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04화 (304/403)

304. Last summer.-1-

이스터 에그라는 말이 있다. 용어 자체는 부활절에 나눠주는 부활절 달걀을 뜻하지만, 다른 업계에서는 이 부활절 달걀 속에 삶지 않은 날계란을 숨겨두는 행위를 빗대어 무언가를 숨겨놓는 행위를 이스터 에그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 일반인이 살면서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스터 에그는 게임 속에 있다.

게임 속에서 특정한 액션이나 커맨드를 입력하거나, 혹은 어느 위치로 갔을 때 개발자가 숨겨둔 특수한 이벤트 따위가 출몰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마 오락실 게임기에서 캐릭터를 고를 때 물음표에 커서를 두고 위위 아래아래 A, B 동시입력 따위로 히든 캐릭터를 고르는 것도 대표적인 이스터 에그 중 하나겠지.

아무튼, 세상이 점점 멀티미디어를 지어 1인 미디어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달함에 따라 이 이스터 에그는 점점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내가 이번에 준비한 것 또한 그런 이스터 에그의 일종이다.

영상 속 화면이나 소리에 특정한 코드를 섞어놓음으로서 호기심 왕성한 유저가 그것을 찾아내게 하는 것. 한창 QR코드 조리영상이 핫할 때 나온 장난이었던가. 처음으로 그 존재가 밝혀진 뒤로 한동안 같은 회사 제품에서 이스터 에그 찾기 운동이 벌어진 적도 있다.

뭐, 당연히 내가 찍은 30초 남짓한 광고 중에 그런 걸 자세히 숨겨놓을 여유도, 준비할 시간도, 그리고 누군가 그걸 찾아낼 만큼 광고에 흥미를 가지리란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한창 1절, 2절을 넘어 뇌절까지 갔던 그때처럼 복잡한 이스터 에그를 숨겨놓진 못했다.

어느 이스터 에그는 너무 꼼꼼하게 숨긴 나머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무도 이스터 에그를 찾아내지 못해 개발자가 직접 SNS에 공개한 비극적인 과거도 있으니까.

아무튼, 내가 숨긴 이스터 에그는 앞서 말했다시피 굉장히 간단하다.

32, 16, 07. 광고 대사 중 나온 특정한 숫자를 하나로 조합해서 주소창에 치기만 하면 되는, 이스터 에그라고 부르기도 뭐한 단순한 수수께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걸 이렇게 일찍 찾을 줄은 몰랐는데.

이런 종류의 이스터 에그가 소비자들에게 처음 발견된 건 해당 제품이 발매되고 약 반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나마도 촬영한 배우가 SNS에서 작게 언질을 주고 나서야 이걸 의심스럽게 여긴 해당 배우의 팬이 우연히 발견한 거였고.

그에 비해 마라두부면은 이제 막 판매를 시작한 지 2주 정도 밖에 안 됐는데, 그새 이스터 에그를 발견했단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뭐, 이스터 에그라고 해봤자 별것도 아니긴 한데.'

어둠의 푸른무원이니, 건강하지 않게 먹는 방법이니 뭐니 했지만 내가 따로 올린 영상은 단순히 밀키트를 귀찮지만 더 맛있게 만들어 먹는 조리법을 소개한 영상에 불과했다.

두부면을 라유에 볶기 전에 밀가루를 골고루 묻혀서 볶아준다거나, 소량의 다진 마늘과 돼지고기를 섞은 식용유를 전자렌지에 넣고 돌려서 간단한 라드 풍미 마늘 향미유를 만들어 마라두부면 위에 뿌려 먹는 등의 잡스런 기술 같은 걸 알려주는 것이다.

하면 확실히 맛있어지지만 그만큼 칼로리가 늘어나는, 푸른무원이 추구하는 모토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야매조리법이 가득 농축 함유된 2분짜리 암흑조리비법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어지간한 시중에서 판매하는 메뉴보다야 훨씬 건강한 식단이겠다마는 푸른무원이 이걸 공식으로 밀기엔 영 아니올시다 싶겠지.

이러한 이유로 공식선상에는 올리지 못한 레시피이기에, 어둠의 푸른무원 같은 웃기지도 않은 별명으로 우리 학교채널에만 독자적으로 업로드 된 영상이다.

푸른무원이라도 이 정도는 재미로 보고 넘어가주겠지. 협의야 대충 되긴 했지만 결국은 인터넷에 나도는 색다른 라면 조리법이랑 그다지 다를 건 없으니까.

'아주 모르고 넘어가기엔 조금 유행을 타긴 했는데…….'

그래 봐야 결국 잠깐의 유행일 뿐이고, 제품 자체도 한정판매 상품이니 이런 잠깐의 유행도 자연스럽게 사그라지겠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

이스터 에그 사건으로부터 또다시 2주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마라두부면이 판매를 개시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그 정도나 시간이 지났으면 이 유행도 적당히 가라앉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SNS에 얼마나 사람들이 미쳐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아, 이 부분 라임 괜찮으니까 체크.

'…… 하.'

이런 시답잖은 헛소리가 절로 흘러나올 만큼 내 멘탈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봐줬으면 좋겠다.

마라두부면의 판매도 앞으로 한 달이면 끝나는데 이놈의 판매량은 여전히 상한가를 치고 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내 통장에 꽂히는 러닝 개런티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거든.

아무튼 돈을 버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유명해진 것이 바로 내가 제안한 QR코드로 쉽게 찾아보는 조리영상과 이스터 에그 영상이었다.

사실 영상 속에 이스터 에그를 넣어놓는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많은 올튜버가 다 그러는 건 아니지만 아예 영상 하나를 올릴 때마다 이스터 에그를 집어넣는 올튜버도 있고, 혹은 영상 전체가 일종의 클릭 액션으로 이어지는 아주 유명한 영상형 선택지 게임도 있었다.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기에 그다지 유명해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조회수가 300만이 넘었네……."

2주 전까지만 해도 커뮤를 깊게 하는 사람들이나 알음알음 찾아오던 내 영상이, 지금은 유명 올튜버가 렉카를 몰 정도로 유명해진 상태다.

거기다 그런 폐쇄적인 영상을 찾아온 사람들답게 댓글이나 좋아요 수가 조회수에 대비해도 확연히 많다. 평균은 분명 넘었을 만큼.

아마 링크 전용 영상이 아니었으면 실시간 인기 영상도 노릴만하지 않았을까?

덕분에 학교 영상채널을 관리하는 성심고 방송부에선 '그렇게 노력해도 안 올라가던 구독자 수가 갑자기 세 배가 됐어…….'라며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모를 탄식을 내뱉더라.

뭐, 원래 우리 학교 영상을 시청하던 유저들이 아니기에 댓글 분위기는 살짝 어수선하다고 하지만 그거야 알아서 잘 하겠지. 이게 바로 책임전가라는 거다.

그야말로 순환이었다.

마라두부면이 유명해지면, 거기에 따라 조리영상과 이스터 에그가 유명해지고, 그 둘이 유명해지면 다시 마라두부면이 유명해지는.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업 입장에선 틀림없이 전자일 거다. 나한테는 어떠냐고? 글쎄…… 어느 쪽으로든 적용되지 않을까 싶은데.

일이 이렇게 되니 판매량 증가로 몸이 달아오른 푸른무원 측에선 내게 이런 연락까지 보냈다.

─저, 혹시 찬혁 씨가 괜찮다면 자사의 타제품에도 같은 형식의 프로모션을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예, 제가 따로 특허를 낸 것도 아니니까 전 딱히 괜찮은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 그럼 혹시 다음 영상에도 출연하실 생각은…….

"그건 사양할게요."

칼차단이었다. 이 이상의 관심을 받는 건 제법 진지하게 부담스럽기도 했고, 또…….

"슬슬 저도 본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다가오는 가을에 시작될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본선.

여태껏 그에 대비한 연습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 한 연습은 일종의 워밍업이었다.

스트레칭과 유산소로 적당히 몸을 풀어줬다면 이젠 중량으로 몸을 조질 차례.

한 번 파괴된 근섬유가 회복하며 몸의 근육이 불어나듯이, 우리도 고강도 훈련을 통해 실력을 불려 나갈 시간이 됐다.

"…… 마침 타이밍은 나쁘지 않네."

여름방학이란 말이지.

선생님을 통해 전달받은 '본선 대비 강화 합숙 훈련 요강'이라 적힌 통지문.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좌절로 물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부디 봐줬으면 한다.

"한 달 동안 중량을 조지면 근육이 느는 게 아니라 분근착골을 당하겠는데."

프로 보디빌더용 PT를 받아도 안식일은 줄 텐데 말이야.

싫어도 나갈 수밖에 없는, 그리고 이 계획이 너무 빡세지 않기만을 빌 수밖에 없는 처지가 그저 서러울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점이 특히.

***

한창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는 계절은 쏜살같이 지나, 어느덧 천변만화 알록달록한 꽃무리의 색을 푸르른 녹음이 덮어 버리는 계절이 찾아왔다.

사람은 늙을수록 시간의 변화를 빠르게 체감한다고 하던데, 과연 내가 이토록 시간의 흐름을 민감하게 느끼는 이유가 영혼이 나이를 먹어서일지, 아니면 그냥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눈코 뜰 새 없는 탓일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시간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때는 역시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다.

제대로 성장기를 맞은 건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 반 아이들은 내가 처음 1학년 교실에 들어왔을 때를 되새기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물론 그건 육체 나이가 같은 나 또한 그리 다를 건 없다.

처음 등교할 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어야 간신히 닿던 교실 문의 윗문턱이 이제는 문을 드나들 때마다 존재감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왔고, 평소엔 위를 향해 보던 시선이 자연스레 아래로 향하는 일이 많아졌다.

'회귀하기 전보다 더 큰 건가?'

이상한 일이다. 분명 성장에는 영양과 수면이 가장 중요할 텐데, 영양은 잘 먹고 잘사니까 그렇다 쳐도 수면만큼은 굉장히 부족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내가 예전보다 더 커지다니.

날 둘러싼 주변 환경이 이전보다 좋아진 탓일지, 아니면 그냥 기분 탓일지.

활짝 연 창문 바깥에서 쏟아지는 바람에 더욱 크게 밀리는 느낌을 받는 것도 몸이 다부져진 탓일지도 모른다.

가끔 교문 바깥을 지나는 자동차의 차창에서 반사되는 빛을 보고 눈을 찌푸리고 있자니, 어느새 다가온 김철정이 내게 말을 건다.

"뭐 보냐?"

"딱히, 아무것도?"

"왜 의문문이야?"

"너는?"

의문문에 의문문으로 답하지 말라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처럼 한참을 물음표 가득한 대화만 주고받던 우리는 결국 둘이 동시에 나가떨어질 때까지 비슷한 짓을 하고서야 멈췄다.

보통 남정네들이란 이런 우습지도 않은 걸로 고집을 부릴 때가 있는 법이다.

"근데 진짜 뭐 보고 있던 건데?"

"아니, 여기도 꽤 변했다 싶어서."

"변해? 뭐가?"

"이거저거. 원래 없던 건물도 몇 개 보이고, 있던 건 또 안 보이게 됐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졌고, 우리 위에는 이제 아무도 없고. 뭐 그런 거."

"…… 너 가끔 우리 아빠도 안 할 것 같은 소리 하는 거 알아?"

"뭐래."

그렇게 치면 이 녀석도 상당히 변했다.

선이 굵어졌고, 아침마다 수염이 나서 귀찮다며 저번에는 제 돈으로 면도기까지 샀다던가. 뭣보다 크게 변한 건 최근 들어 게임타령을 별로 안 한다는 것이다.

…… 그야 이제 고3인데 언제까지 게임 타령만 하겠는가. 요즘 수업 분위기가 적잖게 살벌한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녀석이야 참고 있는 거겠지만.'

요즘도 가끔 게임 판매 사이트에서 할인 목록을 뒤지고 있단 걸 모를 내가 아니다.

"그런 것만 걱정하지 말고 어? 당장 눈앞에 온 기말고사를 걱정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건 딱히 걱정이 안 되는데."

"…… 무엇이지? 기만인가? 진학이고 취직이고 아무 문제 없으니까 조져달란 뜻인가?"

왜 열 내는 거야. 진학은 그렇다 쳐도 취직에 문제없는 건 자기도 똑같으면서.

이상한 짓 좀 그만하라는 내 시선에 더더욱 열이 뻗쳤는지 괴상한 소리를 내는 녀석을 조용히 좀 하라며 힐난하는 눈초리로 보던 그때, 나와 마찬가지로 소음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높인다.

"마! 시끄럽다 안 카나! 가서 조동아리 꼬매뿔기 전에 알아서 싸매라."

"앗, 네."

"희연아, 너도……."

변했다고 하면 이 녀석들도 빼놓을 수가 없지.

성장기가 늦었던 건지, 고3이 되어서 키가 큰 덕분에 1반 최단신 딱지를 간신히 뗀 양희연과, 반대로 이제야 성장기가 멈춘 건지 나와 키가 비슷한 지점에서 멈춘 나현주.

"아하, 떠들썩한 거 활기차고 좋은데 뭐!"

"난 싫어. 그렇게 좋으면 그냥 다 같이 나가라."

묘하게 제 언니랑 비슷하게 커가는 중이지만, 실실 웃는 낯만큼은 여전한 백예은.

이쪽도 또 반대로 자기 누나랑은 다르게 시니컬한 기질만 가득해지기 시작한 안창민.

2년 전과 다른 모습의 녀석들이, 2년 전과 다른 모양으로 저마다 떠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의 평범한 여름풍경이었다.

다시 오지 않으리란 것을 깨달은 후에는.

아마 무엇보다 눈부신 풍경이 될지도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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