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Last summer.-4-
강화 합숙 훈련…… 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합숙이라고 할 건 아니다. 가끔은 차라리 낮보다 저녁이나 새벽이 더 시원해서 좋다는 이유로 오침이 보장된 새벽 조포 훈련을 나가는 것 마냥 주방에서 밤을 샐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숙소와 주방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강화 합숙 훈련이라는 세 단어의 모음에서 합숙이란 단어가 빠진 꼴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강화 훈련이란 건 찐이라는 거지.'
우리들의 훈련 사이클은 아주 간단하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적당한 체조와 조깅으로 간단하게 체력을 다진다.
운동선수도 아니고 무슨 요리사가 체력을 운운하느냐 하겠지만 요리도 어디까지나 몸을 움직이는 작업. 특히 바쁠 때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몸을 쉬어가며 할 수 있는 장사와는 달리 항상 풀쓰로틀로 달려야 하는 대회는 그만큼 체력이 중요하다.
나야 뭐, 나이가 어려서 평소 하는 운동으로 충분히 체력을 갖추고 있지만, 다른 분들은 많으면 나보다 50세는 연장자시니 이런 체력 단련도 최소한의 안배라 할 수 있겠다.
그 뒤엔 운동으로 지친 몸을 풀어주는 겸 간단한 단체 조리 연습. 응? 왜 휴식이 아니라 단체 조리 연습이냐고? 글쎄, 어째설까. 나도 모르겠는데 말이야…….
그러나 그조차 그 뒤에 이어질 연습에 비하면 대단치도 않은 것이다.
요즘 우리가 하는 훈련 중 가장 고강도 훈련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
이름하여, 한국팀을 이겨라 스페셜.
무슨 소리냐고?
진짜 나도 모르겠다고…….
***
강화 합숙 훈련 최고의 난관, 내가 이름 붙이길 한국팀을 이겨라.
그 전모는 아주 간단하다.
그냥, 혼자서 한국팀. 그러니까 우리 팀원 전체를 상대로 시합을 벌여 이기면 끝인 아주 단순한 훈련이다.
물론 혼자서 넷을 한꺼번에 상대해서 이기라는 게 아니다. 그랬으면 진작 탈주했지 이 팀에 남아 있었겠는가.
내가 무슨 눈깔에 구슬 박힌 탈주닌자도 아니고 1대4는 무리가 심하다. 그 양반조차 눈깔이 안 통하는 상대가 나오니 재빨리 빤스런을 치지 않았던가. 그럼 눈깔도 없는 난 어떻겠어.
아무튼, 자세히 설명하라면 1대4가 맞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1대1 시합을 네 번 반복하는 훈련이 바로 이 한국팀을 이겨라 훈련의 기본 골조다.
심사위원은 시합에 참여하지 않는 세 사람.
이기든 지든 다음 사람과 시합을 이어나가고, 그렇게 네 사람이 한 사이클을 돌면 그것으로 종료.
"누가 생각한 건진 몰라도 진짜 악랄한 훈련이네요. 아마 죽으면 벌 받을 거야."
"아니, 너잖아."
아, 그랬던가.
깜빡했다며 일부러 과장되게 놀란 척을 하는 나를 보는 다른 분들의 눈빛이 따갑다.
"제가 설명 드릴 시간을 잠시 빼앗아도 괜찮을까요?"
안 그래도 따갑던 황당하단 눈빛이, 이번에는 어디 씨부려보라는 듯 더더욱 따갑게 변했다.
"아뇨, 이게 시즌 1 때랑 같은 규칙으로 가면 개인전 한 번, 팀전 두 번으로 3선2승제잖아요? 결국 어떻게 되든 누구 하나는 세 번 연달아서 시합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가장 좋은 훈련은 실전 같은 훈련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저희도 실전처럼, 언제든 연달아서 시합을 해도 괜찮도록…… 아니, 아닙니다."
왠지 말을 하면 할수록 날 향한 눈길이 매서워져서 설명을 멈췄다.
뭐, 사실 이렇게 말해도 이 훈련법이 정착될 수 있었던 건 다른 분들도 내 생각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요리 대결이란 단순히 몸만 쓰는 게 아니다. 항상 최적의 동선과 최고의 효율을 실시간으로 머릿속에서 계산해야 하며, 심사단이나 상대를 예의주시하며 변화에 재빠르게 반응해야만 한다.
거기에 더해 언제나 참신한 발상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아이디어까지 짜내야만 하니, 이만큼 다양한 스텟을 한 번에 올리는 게 어디 평범한 훈련으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신화템을 사도 받을 수 있는 아이템 효과는 꼴랑 세 갠데 실제 사람 스펙을 올리려면 미니언 100마리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법이다.
골드 수급은 언제나 킬이 최고인 법이고, 그중에서도 연속킬을 먹고 전광판에 펜타를 띄우는 게 갑중갑이지. 뭐, 우리는 최대가 쿼드라지만.
우습지도 않은 설명은 이쯤 하고, 어쨌든 그런 자잘한 과정을 거쳐서 만든 훈련법이 바로 이것이다.
실제로 이 훈련은 제법 효과가 있어서, 벌써 한 주를 통째로 이 훈련만 한 지금에 와선 이미 우리 다섯 사람의 개인 역량은 몰라볼 만큼 성장해 있었다.
내 이론이 실제로도 충분히 효과를 보고 있단 증거다. 물론, 실제로 느끼는 고됨 또한 이론상 상정치 그 이상이었지만.
'여기다 포상까지 달아서 의욕까지 고취해 주니까 제법 효과가 쏠쏠하단 말이지.'
포상이라고 해봤자 하루 합숙 훈련 면제권이다.
조건에 비하면 너무 약한 포상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응? 조건이 뭔데 그러냐고? 4연승. 쿼드라 한 번 찍으면 포상휴가 1일이야.
고작 포상휴가 한 번에 얼마나 의욕이 고취될까 궁금하다면 딱 하루만 이렇게 살아보는 게 좋다.
아마 내 인생에서 이토록 1일짜리 휴가에 목숨을 건 적은 철원에서 매일 밥을 500인분씩 삼시 세끼를 만든 이후로 처음이니까.
…… 아, 지금은 이전이네. 와, 자살 마렵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현재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게 된다.
1. 1대1 요리대결 4연전을 통해 훈련.
2. 4연승 시 휴가 하루.
3. 현재까지 휴가 획득자 없음.
3번에서 눈물이 나온다고? 그래. 그게 정상이다.
현재 우리 팀원 중 최고기록은 교장 선생님의 3연승이다.
마지막 네 번째에서 거하게 발목을 잡고 넘어진 이영율 선배님의 작품이다.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자.
덧붙여 나 같은 경우 최대 연승은 교장 선생님과 똑같은 3승이다. 물론 경우가 좀 다른 것이 내 루트의 최종보스는 교장 선생님이라는 거고.
그 외에는 이영율 선배님이 승패승승으로 연승 아닌 3승. 차윤구 셰프가 승패승패로 2승.
그리고…….
"이런, 이번에도 틀려 버렸네."
아쉬움을 곱씹으며 우리의 판정을 받아들이는 유동건 사장님이 패배로 자신의 차례를 끝내며, 이번에도 1승을 기록했다.
***
문제가 있다.
유동건은 그렇게 되새겼다. 무슨 문제냐고 묻는다면, 아마 자격이라고 대답을 돌려줄 수 있으리라.
예선전에서 우승을 이룬 직후, 유동건은 환희에 들떠 있었다.
진즉 복잡한 요리에서 손을 놓고 장사를 위한 요리를 시작한 유동건은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상당히 기량이 쇠퇴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든 옛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아득바득 예선을 올라가긴 했지만, 이미 기량의 대부분을 잃은 자신과 칼을 갈고 출전한 다른 참가자와의 격차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고랑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쟁취해낸 예선 우승이라는 쾌거. 환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마치 대단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개선장군과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분수를 모르던 개선장군이 곧이어 나라의 총력을 기울일 전쟁이 다시금 닥쳐오고 있다는 것을 안 그때.
그제야 유동건은 진실로 깨달은 것이다.
개선의 영광은 그 대부분이 본인보다 훨씬 유능한 책사이자 장수인 타인의 도움으로 이루어낸 것이며, 그 영광에 본인의 몫이 별로 크지 않다는 것을.
사실을 깨달았을 때엔 이미 시기는 늦은 뒤였다.
얻어걸린 영광을 바라본 사람들은 그의 부족함을 알지 못했고, 눈치챈 소수의 사람은 다수의 의견에 눌려 진실을 펼칠 기회도 얻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소수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본인임에도 말이다.
요즘 들어 유동건은 새삼 자신의 부족함을 다시금 깨닫고 있었다.
찬혁의 제안으로 시작된 연전 훈련. 팀원 중 가장 저조한 승률을 자랑하는 건 바로 자신.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부족함을 실감하지 못한다면 그건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 멍청이거나, 혹은 알고도 눈을 돌리는 겁쟁이일 것이다.
'그럼 나는 겁쟁이인 쪽인가.'
팀의 구멍이 자신이 됐다.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이미 예선은 끝났고, 인원은 정해졌다.
맘대로 팀을 빠져나갈 수도 없고, 만약 빠진다 해도 자신의 빈자리는 누가 채울까.
안 그래도 곧 다가온 본선에 힘입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만큼 늘어난 상태다. 갑자기 결원이 생기고 그 자리를 누군가 채운다면 당연히 주목이 쏠릴 것이고, 쏠린 주목은 곧 부담이 되겠지.
무엇보다도 여태껏 같이 합을 맞춰온 팀이 또다시 적응하는 데에 걸릴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그들에겐 엄청난 민폐를 끼치게 되리라.
자신에게 돌아올 비난은 감수할 수 있더라도, 그것만큼은 견딜 수 없는 유동건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고 있었을까, 잠깐이지만 그 고민을 잠시 물리게 할 수 있을 만한 화제가 하나 생겼다.
여태껏 아무도 따내지 못했던 4연전 전승 포상인 하루의 휴가. 마침내 그것을 얻은 팀원이 탄생한 것이다.
"이, 이겼어요? 제가요? 진짜로?"
해냈다! 라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드는 어린 소년, 찬혁이 바로 영광의 첫 포상휴가 획득자였다.
"우와…… 판정은 우리라지만 이게 진짜 되네."
"축하해요. 찬혁 학생."
모두가 내심 처음 포상휴가를 획득하는 이는 팀장인 안영길이 되리라 예상하던 가운데, 예상을 뒤집고 최초의 주인공이 된 찬혁의 모습에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그러나 유동건은, 그 사실이 어쩐지 그렇게 크게 놀랍게 느껴지진 않았다.
찬혁과 예선전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 진짜 실력을 알게 됐기 때문일까.
저 어린아이는 언제나 놀라운 발상과 뛰어난 실력으로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항상 놀래켜 왔으니까, 덕분에 이번에는 그 놀람이 작아진 탓일지도.
강화 합숙 훈련 중 처음 맞이하는 휴일에 들뜬 찬혁이 뒷정리를 하며 자랑하듯 내일 예정을 읊는 모습을 보며, 한국팀 모두가 흐뭇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동건조차도 그때만큼은 씁쓸함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웃어 보였다.
그러나, 찬혁이 첫 4연승을 거둘 때조차 크게 놀라지 않은 유동건이 진심으로 놀란 건 바로 다음 날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사장님!"
"찬혁아? 너 왜 여기 있냐?"
분명 어제 포상휴가를 따내어 오늘은 쉬어야 할 터인 찬혁이, 어쩐 일인지 어제와 똑같은 조리복 차림으로 여느 때처럼 가장 먼저 주방에 나와 팀이 사용할 조리도구 따위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는 날 아니었어?라고 놀라 묻는 유동건에게, 찬혁이 답했다.
"그, 저도 쉬려고 계획을 쭉 짜봤는데, 이상하게 발이 저절로 이리 오더라고요."
왜? 그 물음이 나오기도 전에 겸연쩍은 웃음을 지은 찬혁이 말을 이었다.
"제가 나이도 어린 만큼 팀에서 가장 부족하잖아요. 그런데 그냥 쉬자니 이상하게 몸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뭐, 나왔죠.
그렇게 말하며 준비를 이어나가는 찬혁의 모습에 유동건은 뜻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니, 아니지.'
정정한다. 모르지 않았다.
이토록 부족함 없이, 모든 면에서 유동건 자신보다 나은 찬혁조차 스스로가 부족하다며 쉬는 날까지 자진 반납하고 있는데, 그 자신은 자기가 모자라다며 궁상이나 떨고 있다니.
그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워져서, 유동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 그래, 너도 참, 대단하구나."
"에이, 뭘요. 저야 할 일 없는 방학 맞은 학생이라 연습에 열심인 거지, 사장님이나 차윤구 셰프는 본인 일에 연습까지 같이하시고 계시잖아요. 이렇게라도 안 하면 못 따라가죠."
아니다. 정말 못 따라가는 건 나다.
그 말을 꺼낼 염치가, 유동건에겐 없었다.
바뀌어야 한다.
굳게 닫혀 있던 유동건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그 속에서 과거 레스토랑을 지휘하던 선임 셰프의 영혼이 불꽃처럼 튀어 오르고 있었다.
***
그날 밤.
유동건이 운영하던 치킨집의 현관 손잡이에는 굵은 쇠사슬이 둘둘 말려 있었다.
"뭐야, 여기 문 닫았어?"
오늘도 동네에서 소문난 맛집에서 치맥을 조지려던 남자는 아쉬움을 표하며 등을 돌리려 했으나, 현관 앞에 붙은 종이를 발견한 그는 이윽고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감탄사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오……."
'치킨디너를 찾아주신 고객님께 알립니다. 사장의 개인적 사정으로 잠시 문을 닫습니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우승 후 돌아오겠습니다.'
단 세 마디 문장.
그 속에 담긴, 그야말로 마초스러운 단언에 감탄을 참을 수 있는 사나이는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