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75화 (275/403)

275. 토사구생.-2-

스카우트를 한다.

뭐, 잘난 척 말은 했지만 당연하게도 스카우트란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를 꼬드겨 나와 함께 일하게 만들려면 나에게 그만한 메리트가 있음을 상대에게 증명해야 한다.

기본적인 사회이론이다. 하다못해 학교에서 하는 조별과제도 아무 메리트도 없는 상대와 조를 짜고 싶어 하진 않는다.

'뭐, 그쪽은 조금 단순하게 들어가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대표하고 발표, 자료정리도 할게! 너희는 자료수집만 도와줘! 같은 슬로건을 성적 좋은 학생이 내놓으면 아마 그 사람하고 붙고 싶은 학생이 줄을 설 거다. 아마 그마저도 자료수집을 조져 버리는 사람이 있어서 망할 것 같지만.

아무튼, 지금은 팀원을 구하는 게 급선무다.

현재 상황을 정리하자면 대략 이렇다.

자유 시간이 시작된 지 대략 1시간 남짓.

56명의 참가자 중 적당히 현장 밥차로 식사를 한 사람, 그리고 직접 만들어 먹은 사람이 약 마흔 명이 조금 안 되는 정도. 그 이외의 사람들은 자차를 끌고 바깥으로 밥을 먹으러 나섰다.

이 중 현장에 남은 참가자 대다수는 이미 얼추 팀의 골조를 잡은 상태.

그렇다면 내가 노릴 대상은 이제 곧 돌아올 참가자 쪽이다.

예상에 불과하지만, 아마 이쪽에 속한 사람들은 나와 성미가 비슷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촬영을 하고 있는 촬영장을 나가진 않았겠지.'

어떻게든 제 얼굴을 방송에 비춰서 홍보 효과를 노리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러지 않았겠지.

방송보다는 요리 자체가 더 중요한 사람이란 뜻이다. 어차피 이 예선전 참가자 중 요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다만, 그중에서도 특출난 사람이라면 성적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민감할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다시피 이건 어디까지나 예상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사람이 어디 전부 똑같을 수 있겠는가.

그냥 이 근방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서 나간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남들보다 과시욕이 강해서, 혹은 시선이 껄끄러워서 바깥으로 나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어떤 사람이 됐든, 지금 여기에 모여 내가 팀에 들어 와주길 바라는 사람들보다는 낫다.

그게 내 판단이다.

***

팀원을 모으는 건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설득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냥 '팀 하실래요?'라고 물으면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이었으니까.

왜 그렇게 되었는고 하니, 마침 바깥에 나간 참가자 중 안 그래도 여러모로 주목하고 있던 사람 몇 명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중에서 이미 적당히 다른 지인과 팀을 이루기로 한 사람을 빼니 남은 사람이 날 포함하여 딱 네 사람이었던 것이다.

마침 일이 좋게 흘러간다…… 고 말하기엔, 문제점이 좀 많긴 했지만.

내가 모은 팀원은 좋게 말해서 독립성이 강한 사람이었고, 좀 까놓고 얘기하자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아마 팀을 꾸리자는 내 제안을 저들이 딱히 거절하지 않은 것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남은 사람도 몇 없는 판국에 불러 주는 곳이 있으니 그냥 승낙했다고 봐도 좋으리라.

'거기에 내 얼굴을 겸사겸사 깔고 가는 거고.'

아까 첫 심사 때 여러 사람에게 제대로 얼굴도장을 박아놓지 않았었더라면 그마저도 불가능했겠지.

뭐, 무슨 일이든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그런데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까지 직접 겪고 싶진 않았는데.

"저기, 그…… 이렇게 네 분이서 팀을 짜신 이유가 뭔가요?"

"……."

"……."

"예?"

나름 잘 꾸며 입은 MC가 각 팀을 돌아다니며 간단한 인터뷰를 하는 시간. 우리 팀은 그중에서도 거의 마지막 순서였다. 그야 팀을 그만큼 늦게 꾸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말주변이 좋은 사람은 아니란 말이지. 말주변이 없는 건 아니고, 그냥 하지 않을 뿐인 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유독 당황스런 기색을 비치는 비교적 어린(그렇다고 해도 나보다 20살 이상은 연장자인) 아저씨 한 분을 빼면 다들 내 쪽을 바라보며 눈짓했다.

팀장 역할을 해보라는 뜻인가. 씁, 하는 수 없지.

어차피 기왕 쓰기로 한 독박인데, 접시째 삼키지 못할 건 무어냐.

"……제가, 모았죠."

"참가번호 39번…… 아! 류찬혁 참가자! 방금 심사는 잘 봤습니다. 정말 대단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 말씀은 혹시…… 류찬혁 참가자가 직접 팀원을 모집하셨다는 뜻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인터뷰를 따러 온 MC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야 그럴 법도 하다. 이 팀에서, 아니. 참가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내가 직접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팀장 자리에 앉았다는 건 한국 같은 유교적 성향이 강한 나라에선 상당히 신선한 일이지.

'외국도 연장자에 대한 공경이 아예 없지야 않지만…….'

한국 쪽이 유독 그런 게 강한 편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실력만 있으면, 그리고 굳이 실력이 아니더라도 인맥, 혈연, 학연 같은 위로 올라갈 계기가 있다면 그 사람이 결국 내 윗대가리가 될 뿐이다.

다만…… 그래, 미국 쪽은 '누굴 빡돌게 할 거면 총 한 자루 정도는 미리 사두고 해라.'는 말도 있는 만큼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강할 뿐이다. 조금이야, 진짜로.

프랑스나 영국 쪽은 어땠냐고? 몰라. 거긴 아시안을 같은 인간 취급하지 않는 사람이 은근히 많아서. 오히려 미국은 그런 점에서는 차라리 괜찮았다. 그마저도 보수적인 주에 가면 크게 다를 게 없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팀장이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란 걸 깨닫자마자 MC는 '어디서 뭘 하다 오셨나요?' 같은 간단한 신상파악용 질문 몇 개를 팀원 각자에게 묻고는 바로 내게 포커싱을 돌렸다.

"류찬혁 참가자는 어째서 이분들과 함께 팀을 만들 생각을 하셨나요?"

"그건……."

그 질문에 차마 대답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그냥 '남는 사람 대충 모아 만들었는데요?'라고 말할 순 없잖아.

결국 답할 말을 찾던 나는, 어떻게든 우리 팀의 이미지가 좋게 시작될 수 있게 적당히 있는 말 없는 말을 가리지 않고 사실과 거짓을 섞어가며 인터뷰를 둘러댔다.

"여기 모인 이분들이 심사할 때 보여주신 모습이……."

"김선옥 셰프께서 직접 말씀하신 건 아니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서……."

"제 주특기는 프렌치와 이탈리안인데,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진 팀원이 있다면 좋겠단 생각에……."

솔직히 말하자면 대다수가 거짓말이다.

애당초 나는 심사할 때 내 일 하기 바빠서 다른 사람 구경은 거의 못했다. 심사할 때야 조금씩 보긴 했으니 심사 결과 정도는 대충 알고 있지만, 이 사람들이 엄청 대단한 평가를 받았냐느냐면, 아니. 솔직히 그렇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고른 팀원에겐 각자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심사가 막 시작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조리장으로 돌아와 요리를 시작한 참가자 무리의 일원이었다는 것.

그리고 김선옥 셰프가 한입 만 먹고 평가를 끝냈을지언정, 그 표정이 구겨지지 않고 반대로 펴졌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선택과 결단이 빠르다. 자기가 어떤 요리를 만들지에 대한 철학과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그래, 많이 바라는 것 없이, 딱 그런 능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팀의 능력이란 건 결코 개인적인 능력의 뛰어남으로 위아래가 결판나는 게 아니니까.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면 아주 좋은 일이긴 하나, 팀원이 리더의 계획을 수행해내는 능력 또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계속 나만 이러고 있으려니까 뭔가 열 받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고등학생한테 대외적 활동을 전부 맡기려는 속셈인 건가.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말이 없어지거나 이쪽을 멀리하려는 것 같은 팀원들의 자세에 살짝 열 받는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그런 말을 해 버린 건.

"그럼 류찬혁 참가자의 포부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포부요? 아하하, 글쎄요. 그야 가장 바라는 건 이 예선전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대표팀의 멤버가 되는 거겠지만, 가까운 목표가 하나 더 있긴 합니다."

"정말요? 그건 뭔가요?"

"이 팀과 함께 다음 심사에서 가장 잘난 팀이 되는 거요."

"!"

"어, 어?"

"……."

놀랐다. 놀랐어.

내 입에서 도발 섞인 멘트가 나가자마자 우리 팀의 시선이 날 향한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다. 적당히 통과만 할 수 있을 정도면 될 텐데, 뭐하러 적을 만드는 행동을 하냐는 듯 당황스런 기색이 느껴진다.

그야 뭐, 그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

어차피 끝까지 팀전을 하진 않을 텐데, 괜히 다른 팀의 눈총을 살만한 발언은 자제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테니까.

근데 난 딱히 그렇게 끝낼 생각은 없거든.

아마 반쯤 확신하는 건데, 만약 내가 대표팀에 합류하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욕을 들어먹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뜻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5천만이다. 익명성을 방패로 심통과 혐성을 부리는 사람이 그중 0.1%만 있어도 5만 명의 사람한테 욕을 얻어먹겠지.

당장 올림픽이나 월드컵, 하다못해 E스포츠 세계대회 따위도 대표 딱지를 달고 나간 선수에게 뒤도 안 돌아보고 욕하는 사람이 몇인가.

그 와중에 나이 40~50살은 먹은 달인들 사이에 혼자 낀 고등학생?

모난 돌이 정을 얻어맞는다지만 내 경우에는 거의 도로 위에 홀로 선 눈사람, 혹은 처마 끝에 홀로 매달린 거대한 고드름이다. 솔직히 누구든 내심 건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

그러니까, 그렇기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누가 봐도 내가 대표로 나간다는 데에 반박할 수 없을 만큼, 확고한 실적을 선보일 수 있는 길을.

"다음 심사가 어떤 과제가 나오든 상관없이, 저희 팀은 가장 높은 곳을 노릴 예정입니다."

"어떤 과제든 상관없이요?"

"예. 토너먼트식 팀전이면 우승을 노릴 거고, 점수로 판가름이 난다면 최고점을 받아야죠."

"대단한 다짐입니다만, 너무 힘든 일이지 않을까요? 다음 심사가 끝은 아니잖아요."

"저희는 국가를 대표해서 나가는 거잖아요. 저흴 응원해주실 국민 여러분을 위해서라도, 저희 개개인이 국내 최고의 요리사란 걸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위해선 언제 어느 때든 최고가 되겠단 각오를 단단히 해둬야죠."

"이야…… 나이답지 않다고 할까요, 아니면 어린 혈기가 살아있다고 해야 할까요. 당찬 포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만 인터뷰를 종료하겠습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MC는 제자리에 남아 날 칭찬하길 멈추지 않았다.

어린데도 생각이 남다르다느니, 괜히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느니.

그런 칭찬이 이어질수록, 날 향한 다른 참가자의 시선이 매서워진다.

딱 봐도 건방진 애새끼 다보겠다는 듯 눈깔을 부라리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별 같잖은 게 신경을 건드린다며 눈초리를 세우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이제 와서 그런 걸 신경 쓸 내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나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시선은 분명 있었다.

"저, 저기…… 인터뷰가 좀, 그, 도발적이었던 거 아닐까? 아니, 물론 수고하긴 했지만!"

"……."

"후, 그래요. 엎질러진 물인데 잘 해봅시다. 고생했어요, 학생."

유독 유약한 인상의 아저씨 한 분 빼고, 다른 팀원의 말과 표정이 너무 달라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잘 끌고 나갈 수 있을까?

…… 몰라. 어떻게든 될 거야.

……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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