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세컨드 시즌, 프리 시즌.-3-
웹플릭스.
요즘 컴퓨터 좀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시총만 24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기업.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세계적으로 방대한 라인을 구축하고 있으며, 사이트 가입자만 물경 2억 명. 한국에서만 약 4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계의 절대 강자다.
그런데 왜 이런 이름이 요리대회의 주최자로 적혀 있는가.
작금의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뭐지? 진짜 뭐지?'
웹플릭스가 하는 일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다. 요리대회 개최가 아니라.
아니 그야 물론 웹플릭스의 주 업무가 다른 업체에서 제작한 영상물 등을 스트리밍하는 것이긴 해도, 그에 못지않게 오리지널 컨텐츠 제작에도 힘을 쏟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 관련 프로그램이 꽤 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왜 갑자기 요리대회 목록에서 이름을 드러내느냔 말이다.
이미 그 이름을 발견한 이상 다른 데에 돌아갈 정신이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았다.
고작 일개 기업이 여는 요리대회를 한 도시에서 주최하는 요리대회보다 신경 쓸 가치가 있냐고? 당연한 말씀이다.
일단 주목도가 다르다. 어중간한 요리대회에서 우승해봐야 그걸 기억해주는 사람은 몇 없다. 당장 세계 최고의 요리대회 중 하나인 WACS 국제요리대회의 우승자 이름을 한 명이라도 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일반인 중에서는 없다고 봐야 한다.
업계인이라면 그 메달의 가치를 단박에 알아보겠지만, 일반인에게 그런 안목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하지만 웹플릭스라는 이름이 달린다면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다.
웹플릭스의 시청자는 말 그대로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한다. 문화생활이 가능하며 인터넷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파이가 전혀 달라.'
요컨대 얻을 수 있는 인지도의 넓이가 확 달라진다는 뜻이다. 어? 요즘은 엄마 나 TV 나왔어! 보다 엄마 나 모니터 나왔어!가 더 잘 먹히는 시대라고!
그런데 전 세계의 모니터에서 잘만 하면 얼굴이 팔릴지도 모르는 기회?
이건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게 이상한 거다.
눈동자가 자연스럽게 옆으로 구른다.
"……."
대회명 란에 적힌 문장이 눈에 익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
"뭐?"
아니 잠깐만, 이건 또 뭐야.
굉장히 익숙한 요리대회 이름이다. 그래. 내가 들어본 기억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요리대회.
2년 전 여러 나라의 합작으로 열린 버라이어티 프로,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한국팀이 우승하며 이름을 드높이고 안효민 선배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 대회다.
'시즌 2라고?'
난 모르는 이야기다. 들어본 적 없다.
회귀 전에도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은 제법 커다란 인기를 끈 대회였다. 대회라기보단 버라이어티 쇼와 비슷한 거였지만, 어쨌든 참가 면면이 상당했으니 말이다.
대가 대첩이 예능이라고 해도 요리대회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도 비슷했다.
'근데 그건 후속 방송 같은 걸 한 적이 없을 텐데.'
그야 같은 기획으로 시즌2를 방송해달라는 요청은 제법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외국으로 나갈 때까지도 시즌 2 같은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그쯤 되니 방송사 측에서도 '이제 와서 다시 해봤자 시기가 너무 늦었고, 각국과의 협의도 타결이 힘들다'라고만 논 오피셜 채널로 답변했을 뿐, 특별히 대응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결국 그렇게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프로그램. 그게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이었다. 나야 직업이 요리사니까 기억하는 거지, 아마 커뮤니티 같은 데에서 물어봐도 '아 그거. 재밌었지' 혹은 '-틀-' 같은 소리나 들을 터.
그런데 갑자기 시즌 2라고?
'…… 이것도 달라진 거야?'
나비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폭풍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나비효과라고 하던가? 같은 조건이더라도 작은 변동요인이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나비효과라고 봐야 하는 걸까?
사실, 요근래 내 활동이 고작 나비 날갯짓 수준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갑자기 이런 형식으로 결과를 가져올 리가 없다.
뭔가 아직 내가 모르는 게 있다.
놀란 표정으로 교장선생님을 바라보자, 선생님 또한 이미 이 리스트를 검토하셨던 것인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음, 놀란 건 압니다만, 조금 더 자세히 봐봐요."
"예? 네……."
자세히?
교장선생님의 말을 따라 조금 더 리스트를 상세하게 살폈다.
"아."
리스트 뒤쪽에 추가로 주석이 있었다. 아깐 당황해서 미처 못 본 곳이다.
마침 내가 눈여겨본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의 옆에도 주석이 있음을 알리는 별표와 숫자가 아주 작게 쓰여 있었다. 이렇게 작으니 못 보는 게 당연하지.
주석을 찾아 페이지를 뒤진 나는 이윽고 예상하지 못한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예선…… 전?"
예선전이라니, 이건 무슨.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너무 연속으로 닥쳐서 그런지 머리가 잘 안돌아갔지만, 어떻게든 삐걱대는 짱구를 굴려 이해해보려 애썼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은 기본적으로 여러 국가의 셰프가 팀을 짜고 출전하여 각 국가의 기량을 겨루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그 말은 즉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국가는 한두 곳이 아니라는 거고, 거기다 예선전이라는 건…….
"선발전?"
그렇다. 예선전이라는 건 그냥 단어의 의미일 뿐, 그 실체는 국가를 대표할 셰프를 뽑는 선발전이다.
내 해답이 정답이었던 걸까. 교장선생님은 흡족한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맞아요. 저희에게 온 공문은 대표선발대회 참가 요청이에요."
"역시……."
내 추측이 맞았다. 사실 이 정도야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아는 이야기라 그리 자랑스런 기분은 안 들지만.
하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한 게 있다.
글로벌 푸드 페스티벌이라면 제작년 평균 시청률 20%. 최고 시청률은 30%를 넘긴 적도 있는 초대형 떡밥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국가대표 선발전을 실행하려고 하는 이때에 방송가가 이토록 조용하다고?
이래 봬도 요리사 또한 트렌드와 유행에 크게 영향을 받는 직업이다. 커뮤니티 체크나 뉴스 같은 건 빼놓지 않고 보고 있을 터인데 이런 소식을 들은 기억은 없다.
아무리 성심고가 잘 나간다지만 언론을 패싱하고 일개 학교가 그 정보를 먼저 접한다는 건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교장선생님에게서 나왔다.
"그야 정보는 스폰서한테 먼저 오지 않겠어요?"
"…… 예?"
"개인 스폰서거든요. 제가."
에? 예?
어, 어…… 그러니까. 스폰서? 교장선생님이? 안영길 대가가?
어안이 벙벙해져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짓는 날 보는 교장선생님의 미소가 깊어졌다.
***
회귀 전의 이야기다.
찬혁은 알지 못하겠으나, 사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의 후속 방송은 이미 방송가에서 여러모로 뜨거운 감자였다.
당연한 이야기다. 한 나라에서만 평균 시청률 20%. 우승국가라는 걸 생각하면 타 국가의 평균은 그보다 조금 더 낮을지도 모르겠지만, 요리방송이라는 플랫폼으로 그만한 시청률을 동원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애당초 셰프들의 출연료가 비싼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예인이 많이 출연해서 출연료 빠질 구멍이 많은 것도 아니다.
스테이지 개설 비용이야 제법 들긴 했지만 그것을 감안 하더라도 적당한 가격에 리턴은 그보다 훨씬 높은 프로그램을 방송가에서 무엇이 좋다고 내버리겠는가.
당연히 후속방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기획까지 승인되었었고, 이행까지 앞으로 한 발짝 남은 상황에서 문제가 터졌다.
여러 국가 방송사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그건 분명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의 장점이었다.
덕분에 각국의 내로라하는 프로 셰프들의 출연이 줄을 이었고, 홍보효과마저 자연스럽게 겹쳐져 프로그램은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예상보다 너무도 큰 성공 탓에 장점은 그대로 단점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제 이득을 더 챙기려는 각국 방송사의 이권 다툼 탓에 좀처럼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것이다.
그 후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협의가 제대로 되질 않았으니 기획은 흐지부지.
누가 얼마나 먹느냐를 두고 벌어진 싸움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고, 그 결과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은 노를 저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물이 전부 빠진 뒤였다.
결국 후속 시즌 방영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라는 이야기다. 서로의 이권이 너무 복잡하게 얽힌 탓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당시 아직 학생이었던 찬혁이 알 방도가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찬혁이 회귀 후, 그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협의가 지지부진 했던 것은 방송사끼리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각국의 방송사와 요리사 사이의 협의 또한 그랬다. 어째서인가? 그 문제의 핵심은 바로 시즌 1의 우승팀인 한국의 대표, 안영길에게 있었다.
안영길은 후속 시즌에 출연해달라는 방송국의 제안을 완강히 거절했다. 본래 나갈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방송국의 조건을 들어줄 수 없었던 탓이다.
방송국은 시즌 1을 계기로 요리계의 어린 샛별이 된 안효민의 출연을 바랐다. 하지만 안효민은 학생으로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던 몸이었기에 그녀 본인도, 안영길도 그 제안을 거절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글쎄, 안 된 대도요."
"이미 시기가 많이 늦었습니다. 국내에서 화제성을 끌어올릴 출연자가 필요한데, 안영길 선생님과 안효민 학생만큼 그 역할에 잘 어울리는 요리사가 없다는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정은 알지만, 제 손녀에게도 자기 인생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라면 출연이 가능하지만 효민이는 슬슬 단념해주세요."
그러나 방송가는 포기를 몰랐다.
무리한 요구가 계속 이어지자, 안영길은 결국 인내를 참지 못했다. 안효민에 이어 본인마저 불참을 선언하고 만 것이다.
그 발언을 시작으로 상황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예? 안영길 선생님이 참가를 안 하셔요?"
"선생님이 참가를 안 하시는데 저희가 나가긴 좀……."
"죄송합니다. 안 될 것 같아요."
국내 한식 요리사들은 안영길의 불참 소식에 본인들까지 제안을 고사했고.
"저번 우승팀이 안 나온다고? 그럼 우리가 그걸 뭐하러 나가."
"2등을 정하려고 나가고 싶진 않은데."
"한국팀 안 나오면 나도 안 나갈 거니까 알아서 하쇼."
우승팀 없이 2차전을 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다른 국가마저 출전을 거부하는 일이 속출했다.
방송국의 무리한 태도가 불러온 참사였다.
결국 방송국도, 출연자도 협의가 불가능해진 상황이 되자 갈 길을 잃은 배는 그대로 난파한 신세가 됐다.
잘 풀렸다면 역대급 프로그램이 되었을 방송이 단 한 번의 고집을 꺾지 못해 이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이것이 찬혁이 모르는 회귀 전의 진상.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손녀 말인가요? 우리 손녀는 지금 수능을 준비 중이라 힘들 것 같습니다만."
"아, 그렇군요. 정말 아쉽게 됐습니다. 저, 그럼 혹시……."
아주 자그마한. 나비 날갯짓 같은 한 사람의 변수가, 폭풍 같은 변화를 몰고 왔다.
"지금 성심고에 한창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학생이 한 사람 더 있는 걸로 압니다만."
"? 누구 말입니까?"
"그…… 류찬혁 학생이라고. 혹시 아십니까?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혹시 출연 의사를 여쭤볼 수 있을까요?"
찬혁이라는 자그만 바람이, 폭풍의 눈에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