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91화 (291/403)

291. 푸드 서전.-6-

텐카스.

일본식 튀김요리인 텐푸라天浮羅와 앙금, 찌꺼기란 뜻의 카스滓의 합성어로, 직역하자면 튀김 찌꺼기쯤 되는 뜻을 가진 단어다.

그 단어의 뜻처럼, 텐카스란 튀김 요리를 할 때 생기는 부산물. 튀김 반죽을 묻힌 음식을 튀길 때 조금씩 떨어져 나온 튀김반죽의 일부를 텐카스라고 부르며, 일식에서는 이를 잡다한 요리의 부재료로 이용하기도 한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용법을 찾으라면 우동이나 마제소바, 라멘, 혹은 메밀소바 따위의 면 요리에 후리카케ふりかけ로 들어가는 것일까.

그 외에도 이래저래 다양한 음식에 들어가는 일종의 건더기. 하지만…….

"오므라이스에 텐카스를 넣은 걸 본 건 처음이네요."

안효민이 말하자 다른 심사단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텐카스를 요리에 사용하는 데엔 보통 두 가지 목적이 있어요. 하나는 식감의 변화. 면 요리처럼 쫄깃한 씹는 맛과 목 넘김을 주로 즐기는 요리에 바삭바삭한 식감을 추가해서 대비되는 식감을 통해 다양한 자극을 즐기기 위해서."

"또 하나는 국물 요리를 먹을 때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국물의 맛을 즐기기 위함이죠. 튀기는 과정을 통해 수분이 없어진 텐카스는 잃은 수분만큼 국물을 흠뻑 빨아들여 맛이 변하거든요."

안효민의 말을 심사단이 바통터치를 하듯 잇고, 잠시 숨을 돌린 안효민은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언뜻 보면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무질서하게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텐카스도 사용할 때의 공통점이라는 게 있거든요."

공통점?

스태프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텐카스는 어디까지나 튀김 요리의 부산물로 나오는 찌꺼기. 그러니 텐카스는 기본적으로 자체적인 조미가 거의 되어 있지 않아요."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며,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앞서 안효민은 텐카스의 용도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안효민이었으나, 실제 업장에서 텐카스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돈.

자본주의의 논리야말로 그 이유. 텐카스는 아주 싼 가격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이다. 공장제를 쓰든 업장에서 직접 만들어 쓰든 맛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고, 쓰더라도 식감에 변화를 줄지언정 맛에는 큰 변화가 없기에 영세업자가 부담 없이 사용하기 가장 좋은 재료다.

그런데 그런 텐카스에 조미가 되어 있다?

솔직히, 굳이 텐카스를 조미하는 데에 들일 시간을 다른 곳에 쓰는 게 백 배는 효율적이리라.

"수분이 없는 조미료를 쓴다면 그럭저럭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냥 요리에 가루를 뿌려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죠. 그렇다고 수분이 있는 조미료를 사용하면 텐카스의 식감이란 장점을 버리는 거예요. 만약 수분이 있는 조미료를 쓰고 싶다면 조미를 한 뒤 텐카스를 다시 한번 튀기면 되겠지만……."

고작 그걸 위해 기름의 오염을 감수하고 다시 한번 튀긴다?

어불성설이 따로 없다. 인력, 시간, 재료. 모든 것의 낭비다.

그러나 찬혁의 요리는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텐카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안효민은, 이 텐카스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찬혁에게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진다.

"튀김옷이죠?"

말이 질문이지, 이미 확신했다는 듯 날카롭게 찔러드는 안효민의 목소리에 찬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닭고기에서 벗겨낸 깐풍기 튀김옷을 고온의 기름에서 수분이 사라질 때까지 바싹 튀긴 다음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밥과 오믈렛 사이에 듬성듬성 뿌려줬죠."

적당한 간에 오밀조밀한 조합이 인상적인 볶음밥과 담백하지만 크리미한 고소함이 가득한 오믈렛. 그리고 그런 둘 사이의 간극을 슬레지해머로 깨부수듯 강렬하게 혀를 강타하는 텐카스의 맛.

본래 다른 요리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조화된 맛에 심사단은 놀란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밥을 볶을 때 쓴 케첩에도 깐풍기 소스를 소량 섞어 쓴 것 같죠?"

"예. 안 그러면 이 이상할 정도로 중화풍인 맛이 설명이 안 돼요."

"묘하게 저희끼리 조화가 잘 된다 싶더라니……."

이번 심사에서 재료의 일부를 빼내어 수정한 요리를 제출한 참가자는 더러 있었지만, 찬혁처럼 요리의 문제점을 포함한 모든 부분을 빠짐없이 사용한 참가자는 여태껏 찬혁 한 사람뿐이었다.

4차 심사의 심사과제.

실패한 요리를 사용하여 새로운 요리로 만들어라.

그 요건에 가장 부합한 사람이 누구일진, 굳이 물어볼 것도 없었다.

"39번 류찬혁 참가자."

"다음 심사에서, 다시 봅시다."

합격의 증표를 받아들고, 찬혁은 웃으며 심사대를 떠났다.

***

"그래서, 이게 다 무슨 난리에요?"

4차 심사가 마무리된 직후, 잠깐 주어진 휴식시간을 틈타 재빨리 인적이 드문 곳을 찾은 난 지참한 휴대폰의 전원을 켜기가 무섭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전화를 걸 상대의 전화번호가 발신 이력 가장 윗줄에 남아서 편했지만, 그건 둘째 치고.

과연 이번엔 제대로 받을지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상대는 전화벨 소리가 채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잽싸게 전화를 받았다.

─아하하. 놀랐어?

암요. 놀랐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울리는 얄미운 목소리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아니, 어째 어제 전화를 안 받으신다 싶더니. 이러려고 그러신 거예요, 선배?"

안효민 선배.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내 전화 상대는 바로 그 사람이다.

작은 공기의 떨림이 들리는 게 꼭 웃음을 참지 못해 쿡쿡대는 걸로 들려 괜시리 킹받긴 하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자.

아니 근데 나오는 건 안 알려주더라도 전화 정도는 받아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랬으면 동생이랑 나랑 뒷라인 있다고 찔렸을지도 모르는데?

"아."

생각해보니 영 신빙성 없는 이야긴 아니다.

세상에 음모론과 그걸 추종하는 음모론자가 왜 있겠는가. 기본적으로 사람은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길 즐기는 생물이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도 언뜻 보기에 그럴듯한 증거만 있으면 신나서 달려드는 게 사람인데, 만약 심사 직전에 심사위원과 참가자가 통화를 나눴다는 말이 나오면 얼마나 난리가 나겠는가.

설령 심사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더라도, 그 통화이력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의 꼬투리를 만들 수 있다.

뭐, 좋다. 전화를 안 받은 건 지금 대화로 대충 납득했는데…….

그거 말고도 몇 가지 궁금한 게 남았다.

"선배 이번 시즌2에는 안 나오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거야 수능 일정 때문이지. 수능 끝나고 놀 거 다 놀았어.

"……아, 그렇습니까."

─거기다 그건 시즌2가 아니라 예선이잖아, 예선. 시즌2에 나간 게 아니라니까?

어라. 하는 말마다 틀린 건 없네?

…… 라고,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이가 털려서 할 말을 잃고 만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아까 그거 되게 맛있었다? 다음에 또 해주면 안 돼? 아, 그럼 실패한 요리가 필요한가? 내가 실패작 똑같이 만들어주면 그걸로 만들면 되겠다!

"제발 개소리 좀 작작하세요."

─뭐? 와, 우리 동생 머리 커진 거 봐. 나 졸업한다고 막 나가자 그거야?

"하아……."

절로 튀어나온 한숨에 절망스런 마음을 담기를 한 번.

고개를 저으며 귓가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선배의 목소리를 흘린다. 이럴 바에 다음 심사가 어떻게 될지나 생각하는 게 낫겠다.

오늘 아침만 해도 스물이나 남았던 참가자는 벌써 한 자릿수에 가깝게 인원이 떨어졌다.

'8명이나 탈락했으니까…….'

남은 12명 중에는 이전 2차 심사 때 함께했던 유동건 사장님과 차윤구 셰프도 있었다. 거의 최종국면에 달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 보면, 역시 대단한 솜씨를 가진 분들이었다. 똑같이 여태껏 합격해온 내가 이렇게 말하면 조금 자뻑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은 인원은 12명.

최종적으로 뽑는 게 몇 명일지는 몰라도 고작해야 한두 명은 아니겠지.

'그러면 다음 심사는 아마도…….'

여태껏 한 심사는 대부분이 개인전이었다.

그나마 팀전이라고 했던 2차 심사도 말이 팀전이지 실제 팀전과는 꽤 거리가 있었고.

내가 생각하기에 개인의 역량을 알아보는 평가는 이미 충분히 했다. 그렇다면 다음 차례에 어떤 심사를 할지 자연스럽게 감이 잡힌다.

"팀전인가?"

남은 열두 명의 참가자가 쪼개진 팀전.

몇 팀으로 쪼개질지는 모르지만 아마 예상컨대…….

'2팀, 아니면 4팀.'

6명vs6명 혹은 3명vs3명vs3명vs3명의 토너먼트. 2명? 논외다. 이미 팀전이라고 부를만한 수준이 못 된다.

팀'전'이라는 건 결국 겨룰 상대가 필요한 법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최소한의 1:1이 성립하는 짝수전을 할 수밖에 없다. 4vs4vs4의 삼파전이라는 가능성도 분명 있지만 아마 이쪽은 아니겠지.

'촬영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말이야.'

지금은 정오를 막 넘긴 시간. 한 번의 대결에 못 해도 90분 정도의 시간을 들인다 치면 빡빡하게는 여섯 번, 널널하게는 다섯 번 남짓한 횟수만큼 대결할 시간이 남는다.

─뭐 어쨌든, 우리 동생이 이렇게 잘 하고 있어서 언니는 안심이야.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아직 엄청 힘든 심사가…….

"그럼 팀전을 한다 치면 못 해도 두 번 정도는 겨뤄야 예선전을 통과할 수 있겠네."

─…… 여보세요? 듣고 있어? 동생? 찬혁아?

귓가에서 무슨 모기 날개짓 소리 같은 게 자꾸 들리는 기분인데 무시다, 무시.

대충 다음 심사가 무엇일지 감은 잡았다. 누구 말마따나 힘든 과정이 제법 남았겠지만, 그래도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고 해야 할까.

한숨을 내쉬며 창문 너머로 실내에 붙은 시계를 살폈다. 휴식시간도 거의 끝나간다. 거 참, 밥 먹을 시간도 별로 없는데 괜한 통화 탓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네.

─뭐? 잠깐만, 괜한 통화?

"아, 들렸어요?"

─들으라고 한 말처럼 들렸는데…….

"오해에요. 오해. 제가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함부로 드립니까."

─방금 나보고 개소리 말라고 한 건 안 잊어먹었지?

"네? 제가요? 언제요?"

─하아…… 막 입학했을 땐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아, 확실히 그렇긴 했지.

평소에 너무 성격이 다양한 양반들과 얼굴을 트고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격이 옮은 걸지도. 뭐야? 전부 선배 탓이라는 거 아닌가? 그럼 자업자득이네 뭐. 역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

"뭐, 장난은 이쯤 하고. 그럼 선배는 이제 볼 일 다 보신 거예요?"

─나? 음…… 뭐, 그렇지? 내 일은 대충 다 끝났어.

"그럼 이제 서울로 내려가시는 겁니까?"

─아니. 조금만 더 있다 가려고. 모처럼 겨울에 강원도까지 왔는데 스키장 정도는 들렀다 가도 되잖아?

"……그럼 뭐, 알겠어요. 괜히 어디 다치지 말고 조심히 다녀오십쇼."

─응! 혁이도 남은 심사 힘내고!

마지막까지 장난스런 기색을 감출 생각이 없는 안효민 선배의 통화가 끊어지고, 작게 숨을 내뱉으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추운 겨울 하늘 아래 하얗게 흩어지는 입김이 괜히 아련하다. 끝이 가까운 탓인가. 별생각이 다 드네.

"……들어가자."

저 속 편한 사람은 제 알아서 발길 따라가겠지. 빙판길이나 눈밭에서 넘어지지나 않길 기도하며, 나도 발을 돌린다.

담벼락을 지나 주차장을 건너던 그때, 갑자기 눈가를 스친 그림자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어라?"

뭔가, 신기하게 생긴 차가 있다.

SUV…… 아니, 지프차에 더 가까운 사각사각 네모네모한 디자인.

차가 세상에서 한 대 밖에 없는 건 아니라지만 어디서 쉽게 보기 힘든 생김새에 잠시 눈이 간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특이하게 생긴 탓인가, 묘한 기시감이 드는 게 보기만 한 게 아니라 탄 적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 탓인가."

저편에서 스태프가 참가자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결국 그 기시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채 밝히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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