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 프라이드 혁명.-3-
심사가 진행되는 걸 본 사람들은 대략 이러한 가설을 세웠다.
김선옥 셰프가 심사를 볼 때 음식을 두 입 이상 먹는다면 그건 높은 점수를 받은 메뉴다.
그러나 사실은 조금 다르다.
아주 틀린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답이라고 보기엔 애매하다.
그녀가 심사할 때 음식을 여러 번 시식하는 건 딱히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필요에 의한 시식이라고 말함이 옳다.
김순옥은 프랑스의 중학교인 꼴레쥬collège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요식업에 몸을 담은 뒤로 약 60여년의 세월을 현역으로 살았다.
그녀 본인이 다듬은 재료를 한 곳에 쌓으면 자그마한 산 하나는 나오겠지.
직접 만든 음식을 쌓아올리면 어지간한 건물보다도 높을 것이다.
요컨대 요리에 대한 경험이 여타 범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경험의 산물일까, 그녀는 남이 요리하는 걸 언뜻 살펴보기만 해도 어떤 요리가 나올지, 어떤 맛일지 대강 예상할 수 있는 경지에 닿게 되었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가설에 대한 반론도 충분히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
심사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심사를 받는 측이 어떤 요리를 준비했는지 오감을 사용하여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어떤 요리인지, 어떤 맛일지 아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심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녀가 음식을 먹고 시식하는 행위에 담긴 뜻은, 말하자면 맛을 보는 것이 아닌 확인을 위한 작업이다.
이 요리가 내가 예상한 맛 그대로일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한 입.
쉰 명에 달하는 요리사 중 반 이상이 그 예상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스러졌다. 몇몇은 오히려 예상보다 못한 경우도 있었고, 몇몇은 예상한 것보다 조금 더 뛰어난 것도 있었으나, 결국 오차범위 이내.
김선옥이 프렌치를 심사할 때 단 한 번도 두 입 이상 시식을 한 적이 없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다. 전통 프렌치 셰프로서 오래 이 길에 있던 만큼, 프렌치는 다른 장르에 비해 더더욱 예상하기가 쉬우며, 그러면서도 보다 정확했으니까.
김선옥이 한 입에 그치지 않고 두 번째 시식을 한다는 것은 준비된 요리가 그녀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는 뜻.
그런 의미에서 참가자나 스태프의 가설은 그 기본 골조가 조금 엇나가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예상을 웃도는 수준의 메뉴를 만들어냈으니 고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두 입에서 세 입으로 늘어난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속에 숨겨진 뜻을 알지 못한 채, 좌중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고 심사대에 주목할 뿐이었다.
"코코뱅…… 아니, 이건 까유뱅caille au vin이라고 불러야겠군요."
좌중이 술렁였다.
심사 시작 후, 그녀가 처음으로 '잘 먹었습니다. 자리로 돌아가셔도 좋아요.' 이외의 발언을 꺼냈기 때문이다.
세 차례에 걸친 시식에 이어 또다시 새로운 패턴을 선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좌중이 놀랐으나, 김선옥은 식기를 내려놓은 채 말을 이었다.
"코코뱅Coq au vin이란 닭Coq과 갖은 채소를 와인vin으로 졸인 요리를 뜻하는 말이죠. 대표적인 프렌치이자, 프랑스의 가정식 중 하나에요. 다만 단순한 가정식이라고 부르기엔 손이 많이 가는 탓에 쉽게 보긴 힘든 요리죠. 시간, 수고.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요리에요."
"……."
찬혁은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프렌치의 대가 김선옥 앞에서 자신이 무슨 말을 꺼내든 사족이 될 것임을 알았으니까.
"제한시간 안에 제대로 된 코코뱅을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겉모양은 비슷하게 꾸밀 수 있다 해도, 재료 안에 있는 맛을 충분이 이끌어낼 순 없어요. 더군다나 와인의 풍미를 단시간에 배게 만들기엔 닭고기는 너무 크고 질기죠.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제한시간 안에 해내진 못했겠죠. 그래서 메추라기caille를 닭고기 대용으로 사용한 거죠?"
"예, 맞습니다."
김선옥의 설명대로, 코코뱅은 한 시간 안에 만들기 힘든 메뉴였다.
그렇기에 찬혁이 사용한 방법이 재료의 소형화.
야채를 기존보다 작게 썰고, 닭 대신 메추라기를 사용하여 맛이 배기 위한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시켰다.
혹시라도 부족한 풍미는 따로 와인과 야채를 센 불에 졸인 육수로 보충했으며, 마지막에는 끓인 것을 오븐에 그대로 넣어 익혀 최대한 풍미를 살린 요리.
유창하게 이어지는 설명을 들은 좌중이 꿀꺽 군침을 삼킨다. 듣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요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왜 이렇게 심사를 오래 끄는 거지? 그냥 높은 점수를 주면 그만일 텐데.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김선옥이 내놓았다.
"그러나 그 선택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
"메추라기는 좋은 식재료죠. 닭보다도 확연히 부드럽고, 고소하며 담백한 맛은 프랑스에서도 사랑받는 프렌치의 주재료 중 하나에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메추라기가 모든 점에서 닭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메추라기가 닭보다 부족한 것, 그게 뭔지 아시나요?"
"맛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메추라기는 이런 육수를 만들기 위한 조리에 어울리는 재료가 아니다.
그건 다른 무엇도 아니라, 단순히 크기가 작으며 함유된 지방질이 닭에 비해 비교적 적기 때문이다.
육수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건은 물과 육수 재료의 비율에 있다.
육수를 우리는 재료의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분명 맛은 좋아지지만, 비용적 측면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가히 마이너스의 영역에 치닫는다.
메추라기는 그 자그마한 크기로 저보다 무게가 서너 배는 나갈 닭과 가격이 비슷하다. 안 그래도 다양한 재료를 오래 익히기 위해 많은 양의 수분을 필요로 하는 코코뱅 같은 요리에 쓰기엔 메추라기라는 식재료는 너무나도 미스매치.
맛의 용출, 참담한 가성비, 어려운 손질.
메추라기의 가장 대중적인 취식 방법이 단순한 메추라기 구이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잘 알고 있군요. 모르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알고 있었다면 닭 대용으로 메추라기를 사용해서 코코뱅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
"그런데……."
잠시 입을 닫고 말을 고르던 그녀가, 이윽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찬혁을 바라본다.
"신기하군요. 이 요리에서는 그런 메추라기의 단점이 느껴지지 않아요."
육수 맛을 살리면 고기의 맛이 떨어진다.
고기의 맛을 살리면 육수의 맛이 떨어진다.
차라리 그 두 가지가 조금 모자라되 서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 상태였다면 이토록 놀랍지는 않았겠지.
헌데 찬혁의 요리는 신기하게도 그 두 가지 맛이 각각의 최고점을 향해 극대화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녀가 아는 프렌치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몇 차례 생각해봤으나, 좀처럼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어떻게 고작해야 한 시간 만에 이런 요리를 완성해냈단 말인가?
김선옥의 의문에 찬혁이 작게 웃고는 답했다.
"정답은 계유입니다."
"계유?"
"예. 따로 만든 계유로 밀가루를 볶아 루를 만들고, 야채를 볶을 때도 사용했죠. 그리고 또 하나. 최대 화력으로 온도를 맞춘 오븐에서 계유를 발라가며 메추라기의 껍질만 바삭하게 익혔습니다.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고기의 맛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죠."
'과연. 그런 거구나.'
계유란 닭의 껍질과 지방만을 가열하여 뽑은 기름이다. 그것으로 육수를 만드는 재료에 풍미를 최대한 더해준다면 메추라기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중식의 묘미를 더하여 이토록 전통적인 프렌치를 만들다니. 놀라운 발상이다.
그러나 김선옥은 아직 납득하지 못했다. 오로지 계유 하나가 그 모든 풍미의 원천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았다.
"하지만 계유를 쓴 정도로는 한계가 명확하지 않나요? 이 요리에는 조금 더 깊고 진한, 그러면서도 닭 잡내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맛이 담겨 있더군요."
닭만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깊은 맛. 그 정체를 찬혁은 생각보다 간단히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그건, 제가 사용한 계유가 평범한 계유가 아니기 때문이죠."
"평범한 계유가 아니다? 무슨 뜻인가요?"
"제가 사용한 계유. 그건 꿩을 사용해서 만든 기름입니다."
"꿩……?!"
김선옥이 미처 놀라움을 표현할 틈도 없이, 찬혁이 말을 잇는다.
"지참한 식재료 중 하나입니다. 꿩의 껍질을 가열해 뽑은 기름에 큼직하게 부숴서 조각낸 꿩 뼈를 튀겨서, 기존 계유보다 몇 배는 강한 풍미를 가졌으면서 잡내는 그 반의반도 안 되는 특제 계유를 사용했어요."
이 세상에는 도무지 그 종류를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새고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육수에 한정한다면 꿩은 세 손가락 안에 꼽는 풍미를 지닌 재료다.
옛날 사람이라면 모를까 요즘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입에 대보기도 힘든 식재료.
설마 그런 재료를 사용할 줄 미처 예상치 못한 김선옥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그녀 기준에서의 '큰 변화'였지만, 그것만으로 좌중은 크게 놀라며 심사 과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대단합니다. 류찬혁 참가자. 좀처럼 보기 힘든 발상과, 이론적 발상을 실제로 이루어낸 솜씨. 둘 다 훌륭해요.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접시를 갖고 자리로 돌아가셔도 좋아요."
그것이 심사 시작 후 가장 긴 평가였음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찬혁의 앞을 거쳐 간 수십 명의 도전자.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이루지 못한 위업이었다.
***
"그런데……."
심사도 거의 끝에 달해가는 상황. 훌륭한 평가라는 성과와 함께 자리로 돌아온 나는 머리를 스친 의문에 잠시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결국 이건 뭘 위한 심사였던 거지?'
당연하게도 이번 심사에서 제한시간을 넘기지 못해 탈락하는 멍청한 참가자는 나오지 않았다.
사실 여기서 경쟁자가 줄어드리라곤 기대도 안 했으니 뭐, 딱히 신경 쓸 건 아니지만.
그러나 궁금한 건 이 심사의 목적이다.
굳이 요리를 만들고 평가를 했으니 그에 따른 베네핏이 돌아오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도대체 이 심사에서 제작진이 하고 싶은 게 무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딱히 점수를 공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위를 정해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탈락자가 나올 만큼 어려운 미션을 준 것도 아니다.
'요리 대회라는 명목이지만, 어차피 이것도 결국 예능이잖아.'
그런데 시청자의 이목을 끌만한 무언가가 방금 심사에선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스태프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심사를 처음 순서로 진행한 걸까.
'단순히 실력을 선보이기 위해서?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회귀 전 후 나이를 합치면 이미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지만, 그렇게 쌓은 관록도 결국은 요식업 업계에나 통하는 것이다. 방송가의 사정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철저한 손익의 논리로 돌아가는 방송가라면, 이 뒤에 무언가가 분명 더 있을 터.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예상할 수 있다. 그래봤자 내일은 해가 뜬다는 수준의 간단한 예측에 불과하긴 하지만.
과연 해가 뜨고 비가 올지, 눈이 올지, 바람이 불지.
의문과 기대, 불안이 뒤섞인 감정이 가슴 속을 소용돌이치지만, 당장은 가만히 자리에 서서 심사가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심사가 끝난 뒤, 비로소 이 심사의 진의를 알려주겠다는 듯 김선옥 셰프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고생 많았습니다. 참가자 여러분. 심사가 끝나자마자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지만, 바로 다음 심사 과제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온다. 예상했던 대로, 역시 이 심사는 다른 목적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
과연 어떤 과제가 닥쳐올지, 참가자 모두가 굳은 얼굴로 그녀에게 주목한다.
"다음 과제는, 팀전입니다. 현재 여기 계신 총원 56명의 참가자 여러분은 4인1조의 팀을 꾸려주셨으면 합니다."
팀…… 전?
언젠가 나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일러도 너무 이른 그 과제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짓는 가운데 김선옥 셰프가 말을 이었다.
"다음 심사에서, 총 14개의 팀 중 최소 하나 이상은 반드시 탈락하게 됩니다. 그러니 부디, 신중에 신중을 다하여 팀을 꾸리시길 추천 드립니다. 누구와 함께 팀이 될지. 그 단서는 이미 여러분에게 제공되어 있습니다."
…… 어?
아니, 잠깐만.
그 순간. 나는 묘한 기파를 느꼈다.
팀, 팀원, 심사, 단서.
'…… 이걸 위한 심사였구나.'
비로소 방송가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았으나. 아무래도 이미 때가 늦은 것 같다.
왜냐하면…….
"큰일 났네, 이거."
날 제외한 55명의 시선이, 죄다 날 향해 쏠려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