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72화 (272/403)

272. 프라이드 혁명.-2-

재료를 챙기러 동분서주하던 참가자 집단이 전원 제자리로 되돌아간 지 어언 10분.

고작해야 600초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임에도 참가자 각각의 조리대 위에선 벌써 요리의 기본적인 뼈대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1인분이라 하더라도 평범한 요리사라면 기껏해야 재료나 간신히 다듬었을 시간.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요리사 중 평범하단 딱지를 단 인물은 없다.

이미 대부분이 자신이 구상한 요리를 완성하는 데에 필요한 기초 작업을 얼추 끝내가는 중이었으며, 그중에서도 조리 시간이 짧은 메뉴를 선택한 몇몇은 모양새가 거의 완성에 근접할 정도였다.

쉰 명을 넘는 요리사와 그 수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메뉴.

그만한 양의 요리가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지고 있단 걸 티라도 내는 것인지, 조리장에서 피어오른 때아닌 뜨거운 열기는 겨울을 맞아 한반도를 찾은 동장군마저 그 체면을 구기고 발걸음을 돌리게 했다.

"예선전 일자가 겨울이라서 다행입니다."

"정말로요."

아무리 많은 제작비가 투자된 프로그램이라 한들 스튜디오까지 최신형은 아니다. 아무리 대규모 인원의 조리를 위해 환기 시설이 잘 정비된 풍운정이라지만 건물 자체가 낡았다는 한계는 어찌할 수 없는 법.

거기다 천장 빼곡하게 설치된 촬영용 조명과 카메라나 오디오 머신 같은 기계가 돌아가며 발생하는 열기까지.

만약 지금이 한여름이었다면 실신하는 사람이 나왔을 수도 있었겠다며 오대수는 작금의 상황에 마음 깊이 안도했다.

"그나저나……."

촬영 현장에 대한 걱정을 한 꺼풀 접었다면 그다음에 봐야 하는 건 장면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주말 이틀 48시간. 그나마도 실질적인 예선전은 그 반절이고 나머지 분량은 탈락자나 합격자의 인터뷰 등으로 때워야 한다.

과연 그 안에 인상적인 장면을 뽑아낼 수 있을까.

말을 바꿔서 시청률을 높여줄 만한 장면을 뽑을 수 있을까.

현재 오대수의 모든 신경은 그곳을 향해 쏠려 있었다.

"쓰읍, 이거 애매하네."

사실 요리만큼 영상매체로 다루기 편하면서도 효율적인 컨텐츠는 많지 않다.

스포츠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정치 문제에 관심이 있든 없든, 연예인에게 흥미가 있든 없든, 동물을 키우든 키우지 않든.

남녀노소 성별불문 나이불문하고 인간이 살아 있는 이상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시청자가 이입하기 쉬운 컨텐츠일수록 시청률이 보장되고, 음식이란 건 그런 이입을 끌어내는 데에 별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설령 요리를 잘 모른다 해도 맛있는 음식은 맛있게 보이지 않는가?

이건 다른 장르와는 차별화된 장점이다.

축구를 모르는 사람이 K리그를 본다 한들 재미를 느끼긴 요원하겠지만 요리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것.

사람이 이입하는 데에 있어 가장 처음 통과해야 하는 관문인 '익숙해지는 단계'가 요리 프로그램에는 필요하지 않다. 왜냐. 이미 옛날 옛적에 지나친 지 오래니까.

멋지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지 않는가? 그게 바로 태어나며 지금이 되기까지 평생에 걸쳐 받은 조기교육 덕분이다.

'그런데 그것도 좀 정도가 있어야지 되는 건데…….'

50명이 넘는 참가자 집단.

물론 개개인의 조리 장면은 천장의 원격조종 카메라가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인 탑뷰로 잘 담아내고 있으나, 문제는 그 개개인 하나하나의 요리 실력이 하나같이 출중하니, 반대로 눈에 띄는 인물마저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분명 실력의 고저가 있기야 하겠다마는…….'

일반 시청자가 그 차이를 어떻게 알겠는가. 잘하고 못하는 사람의 차이라면 모를까, 잘하는 두 사람 중 누가 더 잘하느냐를 비교하는 건 전문가의 영역이다.

반딧불이 아름다운 건 어두운 밤이기 때문. 밝은 대낮에 반딧불을 본다 한들 사람이 보기엔 어디에나 날아다니는 귀찮은 벌레로만 보일 뿐이다.

"누구 좀 나대주는 사람 안 나오나."

오대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방송의 묘미란 어그로.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하지만, 정이 곧 시청률이 된다면 방송가는 얼마든 모난 돌을 더더욱 모나게 만들어줄 수 있다.

악마의 편집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안 그래도 자기 흥미에 맞는 이야길 얼마든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요즘 세상. TV라는 매체가 인기를 끌기 위해선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게 저 친구가 될 줄 알았는데…….'

수십 대의 카메라가 촬영하는 장면을 송출하는 대형 모니터. 오대수의 시선이 그중에서도 화면 구석을 향했다.

시선이 향한 곳에는 찬혁의 자리를 찍는 카메라 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무슨 요리를 만드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쉬지도 않고 움직이는 모습이 그 주변의 어른 못지않다. 아니, 그 이상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저 그뿐. 요리하는 과정에 특별히 대단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재료를 썰고, 볶고, 끓이고, 굽는 장면이 되풀이되기만 한다. 차라리 화려하게 불쇼라도 보여주었음 하지만, 그마저도 이미 다른 참가자가 수십 번은 했으니 인상적인 장면이 되진 못하리라.

'이렇게 되면 이제 기대할 곳은 하나밖에 없는데.'

김선옥을 주축으로 한 심사단의 평가.

까탈스럽지 않은 셰프가 세상에 몇 명이냐 있겠느냐만, 김선옥은 본토에서도 험한 말, 궂은일에 오랜 기간 시달린 탓에 그녀 본인 또한 비슷한 성질의 셰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거기에 더해 그녀에게는 미리 평소보다 강한 어조로 평가를 해달라고 주문을 넣어놓았다.

'얼마나 따라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탁까지 했으니 조금은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자기 자신조차 확답할 수 없는 안일한 생각에 오대수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미 슬레이트가 친 이상 그가 간섭할 수 있는 범위는 좁다. 지금은 그저 얌전히, 첫 번째 심사에서 시청자의 기억에 깊게 남을만한 장면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

조리 시작 선언 후 30분가량이 지났다.

제한시간의 반절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하나둘 메뉴를 완성하여 제출하는 참가자는 분명 있었다.

첫 완성품을 제출한 참가의 경우 그 기록이 심사 시작 후 무려 24분 만에 완성되어 나왔고, 음식의 퀄리티 또한 그런 짧은 시간 만에 완성된 것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났다.

"세상에, 30분도 안 돼서 요리를 완성 시킨 것도 놀라운데 이만한 맛이라니."

"익히는 과정이 거의 없는 만큼, 손만 빠르다면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긴 해요. 하지만 이 산미와 간 조절은 손만 빠르다고 되는 게 아니죠. 정말 대단하네요."

짧은 시간 만에 나온 첫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심사는 훌륭한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김선옥만큼은 여타 심사단과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잘 먹었습니다. 갖고 들어가셔도 좋아요."

멋스럽게 장식된 접시가 무색하게도, 숟가락 하나를 간신히 채우는 정도의 양만을 한 입 담아 먹고는 심사를 마쳤다.

시식은 한입뿐.

표정은 무표정.

발언은 한마디.

이 요리의 어떤 점이 좋았는가. 혹은 어떤 점이 좋지 않았는가.

그것에 대한 간단한 평가조차 없다. 대체 무슨 생각인가. 다른 심사단과 참가자가 그런 그녀를 의아함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시선으로 황망히 바라봄에도, 그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나온 다음 참가자도, 그 뒤에 줄서 기다리던 다음 참가자에게도 김선옥의 대응은 똑같았다.

"잘 먹었습니다. 갖고 들어가셔도 좋아요."

한입, 무표정, 한마디.

무슨 공장의 기계처럼 차례가 몇 번이 돌도록 변하지 않는 그 대응에 오대수는 저도 모르게 머리를 부여잡았다.

"망했다."

아니, 강한 어조로 평가를 해달라고 했지 강하게 평가를 해달라고 하진 않았을 텐데?

이 정도면 방송사고다.

요리에 대한 반응은 다른 심사단이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으나, 정작 그들 중 가장 높은 권위와 카리스마를 갖춘 심사단의 주축인 그녀가 저렇게 나오면 대체 어떻게 저걸 편집하란 말인가.

심지어 김선옥이 찬 인이어를 통해 지시를 전달해보아도 그녀는 묵묵부답이다.

그저 다음 차례, 다음 차례가 올 때마다 같은 반응을 보여줄 뿐…….

"…… 아니, 잠깐만."

김선옥의 심사를 황망히 바라보던 오대수가, 갑자기 현장에서 카메라를 돌리던 스태프에게 무전으로 지시를 날렸다.

"1번, 7번 카메라. 김선옥 셰프 확대해봐. 얼굴 위주로."

갑작스런 지시였으나 스태프는 충실히 따랐다. 오대수 또한 다각도로 잡힌 김선옥의 얼굴이 출력되는 화면을 보다 크게 확대했다.

그렇게 얼마간 말도 없이, 두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지켜보던 오대수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 채 중얼거렸다.

"…… 다르잖아."

다 똑같다고 생각한 표정이, 어느 순간부터 미묘하게 다르단 걸 눈치챌 수 있을 만큼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어느 때는 시식 후에도 무표정에서 변하지 않지만, 또 어느 때는 시식을 하고 인상을 찡그리거나 입꼬리가 내려간다.

표정에 변화가 있음을 확신한 것은 그다음 차례로 심사를 맡으러 온 참가자, 스태프나 심사단에게도 유력한 대표 후보로 점쳐지는 다크호스의 심사를 할 때였다.

"…… 맛있게 먹었습니다. 접시를 갖고 들어가셔도 좋아요."

멘트에 변화는 크지 않았으나, 계속 김선옥을 살피던 오대수는 아까까지 보여준 태도와 큰 차이점이 있음을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작은 미소를 지은 표정이나 부드러워진 목소리도 그러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시식.

"두 번 먹었어."

딱 한입만 먹고 식기를 내려놓았던 다른 때와 달리, 이번에는 한입을 추가로 시식했다.

도저히 큰 차이는 아니다. 그렇지만, 심사라는 의미에서는 여태까지 나온 참가자와 확연히 다른 점수를 주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 이거.'

처음에는 방송사고라고 여겼다. 사실 지금도 생각은 비슷하다. 저렇게 작은 반응으로 점수의 고저를 표현하는 심사위원이라니. 이걸 시청자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벌써 고민이 앞선다.

그러나 그 해답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 마냥 단숨에 튀어나왔다.

'연출력으로 승부를 봐야 된다.'

정석으로, 편집과 감을 살려 어떻게 꾸며내느냐에 따라, 이건 그냥 대충 잘라 내놓은 횟감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장인의 손으로 만든 일품 초밥이 될 수도 있다.

"그치만, 젠장. 어렵다고……."

그 사실을 확신한 오대수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김선옥은 그저 그녀 본인이 하던 대로 심사를 이어나갈 뿐이다.

그렇게 40분이 지나고, 또 50분이 지나간다.

그만큼 요리를 완성한 참가자 또한 다수. 앞선 심사가 그들에게 도움이 된 것일까, 참가자 일동도 슬슬 김선옥의 심사가 어떤 골조로 돌아가고 있는지 짐작하기 시작했다.

한입 먹고 끝내면 그럭저럭.

표정이 안 좋아지면 나쁨.

얼굴이 펴면 제법 괜찮음.

'그리고 두 입 이상 먹으면……!'

'높은 점수……!'

단순한 지레짐작이었으나 그것은 실제로 사실에 상당히 근접한 짐작이었다.

그녀가 두 입 이상 시식을 한 참가자의 요리는 겉으로만 봐도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다른 심사단의 평가 또한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으니까.

'두 번이다. 두 번 먹었어.'

'이번에도? 생각보다 빈도가 잦은데.'

김선옥이 식기를 두 번 이상 드는 횟수는 후반으로 갈수록 늘어났다.

단순히 생각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 만큼 맛있다는 걸까. 그 진의를 알지 못한 참가자의 혼란이 이어지는 동안, 심사를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 드디어 줄의 최후미가 심사대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중에는 찬혁, 그 또한 함께 섞여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 가득 맺힌 땀과 몰아쉬는 숨. 분명히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찬혁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자신이 만든 요리가 완벽하리라 확신한 사람처럼.

몇 번의 심사 후, 비로소 찬혁의 차례가 돌아왔다.

"참가번호 39번. 류찬혁 참가자? 어떤 요리를 준비했나요?"

"프랑스 가정식인 코코뱅coq au vin을 준비했습니다."

"코코뱅…… 이라구요."

프렌치?

심사단을 비롯한 스태프와 참가자 사이에서 의문문이 떠오른다.

물론 프렌치를 만든 건 비단 찬혁 혼자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껏 심사가 진행되며 그들은 김선옥의 심사에 포함된 또 다른 법칙 하나를 알아낸 상태였다.

'김선옥 셰프는 분명…….'

'한 번도 프렌치를 두 입 이상 먹지 않았는데.'

과연 프렌치의 대가라는 것일까, 본인의 영역이기에 까다로운 평가를 내리는 건지, 아니면 그저 본인의 기준이 높기 때문인 건지.

외야가 그런 의문에 잠긴 채 찬혁과 김선옥을 조용히 바라본다.

이번 예선전 최연소 참가자.

반대로 예선전 최연장 심사원.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좌중이 주목하는 가운데, 비로소 심사가 시작된다.

이번에도 첫 시작은 마찬가지였다.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김선옥이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놀려 음식을 시식한다.

보통, 여기서 결과는 둘로 나뉜다.

식기를 내려놓거나, 혹은 뒤이어 한 번 더 먹어보거나.

'어떻게 되는 거지? 한 번 더?'

'아니면 여기서 끝?'

참가자 대부분의 예상은 당연히 전자.

최연소 참가자라는 딱지에 프렌치를 내놓았으니, 당연히 이번에도 앞 순번과 똑같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 흠."

김선옥. 그녀가 두 입 째로 음식을 맛본 것이다.

'두 입?'

'김선옥 셰프가 프렌치를?'

그것은 즉, 찬혁이 만든 요리가 수많은 셰프들도 좌절한 고점을 당당히 받아냈다는 뜻!

과연, 여태껏 귀동냥으로 들은 화려한 수상 이력은 겉치레가 아니었다는 것인가.

'저 애, 생각보다 대단한데……?'

'나이는 내 반도 안 되는 애가…….'

새삼 놀란 눈치로 좌중이 찬혁에게 이목을 집중한 가운데, 심사 개시 후 가장 큰 파란을 몰고 올 장면이, 그들의 눈에 포착됐다.

"이건……."

세 입 째.

김선옥이, 최초로 세 번째 시식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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