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푸드 서전.-4-
깐풍기란 일반인도 한 번쯤은 반드시 이름을 들어봤을 굉장히 친숙하고 대중적인 중식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중식은 아니지.'
대충 메뉴 가짓수가 좀 받쳐주는 중국집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요리지만, 중국집에서 판다고 전부 중식인 건 아니잖아?
자장면이 실질적으론 중식 스킨을 뒤집어쓴 K─중식인 것처럼, 깐풍기 또한 원판을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량하여 만들어진 메뉴다.
뭐, 그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일단 넘어가고.
깐풍기를 조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닭고기를 잘라서 소금, 후추 따위로 고기에 간을 해주고 전분으로 만든 튀김반죽을 입혀 튀긴 뒤 양념과 함께 볶아주면 끝이다.
레시피만 있으면 가정집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만큼 쉽다. 주방을 기름 범벅으로 만들어서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 맞기도 쉬워지지만 아무렴 어떤가.
어쨌든, 그럼 이제 시선을 되돌려 내 앞에 있는 깐풍기를 보자.
아니. 깐풍기인 척하는 타지 않는 쓰레기를 보자.
간, 튀김옷, 양념. 이렇게 만들고 싶어도 만들기 쉽지 않을 텐데…… 실력이 있는 놈이 일부러 조지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걸 깨닫는 유의미한 시간이다.
"이걸 어떻게 고쳐야 한다……."
고치기 위해 받아온 깐풍기를 이전에 보았던 견본보다 더욱 찬찬히, 그리고 샅샅이 뜯어보며 나는 절로 튀어나오는 감탄을 집어삼키고 개선 방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준비과정 속에는, 아까 견본으로는 할 수 없었던 확인과정이 한 가지 추가되어 있다.
쉽게 말해서, 입에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뭘?
'이 실패작을.'
솔직히, 정말 솔직히 혀를 대는 것조차 싫지만, 그래도 정확한 문제점을 찾고 어느 걸 쓸 수 있고, 무엇을 쓸 수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이게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니까.
'정말, 진짜 싫긴 한데……!'
도망치지 마! 맞서 싸워!
약해지려는 마음을 어떻게든 다시 세우며, 나는 젓가락으로 잡자마자 흐물흐물 늘어지는 깐풍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
으, 으읍! 이, 이건!
입에 들어온 끔찍한 무언가! 이건 뭐지? 이건 악의 편린이다. 아니! 편린이 아니라 악의의 집합체 그 자체다!
요리라는 겉모습 아래 숨겨진 악의와 조롱의 덩어리가 내 정신을 단숨에 우주로 사출시키는 것만 같았다. 아아, 나에게도 시간이 보인다. 저건 무엇이지? 새까만 암흑물질 너머, 마치 비눗방울처럼 터지는 황홀한 색채가─
"퉤! 흡, 하아, 으윽!"
내 뇌가 그 너머의 색채를 인지하고 이해하기 직전, 나는 간발의 차이로 입에 담겨 있던 물체를 싱크대에 뱉어냈다.
그다음 행동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본능적이었다.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고, 지체할 새 없이 그걸 입에 머금고 가글로 입을 씻었다.
"……미치겠다, 진짜."
간신히 제정신이 들었을 때, 내 입은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일단 말해두겠지만, 평범하게 맛이 없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 아니, 오히려 맛은 괜찮았다. 그 난리를 치고 그런 말을 하면 믿겠냐 그러면 할 말이 없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닭은 좀 덜 익었을 뿐이지 전처리가 잘 되어 있어서 닭 자체의 누린내는 거의 안 났고, 육질도 부드러웠다.
튀김옷이야 어차피 망한 지 오래라 별 신경은 안 썼지만, 튀김옷 자체에 양념이 깊게 스며들어 나름대로 맛의 전달력은 뛰어났고.
소스는…… 그래, 2순위 문제가 튀김옷과 고기의 익은 상태라면, 1순위 문제는 바로 이 소스였다.
아무리 좋은 향도 너무 짙으면 머리가 아파지는 법이다.
이 소스가 딱 그랬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소스의 배합은 아주 괜찮았다. 설탕과 고추기름, 파, 마늘, 땡초, 간장, 식초, 굴소스. 대충 느껴지는 맛을 정리해보니 의외로 소스의 만듦새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걸 어렵잖게 깨달을 수 있었다.
다만, 그 소스의 농도가 문제였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묽다, 되다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걸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평범한 깐풍기에 들어가는 소스가 옅게 탄 꿀물이라고 쳤을 때, 지금 이 깐풍기에 쓰인 소스는 꿀을 숙성시켜 수분을 깔끔하게 빼낸 딱딱한 로열젤리였다.
한마디로, 진하다. 그것도 더럽게 진하다. 순간 내 혀에서 미각이 사라졌다고 느꼈을 정도로 맵고, 짜고, 달고, 신맛이 폭포처럼 혀를 강타했다.
"용기가 과하면 무모라더니."
내가 딱 그런 꼴이다. 하지만. 덕분에 이 깐풍기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영감만큼은 확실히 머릿속에서 반짝였다.
이게 흔히 무협 같은데서 말하는 죽을 힘을 다한 사투 이후에 찾아오는 깨달음인가……?
"아님 말고."
물리적으로 요리에 목숨을 걸었다는 타이틀은 남기고 싶지 않은 나였다.
***
요리에 대한 검토와 개선방안 세우기를 끝내기 무섭게 칼을 잡고 요리를 시작했다.
"자, 해보자."
일단 이 요리를 고치는 데에 대전제를 하나 먼저 깔아두고 가자면, 이 요리를 고치려면 적당히 줄 건 주고 최대한 멀쩡한 것만 챙겨서 다른 걸 만드는 게 빠르단 걸 알아야 한다.
이전에 말했던 건축 이야기에 대입하자면, 외장이나 시멘트 따위는 깔끔하게 부수고 철골만 뽑아서 재사용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리고 이 실패한 깐풍기에서 철골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당연히 하나밖에 없었다.
튀김옷을 입은 닭고기.
이게 의도한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깐풍기를 직접 먹었을 때 나는 희한한 점을 하나 확인했다.
'고기 안에 소스 맛이 그대로 스며들었어.'
소스의 농도가 너무 진한 탓일까. 단순히 고기에 소금간이 밴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돼지갈비를 양념에 하룻밤 재워둔 것처럼 고기 자체에 소스의 맛이 깊게 배었다.
'심지어 꽤 간이 좋아.'
여전히 상당히 간이 강하긴 하지만 소스와 비교하면 말 그대로 조족지혈이다.
이 정도면 간을 꽤 강하게 맞춘 수제 햄이랑 비슷한 수준이었다.
'설마…….'
대충 느낌이 온다. 소스에 흠뻑 젖어 눅눅한 튀김옷, 낮은 온도에서 튀긴 탓에 설익은 고기. 과하게 강한 소스의 간.
우연인지 의도인지, 그 온갖 잘못된 조리가 양념한 고기를 수비드 한 것 같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따뜻한 온도에서의 단기고속숙성. 터무니없는 가설이지만, 그것 말고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거면 충분해.'
내가 할 일은 요리를 무슨 수를 써서도 먹을 만한 요리로 되살리는 거지, 요리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 설명하는 게 아니다.
'줄 건 주고, 쓸 건 쓰면 된다.'
뭣보다 그런 걸 고민하기엔 나한테 주어진 시간도, 뇌의 용량도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 이걸 되살리는 데에만 집중해도 머리가 깨질 지경이니까.
'……좋아, 이러면 될 것 같은데.'
한 차례 상상을 거치니 비로소 머릿속에서 루틴이 정립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실패한 깐풍기에서 쓸 수 있는 재료를 빼내는 것. 튀겨진 닭고기를 전부 꺼낸 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흐물흐물한 튀김옷을 손수 벗겨 접시에 담는다.
'부위는…… 전부 허벅지살이구만. 장각에서 벗겨내서 쓴 건가?'
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수확이다. 닭의 허벅지살은 대체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부위다. 미국에서야 가슴살을 더 높게 쳐준다지만 식감과 맛을 중점으로 두고 생각하면, 보다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강한 다리 쪽이 선호도가 높은 건 당연한 일이다.
뭣보다 허벅지살은 요리 종류를 가리지 않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부위이기도 하다.
튀김옷을 벗긴 허벅지살을 키친타월로 감싸 불필요한 지방기와 수분을 말끔하게 제거해 표면을 건조하게 만들어주면 전처리는 끝.
"이러면 남은 게……."
알맹이가 빠진 채 과자 포장지처럼 제멋대로 쌓인 튀김옷더미, 그리고 되직한 소스가 담긴 접시. 나는 그것들을 죄다 짬통에 쏟아 부으려다가, 잠시 손을 멈췄다.
'잠깐만.'
이거, 혹시 쓸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 순간, 나는 이게 영 신빙성 없는 소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아, 쓸 수 있다. 이거.
***
4차 심사가 한창인 조리장은 오늘도 어김없이 온갖 소음으로 가득하다.
참가자의 수는 당초보다 반 이상이 줄어들었으나, 열기만큼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은, 참가자 사이의 치열한 접전.
그 가운데에서 심사단은 카메라가 어느 한 사람을 향할 때마다 해설을 덧붙이기에 여념이 없다.
"아, 모시조개찜을 선택한 11번 참가자, 한 번 물로 씻어낸 모시조개를 와인으로 끓이고 있습니다."
"해산물의 비린내를 지우는 데에 저만한 조리법이 또 없죠. 현명한 선택이에요."
"48번 참가자는 통안심 스테이크를 골랐죠?"
"예. 팬을 센불로 달궈서 안 그래도 과하게 익은 스테이크를 더 익히고 있네요!"
"블랙 앤 블루 스타일 스테이크로 만들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아예 타기 직전까지 바삭하게 익힌 겉면과, 반대로 레어보다 생육의 질감을 보존한 속살의 대비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죠."
"어느 참가자는 교과서적인, 또 어느 참가자는 참신한 해법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땀을 뻘뻘 흘리며 몸으로 튀는 뜨거운 기름과 불똥에도 아랑곳 않는 참가자 면면을 쓱 훑은 카메라가, 다음에는 찬혁의 모습을 비춘다.
"류찬혁 참가자는 깐풍기의 튀김옷을 전부 벗기고 있군요?"
"소스가 과하게 묻은 부분을 제거해서 최대한 간이 삼삼한 부분을 이용할 생각이겠죠. 아마 그조차도 이미 상당히 간이 배었겠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겁니다."
이어서 찬혁은 껍질을 벗긴 닭고기를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썰고는 밀가루를 살짝 뿌려 밀가루옷을 입힌다. 양념이 너무 짙게 밴 닭고기 위로 한 겹의 커버를 덧씌워 다시금 맛을 죽인 것이다.
과연 저렇게 만든 닭고기로 무엇을 만들 생각인 걸까? 기대감 어린 눈빛이 모인 가운데, 찬혁은 화구 위로 웍을 올린다.
웍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파와 마늘을 넣고 볶다가, 뒤이어 앞서 준비한 닭고기를 넣고 마저 볶는 찬혁.
어느 정도 고기에 색이 든 걸 확인한 찬혁이, 직후 냉동고에서 미리 식혀둔 찬밥을 꺼내어 그 위로 쏟는다.
심사단은 찬혁의 모습을 보고 납득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볶음밥…… 과연, 괜찮은 선택이에요."
"밥과 같이 볶으면 고기에 밴 간이 밥으로 옮겨가고, 거기에 더해 한 번 맛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죠."
"원래 간장, 설탕, 식초로 간이 되어 있던 만큼 밥과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아닙니다."
좋은 선택이었지만, 이전만큼 놀라운 선택은 아니었다는 듯 살짝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를 흘리던 그때, 찬혁이 갑작스레 돌발행동을 시작한다.
"어, 어? 저거 뭐죠?"
"류찬혁 참가자. 밥 위로 뭔가를 더 뿌리고 있습니다…… 저건……?"
"케, 케찹?"
"류찬혁 참가자? 케찹을 뿌리고 있어요!"
순식간에 토마토의 붉은 색으로 물드는 밥알을 보며, 심사단이 이마를 탁 친다.
설마, 이런 무대에서 오므라이스를 선보일 줄은, 그들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황당하다는 심사단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혔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찬혁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힘차게 웍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