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루프 매치.-1-
아마 마지막 심사가 될지도 모르는 5차 심사는 앞서 내가 짐작했던 대로 팀전. 그것도 메뉴에 아무 제한도 없는 자유 요리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 이번에도 역시 내 예상이 들어맞은 것이다.
이쯤 되면 사실 내가 예언자인 게 아닐까?
월드컵 때 유명했던 축구 예언가 문어나 라스푸틴처럼!
…… 아니, 그 둘은 말년이 너무 안 좋은가. 하나는 숙회가 됐고, 다른 하나는 암살로 생을 마감했으니까.
뭐 아무튼.
이렇게 잔뜩 자뻑을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내 예측은 꽤 높은 적중률을 보였다.
5차 심사는 정말로 팀전이었고, 팀의 인원은 각 팀마다 3명. 12명의 참가자가 총 4팀으로 갈라져 토너먼트식 대진표를 따라 겨루게 됐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거라면, 일이 흘러가는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풀렸다는 점일까.
"편의주의가 지나치잖아……."
유동건 사장님, 차윤구 셰프, 그리고 나, 류찬혁. 같은 팀으로 입점.
'……하, 그래. 편의주의 좋지. 응, 아주 좋아.'
어쨌건 편의를 챙겨준다는데 안 좋을 건 뭐겠어. 차라리 이렇게라도 납득하지 않으면 내가 곤란하다.
그렇다고 이게 전부 우연의 일치냐?라고 묻는다면 사실 그렇지도 않긴 하다. 단순히 팀을 정하는 미니게임에서 내가 선취점을 땄기에 이렇게나 익숙한 팀이 재구성됐을 뿐이다. 그것도 운이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원산지 맞추기 게임이라니, 학교에서 연습한 보람이 있긴 하네.'
연습…… 이라고 해야 하나, 그걸?
원산지 맞추기 게임은 우리 학교에서 애들끼리 종종 하는 학교 전통의 내기 비슷한 것이다. 보통 설거지를 몰아주거나, 재료 정리를 몰아주거나, 청소를 몰아주거나. 아무튼 그런 식으로 조에서 대표를 뽑아 상대 조에서 고른 재료의 원산지 따위를 맞추는 게임이었는데…… 굳이 자세히 설명할 것도 없으니 넘어가자.
덤으로 말하자면, 내 평균 순위는 반에서 3~5등 정도였다. 이야, 재능이란 게 정말 무시할 게 못 되더라고. 덤으로 자본력도.
만 명 중 한 사람 나올까 싶을 만큼 민감한 혀를 가진 녀석들이 어릴 때부터 온갖 질 좋은 식자재를 가리지 않고 먹고 자랐으니 이길 턱이 있나. 그나마 1학년 때에는 10위권부터 시작했으니, 그 정도면 많이 올라간 거다.
그 이야기는 이제 됐다 치고 팀을 맺은 다음의 이야기를 하자면, 이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잘 풀렸다.
이렇게 별거 아닌 화제로 수다를 떨 수도 있을 정도로.
"선엽이가 없는 게 아쉬운걸."
"그러게요. 빈자리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있었으면 호들갑 떠는 거 본다고 정신없을 게 뻔한데, 조용해서 좋긴 하지만 이렇게 아예 못 보니……."
"적적하지?"
"저희 아버지가 나이 먹으면 적적함만 는다고 투덜거리셨는데, 정말입니다."
"원래 아버지 말씀을 이해하는 건 나이를 먹고 난 다음이지."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차윤구 셰프.
그런 어른들 이야기에 끼어들 깜냥이 안 되는 나는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이해나 공감은 나도 나이가 있으니 제법 되지만, 외관상의 이유로 완전히 아웃 아닌가.
'내가 저런 데 껴서 뭐가 남겠어…….'
애어른 이미지는 학교에서 가진 것만으로 충분하지, 암.
그렇게 한 발짝 뒤로 빠진 나와, 어르신 두 분의 대화를 난처한 눈으로 바라보는 MC.
대체 어디서 저 투머치 토커들의 대화를 끊으면 되는 거냐며 혼란스런 시선을 보내는 MC에게 위로의 눈빛을 보낸 뒤, 하는 수 없이 내가 그들 사이로 나섰다.
"유동건 사장님, 차윤구 셰프. 이야기는 나중에 마저 하시고 인터뷰 먼저 마무리 지으시죠."
"음? 아, 이런.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죄송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내가 나서서 이야기를 끊으니 아차 싶은 얼굴로 두 사람이 사과하자 MC는 이제야 살겠다는 듯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몸만큼은 손사래를 치며 걱정 말라는 어필을 한다.
이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겠지. 보시다시피, 우리는 현재 인터뷰를 찍는 중이다.
뭐? 방금 만든 팀이 무슨 인터뷰를 또 찍고 있느냐고?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1라운드 승리팀이니까.'
난 분명 말했다. 팀을 결성한 다음에도 일이 잘 풀렸다고 말이다.
엄청, 되게, 진짜로, 참으로. 대충 아무 잘난 수식어를 붙여도 얼추 통용될 만큼.
그도 그럴 게 전초전이라고도 볼 수 있는 1라운드를 그리 힘들이지 않고 이겼거든.
"첫 번째 대결에서 통쾌하게 승리를 쟁취하셨는데요. 승리한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MC의 질문에 우리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
"운이 좋았죠."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따른 덕분에요."
팀 개개인의 실력이나 팀웍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주된 요인을 꼽으라면 행운이란 말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애당초 2차 심사를 함께 통과한 인원이 여태껏 함께 살아남아 끝내 같은 팀이 되었다는 것부터가 기적 같은 일이다.
거기에 더해 우리들의 상대 팀이었던 3팀은 각자가 4차 심사까지 통과한 실력 있는 요리사일지언정 서로 손발을 맞춰볼 시간도 없이 급조된 팀.
이미 한 차례 같은 팀으로서 결속력을 다진 우리와, 이제 처음 팀을 꾸린 상대 팀과의 격차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대결 순서가 두 번째였다면 그들도 작전회의를 하든 친밀도를 쌓아 제대로 팀의 내실을 다지든 했겠으나 하필 또 첫 번째 대결에 나온 탓에 그럴 시간마저 없었다.
'쉽게 말하면 거의 꽁승 챙겼다 이거지.'
개인의 실력에는 편차가 적더라도, 팀이란 건 극한의 일부를 제외하면 개인의 능력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지. 이쪽에 팀이 이렇게 잘 모였을 때부터 정배는 우리 차지였다는 뜻이다.
뭐, 결국 정배의 뚝배기를 따겠다는 역배충의 희망은 잠시 뭉친 구름처럼 허망하게 사라질 뿐…… 대충 그런 이야기.
'그럼 이제 마지막 대결만 남은 건가?'
아까 막 우리의 승리로 대결이 끝났으니, 지금은 남은 2팀과 4팀 둘이서 치열하게 자웅을 가리고 있을 터. 둘 중 이겨서 위로 올라오는 팀과 우리가 맞붙게 되리라.
그 사실을 잘 아는 MC 또한 그에 관련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지금 심사장에선 한창 팀 요리대결이 진행 중인데요. 여기서 이기는 팀이 3라운드에서 여러분과 겨루게 됩니다. 혹시 겨루고 싶거나, 아니면 겨루고 싶지 않은 팀이 있으신가요?"
MC의 질문에 우리의 답은 대부분 비슷했다. 당연하게도, 딱히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글쎄요. 그걸 가릴 수 있을 만큼 상대를 잘 아는 것도 아니거든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누구든 사람마다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을 텐데 어떻게 그걸 고를 수 있겠습니까."
"뭣보다, 저희가 먼저 말해봤자 상대를 지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희는 그냥, 누가 올라오든 최선을 다해 승부에 임할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그나마 정석적인 답변이 돌아온 탓인지 MC의 얼굴이 활짝 핀다. 이 정도면 미리 준비한 대본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인지 손에 들린 큐시트와 우리 사이를 오가는 눈동자가 데굴데굴 빠르게도 움직였다.
"그렇군요! 역시 마지막까지 올라온 참가자 여러분다운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더 질문 드리겠습니다! 혹시 이 다음에 올라올 팀은 어느 쪽이 되리라 생각하시나요?"
과연 MC가 어떤 뜻으로 한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우리 팀의 대답은 하나로 모였다.
다만, 이전의 질문에 대한 대답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4팀입니다."
"4팀이겠죠."
"4팀일 것 같습니다."
요만큼도 중도를 지키지 않는, 완전히 편향된 답변이었다는 것.
단박에 당황스런 기색이 드러난 얼굴로 이거 방송사고 아니냐는 듯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우리 생각이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물론, 우리는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생각으로 이런 대답을 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일단 팀원의 구성부터가 그렇다.
4팀에는 이 예선전이 시작할 때부터 다크호스라고 불리던 셰프들이 포진해 있다.
서울에서도 최고의 호텔 격전지로 손꼽히는 명동.
그중에서도 일대를 주름잡는 5성급 호텔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향연'의 메인 셰프 중 한 사람. 정민수 셰프. 유동건 사장님의 먼 후배 되는 사람이다.
김선엽 쿡을 3차 심사에서 탈락시킨 장본인이자 일본식 연회요리인 가이세키 요리會席料理의 전문가. 유학파 출신 박여욱 셰프.
마지막으로 뚜렷한 소속은 없지만, 개인 출장 요리사로 유명한 심병일 셰프까지.
요리업계에서 짬밥 좀 먹었다 하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사람들.
'……어떻게 하필 저 셋이 같이 모인 거야.'
저 정도면 이 예선전 참가자 중에서도 가히 드림팀, 혹은 리벤져스 급이다. 진짜배기들만 옹골차게 모아놓은 보석함이 따로 없다.
솔직히 말하건대, 아까는 싸우고 싶지 않은 상대가 없다는 말도 사실 반쯤 거짓말이다. 굳이 골라야 한다면 4팀과는 겨루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싸우기 싫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쪽팔리잖아.'
우습지도 않은 이유라고 볼지도 모르지만, 대중 앞에 나서는 입장에서 쪽이란 건 엄청나게 중요한 거다.
대중에게 내 얼굴을 기왕 각인시킬 거라면 되도록 좋은 모습, 당찬 모습만 보여줘도 모자란데 약한 모습을 내비칠 순 없지 않지 않은가.
4팀의 상대인 2팀도 어디 가서 꿇리는 인재들은 아니다. 하지만 4팀에 비하면 역시 빛이 바래는 것도 사실.
그러니 우리의 대답이 한 가지로 통일될 수밖에.
제작진은 제작진대로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통일된 우리의 답변에 곤란한 기색이지만, 아마 그들도 곧 알게 되리라. 프로의 안목이 얼마나 확실한 잣대가 되는지.
"실례합니다! 심사장 쪽에서 2라운드 대결 결과 나왔어요!"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제작진이 고뇌하던 그때, 마침 타이밍 좋게 저쪽에서도 결판이 난 듯싶다.
헤드폰을 낀 스태프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그에게로 단박에 일동의 이목이 쏠린다.
그 시선에 흠칫 놀라면서도, 스태프는 제 맡은 일을 끝까지 해냈다.
"2팀vs4팀! 심사단 만장일치로, 승자는 4팀입니다!"
"!"
"지, 진짜로?!"
결과가 발표되기가 무섭게 이번엔 우리에게로 시선이 쏟아진다.
마치 제 과거사를 낱낱이 밝혀낸 용한 점쟁이를 보는 것 같은 눈빛이다.
"저희 말이 맞죠?"
그러게 우리가 뭐랬니.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무심한 우리의 눈빛에, MC는 경악이 섞인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우리의 승자 인터뷰가 끝난 다음 차례는 당연하게도 4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우리야 따로 준비된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느라 인터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어차피 우리랑 비슷하겠지.
"실례합니다. 1팀 참가자 여러분, 방금 막 4팀 인터뷰가 종료돼서 30분 정도 추가 휴식 후에 다음 일정 진행될 예정입니다. 쉬는 시간 종료 5분 전까지 대기실에만 집합해주시면 되니까, 그 전까진 자유롭게 이동하셔도 괜찮아요."
"예, 감사합니다."
"넵. 수고하세요!"
요 이틀간 하도 자주 얼굴을 마주쳐서 낯이 익을 정도가 된 스태프 한 사람의 안내였다.
"어차피 여태껏 쉬느라 다녀올 만한 곳은 전부 다녀왔는데."
"그럼 뭐, 그냥 여기서 쉬고 있죠."
차윤구 셰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그나저나 이제 곧 마지막 심사네."
"마지막…… 일까요?"
"그렇겠지. 저쪽이랑 대결해서 어느 쪽이 탈락하든 더 심사할 인원도 없을 거 아니냐."
맞는 말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갑자기 뭐 3선2승 대결로 드리프트를 꺾지 않는 이상 다음 한 번이 끝이긴 하겠지.'
사실, 여기까지 와서도 아직 조금 얼떨떨한 감이 있다.
이게 정말 마지막 심사라면, 묘하게 일이 스무스하게 풀린다고 해야 할까.
"5차 심사는 꽤 편한 것 같지 않아요?"
"편해? 말도 마라. 4팀 라인업 봐봐. 저걸 편하게 이길 수 있겠어?"
"그야……."
편하게 이기진 못하겠지. 안 그래도 이틀 동안 치른 강행군 탓에 제법 체력이 빠졌는데, 마지막 남은 체력조차 양초가 남은 심지까지 모조리 불태우듯 전부 토해내야 할 거다.
"찬혁이 너도 지금은 잡생각 말고 푹 쉬고 몸부터 추슬러라. 우리보다 훨씬 젊으니까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만. 하…… 나이를 먹으니 젊은 것만큼 부러운 게 없더라."
"아하하……."
알죠, 그 마음.
어설픈 웃음으로 그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척 말을 돌리며, 나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차윤구 셰프의 말처럼, 이젠 마지막 대결을 위해 최대한 그것에만 집중해야 할 시간.
그런데 어째서일까. 아까 전부터 내 머릿속에서 좀처럼 빠져나가지 않고 계속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차…….'
4차 심사가 끝난 직후, 안효민 선배와 통화를 하고 들어오는 길에 얼핏 봤던 차.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뭔가 되게 중요한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몇 분이나 고민하고 있었을까. 어느새 쉬는 시간이 곧 끝난다고 알리러 온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도, 내 머릿속에선 그 차에 대한 의문이 계속해서 휘몰아칠 뿐이었다.
이제 곧, 그 의문이 풀리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