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06화 (306/403)

306. Last summer.-3-

겨울이 추우면 그해 여름은 덥다고 했던가.

그냥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속설인지, 그도 아니면 과학적으로 무언가가 증명된 법칙 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살면서 보면 그 말이 맞을 때도 있었고, 반대로 틀릴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평가하기에 이번 여름은…….

"…… 진짜, 어르신들 말 틀린 거 하나 없다더니."

더웠다. 그것도 아주 죽여주게.

***

마침내 건물 바깥 공원 정자의 기둥에 매달린 수은 온도계가 비로소 40이란 기록적인 수치를 깨버린 정오.

얼마나 날이 더우면 평소에도 조금은 보였던 산책하며 바람을 쐬는 시민의 모습마저도 지금은 온데간데없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거리에 사는 기분.

도로 위를 지나다니는 자동차만이 그나마 사람이 있단 걸 깨닫게 해주지만, 그나마도 자동차가 지나간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면 단박에 정신이 가출할 것 같기에 금세 눈을 돌리게 된다.

"진짜 여름방학이란 거 잘 만들었다니까."

이 날씨에 안 그래도 신진대사 높아서 평범한 성인보다 체온이 높은 애들을 서른 명씩 교실 하나에 앉혀놓고 공부를 시킨다? 이야, 그냥 죽여 달라고 소원을 하는 꼴이지.

성심고처럼 시설만큼은 하자 하나 없는 학교라면 모를까, 세상엔 그렇지 않은 학교가 훨씬 많으니까.

그러니 가장 덥고 추운 시기에 아이들을 잠시 쉴 시간을 마련해주는 방학이란 제도는 학생에게 있어 아주 인간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뭐, 나야 그렇게 방학을 맞이했음에도 휴식하고는 제법 거리가 먼 나날을 지내고 있다마는.

이 무슨 비인간적 처사!

하지만 이 상황을 초래한 책임이 반 이상 나에게 있단 걸 생각하면 그 비인간적임이 억울하진 않지만.

요즘 강화 합숙용으로 사용되는 한 요리학원 시설의 주방은 바깥의 무더위 못지않은 열기를 자랑하느라 바쁘다.

그만큼 냉방비와 가스비가 빠지긴 하지만 대부분은 방송국 부담이라 괜찮다.

…… 그래, 종종 들르는 오대수 PD님 얼굴이야 좀 울상이긴 해도 버틸만하니까 아무 말 없으신 거겠지.

가끔 차라리 지금은 동아리 활동 말고는 사용할 일이 없는 학교 쪽 주방 시설을 쓰는 게 낫지 않나 싶을 때도 있지만 나나 교장 선생님은 그렇다 쳐도 다른 분들이 사는 곳에선 매일 찾아가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아 절충하여 고른 곳이 이곳이니까.

아까까지 봤던 주방의 열기를 되새기면 그 선택이 영 틀린 것 같진 않다.

"그나저나 그간 다들 몸이 꽤 찌뿌둥하셨나 보네."

그럴 만도 하다. 요즘 통 몸을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합숙이 시작한 뒤 약 일주일 정도, 우리는 주방에 서기보다 책상 앞에 앉는 일이 더 많았다.

한국과 같이 시드권을 가진 팀에 더불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다른 팀에 대한 정보 또한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터키, 스페인 같은 설명도 필요 없는 서양 요리계의 강자나, 동아시아 전체 요리역사의 큰 기둥을 이루는 중국. 동남아시아에서는 손꼽히는 식의 강국이자 시즌 1 때 베트남과의 피 말리는 이웃국가 혈전을 뚫고 올라온 태국. 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국가이자, 그만큼 깊은 요리 역사를 가진 인도.

누구 하나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 그만큼 우리도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거기다 슬슬 올라오는 다른 나라 사정도 제법…….'

당연한 소리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확인한 비 시드권 국가는 영어를 사용하는 영어권 국가였다. 왜냐고? 번역이 편하니까!

아무튼 그런 비 시드권 국가 중 서양 쪽에서 눈여겨본 팀이 있다면 다름 아닌 미국과 영국이었다.

딱 봐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염분이 과다해서 칼로리가 높다 못해 산을 쌓을 것 같은 호쾌한 요리가 절로 떠오르는 상마초 국가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미국이지만, 예전에는 기회의 땅이자 인종의 용광로라는 별명까지 있던 미국인만큼 미국 출신의 셰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았다.

영국도 그렇다.

우스갯소리로 세계 최악의 요리를 꼽을 때 반드시 한 손에 꼽히는 것이 영국 요리라지만, 그렇다고 영국 출신 셰프 중에 기재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아는 영국 출신 셰프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사실, 그 나라 음식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그만큼 필사적으로 요리를 배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악의적인 음해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뭐, 사실 영국 음식이 사람들 생각처럼 그렇게 끔찍한 편은 아니다. 맛있는 레스토랑을 가면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다만, 한국처럼 한 끼 8천 원짜리 국밥집을 가서 얼추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진즉 접는 게 좋긴 하지만.

어쨌든, 그 외에도 저번 8강에서 한국과 붙어 탈락했던 일본도 이번에는 더더욱 칼을 간 것 같고, 또 독일이나 러시아, 베트남, 캐나다나 스웨덴 등등.

두 손발을 다 써도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나라가 출전하는 이번 대회.

어떤 식으로는 정보를 머리에다 쑤셔 넣지 않으면 안 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아니하다.

손자병법의 유명한 한 구절이지만…….

'대상이 우리가 돼 버리면, 이게 참.'

적이 우리를 상대하는데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아니하면 어쩌란 거야.

손자 선생님. 정말 그러셨어야 했습니까?

아마 가장 많은 경계를 받는 팀 중 하나인 우리가 정보까지 훤히 공개되어 있으니, 다른 팀들이 얼마나 우리를 조사해놨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결국 우리가 이토록 연습에 목을 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본선의 나갈 때의 우리가 그 이상으로 성장하면 아무 문제도 없을 테니까. 물론, 이게 우리한테만 통하는 해결책도 아니겠지만.

우리가 상대를 알아가는 시간 동안 저들도 성장을 안 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래도 구구단을 풀려면 적어도 덧셈과 곱셈은 알아야지.

정보를 아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보다 더욱 위를 상정한 훈련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하는 강화 합숙인 것이다.

부디 이 연습이 본선에 나가기 위한 충분한 연습이 되길 바라며, 우리는 오늘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사계절이 미운 하루였다.

***

찬혁의 예상대로, 한국팀이 연습에 매진하는 동안 타국의 팀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각자가 각자의 방식대로 연습에 매진하며, 세계 최고를 가리는 자리에서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에 여념이 없는 그들.

누군가는 개인으로, 누구는 단체로, 칼을, 불을, 재료를, 지식을.

서로 어떤 것을 익히고 배우느냐는 서로 달랐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정보수집.

한국팀처럼 그들도 다른 팀의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 힘을 쏟는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한국팀이라는 특히나 눈에 띄는 목표가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팀의 존재는 마치 물고기 떼 앞에 커다란 집어등을 들이댄 것과 같았다. 전 시즌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한국팀의 정보를 접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찬혁의 존재가 그러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참가자들의 평균 나이대가 50~60대를 오가는 와중, 혼자서 팀의 평균 나이를 극적으로 끌어내리는 18살 미성년자가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니, 이 꼬맹이는 뭐야?"

"틴에이저 애송이가 대회에 나온다고?"

"한국에는 그렇게 인재가 없나?"

당연히 찬혁을 처음 본 대부분의 참가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신랄한 말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재능이 있는 학생이 있을지는 모른다. 요리에도 천재가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요리라는 분야에서 모차르트는 탄생할 수 없다.

인종이나 문화를 초월하여 이해를 아우를 수 있는 음악과는 달리, 그 무엇보다 인간의 사회와 문화 속에 녹아들어,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요리다.

아니, 요리 자체가 문화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고 하루하루 뇌와 혀, 손을 혹사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영감과 재능으로 메꿀 수 없는 무언가가 요리에는 있다.

재능이란 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녹록한 세계가 아니다.

그게 바로 참가자들의, 요리사의 상식.

하지만 찬혁의 영상자료를 하나하나 찾아볼수록, 그들은 자신의 상식이, 세계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식, 기술, 발상.

어느 부분에서 보아도 도저히 그 나잇대의 학생이라고는 믿기 힘든 기량의 총망라. 보는 사람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의 연속.

한국의 예선전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을 목격한 이들은 쉬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

"저게 진짜 학생이라고? 내 아래서 일하는 놈들 서넛을 데려다 놔도 못 당할 것 같은데?"

"…… 요리에도 모차르트가 있을 수 있다는 건가."

상식이 무너지는 느낌이란 실로 해괴한 것이어서, 몇몇 참가자는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참가자 중에서도 놀라운 감정을 가장 먼저 접어둔 몇몇 이들은 그런 한국팀의 약점을 분명히 알아챈 듯 눈을 빛낸다.

"…… 마지막이 팀전이었던 게 저 나라의 실수로군."

"그러게요."

이것이 만약 개인전이었다면.

사람 하나하나를 1위부터 꼴찌까지 늘어놓고 위에서부터 골라가는 형태였다면 아마 한국팀의 구성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저 애는 그렇다 치더라도, 같은 팀이던 둘은 아마 순위를 아래서부터 세는 게 빠르겠어."

"실력의 평균치는 분명 다른 팀이 더 높았어요."

"그게 큰 차이로 벌어지기 전에, 발상으로 결과를 뒤집은 거야. 아마 저 꼬마 솜씨겠지."

"어느 의미 리더의 통솔력 차이였네요."

"프리 라이더로구만."

그들의 지적은 어느 의미 옳았다.

아마 그대로 계속 연전을 펼쳤다면 끝끝내 이긴 것은 찬혁이 소속된 1팀이 아닌, 상대였던 4팀이었을 것이다.

당시 유동건은 여전히 과거의 기량을 회복 중인 상태였고, 차윤구도 본인의 솜씨 자체를 놓고 보면 크지는 않더라도 분명히 손색이 있었기에.

실제로 결승전이 방영된 당시에는 세 사람의 자격에 대한 키보드 배틀이 한국의 커뮤니티 등지에서 종종 일어나기도 했었다. 지금에 와서는 당시에 비해 흥미가 시들시들해지며 논란도 같이 묻혔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최대한 냉정하게 살피는 이들은 당시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집을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나아졌을지는 몰라도, 아직 저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래, 우리 상대는 못 된다."

특히, 그 어느 팀보다 낱낱이 한국팀을 해부하고 있던 그들에게는 말이다.

"재작년의 설움, 올해에는 그대로 갚아준다. 명심해라, 야마다. 두 번의 패배는 없다."

"예. 치프."

8강에서 한국팀에게 패배하여 시드권조차 얻지 못하고 국내에서 온갖 비난을 들었던 일본팀이 복수의 칼날을 간다.

비수를 기르는 것은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다.

작년 결승에서 한국팀에게 패배하여 준우승으로 그친 이탈리아.

동아시아 최대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치켜든 중국.

프렌치야말로 세계 최고의 요리라는 것을 증명해낼 마음으로 팀 자체를 갈아치운 프랑스 등.

칼날을 빼든 나라는 결코 한둘이 아니다.

찬혁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분명 억하심정 품지 말라며 황당해했겠지.

한국팀이 화제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지금.

무던히 뜨거운 여름의 태양도 점점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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