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78화 (278/403)

278. 유유도생.-1-

찬혁과 유동건이 교대하여 대기실을 나선 한편, 반대로 방금 막 조리실을 떠나 원래 있던 대기실로 돌아온 차윤구와 김선엽은 저희에게 주어진 자리에 앉았다.

고작 10분에 불과한 시간에 불과하나, 그것은 다른 의미로 단거리 전력질주와 비견할 수 있는 중노동이었다.

그 증거로, 지금 거의 쓰러지듯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누구 할 것 없이 추운 겨울 날씨를 무색하게 만드는 진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적절한 보온설비가 아니었다면 젖은 옷 때문에 몸이 식어 감기에 걸릴 지경이었다.

비등비등하게 체력을 소모하고 간신히 한숨 돌린 두 사람의 모습은 언뜻 비슷하게 보였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무언가 달랐다.

"스읍─하아……."

"으음……."

마치 라운드의 종막을 알리는 공이 울린 직후의 복싱선수처럼, 의자에 앉아 몸을 수그린 채 넓게 벌린 양 무릎에 팔을 얹은 자세로 심호흡 하며 최대한 체력을 회복하려 애쓰는 차윤구.

그 모습은 마치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육상선수가 출발선 앞에서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잡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또 다른 일행인 김선엽은 전혀 달랐다.

의자에 앉아서도 베이스 드럼을 울리듯 멈추질 못하는 발. 그리고 발을 따라 계속 들썩이는 팔짱을 낀 상체.

좀처럼 점잖게 있지 못하는 김선엽의 부산스러움에 신경이 거슬렸는지 차윤구가 감고 있던 눈을 한쪽만 뜨곤 말한다.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그럼 차 셰프는 걱정 안 되세요?"

타이르는 듯한 어조에 목소리를 높인 김선엽이었으나, 이윽고 주변에서 돌아온 다른 팀의 눈총에 다시금 소리를 줄였다.

안 그래도 그들과 처지가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경쟁자들이다. 거기에 더해 심사 시작 전에 눈도장을 박아두기까지 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속으로 되새긴 그가 말을 잇는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 심사는 조건부터가 좀 너무하잖아요."

앞서 몇 차례나 설명했다시피, 이 심사의 과제는 지극히 어렵다.

적게는 십수 년, 많게는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숙련된 요리사라도, 아니. 반대로 그들이 그만큼 숙련된 요리사이기에 이 과제는 특히 어려웠다.

x라는 값을 구해야 할 때, x=n+n이라고 한다면 n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를 1~10까지 아는 사람이 있고, 또 1~100까지 아는 사람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x에 낼 수 있는 해답이 고작해야 11~20까지 단 9개에 불과하지만 후자는 전자의 열 배를 넘는 해답을 낼 수 있다.

심지어 정답은 그중에서도 딱 하나. 지리멸렬한 예시지만, 실제가 그러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며 김선엽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두 사람 실력을 못 믿어서 그래?"

"반대에요. 찬혁이나 유 사장님 솜씨가 있다는 건 저도 알지만, 오히려 그래서 걱정이죠. 차 셰프도 아시잖아요. 이 심사, 초반에 전부 달렸다는 거."

김선엽의 말대로, 이번 심사 과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난이도가 쉬워진다.

후반부로 향할수록 음식의 모양새가 잡히기에 각 조의 연계가 엇나갈 확률이 점점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반부까지 올바른 루트로 나아가는 데에 성공했을 경우의 이야기.

메뉴의 방향성을 알기 힘든 지금, 여기서 한 번 큰 실수가 나온다면 수습하는 데에 적잖은 수고가 들어간다. 자칫 잘못하면 수습이 불가능한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김선엽은 거기에 또 할 말이 남았다는 듯 말을 잇는다.

"게다가 저흰 지금 그쪽이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찬혁이 있던 대기실과 차윤구, 김선엽이 사용하는 대기실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조리장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모니터가 전혀 없다는 것.

올바른 결과물이 무엇인지 아는 선행조를 위해 준비된 패널티는 당초 제작진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참가자를 좀먹는다.

베테랑 요리사에게 있어 요리란 끝없는 연속성을 가진 것.

안 그래도 중간에 반강제로 그 연속성이 끊기는 일도 생소하며 성가신 사건인데, 거기에 더해 자기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10분 동안 멋대로 조리가 이어진다면 어불성설이다.

고속도로 위를 잘 달리고 있다가 운전대가 남의 손으로 넘어가더니, 10분 동안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가 일언반구도 없이 운전대를 다시 잡은 기분이 이와 같을까.

참가자들은 정말 이게 무엇을 위한 심사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고, 그건 이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때려칠 순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요……."

차윤구의 말대로 어차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렇다면 최선의 방법은 잘 하기 위해 애쓰는 것뿐이다. 김선엽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최대한 머리를 굴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사태에 당면했을 때 어떻게 움직일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두는 것이 현재 두 사람에게 있어서의 최선.

"최고의 경우는 한 번에 우리 의도를 눈치채주는 거겠지만……."

"최악은 전혀 몰라줄 경우겠네요."

그마저도 최고의 경우가 나올 확률은 정말 낮은 반면, 반대로 최악의 경우가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찬혁의 말따마나 망겜이 따로 없었다.

물론 그들이라고 팀이 자신들의 계획을 전부 이해해주리라 생각하고 찬혁과 유동건에게만 책임을 방폐하진 않았다.

처음 메뉴를 정할 때부터 특징이 확고한 메뉴를 골라 두 사람이 재빨리 눈치챌 수 있도록 했으며, 거기에 더해 그 바쁜 와중에도 서로가 만드는 메뉴에 들어가는 재료를 둘 구역을 아예 따로 갈라놓고, 무엇을 작업을 끝냈고, 하던 중이었는지 조리대에 서자마자 알 수 있도록 일부러 흔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것도 최소한의 실력이 있어야 알아볼 수 있는 거긴 하지만…….'

차윤구도 김선엽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연륜이 있기에 쉽게 경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 내심 감추고 있을 뿐.

두 사람이 잘 해줄지, 아니면 망쳤을지.

그 고민에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파오지만, 긴 들숨과 날숨 사이에 섞어 내보내며 억지로라도 침착함을 유지한다.

'망치더라도 이해할 테니, 부디 어떻게든 수습만 가능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머리만 굴리며 몸을 쉬이는 사이, 어느새 10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곧 교대 시간이니 참가자 여러분께선 대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빠진 사람은 없는지, 다치거나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은 없는지.

간단한 검사를 끝낸 뒤, 차윤구와 김선엽을 비롯한 참가자 일동은 다시금 조리장으로 향했다.

각 조리대는 이미 텅 비어 있다. 그러나 아까까지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만큼은 분명히 남았다.

이를테면 사방에서 올라오는 수증기. 압력솥 따위가 딸랑이는 소리.

여러 소음과 난잡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현상이 뒤죽박죽 섞인 탓에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으나,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연하게도 본인들의 자리였다.

직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놀라움이 담긴 목소리를 냈다.

"아."

"어!"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의 자리에 그들을 놀라게 할 만한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처음 떠날 때엔 분명 비워두었던 화구 위에, 지금은 무언가가 올라가 있다. 그것도 불이 켜진 채로.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조리도구를 잡으시면 안 됩니다!"

제작진의 허가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발걸음을 뗐다.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화구 위에 올라간 냄비를 확인한 두 사람은, 이윽고 감추지 못한 놀라움을 다시금 표출해냈다.

"이, 이거!"

"찬혁아……! 유 사장님……!"

다만, 그 목소리에는 놀라움만이 아닌 기쁨의 음색 또한 섞여 있었다.

***

심사 과제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완벽히 수행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말도 안 되는 과제인 것 같다고 불평을 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딱히 변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못 하는 게 당연한 거지.'

그런 주먹구구식 요리로 어떻게 처음 짠 레시피와 똑같이 만들 수 있겠는가.

당장 앉아서 손가락 조금 움직이는 걸로 조작할 수 있는 한 판 20분짜리 게임의 플랜을 짜놔도 게임이 시작한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법이다.

철정이 놈은 그걸로 인성을 꽤 조진 시기가 있었는데, 뭐. 아무튼 이건 차치하고.

하지만 그런 인성파탄 게임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변수를 억누를 능력을 가진 팀원이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판단과 적절한 행동을 한다면 플랜이 계획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게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말 어렵고, 조건도 난해하고, 그 수많은 선행 조건을 충족하고서도 행운까지 따라주어야 하겠지만.

일단.

가능하긴 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어떤 것 같아?"

"바로 재개했어요. 저희가 맞게 했나 봐요."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모니터 앞에 모여 앉은 우리들.

얼마나 기다렸을까. 분명 아주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굉장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차윤구 셰프와 김선엽 쿡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두 사람 다 자리에 도착한 직후엔 조리도구에 손도 대지 않고 조리대 여기저길 살피기 바빴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이윽고 두 사람의 손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동시에 조리대 위로 뻗는다. 제작진 측에서 모종의 신호를 준 것이리라.

두 사람의 손은 지체 없이 움직였다. 본인들이 직접 요리하던 현장에서 휴식시간을 받고 잠깐 빠져 있다 다시 돌아온 것처럼 느껴질 만큼 망설임이 없는 동작.

나는 그것을 보고 우리가 첫 스타트를 아주 좋게 끊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 고생 많았다. 불안불안했는데, 이 정도면 안심해도 되겠어."

"제가 뭘요. 고생은 저 둘이서 다 했죠."

실제로, 이건 어디까지나 릴레이 계주에 가까운 경기다. 아무리 개인이 빨리 달려도 선발주자가 바통을 제때 넘겨주지 못한다면 승부에서 이길 수 없다.

이번에도 역시 선발주자의 역할이 굉장히 크게 작용했다.

'바통을 잘 넘겨줬어.'

두 사람은 우선 서로 만들 메뉴를 확실히 구분 지은 뒤, 재료를 준비할 때부터 아예 구역을 따로 나누어 개인이 심사를 보듯 조리했다.

덕분에 우리는 각 요리에 들어갈 핵심 재료가 섞이지 않아 대충 메뉴의 골자를 파악할 수 있었고.

거기에 더해 메뉴의 선정도 좋았다.

예를 들어 차윤구 셰프가 담당한 메인이 그러하다.

차윤구 셰프는 당연히 메인을 중식으로 만드셨다. 다만, 그 와중에 특필할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재료다.

차윤구 셰프가 준비해 둔 재료 중에서 눈에 띄는 재료가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새우. 그리고 토마토와 케첩.

고작 그게 무슨 대단한 재료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게 또 그렇지만도 않다.

토마토란 게 기본적으로 서양, 그것도 전통을 따지면 이탈리아 쪽에서나 쓰던 물건이고, 중식에서는 그다지 요리에 잘 사용하는 재료는 아니니까.

물론 요즘에야 이래저래 사용하는 것 같긴 하지만, 토마토에 더불어 케첩과 새우까지 떡하니 놓여 있으면 모를 수가 없다.

칠리 새우. 새우로 만드는 중식 중에서는 최고로 꼽히는 메뉴.

물론 이쪽도 전통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하지만, 연식만 따져보면 제법 길긴 하다. 물론 단순한 칠리 새우는 아닌 듯 보였다. 뭔가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굳이 그 재료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몰아두었다는 건, 일종의 표식이라고 봐도 상관없을 만큼 확고한 의사가 담긴 행동이었다.

김선엽 쿡의 경우도 그와 비슷했다.

두 사람은 저희의 뒤를 이어 요리할 우리를 위해 충분한 단서를 남겨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단서를 토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추측하고, 또 조리했고.

결과는 보다시피 정답.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진심으로, 이 팀원을 모을 수 있던 내 운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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