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 토사구생.-3-
참가자가 받은 세 시간의 자유시간도 어느새 끝자락에 달했다.
대다수의 인원이 진즉 식사를 마치고 팀까지 꾸린 상황. 몇 안 남은 소수의 인원도 의자 빼앗기 게임을 하듯이 알아서 팀을 골라 합류했다.
잘난 사람, 평범한 사람, 괴짜인 사람.
각각 다양한 특색을 가진 참가자가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서로와 익숙해지려 노력했고, 그 중엔 당연히 우리도 끼어 있었다.
우리의 분류를 정의하라고 하면…… 그래, 그거면 되겠네.
'실력은 있는데, 다들 괴팍한 부분이 있어.'
요리사라면 은근히 보통의 범주에 속하는 부류다. 그렇다고 평범하단 건 아니지만.
차윤구. 명동의 호텔에서 중식파트 수셰프로 근무 중.
김선엽. 전주의 유명 한정식 식당에서 근무 중.
묘하게 까탈스러운 면모가 강한 두 사람이었다.
어딘가 대형 업장에 소속되었으리란 생각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게 딱 들어맞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요리사는 보통 다수가 함께 근무할수록 성격이 뒤틀린다. 이건 경험담이니 기억해두면 좋다.
'혼자 일하면 혼자 일하는 대로 문제지만 말이야.'
무슨 요리가 정신적인 장애를 주는 작업도 아니고, 어떻게 말이 나오는 사람마다 문제가 있느냐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의외로 그 생각이 정답이다. 서비스직이란 게 원래 사람을 극한상태로 몰아가는 업종이고, 극한상태에 빠진 사람은 언젠가 문제가 생기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유동건 아저씨. 이분은 내가 봐도 특이한 분이었다.
일단 경력부터 비범한 면이 있다.
대기업 호텔 중에서는 국내 최고봉이라는 화랑 호텔의 파인다이닝 부서 출신인데, 정작 퇴사 후에는 동네에 치킨집을 차려 운영하셨다는 것이다. 경력이 아깝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본인의 선택이 그러하다는데 어쩌겠는가.
장사수완은 그렇다 치더라도 요리짬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 여러 해 운영하며 단골도 여럿 늘었으며, 동네에서는 맛집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흥행했었으나 최근 들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난 각종 프랜차이즈 치킨집이나 패스트푸드 점 탓에 매출이 감소하는 것을 실감하고 홍보를 위해 이 예선전에 출전했다는 듯하다.
"여기 나오면 홍보도 하는 겸 죽은 손에 자극도 되니까요. 너무 속물적이죠? 하하……."
겸연쩍다는 듯 민망한 웃음을 짓는 유동건 아저씨.
솔직히 평가하자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인성이었다.
어느 장사든 안 어려운 게 있겠냐마는 동네 장사는 특히나 사람 멘탈을 다방면으로 갉아먹는다.
주변 상인의 텃세와 견제, 프랜차이즈의 압박, 진상고객의 깽판, 알바의 태도.
단체의 일원이 되어 일하는 것과는 다른, 익숙해질 수 없는 다양한 고통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 사람이라도 저절로 변하는 법이다.
"저, 유동건 셰프?"
"셰, 셰프는 무슨. 그냥 아저씨라고 해도 돼요."
"그럼 그…… 유동건 사장님. 혹시 장사 시작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장사한 지 얼마나 됐냐고요? 글쎄요…… 대충 10년 조금 안 될 거예요."
세상에. 진짜 기적이다. 나만 해도 한창 일할 때에는 입에서 쌍욕까진 아니더라도 고함이 떠나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거기다 예선전에 나왔다는 건 요리 실력도 크게 죽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만큼은 다른 두 사람도 동감이었는지, 묘하게 놀란 얼굴로 유동건 사장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놀랍다기보단 신기하단 얼굴인가. 아무튼.
그런 유동건 사장님의 유순한 성질이 우리 팀에는 호조로 작용했다.
잘 섞이지 않는 액체를 한군데 모아주는 유화제 같은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시작할 땐 조금 딱딱하던 분위기도 자유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가 되니 제법 부드러워졌고, 그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터놓고 나눌 기회도 찾아왔다.
"근데 인터뷰 때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한 거냐? 덕분에 다른 팀 눈초리가 장난 아니잖아."
"그건 죄송해요. 그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필요?"
의아하단 표정을 짓는 차윤구 셰프에게 답한다.
"제가 예선전을 통과해서 대표가 되려면, 나이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반드시 보여줘야 해요. 그럼 어떤 방식이든 부정적인 것만 아니라면 화면에 제 모습이 나올수록 좋고요."
"…… 그래서 도발까지 한 거야? 어그로 끌려고?"
"도발이 아니라, 진심이죠."
그렇다. 난 진심으로 모든 심사에서 1등을 차지할 각오로 이 예선전에 임하고 있다.
그래야 하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이야,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팀으로 모을 때부터 대책 없는 애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더 대책 없는 녀석이구나, 너."
차윤구 셰프나 유동건 사장님보다 조금 더 젊은 나이인 김선엽 쿡이 황당하단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이해는 한다. 솔직히 어린애가 이런 말을 하면 얼마나 건방져 보일까.
그러나 이어진 김선엽 쿡의 반응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돌아왔다.
"참가자 중에 현역 후배가 있대서 어떤 앤가 했더니, 대단한 또라이네. 마음에 들어. 그래야 우리 후배지."
"예? 후배요?"
"아, 그러고 보니 말을 안 했구나. 나 성심고 나왔거든. 10년도 더 된데다 그냥 평범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너처럼 유명한 것도 아니지만. 몰랐지?"
몰랐다. 아니, 다른 사람 학업 사정 같은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여기 50명 중에 나 말고도 성심고 출신인 사람 몇 명 될걸? 뭐, 성심고 출신이란 걸로 제일 유명한 건 너나 김선옥 셰프겠지만."
"김선옥 셰프를 성심고 출신 취급 하는 겁니까……?"
"교수님이잖아. 그럼 된 거지."
성격 한 번 대략적인 사람일세. 하지만, 처음과 달리 시원시원한 모습에 나도 조금 보는 눈이 바뀌었다. 이걸 호탕하다고 봐야 하는 건지는 애매하지만.
"그래, 뭐. 다음 조별 심사 때 최고점을 받자는 데에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힘들걸? 당연한 소리지만, 나도 진심이거든. 나도 이 업계에선 꽤 어린 편이니까 제대로 솜씨도 못 보여주고 본선에 나가봤자 욕만 먹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 긴장 단단히 해라. 지금 이건…… 뭐라고 하더라? 잠깐 팀? 짧은 친구?"
"…… 전략적 동맹이요?"
"아! 그래, 그거. 전략적 동맹이니까!"
…… 뭐지, 이 사람. 이런 캐릭터였던가.
그러나 그 발언으로 이해했다. 지금은 팀이란 명목으로 묶였지만, 어차피 후에는 경쟁해야 할 상대.
하지만 경쟁이란 것이 언제나 스트레스만 되진 않는다.
가끔은 상쾌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경쟁도 있다.
새삼스럽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
***
2차 심사가 시작한다.
각 팀별로 구역을 나누어 모인 총원 56명, 14개의 팀.
그들이 현재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어지간히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2차 심사…….'
'과연 어떤 과제가…….'
아무리 별다른 패널티도, 보상도 없이 개인의 선택에만 맡긴 팀 구성이라고 하나 예선전 시작 후 처음으로 확정탈락이라는 막대한 벌칙이 걸린 심사다.
과연 어떤 과제가 기다리고 있을지, 손에 땀을 쥔 참가자 일동이 정면에 선 김선옥을 위시한 심사단에게 긴장감 어린 시선을 던진다.
폭풍전야.
과연 얼마나 강한 바람이 들이칠 작정인지, 카메라가 돌아가며 내는 소음, 스태프의 숨소리조차 거슬릴 정도의 침묵이 조리장을 가득 메운다.
그 속에서, 찬혁은 저 나름대로 다음에 주어질 과제가 무엇일지 예측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이번 심사는 팀전. 아마 팀과 함께할 때의 협조성, 업무 능률 같은 걸 알아보기 위한 심사일 거야.'
재작년 방영한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1과 같은 체제를 고수한다면, 예선전을 넘은 본선 또한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리라.
당시의 방송은 국가 간 토너먼트. 5명의 팀원 중 대표 셋을 뽑아 대결하는 승점 1점의 대인전이 세 번. 승점 2점의 팀대항전이 한 번.
총합 네 번의 승부를 치러 승점이 높은 팀이 승리하는 룰.
'대표 승부 3번을 연속으로 이겨서 콜드 게임이 나온 적도 있었지.'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그 수많은 나라의 대결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만큼 밖에 나오지 않았다.
팀대항전은 유일한 역전 기회.
그렇기에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에서 개인의 실력은 중요하지만, 팀의 능력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니 팀대항 심사를 이렇게 일찍 보는 거겠지.'
혹시 아는가. 개인의 능력이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팀에게 기여 하는 데에 천부적인 능력을 가진 참가자가 있을지.
아주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나라의 대표라는 중대한 자리를 뽑는 만큼 스태프도 만전을 기울일 터. 찬혁은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팀대항 심사를 본다 쳐도 토너먼트식 심사를 하진 않을 거야.'
찬혁은 단언할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답은 단순하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네 팀이 각각 한 시간씩만 토너먼트식 심사를 한다 치면 1회전을 하는 데에만 7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시계의 침은 ㄴ자가 되어 3시 정각을 가리킨 상황. 촬영팀도 오후 10시가 되도록 팀전만으로 촬영을 끝내고 싶진 않을 터.
뭣보다 토너먼트제를 한다면 승자와 패자가 너무 극명하게 갈린다. '최소 한 팀은 탈락한다'라는 명제가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다양한 심사를 통해 참가자의 기술을 알아보기 위해선 그렇게 시간을 잡아먹는 길을 갈 순 없으리라.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대단위 팀대항전.
팀 전체가 한 번에 같이 심사를 보거나, 적어도 단체로 쪼개어 심사를 보게 되겠지.
찬혁의 예상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어떤 심사를 보게 될 것인가.
팀전은 개인전보다 시선이 덜 분산되지만, 그만큼 더욱 집중해서 보아야 할 항목이 많다.
리더가 팀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리는지, 팀은 리더의 지시를 정확히 따르는지.
함께 일할 때 과도한 욕심을 부리진 않는지, 팀과 잘 융화하여 업무를 처리하는지.
한순간에 얼마나 많은 것을 살피고, 판단할 수 있는지.
그리고, 찬혁은 심사위원의 입장에서 그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안다.
'분단.'
이미 여러 요리방송에서도 몇 번이고 나온 적 있는 심사법이다.
팀을 쪼개어 분단시킨 뒤, 교대로 투입하여 급작스런 사태에 대한 대응력과 이전에 자신의 팀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이해력, 그리고 제한된 시간에 얼마나 많은 업무를 이행할 수 있는지를 심사할 수 있는 방법.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그 방식을 쓰리라.
찬혁의 예측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심사과제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번 심사에서 여러분의 팀은 두 명씩 나뉘어 교대로 조리에 임하게 됩니다. 10분 주기로 팀원이 교체되며, 총 90분 이내에 전채, 메인, 후식. 세 가지 메뉴를 만들어 제출하면 됩니다. 조리 중 교체되는 팀원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며, 오직 팀이 작업한 것을 보고 판단하여 메뉴를 완성하셔야 합니다."
역시나.
찬혁을 비롯한 몇몇 참가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와 같은 예상을 한 것은 비단 찬혁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다만, 이 심사에는 명확한 심사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나, 김선옥은 그런 참가자의 예상을 웃돌고 있었다.
"여러분의 팀에서 무작위로 두 명의 인원을 뽑아 팀이 만들 메뉴의 레시피를 제출 받겠습니다. 메뉴가 완성된 뒤, 앞서 제출한 레시피와 동떨어진 메뉴를 제출한 팀이 있다면, 그 팀은 탈락 처리됩니다. 겉모양에만 치중하여 맛이 엉망이라면, 그 또한 마찬가지로 탈락 처리됩니다."
"!"
"무, 무슨……?!"
김선옥의 발언에, 참가자 전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기함을 삼켰다.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은 했으나, 그 예상을 가뿐하게 짓밟은 김선옥이 특유의 무뚝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허가 없이 입을 여는 팀은 탈락입니다. 심사를 위해 즉시 팀 선발을 시작하겠습니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침묵이 감도는 공간에서, 참가자의 운명을 갈라놓을 제비뽑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