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수금 파티.-5-
대성공.
그런 말이 감히 아깝지 않은. 아니,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
뭐가 말이냐고? 당연히 우리가 찍은 광고. 정확히는 광고한 제품이 아주 초대박을 쳤다.
"믿겨져? 푸른무원 두부 한 달 매출을 제껴 버렸다니까?"
"…… 두부면 하나가요?"
"그…… 뭐, 엄밀히 말하면 두부면 하나가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두부면으로 만들어지는 밀키트까지 합쳐서 그쯤 된다는 거지."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신나 하는 선생님의 텐션을 난 말릴 수 없었다.
'확실히 대단한 건 맞긴 하니까.'
성심고에선 단순한 요리기술 외에도 외식산업 전반에 대한 교육을 같이 받는다. 물론 그 중엔 식품산업에 대한 교육도 있다.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배운 수업내용 중엔 국내 굴지의 식품산업 대기업인 푸른무원에 대한 이야기도 물론 있었다.
푸른무원이 작년 한 해에 올린 두부 제품군 하나의 매출만 따져도 수천억에 달한다. 뭐, 이건 해외 매출까지 전부 합쳤을 때의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중 한국 매출도 결코 적은 편이 아닐 터인데 그걸 메인스트림 제품도 아니고 서브스트림 제품이 뛰어넘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지.
원래 자사제품과 충돌을 예상했던 생면 제품은 확실하게 눌렀고, 여타 메인스트림 제품군 중에서도 중견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해도 좋다.
야구로 치면 2부 리그 선수가 갑자기 1부로 올라와 골든글러브를 하나 챙겨간 셈이니 결코 폄하하지 못할 업적이긴 하다.
뭐 아무튼. 덕분에 우리는 우리대로 호재, 푸른무원은 그쪽대로 호재. 처음 생각했던 그대로 Win─Win한 상황이 됐다.
다만 그걸로 아예 고생하지 않은 것은 또 아닌 것이, 유명세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한 번 광고로 대박이 터지니 그 뒤를 따라 무슨 줄줄이 소시지마냥 온갖 식료품, 주방기구, 주방가전 따위의 광고섭외 요청이 물밀 듯 들어온 것이다.
물론 좋다. 뭐, 일하고 돈이 생기는 거? 그래. 나쁘지 않지.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근데 문제는 내 일상생활에 대한 존중이 거의 없다시피 하단 거지.
그 요청을 전부 들어주다간 당장 중요한 본선에 대비한 연습은커녕 등교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이었다.
─아하하, 그치? 그거 힘들지?
"자기 일 아니라고 웃지 마세요."
─내 일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웃지!
라며 깔깔대는 효민 선배가 정말 죽도록 얄미웠지만, 그것도 이내 첫 대학 조별과제를 맡았다는 말에 내 앙심도 쏙 들어갔다.
그래. 나도 내 일이었던 적이 있으니까 감히 웃어주마. 아마 고등학교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다. 특히 성취감에 빠져 여전히 노는 기분일 대학 1학년 1학기 학생들은 더더욱 말이야.
아무튼, 결국 그 전부를 커버칠 수 없단 걸 일찌감치 깨달은 난 학교에 부탁해 내게 오는 섭외를 어떻게든 차단하는 데에 성공했다.
딱 하나, 끊지 않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푸른무원 측에서 온 후속광고에 대한 요청이었다.
광고가 시작하고 이제 막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뿐이지만, 그 엄청난 성공세례에 덧입어 두 번째 광고를 다시금 촬영할 수 없겠냐는 연락이 온 탓이다.
그래서 결국 계약을 이르게 철회하되, 재계약을 통해 추가 계약금+올튜브 전용 광고로 러닝개런티까지 쏠쏠하게 받아 챙기는 계약을 새로 맺게 됐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는데요……."
"예?"
"왜, 저번에 예선 결승에서 만드셨던 마라두부면 밀키트 제품 언제 출시하냐며 저희 고객센터에 문의를 올리시는 분이 많으시거든요. 그러니 이번 기획엔 이전 미팅 때 말씀드렸던 기간한정 밀키트 신제품 연구에 조력을 받고 싶습니다."
아니, 일이 복사가 된다고? 이런 미래, 난 인정할 수 없어! 업무 멈춰!
뭐, 대충 이런 식으로 할 일이 점점 불어나긴 했지만, 광고제의를 컷하지 않았으면 이 정도에서 끝났을 리가 없으니 돈 받는 값은 하겠단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방차는 빨간불에 안 멈춰도 되겠지만 현금수송차는 멈춰야 되는 거 아니냐고…….라고 한탄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으므로.
***
본선 대비 연습, 광고 촬영, 제품 개발.
크게 나누어 세 가지 일로 할 거리가 가득한 나날이었다.
학교는 사실상 얼굴만 비추는 수준이었고, 수업을 풀로 받은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우스운 게 있다면 현장업무를 중요시하는 학교 특성상 몇몇 과목의 학점은 성실하게 개근을 찍은 애들보다 더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아, 물론 교과목은 예외다. 자습과 인강이 학점을 책임져주진 않더라고.
그나마 과제 할 시간마저 없진 않았으니 다행이지.
어쨌든 이래저래 배운 게 많은 시간이었다.
광고 촬영도 이번에는 아예 작정을 했는지 이전과 들어가는 비용이 격이 달라졌다며 허허 웃던 최인범 씨의 말대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한 번이긴 하지만 로케도 뛰었을 정도니까.
그렇게 새로운 광고를 찍은 뒤에는 바로 제품 개발에 참여했다.
'사실 이게 가장 할 게 없긴 했어.'
우리 세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요리지 제품 개발이 아니었으니까.
우리가 한 거라곤 견본 메뉴를 만들어준 것뿐이었다. 나머지는 거기 개발팀이 알아서 뚝딱뚝딱 하더니 한 이 주일쯤 지나니까 초기 시용품을 내놓더라.
솔직히 말해서, 놀라울 정도로 우리가 만든 것과 흡사했다. 조금 부족한 부분도 있긴 했지만, 알기 힘들 정도였고.
이래서 석박사 석박사 한다는 걸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간단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정도는 몇 개 제시했었으니까.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었다.
"맛은 흡사한 수준으로 재현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아직 마무리가 덜 돼서 조리과정이 조금 복잡한 감이 있습니다. 물론 주방에서 실제로 하는 것보다는 훨씬 간단하지만 아직 편의성을 확실히 확보하지 못한 감이 있거든요."
"밀키트는 HRM 같은 간편 조리식보다 약간 더 복잡할 수밖에 없어지는 장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포장지 옆면에 조리방법만 열줄 씩 적힌 제품을 사고 싶어 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조리 방법을 너무 단순화하자니 맛이 떨어지고요."
밀키트 시장에서 조리의 간편함과 맛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여기서 제대로 천칭을 맞추지 못하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하긴, 작은 글씨로 조리법만 빼곡하게 적혀 있으면 따라하긴 커녕 보기도 힘들지.'
그때, 내 머리에서 전구가 번뜩였다. 생각났다. 해결법. 미래에 유행한 방식이지만, 아마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저기, 하나 생각난 게 있는데요. 아마 이게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그게 뭐냐며 멀뚱멀뚱 날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답한다.
"제품마다 조리 영상을 하나씩 끼워서 파는 거예요."
"…… 예?"
"그게 무슨 소린가요?"
설마 제품마다 SD카드라도 하나씩 꼽아두자는 거자며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여기서 받은 생수통을 들어 보였다.
어느 편의점에서나 팔 평범한 생수통.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냐며 의아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생수통 필름 한구석에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답한다.
"QR코드요. 제품 포장지에다 QR코드로 만든 영상 주소 하나만 인쇄해놓으면 핸드폰 있는 사람은 누구든 볼 수 있잖아요."
"…… 아!"
미래에 스마트 가전 따위가 보급형이 되어 나름 형편이 되는 가정이면 하나씩은 스마트 냉장고를 들여놓던 시절에 유행한 방법이다. 내가 회귀 하기 전 기준으로 최신기술은 AR글래스를 활용한 홀로그램 셰프였지만, 이 정도면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
"요즘이야 누구든 자기가 만든 영상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도 있고, 그걸 사용할 때 돈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마 영상 길이도 길어야 1분 정도로 맞출 수 있을 테니 크게 부담은 안 되면서도, 글로는 알려주기 힘든 세세한 것도 쉽게 전달할 수 있다.
"이거 좋네요! 가능성 있어요!"
"영상은 회사 공식 채널에 링크 전용 영상으로 올리면 될 거고요!"
내 말에 이 방식의 가능성을 알아본 연구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나도 조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제품 개발한다고 와서 아무것도 안 하자니 조금 찔렸는데 말이야.'
이 정도 힌트면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런 방법이 널리 쓰이게 된 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 등장한 재밌는 기법이 또 있다. 어차피 이렇게 물꼬를 튼 거, 미래에 유행할 방법까지 써먹으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가 말을 덧붙인다.
"최인범 팀장님. 혹시 한 가지 상의 드릴 게 있는데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아, 네! 얼마든지요!"
"저기…… 제가 광고에 대사 한 줄 정도를 추가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아, 시간 제한 빡빡한 TV 쪽 말고 올튜브 광고 쪽에서만 나와도 괜찮은 거요."
"? 예. 크게 문제없는 내용이면 충분히 가능하긴 합니다만……."
무슨 생각이냐는 듯 호기심 담긴 시선을 보내는 그에게 내가 짧게 답한다.
"그냥, 간단한 부활절 계란이나 준비해볼까 해서요."
부활절은 이미 꽤 지났지만 말이야.
***
어언 한 달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푸른무원과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의 콜라보 제품, 마라두부면은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처음 나갔을 때부터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에서 우승을 차지한 요리라는 타이틀로 엄청난 어그로를 끌었던 마라두부면은 출시 첫날부터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렸고, 그와 동시에 마찬가지로 어마무시한 품귀 현상을 보이며 각종 SNS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전성기의 버터허니칩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TV와 인터넷을 가리지 않은 광고에 힘입어 엄청난 흥행가도를 몰기 시작한 지 약 반달.
한 익명의 유저는 질리지도 않고 올튜브 영상을 틀기만 하면 나오는 마라두부면 광고에 신물이 난다는 듯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젓는다.
"아, 진짜. 또 이거야. 좀만 더 들으면 백만 번이야. 얘 목소리 귀에 박히겠어."
스킵을 하지 못하는 10초가량의 시간 사이에 항상 들리는 비교적 어린 남자의, 찬혁의 목소리. 영상 속 찬혁이 두꺼운 책자를 손으로 훑으며 말한다.
─대파 32g, 마늘 16g, 산초 07g…… 이런 거 이제 지겹잖아?
"난 네가 더 지겹다."
광고영상의 내용은 간단하다. 복잡한 레시피를 읊던 찬혁이 그걸 내던지고 그 대신 마라두부면을 선보이며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자는 별거 없는 광고.
처음엔 듣기 좋은 목소리라도 하루에 수십 번을 반복해서 들으면 고통이다.
하다하다 짜증이 난 남자는 이제는 별 시답잖은 것에도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아니, 자기가 요리사라면서 지겨워할 건 또 뭐야. 게다가 무슨 그램수를 칠 그램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공칠 그램이라고 말하냐고. 자기가 군대라도 다녀왔어?"
대체 어느 방송이 저러냐며 한창 투덜투덜 불만을 쏟던 남자는, 오늘도 간단하게 스킵을 누르려던 손가락을 잠시 멈칫했다.
"…… 아니,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푸른무원 같은 대기업이 광고를 저런 식으로 찍었을까? 그런 짧은 의문이 그의 머리를 스쳤기 때문에.
"32g, 16g, 07g……?"
처음 의심이 들고 나니, 우습게도 다른 것마저 그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건 그가 한창 놀라운 TV 쇼크라이브의 애청자인 탓일지도 모르고, 히틀러 음모론이나 숨겨진 걸 파헤치기 좋아하는 성격 탓일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이 영상에서 갑자기 그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왜 저런 지나가는 대사에 저렇게 애매한 수치를 써놓은 걸까. 오히려 듣는 사람한테 전달력이 나빠지지 않나?
"32, 16, 07……."
321607?
여섯 자리 숫자. 그냥 별거 없이, 광고 속 숫자를 붙여놓았을 뿐인데, 마침 그의 눈에 들어온 비슷한 숫자의 모음이 있다.
"…… 에이, 설마 아니겠지."
여섯 자리 숫자란, 올튜브에서 영상마다 부여된 주소형식 중 하나였고, 마침 그가 보고 있던 영상의 주소창에도 여섯 자리 숫자가 적혀 있었다.
"…… 그냥, 숫자 몇 번 쳐보는 거니까."
그런 변명 같은 말로 귀찮음을 감수하며, 남자는 주소창에 이미 자리하고 있던 여섯 자리 숫자를 지우고, 그곳에 대신 321607이라는 숫자를 써넣는다. 그리고, 엔터.
화면이 새로고침 된다. 그리고, 본래 아무 영상도 부여 받지 않은 주소였다면 그저 까만 화면만이 나왔을 인터넷 창 중심에서, 바로 아까까지 듣고 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얼굴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어둠의 푸른무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건강한 걸, 건강하지 못하게 먹어보자. 그렇게 말하며, 영상 속 찬혁이 킬킬대고 웃는다.
"…… 와."
대박.
남자의 손이, 지금도 SNS에 접속된 그의 핸드폰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