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80화 (280/403)

280. 유유도생.-3-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얼굴에 무언가를 바른 것이 물리적으로 느껴지면 정말 신경 거슬린다.

조리복을 입고 인터뷰를 위해 마련된 고급스런 의자에 앉으니, 익숙한 복장과 편한 자리라는 반대급부에 부딪혀서 얼굴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이질감이 더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그냥 나갈 때마다, 혹은 필요할 때마다 화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절로 존경심이 든다.

'연예인들은 이렇게 화장을 하고 몇 시간씩 촬영을 하는 거지?'

그냥 얌전히 요리나 하는 게 내 신상에는 더 이로울지도.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꼭 가면을 쓴 것 같은 기분이 든단 것일까.

얼굴에 뭐가 바른 느낌이 들어서 싫단 거 아니었냐고? 뭐, 맞긴 한데 이건 조금 다른 의미에서 좋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자, 카메라 렌즈 정면이 아니라 조금 우측, 여기 슬레이트 든 스태프 쪽 바라봐주시면 됩니다. 되도록 렌즈 쪽에는 시선이 향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자연스럽게 연출이 안 되거든요."

"예."

저렇게나 많은 카메라, 그것도 어지간한 도마보다 커다란 전문가용 카메라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찍고 있어도 커튼 한 장이 사이를 가리고 있는 것 같아서 묘한 안심감이 들기 때문이었다.

덤으로 촬영용 조명의 강렬한 빛도 어느 정도 가려주는 덕에 열기도 덜 해서 좋다. 피부가 드러난 팔뚝으로 느껴지는 빛줄기의 따가움과 비교하면, 화장을 하지 않았다면 대체 얼마나 얼굴이 물리적으로 화끈거렸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다른 참가자 분들도 해야 하니 인터뷰는 짧게 진행할 예정인데요. 혹시 불편한 질문을 여쭐 수도 있으니 언급을 피해주셨으면 하는 게 있으시다면 먼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뇨. 딱히 없어요."

"다행이네요. 저희도 너무 과한 질문은 드리지 않을 테니 크게 걱정은 안 하셔도 괜찮을 거예요."

뭔가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스태프 한 분이 친절한 태도로 인터뷰를 이끌었다.

질문도 크게 대단한 질문은 아니었다.

어떻게 이 예선에 참가할 생각을 했느냐, 심사를 보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느냐, 방금 심사 중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가.

기본적으로는 방금 심사를 하기 직전에 물어본 질문의 연장이었고, 크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딱히 없었다.

"자세를 조금만 고쳐볼게요. 턱 조금 당겨주시고, 시야 보던 곳 계속 바라보세요. 등받이에 너무 등을 딱 대지 마시고 조금만 유격을 준다는 느낌으로, 몸이 좋아서 어깨는 굳이 안 펴도 딱 좋게 커 보여요. 예, 그대로, 그대로…… 좋습니다! 이 느낌으로 계속 갈게요!"

오히려 따르기 어려운 건 이런 자잘한 요구였다.

내가 무슨 모델도 아니고, 자세가 바뀐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를 만큼 조금씩 움직이면서 좋은 각도를 찾으려 애쓰는 건 진짜 못 할 짓이었다.

그래도 무슨 일이든 끝은 오는 법.

자잘한 질문 몇 개의 뒤를 이어서, 비로소 이번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이 들어왔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되겠네요. 류찬혁 참가자. 이번 심사 결과가 나오면, 다음 심사부터는 팀전이 아닌 개인전으로 다른 참가자와 경쟁하게 될 텐데요. 부담스럽지는 않으신가요?"

"음…… 아니요. 굉장히 부담스럽죠."

내 가감 없는 대답에 스태프의 시선이 살짝 움츠러든다. 너무 대놓고 말한 탓일까. 근데 어쩌겠어. 이게 진심인걸. 부담…… 부담이라. 그래, 부담이 없을 수가 없다.

당장 이 방송을 볼 사람의 숫자가 수십, 수백만일 거고, 또 예선을 통과해서 본방송에 출연하면 그 열 배는 되는 숫자로 늘겠지.

그게 부담스럽지 않다고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사기꾼이거나,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거나, 시선에 흥분하는 관종이리라.

다행스럽게도 난 셋 다 아니다. 그야 관종이라며 종종 놀림을 듣긴 했지만, 진짜 그렇진 않다 이거야.

다만 중요한 건, 나와 겨룰 경쟁자가 오십 명이 됐든, 날 주시하는 시청자가 수천만이 됐든, 결국 그걸 상대할 나는 혼자라는 것.

얼마나 부담스럽든 과분한 건 마찬가지고, 그 과분함을 분수에 맞게끔 만들 수 있는 것도 내 하기 나름이다.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부담에 눌려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부담이라는 게 항상 사람을 누르는 짐만 되는 건 아니잖아요. 가장의 무게, 부모님의 기대, 자신의 인생. 세상 무엇과도 비교 못 할 부담이 반대로 사람이 행동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로, 큰 부담을 원동력으로 최선을 다할 마음입니다."

"오……."

그렇게 말을 끝맺자, 날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변화가 생긴다.

그…… 뭐라고 해야 할까.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말하면 어느 날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온 초등학생 자식을 보는 눈빛이었다. 그래. 그 대견하다는 느낌의 표정 있지 않은가. 딱 그거다.

솔직히 말해, 굉장히 부끄럽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나이 먹고…….라고는 해도 외견은 고등학생이지만, 아무튼 나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이 날 저런 얼굴로 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이에 안 맞게 주책을 부렸나…….'

나잇값이야, 이미 학교 애들이랑 어울려 다니며 못한 지 오래긴 했지만 말이다.

***

"헤헤헤……."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고 계십니까?"

필름과 색 보정을 위해 두꺼운 차광 커튼을 잔뜩 쳐놓은 어슴푸레한 방 안에서 홀로 모니터를 체크하며 실실 웃는 오대수를 본 그의 맞후임 작가인 남승태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핀잔을 건다.

그러나 그 말을 못 들었는지, 아니면 들어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 것인지, 오대수는 기기의 다이얼을 돌려 몇 가지 장면을 계속 되풀이하며, 여전히 뜻 모를 웃음을 지을 뿐이다.

그 뜻을 알 수 있대도 딱히 그러고 싶진 않다며 고개를 저은 남승태가 대답 없는 오대수에게 이어 말했다.

"슬슬 다른 팀도 심사 종료했다고 하니까, 저는 마저 인터뷰 따러 가볼게요."

"…… 헤, 헤헤."

"…… 아, 진짜. 저 갑니다? 괜히 나중에 시킨 거 까먹고 쿠사리 넣지 마세요!"

남승태가 문을 닫고 가는 그 순간까지도 오대수는 모니터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건 마치 도박꾼이 슬롯머신의 숫자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듯한 모습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득을 보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단 의미에선, 어느 의미 옳은 말이었다.

'고작, 고작 네 명 인터뷰를 딴 게 전분데 벌써 분량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나왔잖아……!'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프로 PD인 그에겐 좋은 방송 장면이란 천만금과도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이었으니까.

오대수가 아까부터 계속 돌려보던 영상은 다름 아닌 찬혁과 유동건, 차윤구, 김선엽. 네 사람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인터뷰라고 해도 척 보기에 무언가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애당초 합격이 확실한 팀이니만큼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은 질문만 했고, 대답도 예상이 가능하며, 동시에 편집이 어려운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막을 살피면 굴지의 명장면이 될법한 소스가 분명히 있다.

우선 가장 먼저 인터뷰를 진행한 찬혁의 분량.

스타일리스트의 솜씨가 좋은 덕인지 제법 페이스가 괜찮게 나온 찬혁은 나이답지 않게 침착한 태도로 인터뷰를 풀어나갔다.

말을 구사할 때 특히 거슬리는 점도 없고, 변성기가 막 지난 목소리도 듣기에 썩 괜찮다. 낮고 굵으면서도 소년의 특징이 보이는 목소리는 분명 안방극장을 차지할 여성 시청자의 주목을 받기 충분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주 좋아.'

부담이 마냥 짐은 아니라는 그 단어선택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속 무언가를 간질간질 건드리는 신비한 느낌이 있었다. 아마 첫 방송이 나가면 따로 대본을 준비해준 거 아니냐는 의심을 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건 준비한 적도 없는데도 말이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이 방송을 견인할 캐릭터로 충분해!'

그리고 이어지는 건 찬혁과 같은 팀이던 세 사람의 인터뷰 분량.

이들은 찬혁과 달리 따로 특필할 만큼 대단한 캐릭터를 가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안 그래도 명장면을 하나 뽑아준 찬혁의 위신을 더욱 높게 세워줄 훌륭한 장면을 만들어주었다.

찬혁의 경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명장면이 만들어졌지만, 사실 오대수가 쓸 만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노리고 넣은 질문은 따로 있다.

그게 바로 이것이다.

"이제 곧 다시 개인전 양상이 될 텐데, 혹시 한번 대결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상대하기 껄끄러운 참가자는 있으신가요?"

이후의 대답을 통해 각 참가자 간의 대립각을 세우고, 그들 사이의 스토리를 연출하는 게 목적이었던 질문.

그런데 유동건, 차윤구, 김선엽 세 사람의 대답은 그들의 인터뷰를 주관한 오대수마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저는, 아무래도 이번에 같이 팀을 했던 사람들하고는 되도록 싸우고 싶지 않지만……."

"글쎄요.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역시 이 친구겠죠."

세 사람이 가리킨 대상은, 한 사람이었다.

"찬혁이."

"류찬혁."

"찬혁 학생."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 친구하고는, 겨루고 싶지 않네요."""

오대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누군가? 전국팔도에서 고르고 고른 한반도 최고의 베테랑이다.

그런 인물들이 저의 반절도 채 안 되는 나이의 어린아이와 겨루는 걸 피하다니. 오대수의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사태였다.

그러나 그건 반대로 말하면 찬혁이 그만큼 상식을 벗어난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상식을 초월한 젊은 천재.

방송인이라면, 호사가라면, 언제나 새로운 자극에 굶주린 시청자라면 결코 좌시할 수 없는 화제.

시대를 불문하고 천재의 등장이란 언제나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천재의 등장을 세상에 알린 인물 또한, 천재와 함께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혹시, 혹시 내가?'

이게 만약 정말로, 정말로 그런 천재가 세상에 나올 징조라면?

그 천재의 등장을 세상에 널리 알린 선지자로서, 자신의 명성이, 조금 더 속물적으로 말해서 이름값이 껑충 뛰어오르는 게 아닐까?

오대수의 곁에 냉정하게 조언해줄 누군가가 만약 있었더라면, 지금의 그를 보고 제발 김칫국 좀 그만 마시라고 일갈했겠으나. 안타깝게도 그 누군가는 이미 헤실대는 오대수의 상판에 질려 자리를 뜬 지 오래였다.

어슴푸레한 모니터룸 안에는, 영상이 되돌아가는 소리와 중년 남자의 숨죽인 웃음소리만이 가득했다.

훗날, 그것을 본 한 스태프는 '정말 지옥 같은 광경이었노라.'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

2차 심사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뭐, 일단 우리야 별문제 없이 평범하게 과제를 수행해서 아무 논란 없이 합격했지만, 다른 팀은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먼저 사건을 꼽자면, 첫 번째 탈락자가 드디어 등장했다.

첫 번째…… 라고 해도. 첫 번째의 뒤를 이어 탈락한 참가자의 수는 두 손으로도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지만.

4팀. 총 16명의 인원이 이 한 번의 심사로 우수수 탈락하고 만 것이다. '최소 한 팀'이라는 표제가 무색할 정도였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통과해서 기준이 생각보다 낮은 건 줄 알았는데…….'

이게 또 그렇지만도 않았던 듯하다.

56명 중 16명. 비율로 따지면 거의 30% 가까운 인원이 고작 한 번 만에 떨어질 줄이야.

김선옥 셰프의 깐깐함과 심사기준의 엄격함을 새삼스레 재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1차야 그렇다 치지만, 2차에 사람을 이만큼이나 탈락시키면 3차는 대체…….'

이번에는 또 얼마나 험난한 심사가 우릴 기다릴까.

참가자 일동이 불안함과 긴장감이 감도는 눈으로 심사단을 바라보는 가운데, 비로소 다음 과제가 발표된다.

"3차 심사의 과제는 1대1 대결입니다."

1대1 대결!

언젠가는 하리라고 생각한 심사였다. 그도 그럴 게 시즌1의 전반부 대결을 책임진 종목이었으니까.

하지만 2차 심사 때도 단순한 팀 대결 과제라는 말만 듣고 얼추 내용을 예상했으나, 단박에 그 예상이 깨지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깨달은 바가 있는 참가자들은 이번엔 그저 묵묵히 이어질 김선옥 셰프의 말을 기다렸다.

"3차 심사의 대진표는 무작위로 선출됩니다. 또한."

또한?

이어지는 말에 머리 위로 의문부호를 띄우는 일동. 제작진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우리의 예상을 깨트렸다.

"메뉴도, 각 대결마다 무작위로 선정됩니다."

메뉴가 무작위?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참가자의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김선옥 셰프가 말을 잇는다.

"같은 메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세요. 보다 뛰어난 해석을 도출한 참가자만이, 다음 심사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즉…….

"여기 계신 참가자 중 절반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

one on one 데스매치.

직접적인 탈락이 걸린, 최초의 대결 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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