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88화 (288/403)

288. 푸드 서전.-3-

참가자 일행은 심사 시작 후 첫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뭘 고르지?'

'어떤 게 가장 나은 선택일까?'

그건 바로 '어떤 실패작을 선택하느냐'라는 오지선다의 난제.

사실 이미 너무 망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걸로만 따지면 이거나 저거나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막상막하의 막장이긴 했지만, 그럴수록 그나마 미래가 있는 걸 찾아야 했으니까.

'하기 싫다고 때려칠 수도 없고…….'

대체 몇 번째 되뇌었는지 모를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찬혁 또한 자신이 고칠 메뉴를 고르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하나둘 앞으로 나서는 참가자의 모습을 보며, MC가 심사단에게 상황 해설을 요청하는 듯 질문을 건넸다.

"심사위원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 심사에서 지금 당장 우선시해야 하는 건 뭔가요?"

"지금 당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 글쎄요. 아마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제가 심사를 받는 입장이었다면 심사용 메뉴의 상태를 가장 먼저 파악했겠죠."

"아, 저도 동감이에요. 역시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해요."

"상태를 파악하다뇨?"

요리는 좋아하지만, 지식으로선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MC가 의아하다는 듯 되묻자 심사단이 답했다.

"이 심사는 다섯 가지 실패한 음식 중 하나를 골라 고쳐야 합니다. 근데 일단 고치려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잖아요? 전자기기도 어디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알아야 어떻게 고칠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리고 또, 수리 청사진이 얼추 만들어지면 그걸 수리하는 데에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도 감을 잡을 수 있죠. 지금 해야 할 일은 크게 세 가지 순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실패작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기. 둘째, 그 문제를 어떻게 고칠지 계획을 세우기, 셋째, 자신에게 그 계획을 실행할 능력이 있는지 검토하기."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인 심사위원이 다시금 손을 내리곤 말을 이었다.

"이 세 가지 프로세스를 확실하게 거친 뒤에 선택할 수 있는 참가자만이 다음 심사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참가자를 향한 충고가 섞인 심사단의 해설처럼, 찬혁은 그 세 가지 단계의 첫 번째 계단을 착실히 밟아 올라가는 중이었다.

"어디 보자……."

통안심 스테이크, 깐풍기, 모둠채소볶음, 돼지고기카레, 모시조개찜.

찬혁의 눈이 여느때보다 형형하게 빛나며 메뉴의 견본을 분해하듯 살폈다. 마치 집도의가 환자의 CT, MRI 사진 따위를 보면서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사실, 그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당초 망한 음식을 되살리란 말에는 당황했던 찬혁이었으나, 사실 그의 주특기 중 하나엔 분명 이럴 때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오랜 시간 호텔에서 근무하며 후천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는 주특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의 요리에서 흠결을 찾아내는 안목이었다.

'……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듣기 안 좋은데.'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찬혁이 이러한 안목을 지니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자영업으로 자신의 가게를 직접 운영하며 모든 요리를 직접 만드는 오너 셰프 같은 경우라면 몰라도, 하나의 회사처럼 관리되며 수많은 부하, 상사와 함께 일하는 호텔계 셰프는 필연적으로 관리의 책임이 생긴다. 흔히 말하는 중간관리직의 비애라는 것이다.

호텔 주방의 업무란 '최고'가 아닌 '완벽'을 추구하는 데에 그 이념이 있다.

최고와 완벽. 비슷하게 들리지만, 이 둘은 엄연히 그 바탕에 깔린 사상이 다르다.

하루하루, 어제보다 더 나은 메뉴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오늘을 사는 게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완벽이라 함은 보다 균일하고 정확하게 정해진 메뉴를 매일매일 동일한 퀄리티로 완성해내는 것.

굳이 따지자면, 회귀 전의 찬혁은 최고보다는 완벽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일한 경력이 훨씬 길다.

업장이 완벽이란 이념을 추구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안정적인 장사를 위해서고, 찬혁이 근무한 대부분이 업장은 굳이 최고를 노리며 발전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궤도에 오른 곳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기업형 업장, 요컨대 프랜차이즈나 호텔 같은 경우에는 그 완벽에 대한 요구가 더더욱 크다.

당연한 일이다. 그걸 해내느냐 해내지 못하느냐로 기업에 대한 평가가 갈리니까.

하지만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그런 기업형 업장일수록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인간이 공장의 기계도 아닐진대 어떻게 매일같이 수십 종류의 음식을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한두 사람도 아니고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곳에서?

100인분을 한꺼번에 만들어도 소금 한 숟갈, 간장 한 국자 정도의 차이로 맛이 극명하게 바뀌는 것이 요리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완벽히 균일한 음식을 매일 만드는 건 아주 힘든 일이다.

거기서 필요한 게 바로 찬혁의, 정확히는 찬혁과 같은 중간관리직의 존재다.

하급자가 만든 요리의 완성도가 기업의 요구에 상응하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중간에서 거르거나 통과시키는 것이 찬혁의 역할.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공장의 검수기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런 일을 주로 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찬혁은 보다 높은 직위로 갈수록 본신의 요리솜씨보다는 남의 요리를 파악하고 검토하는 능력이 발달하게 됐다.

'솔직히 별로 마음에 드는 업무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그간의 고생이 쓸모없진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찬혁은 그간 쌓은 안목을 발휘하는 데에 집중했다.

"…… 다시 봐도 정말 가관이구만."

그리고 그럴수록, 찬혁은 안효민의 철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새까맣게 탄 통안심 스테이크. 하지만 그건 아주 고온의 화력으로 겉면을 너무 빠르게 익힌 탓이다. 이미 여러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이 있는 통안심 스테이크의 견본. 마치 어린아이의 지능발달용 도형퍼즐처럼 난잡하게 잘린 스테이크의 단면은 지나칠 정도로 색의 대비가 선명하다.

겉은 짙은 갈색을 넘어 거의 검정색이 되기 직전까지 갔지만, 반대로 그 속은 아직 선명한 빨간색.

"무슨 숯가마에 넣었다 빼기라도 했나……."

그 절묘한 함정을 만들어낸 환상적인 불조절 능력이 이런 실패작을 일부러 만들어내는 데에 쓰였다는 게 서글퍼질 정도였지만, 찬혁의 이성은 그런 감상을 뒤로 하고 메뉴의 수정 방안을 찾아내기에 급급했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 쓸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겉에 탄 부분을 제거하고 다시 굽는 것도 방법이겠고, 그도 아니면 아예 블랙 앤 블루 스타일 스테이크로 완성시킬 수도 있겠어.'

다음에 본 것은 깐풍기.

낮은 온도의 기름에서 너무 짧게 튀긴 탓에 고기도, 튀김옷도 제대로 익지 않았고, 소스는 너무 짜고, 식감의 조화도 엉망이었다.

평범한 식당이라면…… 아니, 제정신이 박힌 식당이라면 결코 손님상에 나갈 일이 없을 요리였지만, 그조차도 아주 쓸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건…… 만약 이걸 쓴다면 아예 튀김옷까지 싹 다 벗겨내서 안에 닭고기만 쓰는 게 낫겠는데.'

그 와중에 닭고기의 품질만큼은 최상급인 탓에 찬혁은 짜증이 배로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모둠야채볶음은…… 이건 틀렸어. 야채 자체는 이미 못 먹을 수준이야.'

보통 야채를 주력으로 한 요리는 식감을 어떻게 연출하느냐가 완성도에서 절반 이상의 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실패작 모둠야채볶음은 이미 익힌 정도가 최적을 넘어 살짝 야채의 진물이 빠지기 시작한 상태로 진입한 상태다. 더 이상 건드려봤자 '야채볶음'이라는 메뉴의 완성도는 오로지 떨어지기만 할 뿐이다.

'요컨대, 이걸로는 야채볶음이 아닌 다른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고.'

찬혁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의 수정 방안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떨쳐냈다. 굳이 이걸 사용해서 무언가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카레는…… 뭘 대체 얼마나 끓여야 이렇게 뻑뻑해지는 건지.'

졸이다 못해 오븐에 냄비째 넣어 구워 버린 게 아닌가 싶은 참담한 카레에서 찬혁은 이르게 눈을 돌렸다.

'카레는 맛이 너무 강해. 고쳐봤자 다른 형식의 카레 요리가 되겠지. 저것도 패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조개찜이었다.

사실, 찬혁은 처음 심사용 메뉴를 보았을 때부터 조개찜에 조금씩 마음이 쏠리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 조개찜이라는 메뉴가 여타 메뉴에 비해 활용도가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간도 괜찮고, 조개 상태도 아주 좋아. 잡스런 기교도 안 들어갔고. 냄새가 좀 심한 걸 빼면…….'

분명 어느 요리에든 쓸 수 있다.

사실, 해결방안도 이미 모색이 끝났다. 찬혁의 주특기는 프렌치와 이탈리안. 조개란 식재료는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식재료지만, 그중에서도 프렌치와 이탈리안은 조개에 상당히 진심인 편이다.

'대충 화이트 와인에 넣고 끓인 다음 브랜디를 섞어서 플람베로 처리하면 냄새는 깔끔하게 잡힌다. 그럼 그 육수로 파스타를 하든 뭘 하든 제법 괜찮은 메뉴가 나올 거야.'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찬혁에게 가장 편한 메뉴는 조개찜이었다.

아니, 찬혁만이 아니라 여타 참가자에게도 그건 마찬가지리라.

편한 길이 있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만…….

'…… 이상한데.'

찬혁은 안효민이 준비한 다른 메뉴를 유심히 되새겼다.

하나같이 제법 커다란 함정이 있고, 다시 조리하기가 까다로운 면모가 있는 메뉴. 그에 비해 조개찜은 쉽다. 지나칠 정도로 쉽다.

조개의 과도한 비린내를 해결하는 방법 정도야 어느 나라에든 있다. 와인이나 소주, 청주 따위로 끓여주기만 해도 얼추 해결될 문제니까.

'선배가 그걸 모를까?'

앞선 네 가지의 메뉴를 악랄하리만치 대놓고 망쳐놓고, 조개찜만을 쉽게 놔둔다?

아니다. 안효민이 그렇게 만만한 생각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걸 찬혁은 잘 알고 있었다.

'함정이다.'

단정 짓기에는 조금 이를지 몰라도 찬혁은 그렇게 직감했다.

단순히 안효민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찬혁이 믿는 구석은 바로 제작진에게 있었다.

여태껏 그렇게 다종다양한 악의로 참가자를 괴롭히고 시험한 제작진이 이렇게 편한 과제를 굳이 줄 리 없다는 비틀린 믿음이, 오히려 찬혁에게 함정을 눈치챌 분별력을 쥐어준 것이다.

'그럼…….'

남은 후보는 스테이크와 깐풍기.

두 가지 메뉴 앞에서 곰곰이 생각을 이어나가던 찬혁이, 이윽고 한쪽의 접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아, 참가자들이 드디어 메뉴를 선택하기 시작하네요."

"각자 본인의 선택에 따라 메뉴를 고르고 있습니다만……."

"역시, 모시조개찜을 선택하는 참가자의 비율이 높군요."

"그렇죠. 모시조개찜의 가장 걸리는 부분은 바로 과도한 비린내입니다만, 그 비린내를 제거할 기법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오히려 비린내를 제거하며 생기는 조개 특유의 감칠맛은 어떤 나라의 요리를 만들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되죠!"

하지만 과연, 저 모시조개찜 속에 감춰진 함정을 눈치챈 참가자가 몇 명이나 있을지.

제작진과 심사과제를 상의하며 본인들이 준비한 함정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참가자를 보며, 몇 사람의 심사위원이 몰래 웃음을 짓는다.

"아, 이번에 앞으로 나서는 건 각 심사 때마다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젊은 다크호스, 류찬혁 참가자입니다."

"과연 류찬혁 참가자는 어떤 메뉴를 선택할지……."

과연 스스로 함정을 향해 가는가, 아니면 다른 선택지를 고르는가.

심사단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향하는 와중, 드디어 찬혁이 메뉴가 담긴 접시를 잡았다.

"아, 잡았습니다! 류찬혁 참가자! 선택한 이상 되돌릴 수 없어요!"

"류찬혁 참가자가 고른 메뉴는─!"

카메라가 방향을 틀어 찬혁의 손을 크게 클로즈업한다.

화면 가득 떠오르는 찬혁의 손.

그 손에 들린 접시 위에는, 덜 익은 티가 팍팍 나는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깐풍기가 담겨 있었다.

"깐풍기! 류찬혁 참가자, 깐풍기를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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