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프렌치 스탠드오프-5-
내 부야베스 심사도 성황리에 끝나고, 비로소 마지막 결판의 순간이 다가왔다.
"첫 시작부터 대단한 명승부가 나온지라 승자를 발표하기에 앞서 잠시 심사단끼리 의논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나와 이우현 셰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심사단은 이내 감사하다는 답변과 함께 심사대 뒤편 백스테이지에 옹기종기 모여 의논을 시작했다.
'들리면 안 될 이야기라도 하는 건가…….'
저렇게 해봤자 어차피 방송 보면 전부 알 수 있을 텐데.
심사대 앞에 남은 건 오직 나와 이우현 셰프, 그리고 우리가 만든 요리가 담겨 있던 접시뿐.
"……."
"……."
고요했다. 뭐라고 할까. 당연한 일이긴 하지. 우리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여기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찌를 비수를 눈앞에 들이대고 있는 형국에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
'솔직히 나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고.'
개인적으로는 승리할 확률이 7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우현 셰프의 부야베스도 결코 만만한 요리는 아니다.
다양한 해산물의 조화를 컨셉으로 삼은 내 부야베스와는 달리, 철저한 대게의 일인독주 체제를 유지하며 다른 해산물을 들러리로 삼은 이우현 셰프의 부야베스.
서로가 가진 장점이 확연히 다르기에, 더더욱 승리를 예측하기 어렵다.
활대에 걸린 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견디며 여전히 뜨겁게 의논을 펼치는 심사단을 몇 차례나 힐끗거리며 훔쳐보던 그때였다.
"저기, 류찬혁 학생?"
"예? 부르셨어요?"
이제껏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던 이우현 셰프가 날 부른다. 무슨 일인고 고개를 돌리니, 셰프는 날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대결 결과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정말 고생 많았어요."
"아, 감사합니다. 이우현 셰프도 고생하셨습니다."
어색함이라는 단어를 몸짓으로 표현하면 바로 이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형식적인 인사가 오간 뒤, 우리 둘 사이에는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스튜디오 외곽에선 그런 우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찍고 있고, 여기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입을 달싹이던 나를 다시금 이우현 셰프가 도와주셨다.
"처음 봤을 때부터 류찬혁 학생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방금 심사 내용은 그보다 더하네요. 훌륭한 솜씨에요.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그만한 실력을 쌓았는지 궁금할 정도로요."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아, 말씀 편하게 하셔도 괜찮아요."
"그래도 될까? 그럼…… 크흠. 과찬은 무슨. 우리 아들 녀석이 학생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는데."
"자제분이 계세요?"
"외동아들이 하나 있지.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
"아, 그럼 제 여동생이랑 또래네요. 걔는 저보다 네 살 어리거든요."
"찬혁 학생이 2학년이라고 했지? 그럼 여동생은 내년에 중학교 2학년이 되나?"
"예."
"혹시 여동생 쪽도 요리 공부를 하나?"
"아뇨. 걔는 그림 쪽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서요. 본인이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하하, 남매 둘이 하나같이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가보이. 거기다 아들은 이렇게 대견하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우시겠어."
"…… 그랬으면, 좋겠네요."
마지막만 빼면 적당히 가벼운 대화를 나누니 얼추 팽팽하던 긴장감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겉보기에는 살짝 강직한 인상이 있는 분이었는데, 직접 대화를 나누니 생각보다 유한 성격의 어르신이다.
…… 이건 내가 하면 안 되는 말인가.
이우현 셰프는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쑥스러움 때문이라 생각한 건지 작게 웃고는 말을 잇는다.
"자랑스럽지 않을 리가 있나. 생판 남인 나도 우리나라에서 이만큼 젊은 나이에 그만한 실력을 가진 요리사가 나와서 자랑스러울 정돈데. 방금 요리도 그 나이에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해낼 수 있는 건지 신기할 지경이야."
무슨 개국공신이라도 만난 사람마냥 날 열심히 칭찬해주시는 이우현 셰프였으나, 사실 그것도 전부 내 머릿속에서 나온 발상은 아니다.
그야 대부분은 회귀 전, 후에 배우고 익힌 것들이긴 하지만, 방금 한 요리에는 그거 말고 다른 곳에서 배운 것도 있었거든.
"사실 그렇지만도 않아요."
"응?"
"방금 만든 거, 반쯤은 이우현 셰프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던 거거든요."
"…… 그건, 무슨 뜻이지?"
"들으면 화내실지도 모르는데, 사실 딱딱한 재료를 구워서 수분을 날린 다음 육수를 뽑는 기법은 이우현 셰프를 보고 생각난 거거든요. 생선 맛을 돋워줄 육수를 만들려면 아무래도 시간도, 재료도 부족했는데. 그 기법 덕분에 제시간 안에 원하는 퀄리티로 완성할 수 있었어요."
"대게 등딱지를 구워서 육수를 뽑은 걸 보고?"
"네. 사실 구운 뼈로 육수를 만드는 건 프렌치에서도 자주 쓰이는 기법인데 그걸 깜빡 잊고 있었어요. 이런 방법으로도 쓸 수 있다는 것도 덕분에 알게 됐고요. 좋은 공부가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니, 인사 안 해도 된다."
이우현 셰프는 고개를 꾸벅 숙인 내 인사를 괜찮다며 밀어냈다. 역시 자기 기법을 따라 한 게 못마땅한 걸까. 죄송스런 마음으로 고개를 든 나였으나, 내 눈에 들어온 건 뜻밖에도 다감한 미소를 지은 이우현 셰프의 얼굴이었다.
"나도, 네 덕분에 많이 배웠으니까."
***
"이번 대결의 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의논을 마치고 돌아온 심사단 앞에 나선 김선옥 셰프가 찬바람이 느껴질 만큼 냉랭한 목소리로 고했다.
바깥의 엄동설한에도 밀리지 않을 한기. 아까까지만 해도 제법 훈훈한 분위기에 물들었던 나와 이우현 셰프 사이에도 다시금 김선옥 셰프가 몰아온 한랭전선이 파고든다.
긴박한 분위기. 마치 어디선가 '두구두구두구'하는 드럼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김선옥 셰프가 입을 연다.
"이번 대결의 승자는……."
꿀꺽.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겹쳤다. 이우현 셰프도 나 못지않게 긴장했다는 뜻이겠지. 드디어, 이 길고도 짧은 대결의 끝이 우리에게로 찾아왔다.
"참가번호 39번. 류찬혁 참가자. 축하드립니다."
…… 39……? 나, 난가? 나 맞지? 해냈나? 해치웠나?
머리로는 분명 내 승리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정말 내가 이긴 게 맞는지, 아주 짧은 시간의 망설임과 동요.
가슴속에서 진도 8.0 대지진이라도 일어났던 것 같은 떨림이 간신히 잦아든 뒤, 내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 하아……."
됐다. 해냈다. 예선전 시작 후 가장 어려웠던 대결에서, 나는 승리했다.
그런 안도가 담긴 한숨이 폐에서 시작해 기도를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내 속에 가득 찬 것을 빼고 난 뒤에야, 나는 다른 무언가를 내 속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짝, 짝짝.
─짝짝짝!
환호성은 없지만, 그 대신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다른 참가자와 스태프, 심사단의 박수 소리. 그리고…….
"축하한다."
"…… 셰프."
큰 아쉬움이 깃든, 그러나 어느 쪽으로는 작은 후련함도 엿보이는 얼굴로, 이우현 셰프는 내게 박수를 보냈다.
"…… 감사합니다."
속이 쓰리지 않을 리 없을 텐데도, 그저 웃으며 손바닥을 부딪치는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감사밖에 없었다.
***
박수소리가 잦아든 뒤, 심사단은 찬혁과 이우현에게 심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어떤 사유로 점수의 고저가 정해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말씀을 드리기 전에, 우선 저희가 이 결과를 고르기 위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참가자 모두, 정말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우선 이우현 참가자의 작품은 베테랑다운 조리 솜씨와 뚝심이 엿보였습니다. 대게를 이용한 비스크와 향미유로 제철 대게의 맛을 훌륭히 살렸습니다."
"류찬혁 참가자의 경우, 하나의 재료보다 다수의 재료를 조화시키고, 또 이탈리아의 부야베스라는 재해석을 통한 발상이 참신했죠. 거기에 더해 요리의 완성을 위한 전략적 선택 또한 훌륭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두 참가자의 요리 중 부족한 부분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두 분은 각자의 개성을 살려 훌륭한 작품을 만드셨습니다…… 만."
심사단 하나하나의 말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김선옥이 입을 연다.
"이 대결의 승부를 가른 건, 심사과제에 대한 두 참가자의 이해도 차이였습니다."
"심사과제에 대한 이해도요?"
이우현의 의문. 김선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의 심사과제는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인 부야베스를 만들라'는 것이었죠."
"……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우현 참가자. 참가자가 만든 건 부야베스가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진하게 우려낸 대게 스프에 다른 해산물을 건더기로 쓴 요리였죠."
"!"
가히 폭언이나 다름없는 김선옥의 말을 들은 이우현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진 건 진 거지만, 그 말 만큼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
그러나 김선옥은 이우현의 강렬하고도 날카로운 안광 앞에서도 한치도 표정을 무너트리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부야베스의 태생은 단순한 해물잡탕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잡탕'이라는 것이야말로 부야베스의 본질이에요. 다양한 해물에서 우러나온 액기스가 복잡하게 섞인 맛은 부야베스가 아니면 쉽게 찾을 수 없죠. 팔고 남은 해산물을 모아 끓인 요리에서 저만큼 단 한 가지 재료의 맛만이 강렬하게 우러나올 수 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부야베스라고 부르는 음식은 그냥 꽃게탕이나 조개탕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무엇보다, 이우현 참가자의 작품은 대게 맛이 너무 강하게 자기주장을 한 나머지 다른 재료의 맛마저 철저하게 묻어버립니다. 이우현 참가자. 요리에 주역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배우만으로는 무대를 완성할 수 없어요. 누구 하나는 말할 틈을 줘야 대화가 성립하고, 작품이 성립하는 겁니다."
할 말이 없었다. 김선옥의 말은 분명 옳았으니까. 재해석이라는 이름의 컨셉을 너무 과도하게 밀어붙인 바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비스크와 향미유. 두 가지 다 좋은 기법이지만 굳이 대게의 존재감을 어필하고 싶었다면 향미유를 사용하되, 육수는 다른 재료를 사용했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새우로 만든 비스크에 조개를 섞어 육수를 만들었다면 작품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겠죠. 잘 하셨지만, 그만큼 아쉬운 부분이 크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날카로운 창날처럼 사람의 심부를 찌르는 평가가 끝난 뒤, 김선옥의 시선은 바로 찬혁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류찬혁 참가자. 참가자 또한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부야베스라는 메뉴에 대한 이해도와 타국의 식문화에 대한 지식, 본인의 센스와 솜씨, 그리고 참신한 발상이 잘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겁니다."
자신을 향한 수많은 시선 앞에서 김선옥은 자그마한 유리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는 자주색에 가까운 가느다란 이파리 같은 것이 뭉쳐 있다.
'역시 눈치챘구나.' 라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 찬혁을 제외한 사람들의 눈빛엔 의아함이 잔뜩 끼었다. 멀리서 보고는 그 정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탓이다.
김선옥은 뜸 들이는 일 없이 그 병의 정체를 밝혔다.
"이건 사프란이라는 이름의 향신료입니다. 유명한 물건이니 아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사프란!
그 이름에 사람들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사프란이란 동명의 꽃의 암술만을 채취하여 건조해 만드는 특수한 향신료를 뜻한다.
산업화를 거친 현대에 와서도 그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못하여 같은 무게의 금과 비슷한 금액으로 거래되는 최고급 향신료.
"샤프란은 맛은 거의 무미에 가깝지만, 향만큼은 독보적이죠. 이탈리아 등이 속한 남유럽에서 주로 채취되는 이 향신료는 그 자체로 지중해의 향을 담아낸 향신료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많이 쓴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너무 과하게 쓰면 향이 너무 독해서 오히려 요리를 먹을 수 없어지니까요."
그 말에 참가자 일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선옥의 말대로, 샤프란은 귀한 주제에 쓰는 방법도 더럽게 까다로운 향신료. 보통은 향보다는 색을 위해 리조또 따위에 아주 극소량만 들어갈 뿐이다.
그걸 어떻게 썼기에 김선옥이 그것을 걸고넘어진 걸까?
의문이 담긴 시선 앞에서, 김선옥은 살인마의 트릭을 공개하는 명탐정처럼 찬혁이 사용한 수법을 고했다.
"쿠스쿠스는 여타 파스타와는 다르게 뜨거운 물에 불리기만 해도 먹을 수 있는 파스타입니다. 알이 너무 작아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익는 거죠. 그리고 류찬혁 참가자는, 쿠스쿠스를 불릴 때 바로 이 사프란을 우린 열탕을 사용한 겁니다."
그녀의 말은 정답이었다.
찬혁은 사프란을 우린 물로 쿠스쿠스를 불린 뒤, 그것을 오븐에 넣어 건조 시켰다.
그렇게 하여 쿠스쿠스 안에 갇힌 사프란의 향기는, 이우현의 심사가 진행될 동안 부야베스와 천천히 하나가 되어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를 자연스럽게 억제함과 동시에 남유럽의 풍미를 접시 전체에 배이게끔 만든 것이다.
'서, 설마 거기까지……!'
발상, 재료, 솜씨, 전략, 결과까지.
모든 면에서, 따라갈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납득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그 이상이었을 줄이야.'
이우현은, 조용히 이 결과를 받아들이곤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수그렸다.
자신의 존재에 발목을 잡히기에, 찬혁이 너무도 큰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사실이 못내 씁쓸했다.
"이상입니다. 이우현 참가자. 지금까지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앞치마를 벗어주십시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이우현의 두 손이 곱게 접힌 앞치마의 매듭을 끄른다.
3차 심사, 첫 번째 대결의 종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