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개막전.-1-
어느 날 아침에 있던 일이다.
내가 처음으로 다른 네 사람을 상대로 이긴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평소 가장 먼저 연습실에 출근하던 나를 제치고 한발 앞서 주방에 출근도장을 찍은 분이 계셨다.
"사장님?"
"어, 찬혁이 왔구나. 좋은 아침이다."
유동건 사장님이었다.
원래 가게 일 때문에 정기휴무 날이 아니면 빨라도 저녁에나 오시던 분이 정기휴무도 아닌, 그것도 가장 바쁜 주말에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나와 계실 줄이야.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엄청 일찍 오셨네요?"
"어. 오늘부터 좀 일찍 다니려고."
"오늘부터요? 가게는요?"
"닫았어."
"예?"
"아, 아예 닫은 건 아니고. 대회 끝날 때까지만."
"엑."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놀랐다. 두 배…… 아니, 세 배 정도. 놀람에 치수가 있다면 말이지만.
"그래도 괜찮으신 거예요?"
"뭐가?"
"아니, 돈이라던가."
가게라는 건 그냥 그날 외출을 할까 말까 하는 문제처럼 간단한 게 아니다.
조물주 위 건물주가 되지 않는 이상 가게를 임대하는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돈이 소모되는 구조다.
전기, 수도, 가스는 안 쓰면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임대료는 꼬박꼬박 나간다. 입지가 괜찮은 곳이면 달마다 중견 회사원 연봉 수준의 금액이 소모되고, 그걸 장사로 메꾸는 게 기본이다.
물론 유동건 사장님의 가게가 있는 곳이 엄청난 번화가인 것도 아니고, 적당한 골목에 있는 곳이라 그렇게 임대료가 많이 들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장사를 잠시 접는다는 것 자체가 가계부에 심대한 타격이 되리란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
거기다 식당이란 곳은 한 번 탄력을 잃으면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오기가 힘든 직종이라, 몇 달 씩이나 장사를 하지 않으면 고작 가계부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장사 자체를 접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내 걱정에도 유동건 사장님은 걱정 말라며 웃으실 뿐이었다.
"괜찮아. 까짓거 우승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때까지 버티는 돈은 광고료로 번 거면 충분해."
"그야 뭐, 우승을 하면 괜찮기는 하겠지만요. 만약 못 하면……."
"왜. 자신 없어?"
"자신의 문제인가요?"
"그럼. 자신감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거지."
기술과 자신감이 받쳐주면 돈은 얼마든 벌 수 있다며 유동건 사장님은 웃었다.
솔직히, 뭐. 아주 공감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회귀 직전까지 단순한 월급쟁이였던 사람한테 자영업자의 심정을 깊이 이해하라는 건 좀 힘든 부탁이 아닌가 싶다.
"기억해라, 찬혁아. 진짜 무서운 건 번 돈을 까먹는 게 아니야."
"그럼요?"
"진짜 무서운 건, 기껏 번 돈을 또 까먹는다고 눈 뒤집힌 안사람이지."
"……."
이야, 그거 참.
내가 혹시 지금 죽은 사람과 대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몸이 허해졌나 왜 없는 사람이 보일까.
자기 독단으로 가계부에 마이너스만 적이게 생겼다며 껄껄 웃는, 그러면서도 묘한 공포심이 깃든 목소리로 사장님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꼭 우승해야 한다."
"그래야죠."
"진심이야."
"……예."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정말 진심으로 보였다.
***
그렇게 유동건 사장님이 가게까지 내려두고 열성적으로 참가하고 한 주 정도의 시간이 흘러, 그 성과가 비로소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팀 전원이 한 번씩은 내전 4연승을 달성하며 각각 휴일을 쟁취해낸 것이다.
개인의 역량을 이거다 싶을 정도로 최고조로 이끌어낸 상황, 비로소 훈련이 2페이즈로 넘어갔다.
개인역량 강화에 실었던 무게를 옮겨, 이번에는 단체 훈련으로 임한다.
다른 팀원의 1:1 시합을 심사하던 팀원들도 각자의 행동을 관찰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쌓았고, 이는 직접 몸을 움직이는 훈련만큼이나 효과적으로 각 팀원 사이의 연계를 강화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시간은 흐르고, 동그라미가 쳐진 달력의 D-day를 향해 하루하루 빗금을 그어나갈 때마다, 조금씩, 하지만 착실하게. 공을 들여 무너지지 않을 탑이 쌓여나간다.
이제는 개인이 각자 요리를 할 때도, 다섯이 함께할 때도 그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강화 합숙을 시작하기 이전과 비교하면 몰라보게 달라졌다.
강화 합숙 훈련 일정인 한 달 동안 이루어낸 성과치고는 지나칠 만큼 대단하다고 자화자찬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도 아직 방심하면 안 되겠지.'
전 세계의 기재란 기재가 총출동하는 이번 대회, 우리도 제법 많은 준비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만큼 준비한 팀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보다 많은 준비를 한 팀도 있을 거고.
벌써 며칠 앞으로 다가온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본선.
우리들의 달력에 하나씩 빗금이 그려질 때마다, 우리들의 손에는 그 몇 배나 되는 상처와 흉터가 더해진다.
개인 연습, 단체 연습, 정보 수집, 대책 수립.
24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가며 보낸 노력의 시간의 결과물을, 비로소 선보일 때가 왔다.
"일정을 마치며, 먼저 여기까지 따라와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순조롭게, 그리고 훌륭하게 훈련을 마친 건 여러분의 조력 덕분입니다."
합숙이 끝나는 날, 한자리에 모인 우리 앞에 선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과 함께하며 저는 커다란 가능성을 봤습니다. 우리가 시즌 1에 이어 시즌 2에서도 우승 할 수 있으리란 가능성입니다. 처음 보였던 미약한 불씨를 여러분은 숯가마도 따라오지 못할 뜨거운 화염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이제 그 열기를 세계로 퍼트려 거대한 산불이 되게끔 만드는 일만 남았습니다."
팀원을 한 차례 굽어본 교장 선생님은 한 차례 목례를 하며 말을 마치셨다.
"하지만 그게 설령 맥없이 꺼진다 할지라도,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저는 여러분을 향한 감사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앞서 맞이하는 자리에서 그 누구도 우리가 흘린 피땀을 폄하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이상입니다. 내일은 편히 쉬시고, 본선이 열리는 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전원의 고개가 힘차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 본선 개시일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때 방송가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던 예선전.
그 본방송이 곧 시작된다는데, 당연히 이번에도 각 인터넷 커뮤니티는 열렬히 반응했다.
아니, 정확히는 예선전 때보다도 훨씬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이제 막 받은 찬물보다 한 차례 끓였다 잠깐 식힌 온수가 더더욱 빨리 끓기 시작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열기는 압력솥에 가둔 끓는 물 마냥 당장에라도 터질 뜻 들끓었다.
과연 이번에도 시즌 1 때처럼 우승할 수 있을지.
다른 나라는 과연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을지.
그에 대항하는 한국은 제대로 대책을 세웠을지.
온갖 인터넷 전문가와 올튜버, 심지어는 공중파 방송마저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
당연히 참가자의 대략적인 신상 정도는 이미 대중 사이에 퍼진 지 오래였다.
물론 그건 찬혁 또한 마찬가지.
지금 재학 중인 성심고는 물론 그 이전에 다닌 학교에 대한 정보나 본인이 얽힌 사건사고. 거기에 더해 가족구성까지. SNS 따위로 알 수 있는 인적사항은 이미 대중들 사이에서 퍼질 대로 퍼져 있었다.
안 그래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기 십상인 위치에 자리한 찬혁인 만큼 관심이 모이는 것도 이미 개인의 수준을 넘은 탓이다.
어느 의미 폭풍의 중심에 있는 찬혁이기에, 당연하게도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또한 풍랑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지금.
찬혁의 앞에서 잔뜩 인상을 쓰고 '나 화났다'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중인 류주아 역시 바로 그 풍랑에 휩쓸린 찬혁의 주변인물 중 하나였다.
주변인물 이전에 가족이긴 했지만.
최근 류주아는 본인의 생활이 힘들 정도로 남들에게 치여 살고 있었다.
당연히 그 이유는 류주아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오빠인 찬혁 때문이다.
찬혁을 비롯한 한국팀의 이야기가 거의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정복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류주아와 찬혁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보다 본인들과 가까운 류주아에게 쏠린 것이다.
안 그래도 찬혁은 집과 연습장만을 오가며 그 외에는 거의 두문불출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찬혁이 따로 SNS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본인이 출연한 성심고의 올튜브 채널 등지에 얼굴을 내비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학원이나 학교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보다 성실한 사회활동을 하는 자신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게 류주아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오빠라는 양반은 진짜.'
드디어 강화 합숙 훈련이 끝났다고 온갖 짐을 집에 들여놓는다 싶더니, 들어온 날 이른 저녁부터 하루가 지나 태양이 정오를 지난 지금까지 잠에 빠져 일어날 생각조차 않고 있다.
대체 왜 사지 멀쩡한 사람 사인을 자신보고 받아달란 건지 이해를 못 하겠다.
아니, 그 이전에 대체 저 모질이 오빠가 이토록 유명해졌는지 모르겠다. 납득이 안 갔다.
'그야 가끔 밥 해주면 엄청 맛있긴 하지만…….'
류주아는 본인이 초등학생일 시절의 찬혁을 여전히 기억한다.
불량 청소년의 모범 같은 몰골에, 툭하면 소리나 지르고, 맨날 누구랑 싸워서 입술은 터져 있고, 반창고를 몸에서 떨어트린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시사철 반창고를 붙이고 사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지금은 얼굴에서 손으로 위치가 달라지긴 했다.
요즘도 툭하면 약 올리는 성정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간단한 심부름 정도만 대충 해줘도 용돈도 잘 주고, 예전에 광고를 찍는다며 방송국에 다닐 때엔 한 번 집에 돌아올 때마다 류주아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아이돌의 사인 따위를 잔뜩 구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류주아의 미래를 그녀 자신보다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주는 모습에선, 가끔 이게 정말 내가 아는 오빠가 맞는지, 겉모습만 똑같은 다른 사람이 아닌지 절로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뭐…….'
이렇게 정신 빠진 얼굴로 소파에 늘어져 자는 얼굴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아니, 조금은 독기가 빠졌나?'
하긴, 그때 같았다면 괜히 깨웠다가 꿀밤이라도 맞을까 이렇게 빤히 얼굴을 보고 있지도 못했겠지.
밥도 대충 먹고 여태 잠만 자는 제 오빠를 깨워 불평을 쏟아내려던 류주아는 이내 튀어나가려던 손과 말을 대충 속으로 우겨넣었다.
"……됐다."
불평 같은 거, 어차피 곧 얼마든 할 수 있을 테니까.
며칠 안 있어 또 외국으로 나가야 할 찬혁을 위해 류주아는 잠시 본인의 불편을 감수하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아마 며칠 지나지 않아 '그때 한소리 해줄걸'하고 후회할 것 같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