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90화 (290/403)

290. 푸드 서전.-5-

'헤에…… 그렇게 나온다고?'

심사위원과 함께 앉아 각 참가자가 어떻게 이번 심사를 헤쳐 나아가는지 지켜보던 안효민이 뜻 모를 웃음을 작게 흘렸다.

평범한 사람도 지나가다 저절로 눈이 돌아갈 빼어난 미모를 가진 그녀가 웃으니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되는 듯했지만, 그런 안효민의 속내가 악동의 장난기로 범벅이 되었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그런 그녀가 지금 바라보는 대상인 찬혁은 그런 그녀의 속내를 대강 짐작하고 있었지만.

'오므라이스라…….'

안효민이 찬혁을 비롯한 참가자의 심사를 위해 준비한 실패한 요리는 저마다 분명히 실패한 요리가 된 요인이 있고, 그에 따른 해결법이 명확히 준비되어 있다.

심사용 요리를 만든 장본인인 안효민이기에 그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는 사실이다. 물론, 그걸 제대로 발견하는 건 어디까지나 참가자의 몫이지만.

그런 면에서 찬혁은 안효민이 숨겨놓았던 개선점을 확실히 찾아낸 상태였다.

너무 맛을 강하게 만든 소스와, 그 소스가 잔뜩 스며든 튀김옷은 쓸 게 못 된다. 그렇기에 사용할 수 있는 건 튀김옷을 벗겨낸 닭고기 뿐. 원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어떨 때엔 파괴는 창조를 위한 밑거름이 되는 법이다.

그러나 그걸 안다고 한들 그렇게 얻은 닭고기로 무엇을 만드느냐는 오로지 참가자의 선택에 달려 있는 문제였고, 그 수많은 선택지에서 안효민이 만든 실패작을 해체해 얻은 닭고기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메뉴를 고르는 것 또한 참가자의 역량이다.

안효민은 찬혁의 역량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찬혁의 속내를 전부 짐작할 수 있던 것도 아니다. 당장 지금만 해도 그러했다.

'신박한 걸 들고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오므라이스를 내올 줄은 몰랐다며 안효민은 짐짓 놀란 마음을 웃음으로 가렸다.

'근데 의외로 그럴듯한데?'

잠시 놀라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찬혁의 선택에 타당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깐풍기에 사용된 닭은 지금 매운맛과 짠맛, 신맛, 그리고 보다 적은 단맛이 밴 상태. 맛의 균형을 위해 케첩을 사용하는 오므라이스를 선택한 건 나쁘지 않은 발상이다.

케첩의 주된 재료는 토마토와 설탕. 단맛을 보충하면서 토마토에 함유된 글루타민산에서 나오는 풍부한 감칠맛은 분명 닭고기와 좋은 융화가 될 터.

'다만…….'

문제가 있다면, 오므라이스 자체가 그렇게 대단찮은 요리라는 것이다.

그녀도 나름 요리사.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말처럼 요리에도 귀천은 없다고 생각하는 안효민이라지만, 그녀의 걱정은 요리의 귀천보다는 요리 자체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우리 동생은 뭘 어쩔 셈인지."

오므라이스라는 요리는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

기껏해야 밥과 다른 부재료를 케첩으로 볶고, 그 위에 부친 계란을 올려서 데미그라스 소스 따위로 마무리하는 게 끝.

아무리 오므라이스를 잘 만드는 집이라고 해도 결국 느낄 수 있는 맛의 편차는 드라마틱하게 크진 않다.

막말로, 분식집 오므라이스나 오므라이스의 발상지인 일본의 장인이 만드는 오므라이스나 같은 한계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오므라이스는 재료의 맛이 너무 강하니까.

장인의 오므라이스가 맛있는 이유는 좋은 케첩과 좋은 쌀, 좋은 계란, 좋은 소스를 썼기 때문이다. 재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요리가 어디 있겠냐마는, 오므라이스처럼 다량의 소스를 쓰거나, 혹은 재료에 변형이 별로 많이 가해지지 않는 요리는 유독 그런 면이 심하다.

실력으로 포장이 불가능한 요리란 것이 이 세상에는 있다. 오므라이스도 그중 하나.

과연 그런 한계를 가진 메뉴로 이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까.

'…… 뭐, 괜찮겠지.'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도 잠시. 안효민은 이내 그런 생각을 털어 버렸다.

걱정하는 건 애당초 게스트 심사위원인 그녀의 일이 아니었을 뿐더러, 뭣보다 찬혁이 그것도 모를 리는 없었으니까.

그런 선택을 한 시점에서 '우리 동생은 다 계획이 있구나?'하고 납득하는 수밖에 없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말이다.

─땡!

"아, 첫 번째 완성작품이 나온 것 같습니다! 9번 참가자! 완성한 음식을 들고 앞으로 나와주세요!"

어차피 기다리면 결과도 곧 나오겠지. 지금은 서두르지 말고 눈앞의 일부터 처리하자.

안효민은 다시금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심사위원으로서의 일을 할 시간이다.

***

"9번 참가자. 당신은 저희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심사를 받으러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섰던 참가자가 온간 팩트폭격의 세례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역시…….'

내 생각대로다.

9번 참가자는 모시조개찜을 선택했고, 가장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는 화이트 와인을 이용한 잡내 제거법을 이용하여 조개 파스타인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었다.

그리고 결과는 보다시피 불합격.

이유는 간단했다. 비린내라는 눈에 확 보이는 단점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내면에 도사린 함정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메뉴는 제대로 해감한 조개와, 아예 해감을 전혀 하지 않은 조개를 9:1 비율 정도로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해감이 전혀 안 된 조개는 살 속의 모래와 불순물 탓에 요리를 하게 되면 엄청난 비린내가 나죠."

"해산물의 풍미와 비린내는 종이 한 장 차이에요. 귤 박스 속에 딱 하나 들어간 곰팡이 핀 귤 때문에 박스 전체가 곰팡이로 뒤덮이는 것처럼, 비린내가 나게 하는 불순물이 가득 든 조개가 약간만 섞여도 조개 전체에서 비린내가 물씬 풍기게 돼요."

"와인으로 비린내는 잘 잡았겠지만…… 불순물이 낀 조개가 섞였다는 건 모르셨나 보네요. 보세요. 이 조개를 가르면…… 이렇게 모래랑 돌조각이 잔뜩 껴 있죠? 먹다가 자칫 이가 상할지도 모르는 음식을 고객에게 내어주면 안 된다는 건 상식 아닌가요?"

팩폭 멈춰! 아니, 그러다 울면 어쩌려고 그런대요?

'그나저나 진짜 되게 음습하네. 저거.'

그런 함정이 숨어 있었단 건 나도 모르고 있었다. 아마 저걸 골라서 조금 더 조사했다면 알아냈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말해서 정말 운이 나쁘면 알아낼 수 없었단 뜻도 된다.

그 증거로 모시조개찜을 골라갔던 다른 참가자 중 몇 명이 놀란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아마 저 사람들도 먼저 심사를 본 9번 참가자처럼 심사단이 설치한 함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보인다.

"저 사람도 운이 없네."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먼저 모르모트가 됐다면 고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하지만 이미 심사를 봐 버린 걸 어쩌겠어. 쏟은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단 말은 이럴 때 보고 하는 말인 듯싶다.

…… 뭐, 운이 없는 걸 탓할 수밖에.

사람 인생 100년. 가끔은 행운이 발목을 잡을 때도 분명 있는 법이다. 어떨 때는 날 떠받들어주는 것 같다가도, 자칫 발을 삐끗하면 바닥이 없는 늪보다 더 깊은 무저갱이 돼서 사람을 집어삼킨다. 그래서 난 운이란 것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애당초 믿느냐 믿지 않느냐라는 게 가능한 요소가 아니기도 하지만.

'그러니 적어도, 떨어질 때 운 탓을 할 겨를도 없게끔 확실하게 해야지.'

심사가 끝난 뒤, 앞치마를 벗고 쓸쓸히 퇴장하는 참가자에게서 눈을 돌린 난 다시금 요리에 집중했다.

밀가루에 버무린 잘게 썬 조미 닭고기와 파, 마늘, 당근 따위를 올리브유로 볶다가 밥과 케첩을 넣고 마저 볶는다. 여기에 드라이 토마토도 같이 넣어주면 케첩 속 글루타민산에 플러스 효과를 일으켜 감칠맛이 월등히 좋아진다.

"간은…… 오케이. 딱 좋네."

짜고 달고 살짝 신맛이 오밀조밀 훌륭하게 조화된다. 거기에 포인트로 닭고기를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아린 매운맛이 훌륭한 악센트. 내가 만들었지만, 이것만 먹어도 제법 맛있다.

"오므라이스로서는 아직 반절이지만."

밥이 됐다면 다음은 계란이다.

보통 분식집의 오므라이스는 얇게 펼친 계란 지단을 만들어 이불을 덮는 것처럼 덮어주지만, 내가 만드는 건 그런 평범한 이불이 아닌 두꺼운 오리털 이불.

속을 반숙 상태로 만든 오믈렛을 올려주지 않으면 오믈렛+라이스=오므라이스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지.

계란에 약간의 생크림을 넣어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식감을 최대한 살린 뒤, 극소량의 바닐라빈을 추가해 계란 비린내를 없앤다.

버터를 녹인 팬에 잘 섞은 계란물을 넣고 스크램블 에그가 되기 직전의 상태에서 조금씩 둥글게 말면……!

"크림 오믈렛도 완성."

이 오믈렛이 닭고기의 매운맛을 살짝 중화해서 매운맛이라는 악센트가 심벌즈처럼 혀를 찌르는 대신 베이스 드럼처럼 중후하게 혀 전체를 아우르는 맛으로 변한다.

'평소 같았으면 날카롭게 악센트를 주는 것도 좋았겠지만…….'

그러면, 내 비밀무기를 사용할 수가 없거든.

손가락 끝에서 바삭바삭 부서지는 질감.

이게, 내가 이번 심사에 쓸 마지막 비밀무기다.

***

"참가번호 39번. 심사 제출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하기엔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예선전이 시작될 때부터 찬혁은 참가자 중 그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18세의 나이로 베테랑 셰프가 그득한 예선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며, 1차 심사 때는 누구도 하지 못한 김선옥을 놀라게 한다는 업적을 달성했다.

2차 심사 때는 가장 빠르게 합격. 3차 심사 때는 틀을 벗어난 발상과 탄탄하게 갖춘 기본기로 첫 번째 대결을 명승부로 만들어내어 끝내 승리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단단히 휘어잡은 찬혁이, 다시 한번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오므라이스, 죠?"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자리에서 오므라이스라니.

요리를 업으로 살아가는 이상 그 어떤 요리든 폄하해선 안 되겠지만, 오므라이스는 서민 요리의 대표격인 메뉴다.

요리에 문외한인 사람도 조금만 공부하면 얼마든 만들 수 있고,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망한 요리를 이렇게 멀쩡하게 재탄생시켰다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외에 놀랄 거리가 없다. 찬혁이 이전에 보여주었던 놀라운 요리와 비교하면 분명 손색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예상을 배신당한 심사단이 살짝 실망한 기색을 엿보이는 와중에도 찬혁은 그저 당당하게 그들에게 접시를 내밀 뿐이다.

"이제 드시면 됩니다."

케첩으로 볶은 볶음밥 위에 얹은 오믈렛을 반으로 가르는 퍼포먼스마저도 진부한 느낌이 있기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그들이지만, 찬혁은 전혀 주눅 든 기색 없이 제 할 일을 마저 이어나갈 뿐이었다.

"깐풍기가 오므라이스로 변하다니.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만 요리의 변신은 유죄네요.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바람에 배가 다 고플 지경이에요."

"하, 하하! 맞습니다!"

다운된 텐션을 끌어올리기 위한 멘트였으나 그마저도 별로 소용이 없는 듯하자, 결국 마지막에 나선 건 김선옥이었다.

"시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말에 반박해가며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은 심사위원은 없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심사. 당연하게도 심사단의 첫 행동은 요리의 해부였다.

"꽤나 베이직한 오므라이스네요. 밥알 한톨까지 섬세하게 맛볼 수 있도록 고슬고슬 볶은 볶음밥…… 케첩처럼 물기가 많은 소스를 쓰면 이런 질감을 만드는 건 꽤 어렵죠."

"오믈렛은…… 음, 크리미하고 고소한 맛이 도는 게 우유나 생크림을 넣고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계란 비린내나 우유의 미묘한 냄새는 안 나네요. 바닐라 익스트랙이나 빈을 조금 섞은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 과자 같은 느낌이 안 나게 딱 비린내만 잡을 수 있을 만큼만 넣은 것 같아요."

"데미그라스 소스도 좋네요. 너무 짜지 않고 딱 좋은 감칠맛과 산미, 거기에 소스 비율도 좋아서 밥과 함께 먹기에 적합합니다."

작은 요소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는 과학자마냥 굴던 그들이 이번엔 큼직하게 오므라이스를 숟갈로 퍼 올렸다.

붉은색과 노란색, 짙은 갈색이 절묘하게 뒤섞여 꼭 공예품처럼 보일 지경.

단순한 요리지만, 아는 맛이 제일 무서운 맛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한 그들이 오므라이스를 입에 넣는다.

우물우물.

천천히 저작을 반복하며 입속에서 펼쳐지는 화학반응을 미뢰의 말단까지 사용하여 유심히 살피는 심사단.

질 좋은 케첩의 너무 달지 않은 감미와 산뜻한 산미, 그리고 글루타민산의 감칠맛이 합쳐져 훌륭한 맛을 자아낸다.

"음."

"어허."

저마다 특색 있는 추임새와 함께 턱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던 그때, 그 고요함에 새로운 불청객이 끼어든다.

─바삭

"음?"

─바삭바삭

바삭?

볶음밥에서 들릴 리 없는 소리.

마치 크런치 초콜릿 안에 든 다공성 쿠키를 씹을 때처럼.

팝핀캔디를 뿌린 아이스크림을 핥을 때처럼.

몇 번이고 이어지는 바삭거리는 소리와 식감이, 그들의 치아를 튕겨내듯 되민다.

심지어, 그 바삭거림을 만들어낸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는, 그 자체로 맛의 폭탄이라도 된 것 마냥 한없이 응축된 맛으로 그들의 혀를 사정없이 난타했다.

닭고기에 감춰진 매운맛이 계란과 합쳐져 베이스 드럼의 중후한 깔림이 됐다면, 이 맛은 드럼 전체를 사용한 매서운 비트.

드럼 솔로를 방불케 하는 맛의 난타 앞에서 차마 저작을 멈추지 못하는 심사단 대신, 오늘의 특별 게스트로 나선 그녀가 입을 연다.

"…… 텐카스天かす? 텐카스를 쓴 거야, 설마?"

정답. 찬혁이 놀란 얼굴을 한 안효민을 향해 통쾌하단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맞아요. 하지만, 평범한 텐카스가 아니죠."

아직 찬혁의 마트료시카는, 빈 공간을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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