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스타팅 대쉬.-4-
대회반 소속 학생의 결석, 조퇴, 오후출석 같은 부재는 본래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대회반의 본분은 대회에 참가하는 것.
그리고 보통 대회라는 놈이 학생의 스케줄에 맞춰서 진행해주는 일이 없다. 학생도 출전이 편한 대회가 있다고? 그건 우연히 짝짝꿍이 잘 맞았을 뿐이야. 세상에 무상의 행복은 없어요.
뭐 어쨌든.
거기에 더해 2학년이 되어 서로 다른 선택 강의를 듣게 된 만큼 같은 반이더라도 가끔 조례, 종례 빼고 하루 종일 얼굴을 못 보는 반 친구도 있을 정도니, 이제 와서 대회반이 결석한다고 해도 신기하게 보는 애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평범한 상황일 뿐.
대회반이 결석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 쟤 대회 나갔구나.'하는 생각 정도는 한다.
그런데 여기서 떡밥이 뚝 떨어지면 어떨까.
"야. 너 그거 들음?"
"뭐? 글푸서?"
"어, 그거. 적어도 올해 말에는 예선전 한다며. 진짠가?"
"진짠 것 같던데. 예선 참가자 모집 중이라는 기사 본 것 같아."
선풍적 인기를 끈 요리대회에서 최근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 이 시기에 학교를 결석하고 대회에 참가한 학생이 있다?
이 두 가지를 서로 연결 짓지 못하는 사람은 적어도 소식이 빠른 고등학생 중에는 없었다.
아니. 반대로 어떻게든 연결을 지으려 난리라면 모를까.
그리고 그 빽빽하게 이어진 그물망에 걸린 사람이 있다.
"야, 찬혁아! 너 혹시 글푸서 나간 거야?!"
"너 TV 또 나와?!"
"혹시 연예인 만나면 싸인 좀 받아다주라! 아무나 좋으니까!"
"나는 박종원 선생님 싸인!"
그게 나야. 에라이.
예선전 참가 심사가 끝난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교실은 단박에 난장판이 됐다.
'왠지 처음이 아닌 것 같은데.'
어…… 아, 생각났다. 내가 골목 레스토랑 나간 다음 새학기 첫 등교 날도 이랬었지.
…… 이것도 나 때문이냐. 나 생각보다 되게 어그로를 잘 끌고 다니는 사람이구나. 반성하자.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그로는 끌 수 있을 때 끌어야지. 사람 유명세는 모닥불과 같아서 주기적으로 장작을 넣어주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그러드는 법이거든.
'근데 이건 선 넘었지.'
문제는 가끔 그 모닥불에서 불씨가 튀면 불을 피운 사람도 어쩌지 못하는 화마가 되어 역으로 이쪽을 집어삼키는 법이다. 지금이 딱 그랬다.
"아니, 얘들아. 잠깐만."
"그래서? 어떻게 됐어? 진짜 TV 나와?"
"글푸서 시즌2 언제 방송한대?"
"뉴스 봤는데 웹플릭스에도 올라온다며? 그거 진짜야?"
아니, 나도 모르는 거나 함부로 대답 못 하는 내부 기밀 같은 거 묻지 마라.
질문이 추가될수록 묘하게 한 건 따고 싶어 하는 기자의 인터뷰처럼 날카로움을 더해가는 친구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다 보니 식은땀이 다 흐를 지경이다.
"찬혁아!"
"찬혁아!"
"야, 류찬혁!"
질문 멈춰어어어어!
뚝.
이게 통한다고?
설마 석학들이 머리를 짜내어 만들었을 대처법이 소용없을 리가 없다는 건가……!라고 착각하는 일은 장담컨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소란을 멈춰준 것은 내가 아니라 이제 막 조례를 하러 들어오신 박예휘 선생님이었으니까.
"…… 다들 뭐 하는 건가요."
얼른 자리로 돌아가세요.
그 말에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가 앉는 아이들. 거참 이렇게 말을 잘 들을 거면 처음부터 좀 그러지 그랬어.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겨우 한숨을 돌릴 찰나. 교탁에 선 선생님이 입을 연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 류찬혁 학생. 어제 심사는 잘 보고 왔나요?"
멈춘 게 아니었네. 역시 이거 효과 없어.
***
"그래서, 정말로 어떻게 됐는데?"
"너희들까지 그러지 좀 마라……."
"아니, 궁금하잖아. 뭐, 잘 안 풀렸어? 다른 애도 아니고 네가 갔으니까 잘 했겠지 싶었는데."
믿어주는 건 고맙다만…….
점심시간. 여러모로 오랜만에 급식실에서 모인 나와 김철정, 나현주, 양희연 사인방.
반 애들로 모자라서 선생님까지 흥미를 보이던 상황에서 간신히 탈출했나 싶었으나 이번엔 얘들이 질문을 던진다.
그래도 뭐, 이젠 익숙해져서 아침처럼 피곤한 기분은 아니었기에 우물거리던 급식을 꿀꺽 넘기고 답했다.
"결과는 아직 몰라. 남은 지원자 심사도 앞으로 일주일은 필요할 거고, 그거 점수 종합해서 결과 발표하려면…… 대충 한 달? 그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뭐꼬. 그라믄 참말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꼬? 발표할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으란 기가."
확실히. 대회라는 게 개인 일정을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으면 쉽게 따라갈 수 없는데 거기에 방송까지 끼면 생활 패턴 자체에 불협화음이 생기겠지.
미리미리 스케줄을 정리하지 않았단 봐라. 갑자기 합격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스케줄을 정리한다고 스트레스가 장난 아닐 거다.
그렇다고 합격 고지도 없는데 스케줄을 정리한다고 나서면 주변에서 눈치 보이기 딱 좋지.
'그런 면에선 학생이 편해.'
특히 대회반이라서 정말 편하다. 갑작스런 결석도 '대회 때문'이라는 사유만 대면 어지간해선 잘 처리해주니까.
"뭐, 사실 반쯤은 합격했다고 보고 있어."
"응? 왜?"
"이게 그 근자감인가 뭔가 하는 그거가?"
"아니, 근거가 없지 않다고."
나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속에 들어있던 명함을 빼서 책상 위에 올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그것으로 쏠린다.
"이건 뭐야?"
나현주의 질문에 단 간단하게 답했다.
"어제 심사위원한테 받은 명함."
심사단 대부분이 현직에서 뛰어본 경험이 출중한 사람들이었던 덕인지, 이쪽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훌륭했다.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이 아니었단 말이지.
"뭐라더라. 아주 결정이 나지 않더라도 뽑힐 가능성이 높은 참가자한테는 따로 언질을 준다고 하더라고. 이게 그거."
"호…… 아니 잠깐만. 그럼 뭐야. 합격했단 거야? 너 진짜 또 TV 나와?"
"반쯤은 합격했다 봐야지. 언질을 주는 거지 확답을 주는 게 아니니까 아직 모르긴 하지만."
내 말이 끝나자 녀석들의 눈이 묘하게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바뀐다.
"뭐, 왜."
"아니, 되게 말을 쉽게 한다 싶어서."
"이게…… 기만?"
"맞는 것 같은디."
"아니다 이것들아."
누가 보면 사람이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쉽게쉽게 하는 건 줄 알겠어. 이래 봬도 회귀한 다음 하루 평균 수면시간이 아직도 6시간 아래라고. 그나마도 방학 같은 때에는 얼추 맘 놓고 자니까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몸이 먼저 망가졌을 거다.
…… 라고, 구구절절 설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차피 말해도 제대로 안 들어줄 테고.
반론을 포기한 난 작게 옆으로 한숨을 뱉고 얌전히 식판을 비우는 데에 열중했다.
그쯤 되니 녀석들도 다른 화제를 찾아 이야기를 옮긴다.
"그러고 보니 너네는 강의 어떻게 됐냐? 1지망 수업 신청 성공했다며?"
"말도 마라. 디지겠다 안 카나. 1학기도 그라고 무신 잡는 강의마다 과제만 쌓여가 죽겠다 진짜."
"나는 할 만한 것 같아. 실기 많아서 재밌어."
"아, 현주 니 얼마 전에 외부수업 다녀왔다 안 그랬나? 그때 어디 간 건데?"
"도축장."
"…… 도축장?"
"응. 도축학개론 배우니까. 요즘은 해외 쪽 도축법 배우는데, 직접 해보는 게 가장 좋을 거래서. 돼지로 실습하고 왔어. 고기, 가져온 거 많은데. 필요해?"
"…… 아니, 됐어. 괜찮아."
순식간에 뜨악한 표정이 되어 헛숨을 들이켜는 김철정이었다.
솔직히 나도 비슷한 심정이다. 요리사라고 다 도축할 줄 아는 게 아니다. 정육식당을 하는 거면 모를까 식당 대부분은 도축해서 해체까지 끝난 고기를 사서 쓰니까.
가끔 보면 나현주 얘가 제일 무서운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 하필 메뉴도 또 제육볶음이네.'
근데 정작 밥은 너무 맛있어서 사고와 행동에 괴리감이 장난 아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안 먹고 살 순 없잖아. 아예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알게 된 이상 방법이 없지.
몇 마디 말로 순식간에 수다 분위기를 끊어 버린 나현주의 말에 맞춰, 우리는 말 없이 묵묵히 밥을 씹어 삼켰다.
역시 맛있었다.
***
수업이라고 하니 생각난 거지만, 나 역시 이래저래 손을 뻗쳐놓은 강의가 많다.
1학기 때의 교훈을 살려서 2학기 때는 조금 자중하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배우고 싶은 게 많았던지라 필수 학점은 채우고도 제법 여유가 남는다.
다른 애들은 왜 1년 내내 사서 고생이냐며 끔찍한 걸 다 보겠다는 눈빛을 보냈으나, 어쩌겠어. 배움의 기회라는 건 그리 쉽게 오는 게 아니다. 어른이 하는 말이니 잘 새겨듣도록.
'뭐, 지금이야 민증도 못 뽑는 나이지만.'
아무튼 이야기를 돌려서.
이래저래 배우는 건 많지만, 그중 가장 난해한 걸 꼽으라면 2학기 때 집중적으로 파보자고 마음먹은 인도 요리일까.
안 그래도 한국에선 인지도가 비교적 낮은 장르인 것에 더해 인도라는 지역 자체가 가진 특수성 탓에 요리마저 그 규모가 너무 방대하고, 동시에 체계까지 복잡하다.
그럼에도 커리로 대표되는 향신료의 조합만큼은 분명 배워둘 가치가 있단 생각에 어떻게든 열심히 배우려 노력하는 중이다.
'향신료 외우는 게 무슨 단어장 암기하는 것 같긴 하지만…….'
뭐, 처음부터 배워나가는 게 그렇게 간단할 리 없으니까.
힘든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곁들이 정도로 배우는 태국이나 베트남 등지의 동남아시아 계열 요리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하나같이 어렵지 않은 게 없다.
그 사실을 실감하며 생각하는 거다. 세상에는 아직 배울 수 있는 게 너무도 많다는 것을.
일평생을 다 바쳐도 한 가지 장르에만 통달할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
그에 비해 회귀 전의 나는 아직 어떤 장르에도 통달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녀석인데, 주제에 욕심은 많아서 억지로 손을 뻗을 때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나 부족함에 부끄러움을 가지는 일은 없다.
세상에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교과서에 이름이 실릴 만큼 대단한 천재도, 위대한 발명가도, 심지어 수천 년이 넘도록 이름이 전해진 성인에게마저 부족한 것은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부족함을 어떻게 채우는가가 아닐까.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그것을 채워나가는 것으로 사람은 성장한다.
누가 그러더라. 배움이란 고통스러운 일이고, 배움의 고통은 곧 성장통이라고.
'사장님이 해주신 말씀이었나.'
회귀 전 40년, 회귀 후 1년하고도 10개월.
많은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나는 그 아픔이 성장통이었음을 믿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성심고등학교 남자 기숙사 204호. 류찬혁 귀하.
언젠가 본 적 있는 필체로 쓰인 편지지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귀하의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본 기관의 엄정한 심사 결과, 귀하의 자격이 저희의 요건에 충분히 수응한다고 판단되는 바이며. 이에 따라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2 예선 심사에 합격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그 문구를 본 순간, 편지지 끄트머리를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서, 무심코 그 종이를 구기고 말았다.
"…… 후우."
어떻게든 머리는 침착한 척, 냉정한 척을 하고 있지만. 몸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이다. 이제 겨우 시작한 거야.'
과거에는 발을 디디지 못했을 영역에, 비로소 두 발로 올라섰다.
아직 정상은 높고, 나는 산 초입에 막 들어섰을 뿐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평생을 노력해도 산기슭에마저 다다르지 못하는 이가 있다는 걸 알기에, 그저 이 기회에 감사하며, 다시금 내 부족함을 가다듬을 필요를 느낄 뿐이다.
좀 더 이 계단을 올라가, 언젠가 정상에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깃발을 꽂기 위해.
다만, 지금은.
이 순간만큼은.
"해냈다……!"
그저 이 사실에 기뻐하는 18살의 류찬혁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