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 프렌치 스탠드오프.-4-
"류찬혁 참가자. 완성하신 요리를 제출해주세요."
"예."
심사단의 요청에 찬혁은 미리 요리를 담아 준비해놓은 접시를 트레이에 얹어 심사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심사단 각자의 앞에 접시를 놓던 그때, 눈썰미라면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 심사단이 찬혁의 모습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하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류찬혁 참가자? 그건……."
"왜 장갑을 끼고 계시죠? 손을 다치기라도 한 건가요?"
그 말대로, 찬혁의 손에는 척 보기에도 제법 두툼한 장갑이 씌워져 있었다. 요리사가 요리 중 라텍스나 비닐장갑 같은 걸 끼는 것이야 최근 들어선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청결을 위해 권장하는 습관이지만 이렇게나 두꺼운 장갑은 언어도단이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이는 장갑을 끼고 제대로 요리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니까.
심사단의 질문에 찬혁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뇨. 딱히 다친 건 아니고요. 접시가 좀 뜨거워서요."
접시가 뜨겁다? 심사단 일동이 의아한 눈빛을 띄운다.
뜨거운 음식이 담긴 접시가 뜨거워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옛날 식당이나 국밥집 같은 곳에서 쓰는 스테인리스 밥그릇도 아니고, 장갑까지 끼우며 호들갑을 떨 만큼 접시가 뜨거울 리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이윽고 찬혁이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놓자마자 바로 잦아들었다.
─텅!
분명히 접시를 가볍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을 뿐임에도, 테이블 전체가 떨릴 만큼 굵은 소리가 접시 밑바닥을 울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이 접시는…… 아하! 이러면 뜨거울 만도 하지."
그 모양새에 금세 낌새를 느낀 심사단이 감탄스럽다는 목소리로 호응했다.
접시에 담긴 부야베스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깊이가 깊은 접시로 옮겨 담아봤자 대접 하나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즉, 접시 자체가 그 내용물과는 관계없이 무겁다는 뜻.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요리도구와 식기가 사용자의 편의성을 위해 경량화되는 추세로 접어드는 근래에 있어서 단순한 접시가 이만큼 무거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오븐용 그릇이군요. 그것도 사기로 된."
"예, 맞습니다."
오븐용 그릇. 말 그대로 오븐에 들어가도 제 구실을 멀쩡히 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그릇을 말한다.
급격한 온도변화에도 견딜 수 있도록 두껍게 만들어진 오븐용 그릇은 다른 평범한 접시보다 배 이상의 중량을 갖는다.
무겁고, 쓰기 힘들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이점이 있다. 찬혁의 노림수는 바로 그 이점에 있었다.
"오븐용 그릇을 미리 가열해서 데워놨군요?"
"예."
김선옥의 질문에 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븐용 그릇을 미리 데워두면 뜨거운 요리를 접시에 담아도 갑작스런 온도 변화가 생기지 않아 맛이 유지됩니다. 거기다 제가 사용한 접시는 특히 바닥이 두껍거든요. 덕분에 음식에 딱 알맞은 온기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게 되죠."
찬혁의 말대로, 오븐용 접시에 담긴 메뉴에선 여전히 뜨거운 김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이러면 심사가 늦어져서 음식이 식는 문제를 확실히 해결할 수 있겠군요!"
"오히려 아주 살짝 식은 덕에 먹기에도 딱 좋은 온도가 됐어요. 일류 설렁탕 식당에선 설렁탕이 가장 맛있는 온도는 팔팔 끓는 100도 근처가 아니라 뜨겁다고 인지하면서도 먹기 힘들지 않은 70~80도 사이의 온도가 가장 좋다고 하죠. 나라는 달라도 스튜 요리라는 점에 있어서는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고 보아도 좋을 겁니다."
좋은 발상이라며 칭찬하는 심사단 앞에서, 찬혁은 겸연쩍다는 듯 작게 미소를 짓는다.
"……."
하지만 그런 심사단 중에서도 김선옥의 얼굴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아니, 오히려 살짝 눈가를 찌푸린 그녀는 어딘가 미심쩍다는 얼굴로 찬혁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장님. 혹시 눈치채셨습니까?"
"예. 뭔가 이상하네요."
그리고 여기, 그런 그녀와 마찬가지로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또 있었다.
차윤구와 유동건. 두 사람은 방금 찬혁의 심사 내용에서 분명히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예? 뭐가요? 뭐가 이상해요? 좋은 방법이지 않아요?"
김선엽이 두 사람의 의중을 모르겠다는 듯 묻자, 차윤구가 나서서 대답했다.
"그래. 좋은 방법은 맞다. 저러면 미리 음식을 담아놔도 여전히 음식이 뜨거울 때 대접할 수 있지. 그런데 말이다……."
차윤구가 한 번 생각해보라는 듯 눈을 힐끗 돌리며 말한다.
"너희 가게에서도 접시를 미리 데워둘 때가 많았을 거야. 그렇지?"
"그야…… 예, 뭐. 요즘 같은 겨울철은 맨날 그렇게 하죠. 손님이 항상 시간을 칼 같이 맞춰 오시는 것도 아니고, 음식이 언제 식을지 모르니까요."
"그럼 접시를 데울 땐 어떻게 하는지도 알겠구나."
"당연하죠. 저희는 보통 오븐을 안 쓰니까 빈 접시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거나, 아니면 잠깐 불에 올려둬서 데우는데 이게 온도를 딱 맞추려면 보통 귀찮은 게 아니에요.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들고…… 어라? 잠깐만."
"그래. 뭐가 이상한지 이제 알겠어?"
차윤구는 다시금 찬혁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접시를 데운다는 건 '식는 걸 전제로' 두고 하는 일이다. 언제든 원하는 타이밍에 딱 맞춰 메뉴를 제공할 수 있을 때엔 할 이유가 없지. 귀찮고, 시간이 드는 일이니까. 괜히 이럴 때 해봤자 오히려 음식을 완성하는 시간만 늦춰질 뿐이야."
"그런데 방금 찬혁이와 이우현 씨는 거의 동시에 음식을 완성했어. 굳이 접시를 데우는 데에 시간을 쓰지 않았다면 찬혁이가 훨씬 빨리 완성했을 텐데 말이야."
"저기, 그럼 찬혁이는……."
"그래."
유동건의 지적에 김선엽이 비로소 눈치챈 듯 두 눈을 크게 치켜뜨자, 차윤구가 답한다.
"일부러 늦게 완성한 거다."
그 사실을 진즉 눈치챘음에도, 유동건과 차윤구는 여전히 찬혁의 의중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애당초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빨리 완성해서 먼저 심사에 제출할 수 있었다면 굳이 접시를 데울 이유가 없다. 늦게 제출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대체 왜…….'
세 사람의, 아니. 심사대에 앉은 김선옥까지 합쳐 네 사람의 의문을 앞에 두고 찬혁의 심사가 시작됐다.
***
심사가 시작되자마자 분위기는 돌변한다. 그래, 바로 아까 이우현 셰프가 심사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이렇게 표현하기는 좀 뭐하다고 생각하지만, 심사단은 마치 해부학실습을 주도하는 교수들처럼 내 요리를 하나하나 해체하기 시작한다.
내 나름대로 온갖 비법을 담았다곤 하나,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지식인들이 두뇌를 모아 파헤치는데 밝혀내지 못할 비밀이 얼마나 될까.
그 생각을 증명하듯이, 내 요리에 대한 정보가 그들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류찬혁 참가자의 부야베스는 제법 베이직한 느낌이 강하군요."
"대게를 메뉴의 주축으로 삼은 이우현 참가자와는 확실히 다른 면모가 있어요."
"비주얼적으로 크게 한 방 먹이고 들어오던 이우현 참가자의 부야베스와 비교하면 살짝 심심한 면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조화로운 구성이 마음에 듭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이 온도. 정말 입에 대기 편해요. 이만큼이나 절묘하게 온도를 조절하다니, 크게 드러나진 않을지 몰라도 이 또한 엄청난 기술입니다."
처음에는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이었던 접시와 온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무렴, 그 온도를 정확히 맞추려고 엄청 고생했거든.
'조금만 식어도 국물이 너무 끈끈해지니까.'
딱 적당한 점도를 유지함과 동시에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따스한 온기를 맞추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요리에 담긴 장점의 극히 일부일 뿐, 아직 본편은 시작도 안 했다.
"어디 그럼 건더기를 먼저…… 음! 역시! 힘들게 닭발을 손질한 보람이 있는 육수예요! 갖은 해산물에서 나온 액기스가 녹아든 육수가 건더기를 촉촉하게 휘감고 있어요. 국물을 따로 떠먹지 않았는데도 입에서 국물이 흘러넘치는 느낌입니다!"
"맛도 완벽해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베테랑 연주자들이 함께한 오케스트라 같습니다. 누구 하나가 특출나게 뛰어나기보다 전체가 서로를 떠받들고 함께 완성도를 높이고 있네요!"
"신선한 해산물의 맛이 확실히 와 닿습니다. 누구 하나 묻히는 재료가 없군요! 생선에 조개나 갑각류를 같이 사용하면 국물에서 그 맛이 밀리기 마련인데, 생선까지 확실히 제 역할을 하고 있군요. 생선이 따로 더 많이 들어간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밀리지 않을 수 있는 거죠?"
마침 날아든 심사단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그건 제가 닭발 육수에 구운 가자미로 만든 육수를 섞어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구운 가자미요?"
"예. 부야베스에 넣기 위해 살을 바른 가자미 뼈를 구운 뒤 끓여서 육수를 만들었죠. 이걸 앞서 만든 닭발 육수와 7:3 정도의 비율로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더블 스프 기법! 그래서 이런 맛이……! 은연중에 맛이 뒤처지는 생선의 맛을 다른 방법으로 보조해준 거네요?"
"맞습니다. 심사관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소리가 나는 대신 음량이 작은 악기에 보다 좋은 앰프를 연결해서 소리를 조금 더 키워준 거죠."
그게 썩 좋은 비유로 들린 건지,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꺼냈던 심사관의 표정이 크게 밝아진다.
이후로도 심사단은 밝은 표정으로 천천히 시식을 이어나갔다. 간간이 내가 숨겨둔 비법을 발견하면, 내가 나서서 그 의문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심사를 진행하던 그때, 드디어 내가 바라던 반응이 튀어나왔다.
"잠시만요, 이건 뭐죠?"
"음? 그건……?"
"여태 몰랐는데, 접시 바닥에 이런 게 깔려 있었습니다. 이건 대체……."
어느 순간, 갑자기 심사단 중 한 사람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의아한 목소리를 높인다. 그 반응에 다른 심사단의 시선 또한 그쪽으로 향하고, 이윽고 그들은 처음 목소리를 낸 심사관의 스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물체가 담긴 것을 눈치챘다.
"접시 바닥에요?"
"예."
그 말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스푼으로 접시 바닥을 긁는 심사단. 물론, 그들의 접시에도 그 정체불명의 물체가 담겨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저건 내가 넣은 거니까.'
마치 수제비를 좁쌀만 한 크기로 줄여놓은 것 같은 몽글몽글한 황갈색 덩어리와, 그 사이에 알알이 박힌 붉은색 알갱이가 부야베스 국물에 흠뻑 젖어서 광택을 뽐낸다.
저것이야말로 내가 마지막까지 숨겨놓은 비밀.
내가 후공을 '고른'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밀의 해답에 다가설 단초를 제공한 것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 사람이었다.
"쿠스쿠스로군요."
여태껏 아무 말도 없던 김선옥 셰프가 드디어 입에 잠긴 자물쇠를 풀어 재꼈다.
***
쿠스쿠스란 파스타의 일종이다.
일명 세상에서 가장 작은 파스타.
겉모습만 보면 저게 어떻게 파스타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쿠스쿠스는 파스타의 원료인 세몰리나를 거칠게 빻아 물을 부어 손으로 비벼서 조그만 알갱이 형태로 뭉친 뒤 건조시켜 만드는 엄연한 파스타다.
"쿠스쿠스요?"
"아니, 그게 왜 여기에?"
심사단 또한 그 이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오는 부분이 너무 생뚱맞기에 당황할 뿐.
쿠스쿠스는 보통 끓는 물을 부어 불린 뒤, 아보카도나 볶은 샬롯 등을 다져 함께 섞어 만드는 샐러드 따위에 사용되는 파스타다.
그게 어째서 갑자기 부야베스란 요리 속에서 튀어나오는가. 그들의 의문에 김선옥이 답했다.
"쿠스쿠스는 많이 아시다시피 샐러드의 형태로 자주 먹지만, 이탈리아의 어느 지방에서는 생선으로 만든 스튜를 끼얹어서 먹기도 합니다. 일종의 소스를 얹어 먹는 볶음밥처럼 말이죠. 류찬혁 참가자는 그 방식을 사용한 것 같군요."
바로 맞췄다는 듯 찬혁이 지체 없이 답했다.
"맞습니다. 부야베스에서 갑자기 쿠스쿠스가 나와서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이게 제가 생각한 이번 과제에 대한 해답이었습니다."
"과제에 대한 해답이요?"
"이번 과제는 프랑스의 부야베스라는 요리를 자기만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리메이크 하라는 거였죠. 저는 그걸 '만약 다른 나라에서 부야베스라는 요리가 태어났으면 어땠을까?'라는 관점으로 풀어봤습니다. 그러니 제가 제출한 메뉴는, 말하자면 이탈리안 부야베스가 되겠죠."
"이탈리안…… 부야베스?"
심사단의 의아한 눈빛에 찬혁이 말을 잇는다.
"부야베스란 과거 어부들이 팔고 남은 해산물과 야채를 마구잡이로 한 솥에 끓여 만들어낸 음식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또한 국토의 3면이 바다와 접한 나라니, 부야베스 같은 요리가 이탈리아에서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죠. 실제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지만 다르게 발달한 요리도 있고요."
찬혁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낀 것일까, 심사단 몇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전 부야베스라는 요리에 조금 더 이탈리안스러운 맛을 살려 만들었습니다. 보통 부야베스에는 들어가지 않는 마늘을 야채를 볶을 때 살짝 넣어 향을 가미했고, 화이트 와인 또한 이탈리아에서 난 와인을 사용했죠. 거기에 페페론치노도 소량 첨가해 보다 매운맛을 살렸습니다."
"아, 확실히, 살짝 매콤한 맛이 분명히 느껴졌어요."
"약하긴 했지만……."
"…… 아마, 한국인은 마늘과 매운맛에 너무 익숙해서 그리 크게 와 닿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요. 아무튼 거기에 더해 저는 마지막 핵심 재료로 쿠스쿠스를 사용했습니다. 일단 한 번 드셔보시죠."
찬혁의 재촉에 심사단이 머뭇거리며 쿠스쿠스를 입에 넣는다.
보통은 냉파스타로 많이 사용되는 쿠스쿠스를 과연 이런 식으로 먹어도 맛있을까.
그 의심은, 쿠스쿠스가 그들의 혀에 닿은 그 순간 그야말로 솜사탕처럼 녹아내렸다.
"오, 오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체감. 마치 모양새가 딱 맞는 퍼즐 조각을 빈자리에 끼워 넣은 것처럼, 원래 있는 자리를 되찾았다는 듯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그 조화로운 맛에 심사단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쿠스쿠스 알갱이 하나하나에 부야베스의 국물이 흠뻑 녹아들어서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야!"
"거기에 그 사이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감칠맛과 단맛, 그리고 옅은 신맛…… 이건 드라이 토마토로군! 잘 건조된 드라이 토마토를 다져서 쿠스쿠스와 섞어놓은 게 분명해!"
"꼭 좁쌀밥으로 만든 국밥 같은 구수한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굉장히 세련됐어요! 익숙하면서 엄청나게 참신한 느낌이라고 할까…… 길가다 TV에서 자주 본 연예인을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하나같이 폭발적인 반응에 찬혁이 내심 미소를 머금는다.
그가 접시를 데우는 귀찮은 과정을 동반하면서 기어코 후공을 고른 이유는, 바로 쿠스쿠스와 부야베스를 완벽히 하나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한 번 불려서 드라이 토마토와 잘 섞은 쿠스쿠스를 접시 바닥에 깐 뒤 오븐에서 익힌다. 그 과정을 통해 쿠스쿠스는 마치 누룽지처럼 수분을 잃고 딱딱하게 건조되며, 동시에 밀가루가 열기에 호화되며 풋내가 사라진다.
그리고 수분이 사라진 자리에 부야베스 국물이 깊게 스며들어 완벽한 일체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사실상 오븐용 그릇의 온기를 보존하는 효과는 거의 덤에 불과했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가림막이 되어 쿠스쿠스라는 반전을 보다 박진감 넘치게 터트려주었다.
'정말 마지막 비밀은 아직 안 나온 것 같지만…….'
"……."
자신을 향한 김선옥의 날카로운 눈빛에 찬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이야말로 내가 숨긴 모든 비밀을 눈치챘다는 것을.
그리고, 이 승부의 승리가 누구의 몫으로 돌아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