 뜻이거든요."
지능이 어린아이 수준에 머무는 애완동물에게조차 같은 행동을 몇 번이고 연습시키면 배우고 익힌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지 않는가.
그런데 서당개도 아니고 서당 훈장이 평생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쳐주며 천자문을 못 외울까? 아마 그쯤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하여 낭송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요리사의 특기 요리라는 건 보통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특기였던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특기가 되는 것.
박종원이 생각하기에 찬혁은 분명 대단한 솜씨를 가진 요리사이긴 하지만, 아직 뚜렷한 하나의 특기 요리를 가질 때는 아니었다. 재능이 아니라 경력의 문제다.
이미 상식이라는 틀을 깨부순 지 오래인 찬혁이지만 그것만큼은 시간 이외의 해결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닭 요리에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요리와 평균적으로 큰 차이가 나진 않을 터.
박종원은 걱정스러운 투로 말을 이었다.
"닭 요리가 정말 류찬혁 선수의 특기라고 해도, 바로 주제를 닭 요리로 정한 건 조금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 성급한 판단이라뇨?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상대가 프랑스이기 때문이에요."
프랑스가 상대이기에 닭 요리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 말뜻을 이해 못한 MC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박종원이 그런 MC를 보며 반대로 질문을 건넸다.
"혹시 소고기 하면 어느 나라가 생각나세요?"
"소고기요? 어…… 호주나 일본 아닐까요? 우리나라엔 한우가 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고기는 아무래도 그쪽인 것 같아요."
"그렇죠. 호주는 청정한 자연방목으로 키운 건강한 소고기, 일본은 고기에 거미줄처럼 마블링이 들어간 고급 와규. 세간의 인식은 그렇습니다. 그럼 닭은 어느 나라의 닭이 유명할까요?"
"…… 아!"
"예. 정답이 생각나신 것 같네요. 맞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닭은 프랑스에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박종원이 말을 이었다.
"브레스. 공장에서 막 나온 도화지처럼 새하얀 깃털과 새빨간 볏이 대비되는 아주 멋들어진 품종의 닭입니다. 기존적으로는 한국의 토종닭과 같은 계열이지만, 프랑스는 품종 관리에 아주 엄격해요. 브레스를 생산하는 농장을 국가산업으로 관리할 정도죠."
"그렇게 고급스러운 닭인가요?"
"아무렴요. 괜히 한 마리에 30만 원을 호가하는 게 아니에요. 이건 아주 비싼, 특수 숙성 과정을 거친 브레스의 가격이지만요."
"사, 삼십!"
세상에, 그 돈이면 치킨을 스무 마리는 더 시켜 먹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MC를 보며 박종원이 말을 잇는다.
"프랑스의 국조는 수탉입니다. 그만큼 닭에 관련된 일화도 많고, 닭을 대하는 태도도 다른 나라와 차이가 많죠. 프랑스에서 잘 기른 닭으로 만든 요리는 아주 고급스러운 전통 요리로 취급됩니다. 서민부터 귀족 계층까지, 닭으로 만든 요리는 어디에나 속해 있어요."
보통 치킨이나 전기통닭, 백숙, 삼계탕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 한국의 닭 요리는 기본적으로 서민적인 분위기가 강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가정식과 고급요리의 비율이 거의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닭의 조리법이 다양하게 퍼져 있다.
서민적인 요리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자리에서는, 자리에 어울리는 요리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
'물론 한국에도 궁중요리에 쓰이던 고급 닭 요리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주제적 불리함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찬혁이 전통한식의 권위자인 안영길에게 사사한 요리사라면, 반대로 그 상대인 로랑은 유서 깊은 전통 프렌치 셰프인 아버지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후계자.
다른 주제라면 모를까, 닭 요리라는 주제에 한해선 확실한 승기를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승기를 장담하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질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몰라.'
하지만 찬혁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 정도 지식을 성심고에서 가르치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뭔가 생각이 있다는 뜻인데…….'
과연 무슨 생각으로, 어떤 승산을 보았기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생각의 미궁에 빠진 채, 좌중은 개막전을 맞이한다.
***
'닭으로 나한테 덤비겠다고?'
우습지도 않다. 로랑 마틴은 불쾌한 기분으로 조리복의 앞치마를 졸라맸다.
시답지도 않은 애송이에게 얕보였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전통 프렌치 셰프와 닭으로 대결한다는 건 펜싱선수에게 검을 쥐여주고 자신은 맨손으로 맞붙겠다는 것과 진배없는 일.
만약 누군가 그런 짓을 한다면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상대가 정말 멍청한 놈이거나, 아니면 이쪽을 무시하고 있거나.
─찌익!
과하게 힘을 준 탓에 찢어지고 만 앞치마 매듭의 이음매를 짜증 섞인 눈으로 본 로랑이 찢어진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것을 꺼내 다시 착용한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발해서 평정심을 떨어트릴 생각인지, 아니면 무시하고 있는 건지.
그런 속셈을 파헤칠 시간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다.
지금은 그저 링에 선 상대를 두들겨 패줄 시간이다.
"상대를 잘못 골랐단 걸 알게 해주마."
세계 최고의 닭, 브레스를 사용해서.
***
요리사와 주제가 정해진 뒤의 짧은 준비시간이 끝나고.
비로소 두 사람의 요리사가 스테이지 양 극단에서 서로의 조리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다.
사람들이 평하길 요리의 모차르트. 미지의 실력과 베일에 싸인 재능을 품은 소년 요리사. 류찬혁.
최연소 꼬르동 블뢰 수여자. 전통 프렌치 기술을 연마하여 젊은 나이에 프렌치 거장의 후계자 자리를 제 것으로 만든 천재. 로랑 마틴.
각국에서 천재라는 말을 질리도록 들어온 두 재자才子의 맞부딪치는 시선에 관중들이 절로 숨을 삼킨다.
서부극의 건맨이 서로를 총부리로 겨누는 모양새. 손에 들린 건 총이 아니지만, 총조차 갈라 버릴 듯 날카로운 예기를 드러낸 두 자루의 나이프가 총을 대신한다.
스테이지와 관중석을 환하게 비추던 조명이 동시에 빛을 꺼트리고, 어둠에 물든 스테이지 중심에 조명 여러 개가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조명 위에 선 심판이 양측의 상황을 곁눈질로 살핀 뒤, 단단히 준비가 됐음을 확인하고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댄 채 관중석을 향해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내지른다.
"시합! 개시이이!!"
그 순간, 한 차례 꺼졌던 스테이지 조명이 다시금 환하게 빛을 밝힌다.
동시에 울려 퍼지는 관중의 함성.
그야말로 행사장 전체가 떨릴 만치 커다란 환호성을 맞으며 두 요리사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야가 밝아진 탓에 어지러울 법도 하건만, 찬혁과 로랑은 조금의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고 사방으로 발을 구르며 조리대 앞을 종횡무진 뛰었다.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찍어낸 그림이라도 되는 것 마냥 꼭 닮은 꼴로 움직이는 두 사람.
마치 미리 행동 루틴을 입력해둔 기계처럼,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조리에 임한다.
단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본인들에게 필요한 재료를 챙긴 시점부터, 두 사람의 움직임이 변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처음 건드리는 재료가 바로 차이점의 시작.
닭 요리란 주제를 제안한 찬혁이 가장 먼저 닭을 손질하기 시작한다.
살은 건드리지 않고, 오로지 얇은 껍질에만 칼집을 만들어 최대한 원형 그대로 벗겨내는 놀라운 기술.
고작 1분 남짓한 시간 만에 오돌토돌한 껍질을 벗어던지고 잔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몸을 드러낸 생닭 한 마리가 도마 위에 덩그러니 남는다.
그 광경을 본 MC가 기함을 지르며 찬혁을 가리켰다.
"대, 대단합니다! 엄청난 속도! 칼을 어떻게 휘둘렀는지 제대로 볼 수도 없을 만큼 재빠른 손놀림! 류찬혁 선수! 순식간에 닭 껍질을 분리해냅니다!"
그 뒤에 이어진 행동 또한 재빠르다.
날개, 가슴, 다리. 허벅지. 모든 부위를 그야말로 교과서적으로 해체한 찬혁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살과 뼈를 분리해낸다. 꼭 얼기설기 조립된 레고 블록을 똑똑 떼어내듯 가벼운 움직임이다.
"우와……."
"치킨도 저렇게 잘 발리진 않겠다."
"무슨 푹 삶은 백숙도 아니고. 뭐 저리 살이 똑똑 떨어지냐?"
심지어 찬혁의 손으로 해체된 닭 정육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다울 지경이었다.
가슴살을 가장 완벽하게 발라내면 나온다는 물방울 모양.
마찬가지로 다리살을 가장 완벽하게 발라내면 나온다는 하트 모양.
정육 기술책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깔끔한 해체에 관중이 감탄사를 터트린다.
한편, 그 찬혁이 재빠르고 정확무비한 손기술로 단순함을 심플한 아름다음으로 승화시킬 무렵.
로랑 또한 자신의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 또한 가장 먼저 손에 잡은 재료는 닭. 하지만 당연하게도 평범한 닭이 아니다.
겉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총배설강을 통해 내장을 빼내고 깃털을 제거한 닭의 목 위에는 아직 깃털을 제거하지 않은 닭의 머리가 그대로 붙어 있다.
꼭 이제 막 냉장고에서 꺼낸 것 같이 새하얀 깃털. 반짝이는 루비처럼, 타오르는 불꽃처럼 새빨간 벼슬.
그 화려하고도 강렬한 색의 대비를 본 박종원이 입을 열었다.
"역시……! 프랑스팀의 로랑 선수, 시작부터 강력한 패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 색채의 대비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것의 이름을 잊을 수 없다.
"브레스! 프랑스의 자랑인 최고품질의 토종닭! 브레스를 꺼냈습니다!"
아직도 머리를 떼어내지 않은 브레스를 보며 박종원은 확신했다.
'역시, 평범한 브레스가 아니야.'
브레스는 그 생육 과정에도 수많은 관리가 필요한 닭이지만, 그 진가를 발휘하기 위한 과정은 비단 생육에만 있지 않다.
공들여 키운 브레스의 맛을 최후에 결정하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도축 과정.
농장에서 키운 닭을 공장식으로 도축하는 토종닭과 달리, 브레스는 그 도축마저 엄격한 절차가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숙성 과정.
고급 소고기가 도축 후 숙성하여 그 맛을 끌어올리듯이, 브레스 또한 고기를 숙성하여 본연의 맛을 더욱 진하게 만든다.
물론 이 또한 특수한 기술이 필요하다.
도살 후 내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심장을 비롯한 몇 가지의 내장을 뱃속에 남겨준 뒤, 저온, 건조한 환경에서 머리를 붙여두고 숙성하지 않으면 고기가 제대로 숙성되지 않는다.
여태 머리가 붙어 있다는 건 해당 숙성 과정을 제대로 거치고 나왔다는 뜻.
냉동 과정도 없이, 값비싼 휴대용 냉장기계 따위를 비행기에 그대로 싣고 온 것이리라.
분명 국내에서는 구하고 싶어도 그럴 수단이 없는 최고품질의 브레스.
그 진면모를 아는 박종원이 마른침을 삼키며 찬혁에게로 시선을 향한다.
'찬혁 학생이 쓰는 것도 분명 국내에선 그 이상 구하기 힘든 최고급 토종닭이지만, 생전부터 사후까지 모든 게 완벽하게 관리되는 브레스하고 비교하면 부족한 면이 있다.'
이 난관을 빠져나갈 방법이 과연 있을까. 걱정스런 생각에 잠시 주의가 흐트러진 그때, 갑자기 MC가 관객석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놀란 목소리를 내뱉는다.
"아앗! 로랑 선수! 닭을 손질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반죽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런데에!! 소금이! 반죽에 소금을 한 주먹 가득! 아니, 두 주먹씩이나 붓고 있어요! 대체 뭘 할 생각이죠?!"
'…… 뭐?!'
반죽, 과다한 소금, 닭.
MC의 외침을 듣자마자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감각에 박종원이 목이 꺾일 기세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들은 대로, 밀가루와 거의 비슷해 보일 정도로 많은 양의 소금을 섞고 있는 로랑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물 대신 버터와 대량의 계란 흰자만을 사용하여 반죽을 시작한 로랑.
그 모습을 본 박종원의 머리에, 절로 식은땀이 맺힌다.
"서, 설마……!"
예상은 했다. 분명 로랑이라면 최고의 프렌치로 승부를 보리라는 예상.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저 요리가 튀어나오리란 예상은 하지 못했다.
"브레센 크루트 드 셀Bresse en croûte de sel……."
직역하자면, 소금 크러스트로 감싸 구운 브레스.
레스토란트 마틴에게 3성의 영예를 안겨준, 명실상부 닭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프렌치.
프랑스가 '엘랑'했다.
박종원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