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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64화 (264/403)

264. 스타팅 대쉬.-1-

약 30분 정도 이어진 짧은 면담이 끝난 뒤, 짧은 휴식시간과 준비시간을 거쳐 3차 심사 시간이 돌아왔다.

챙겨 온 조리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찬혁이 옷깃을 여미고, 소매를 걷으며 조리장에 들어선다.

시험장은 자격증 실기 시험 장소로 사용되는 시험용 주방. 서로 떨어진 조리대가 약 서른. 스무 명이 들어가고도 널널하다.

"…… 음."

주방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살짝 가늘게 뜬 눈으로 내부를 살핀 찬혁이 짧은 신음을 흘린다.

6열로 다섯 칸. 중심을 가르는 통로 좌우로 나뉜 서른 개의 조리대와 그보다 조금 더 앞에 있는 심사단 석.

보통 자리를 잡는다면 오늘 받은 참가번호에 따라 자리하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그러지 못할 듯싶다며 찬혁이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좌석 자유…… 무슨 생각인지."

'좌석은 자유롭게 골라주십시오'라고 적힌 팻말을 보며 찬혁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과연, 팻말에 쓰인 대로 찬혁보다 앞서 주방에 도착한 몇몇 사람들은 글자의 뜻 그대로 자유분방하게 이곳저곳으로 나뉘어 조리대 앞을 지키고 있었다.

맨 앞도 있고, 중간도 있고, 벽에 딱 붙은 자리나 통로와 제일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사람도 있다.

분명 저마다 생각하는 바와 이점을 철저하게 고려하여 선택한 위치.

"……."

그것을 잠시 흥미롭게 바라보던 찬혁이 비로소 발을 움직인다. 가벼운 발걸음. 고민거리 따윈 단 하나도 없다는 듯 경쾌하기만 한 동작에 여러 참가자의 시선이 뭉친다.

안 그래도 1차 심사 합격 지원자 중 최연소라는 타이틀 탓에 시선이 몰리는 찬혁인데, 거기에 더해 2차 심사 때 했던 인터뷰까지 합쳐 적지 않은 눈총을 받는 찬혁이다. 물론, 본인도 그걸 안다. 신경을 쓰지 않을 뿐.

'남 신경 써서 뭐해.'

결국 요리는 만드는 이와 먹는 이의 교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1 대결 같은 거면 다른 사람이 뭘 만드는지 신경이라도 썼을 텐데.'

심사받는 사람이 스물이나 돼서야 그런 것도 다 소용없겠다며 쓴웃음을 지은 찬혁이 선택한 곳은 바로 가장 앞줄의 중앙. 고개만 살짝 들어도 바로 심사단과 눈이 마주칠만한 자리였다.

"저 녀석 하필……."

"그만큼 자신이……."

그 자리에 우뚝 서자마자 다른 참가자들이 속닥거리기 시작했지만, 찬혁은 딱히 신경 쓰는 기색이 없었다. 누군가 그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담스럽지도 않나 봐?"

"예?"

조리대에 있는 화구며 수도, 가스 따위의 상태를 점검하던 찬혁의 어깨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넘어 들어온다.

갑작스레 말을 걸어오는 게 대체 누구인가 싶어 찬혁이 고개를 돌리자, 대체 언제 그곳으로 왔는지 알 수 없는 남자 하나가 묘하게 실실거리는 낯으로 찬혁을 본 채 서 있었다. 옆자리? 찬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말을 이었다.

"맨 앞이면 심사위원한테 가장 잘 보이는 자리잖아. 거기다 넌 중앙이고. 보통 부담스러운 자리가 아닐 텐데 용케 그 자리를 골랐다 싶어서."

그건 바로 옆자리인 자기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고 생각한 찬혁이었으나 굳이 입 바깥으로 제 생각을 꺼내진 않았다.

"그냥 왔어요. 편할 것 같아서요."

실제로 찬혁이 가장 앞줄을 고른 건 딱히 심사위원에게 어필하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요리가 완성됐을 때 제출하기 가장 편한 자리를 골랐을 뿐이었다.

딱히 자신감을 내세울 것도, 과시욕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그 말뜻이 반대로 전해진 듯, 한쪽 눈가를 바들바들 떨며 굳은 미소를 지은 남자가 말을 이었다.

"허, 허허. 진짜 자신감이 엄청나구나? 아, 소개가 늦었다. 아까 2차 심사 때 같이 있었지? 곽지우야. 명동 은하호텔 수셰프를 맡고 있어. 잘 부탁한다."

"성심고등학교에서 온 류찬혁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곽지우가 내민 손을 찬혁이 맞잡자, 그가 손에 힘을 준다.

악수라 보기에는 조금 강한, 시비로 보기에는 애매한 힘으로. 하지만 하루 종일 팬과 칼을 쥐고 흔들며 단련된 아귀힘은 살짝만 힘을 줘도 건장한 성인 남자조차 인상을 찡그릴만한 저력을 가졌다.

그러나 찬혁은 조금의 표정변화도 없이, 작은 미소가 맺힌 담담한 얼굴로 천천히 손을 흔들 뿐이다.

"심사단 왔다. 서로 잘 해보자."

"예. 힘내죠, 우리."

못내 아쉽다는 듯 곽지우가 먼저 손을 풀자,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손이 떨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찬혁의 얼굴을 곁눈질하며 곽지우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심사위원을 포함한 참가자들은 속속들이 제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잠시 후, 모두가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간 뒤. 비로소 심사단이 시작의 공을 울렸다.

"제3차 심사,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냥 왔어요. 편할 것 같아서요.'

'자신감까진 아닌데, 긴장은 딱히 안 하는데요.'

'힘내죠.'

역시 시건방지다. 곽지우가 작게 혀를 찼다.

면담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심사단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어둘 수 있는 대신 가장 부담이 큰 앞자리를 골라놓고 그렇게 태연한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나는 누가 보든 말든 어차피 합격할 거예요'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태도.

이 정도는 딱히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건가. 말과 행동이 너무 일치해서 이마에 힘줄이 돋을 지경이었다.

딱히 찬혁이 먼저 그를 무시하는 발언을 꺼낸 것도 아니다. 이건 단지 곽지우의 자격지심에 불과했다.

나는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데 넌 뭔데 태연하냐.

나는 이렇게 짊어진 것이 많은데 넌 어째서 그렇게 가볍게 보이는 거냐.

그저 마인드 컨트롤을 능수능란하게 할 뿐인 찬혁을 향한 억하심정이었으나, 곽지우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고, 애당초 그렇게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방향성이 틀려먹은 분노.

일생일대의 기회에 짓눌린 부담을 가장 위협적인 상대에게 향하려는 인간의 방어기제가 좋지 못한 방식으로 발동한 것이다.

'별것도 아닌 게…… 별것도 아닌 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본능은 깨닫고 있다.

얼마 전 소문으로 들은 차은욱과의 대립, 그 이전에 있던 공중파 출연, 거기다 자기보다 양은 딸려도 질로는 확실히 앞서는 수상 이력.

경력만 아니라면 찬혁과 자신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골짜기가 있단 사실을 알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그것이 틀린 생각이라는 것도 모르고.

'하지만…… 큭, 도구 준비할 꼴을 보니 오늘 무슨 과제가 나올지는 몰랐던 모양이지?'

본래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는 참가자의 사회적 위상만 충분히 받쳐준다면 사전에 그 내용을 대충 알아낼 방법이 있다.

어떤 심사위원이 나오는지, 어떤 메뉴로 승부를 봐야 할 것인지.

보안이 튼튼한 대회라면 자세히 알 수 없을 때도 있으나, 그마저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주어진다.

예를 들면 오늘처럼, '어느 특정한 재료'가 해당 시설에 많이 납품되었다는 소식을 곽지우가 알고 있듯이.

스태프의 입은 막아도 재료상과 배달부의 입마저 전부 막을 순 없다. 이런 족보의 유출은 업계의 관행 같은 것이다. 알아내려면 얼마든지 알아낼 방도가 있다.

그렇기에 심사에 앞서 조리도구나 접시 같은 기물을 준비할 때에도 무엇을 미리 준비해놔야 할지 대충 견적을 맞출 수 있다.

'근데 저 녀석 조리대에는 기초 조리도구 밖에 없다.'

그 말은 즉, 찬혁이 족보를 전혀 모른다는 뜻. 그 사실을 눈치챈 곽지우가 몰래 비소를 머금는다.

'성심고 수준이라면 족보를 못 얻을 리가 없을 텐데, 어지간히 기대를 못 받고 있나 보군.'

오죽하면 그런 당연한 정보조차 미리 안 알려주었을까.

사실을 말하자면, 이건 단순히 안영길의 의도에 불과했다.

어차피 찬혁의 수준이라면 그런 족보 같은 게 없어도 쉬이 예선 진출권을 따낼 것이고, 만에 하나 따내지 못한다고 하여도 족보가 없단 이유로 예선의 예선에서 떨어질 실력이면 애당초 본선에 나가봐야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안영길은 일부러 족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찬혁 또한 당연히 족보의 존재는 알고 있다.

다만 안영길의 의도 또한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암묵의 합의가 이루어진 사실을 모르는 곽지우만이 부득이한 회심의 미소를 짓는 혼란스런 시험장에 심사관의 목소리가 뒤이어 울려 퍼진다.

"이번 심사 과제는 감자입니다. 감자를 이용한 요리를 만들어서 제출해주세요."

'하, 역시.'

곽지우의 입꼬리가 광대를 찌를 듯 솟았다. 역시 미리 알아둔 족보가 제대로 들어맞았다.

이번 심사장에 반입된 식재료 중 유독 감자가 많이 들어갔다던 정보는 정확했던 것이다.

'감자가 어려운 식재료긴 하지만 미리 알고 대비했다면 문제가 없지.'

곽지우를 제외하고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이들이 많은 듯, 여러 면면의 얼굴에 그와 비슷한 웃음이 맺힌다.

그러나 심사단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제한시간은 세 시간. 추가로 10분의 레시피 구상 시간을 드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생뚱맞은 단어에 좌중의 이목이 쏠리고, 뒤이어 심사단의 입이 열렸다.

"메뉴의 가짓수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장르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반드시 모든 메뉴가 한식이 아니어도 되며, 아예 한식이 메뉴에 포함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기서 이번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2에 추가된 새로운 룰에 대해 공지하겠습니다."

'장르에 제한이 없다…… 고?'

"이번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은 '국가요리경합'이 아니라 '국가셰프경합'이 될 예정입니다. 어떤 종목이 주력이든 본 심사단은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럼 셰프 여러분, 조리를 시작해주십시오."

"!!"

"뭐, 뭐라고?!"

이윽고, 참가자들 사이에 주체하지 못할 충격이 내달린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입을 쩍 벌린 그때, 유일하게 찬혁만이 의미 모를 웃음을 작게 지어 보일 뿐이었다.

***

'이런 뜻이었구나.'

교장 선생님이 언질을 주셨던 '추가 규칙'의 정체를 확인한 난 저도 모르게 폭발할 뻔한 웃음을 간신히 집어삼킬 수 있었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그건 본래 각 국가의 전통요리를 내세운 경합이었다.

덕분에 재밌었고, 성공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후 밝혀진 문제점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런 규칙의 경합은 생각 이상으로 평등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가 특히나 짧은 나라와 긴 나라가 경합을 펼칠 경우, 요리의 가짓수와 깊이에서 분명 작지 않은 격차가 생겼다.

어떨 때는 나라 자체가 가진 전통 식문화라는 놈이 너무 극단적으로 발달한 국가 같은 경우 도저히 조건에 맞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걸 내놓는 게 힘들었던 경우마저 있다.

후자의 예시는 굉장히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게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으니 뭐 어쩌랴.

그래. 홍차랑 과자만 잘 만드는 '그 나라' 이야기 맞다. 아무튼 세계사에서 흉악한 무언가의 원산지를 그 나라로 꼽으면 대충 맞는다더니 세계사만이 아니라 요리역사도 대개 비슷한 모양이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등등. 유리한 나라만 너무 유리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토너먼트에서 마주치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필패를 당하기 일쑤였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지.

실력 있는 요리사가 자국에 없는 것도 아닌데 전통요리 전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오지 못한 셰프 또한 많다.

아마 이번엔 그 점을 고려한 것일까.

'혹시 알아? 다른 국가에서 항의한 걸지.'

아무튼, 이 이야기는 나로선 감히 기쁨을 거둘 수 없었다.

애당초 내 주력은 한식이 아니니까. 라이벌도 그만큼 많고 다양해지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정말로 전력을 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아, 중력실 전원을 내리고 중량도복을 벗은 야채별 외계인의 마음이 과연 이럴까?

그야말로 리미터라는 게 풀려 버린 느낌이 빡세게 든다.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모두 도륙을 내버릴 수 있다……!"

해 버릴까? 죄다? 여기서 갈아 마셔 버려?

'해치울까, 마스터?'

"가라."

머릿속 류찬혁이 go사인을 내렸다.

아, 이건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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