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57화 (257/403)

257. 푸드 트랩.-3-

무엇을 숨길까. 당연하게도 그 글을 올린 사람.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글의 원본이 되는 멘션을 올린 이는 다름 아닌 찬혁이었다.

찬혁과 차은욱의 싸움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이틀 동안 인터넷은 그야말로 불을 땐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안 그래도 이전 사건에 달린 멘션에서 서로 끝을 모르고 싸우던 차은욱 옹호파와 찬혁 옹호파는 출근 시간이 되자마자 싸움판을 이탈한 뒤로 단 한마디의 멘션조차 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계속 말싸움을 이어나갈 기세를 보이던 차은욱 또한 그것이 빈 샌드백을 치는 거나 마찬가지란 것을 깨닫고 판을 떠났다.

불판을 제대로 지펴놓고 뒷수습 하나 안 한 채 떠나 버린 것이다.

관리할 사람이 없는데 불이 제대로 지펴질 턱이 있나. 새벽 시간 동안 맹렬하게 타오른 불꽃은 장작을 던져 넣을 사람이 없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하게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제 의견을 다 털어놓지도 못하고 욕구를 불완전연소한 사람들.

미처 꺼지지 않은 불씨는 장작을 조금이라도 더 불태우고자 들러붙은 잉걸불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인터넷의 불씨를 시시각각 찾아다니는 이들, 이른바 인터넷 렉카가 그 소식을 물고, 그것이 또 커뮤니티 등지로 퍼져나가고…….

이런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의 싸움은 그들이 당초에 상상한 것보다 더욱 큰 화제가 됐다. 그 와중에 두 사람이 이틀 동안 서로 침묵을 유지하며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이 커진 와중, 갑자기 당사자 중 일각인 차은욱이 갑작스레 활동을 재개하자, 그에 대해 사람들이 보인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흘러넘치는 기름에 불씨가 튄 것 같은 기세.

평소 글을 올렸을 때 블로그의 하루 방문자 수가 대략 10~20만 사이를 오가는 것을 생각했을 때, 고작 반나절 만에 그 배에 달하는 기록을 가뿐히 뛰어넘은 작금의 상황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이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명명백백히 드러난다.

하지만 정작 차은욱이 올린 글은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아니, 모자란 것도 아니고 아예 방향이 엇나가 있었다.

차은욱이 새로 올린 글의 내용은 온통 온새미로에 대한 칭찬으로 범벅이었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 비하면 월등히 수준이 뛰어나 졌다느니, 트레디셔널한 전통적인 한식의 새로운 변신이라느니.

자신의 조언을 흘려듣지 않은 것 같아 기쁘다며 이전에 말한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 자화자찬하는 문구가 있긴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엊그제 올린 글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호의적인 시선이 잔뜩 끼어 있는 평론이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야, 쟤 왜 저러냐. 저번에 박 터지게 싸우고 결판 못 내고 쫑난 거 아니었음?

─말이 결판 못 낸 거지 사실상 차은욱 판정패지

─하긴, 요리사 출신 방송인들 말하는 거 들으면 그 급식 말이 전부 맞다고 했잖아

─저 양반이 그렇게 맞고 가만있을 놈이 아닌데

─그러게. 곧 죽어도 비평이랍시고 박았을 양반이 갑자기 착한척이야 소름 돋게

─아니 근데 나 같아도 저거 먹고 욕하라면 못 할 것 같은데ㅋㅋㅋㅋ

─ㄹㅇ; 아는 여자애들이 사진 찍고 먹는 것도 아깝다고 하는 거 이해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음;;

─아는 여자애들? 뭐? 화면 속?

─아잇 싯팔!

…… 아무튼, 이런 대화 끝에 사람들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온새미로와 차은욱이 모종의 대화를 통해 화해했다.

찬혁의 계정은 아무런 멘션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과정이 어떠한지는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 온새미로에서 직접 나서서 찬혁에게 사과를 종용했겠지. 뒷맛이 씁쓸해지는 결말이었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보다 더한 일도 비일비재한 세상. 잠깐 떡밥이 돌기야 하겠지만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이 사건도 잊혀지겠지.

잊혀지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찬혁의 계정에 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

─차은욱이 실력 없는 양반이라는 증거

우선 글 읽기 전에 먼저 차은욱 평론 한 번 보고 오면 좋다. 내가 딱 말해줄 테니까 잘 들어라.

위에서 말한 온새미로 평론을 보고 왔으면 알겠지만 아주 칭찬 일색이다.

뭐, 좋지. 대부분은 맞는 말이다.

세계 어디를 가든 맛보기 힘든 수준의 요리인 것도 맞고, 우리 요리사들이 저거 만들겠다고 뼈 빠지게 고생한 것도 맞아.

솔직히 저 양반 대접하려고 힘 좀 썼음. 모가지가 좀 뻣뻣해야지 풀어주겠다고 주물러주다가 목뼈가 으스러지겠어.

근데 내가 태클 걸고 싶은 부분이 있다.

차은욱 평론가는 분명 '전통적인 한식의 향취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뛰어난 퓨전요리. 한식의 지평을 한 단계 넓혔다.' 뭐 이런 식으로 말했지?

그런데 어쩌나. 그거 다 헛소리다. 맞는 말이 하나도 없음. 왜냐고? 저 요리엔 한식 기법이고 뭐고 한식 관련한 건 거의 아무것도 안 들어갔거든.

심지어 재료조차 국산 재료가 없음. 아, 우유나 그런 신선식품 같은 거 빼고.

해산물은 일본산, 닭은 프랑스산이야. 쌀은 이탈리아산 장립종이고. 당연히 품질은 최고급이지.

내가 온새미로에서 일하는 거 알지? 내가 직접 만든 거니까 틀린 거 하나 없는 100% 팩트라는 거 장담할 수 있다.

자, 내 결론은 이렇다.

겉보기에만 한식인 외국 요리를 먹어놓고 '와! 이건 정말 전통적인 한식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저번에는 제대로 된 평론을 했을까?

그 전에는? 그보다 더 전에는? 여태까지 해왔던 모든 평론은?

여태 그 잘난 거 없는 실력으로 운 좋게 유명세나 타서 평론가 명함 걸고 완장질 해서 재미를 좀 봤나 본데, 이름값을 어떻게 키울까 고민할 시간에 요리 공부나 하는 게 인생에 이로울 것 같다.

제 조언 똑똑히 들어요, 차은욱 평론가님. 아시겠어요? 처신 잘 하라고.

***

터졌다.

인터넷의 반응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자숙의 시간이라도 가진 것 마냥 여태껏 침묵을 고수하던 찬혁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곤 선전포고로 명치에 미사일을 쏴 버린 것이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 이전에 그저 그 싸움의 과정과 결말을 보고 싶었을 뿐인 청중은 찬혁의 후속타에 미친 듯이 열광했다.

─와ㅋㅋㅋㅋ얘 사장한테 한 소리 듣고 짜진 줄 알았는데 깜빡이도 안 켜고 훅 들어오네ㅋㅋㅋ

─거의 미친놈인데ㅋㅋㅋ설마 혼자 빌드업 짠 거냐 이거? ㄹㅇ이면 진심 미친놈 인정해줌ㅋㅋㅋㅋ

이곳이 만약 관객이 가득 찬 옥타곤이 설치된 실내였다면 귀가 먹먹해질 환호성이 장내를 가득 채웠을 터.

더군다나 이번 일격은 상대가 방심한 틈에 턱을 정확히 노린 풀스윙 훅이었다. 미처 대비할 여유도 없이 약점을 그대로 가격당한 차은욱은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으나, 혼비백산한 와중에도 찬혁의 지적에 대한 반격을 시도했다.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다. 온새미로에서 일한다고 해봤자 섹션 하나도 제대로 못 맡은 견습일 텐데 재료며 레시피 같은 걸 어떻게 알고 큰소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증거라고 해놓고선 물증은 하나도 없이 심증만 가득하지 않느냐.

과연 이 업계에 대해 제법 지식을 쌓았다는 평가를 들었을 만한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그의 반박에 동의하는 의견도 쉬이 찾아볼 수 있었을 정도다.

─맞말이긴 하지. 막말로 고작 고딩이 업장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어떻게 알아

─식당 알바할 때 재료 원산지 봐가면서 일하는 놈 있음? 솔직히 여기 있는 애들 중에 그런 애 절대 없을걸. 그럴 줄 알았다고 욕만 하지 말고 중립기어 먼저 박아라.

제법 효과적인 반격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말이다.

"이때를 노렸어!"

물론 찬혁이 실제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그런 분위기였음을 토로한다.

혼비백산한 상대가 반격이랍시고 휘두르는 주먹을 얼씨구나 좋다고 맞아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찬혁도 마찬가지다.

찬혁은 그 반격을 피하는 것에서 한술 더 떠, 얼마 없는 힘으로 반격해오는 상대의 힘까지 역이용한 카운터펀치를 노리고 있었다.

─물증이 없다고? 딱 대라. 물증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찬혁의 카운터펀치였다.

'물증이 아닌 심증뿐이니 논란의 가치가 없다'고 빠질 각을 재던 차은욱의 대응에 찬혁이 내놓은 카드는 하나. 바로 '모든 레시피 공개'였다.

─자, 그렇게 말하던 물증임. 그날 먹은 메뉴 레시피다. 빠진 거 하나 없이 다 들어갔으니까 꼼꼼히 읽으시고. 평론 쓸 때 사진 찍어 올린 거 있으니까 같은 레시피라는 거 확실하지?

여기까지 온 이상 반박하고 싶어도 그럴 방도가 없었다.

수많은 인터넷 유저를 비롯한 전 프로 출신 요리 방송인이 직접 재현을 통해 교차검증을 끝낸 레시피는 틀림없이 차은욱이 온새미로에서 먹은 것과 똑같은 메뉴라는 것을 재차 증명했을 뿐이었다.

─아, 덤으로 재료 주문서도 보여줌. 이제 재료도 국산 없단 거 알겠지?

"이, 이, 이……!"

한 번 벌인 일이 여기까지 치닫자, 차은욱은 어찌나 울화가 솟는지 고함 한번 제대로 치지 못했다.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릴 때마다 제 멋대로 들숨을 들이켜는 몸이 이토록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을 정도로.

─와ㅋㅋㅋㅋ얘 진짜 미친놈이네ㅋㅋㅋㅋ레시피면 업장 기밀일 텐데 이걸 멋대로 공개해?

─진짜 묻겠다고 작정을 했네ㅋㅋㅋㅋㅋ

─근데 이러면 얘도 같이 묻히는 거 아니냐. 온새미로에서 레시피 유출로 태클 걸면 어떡함

─프랜차이즈 아니면 레시피 유출한다고 법적으로 어떻게 되진 않을걸?

─법이 아니라 가게 레시피 맘대로 유출한 애를 어디서 갖다 쓰겠냐고ㅋㅋㅋㅋ

'이거다!'

차은욱은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떡밥에 주목했다.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은 이미 고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물귀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 혼자선 못 죽는다. 아니, 안 죽는다!"

─이 상황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고작 개인의 다툼을 위해 업장의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자기 멋대로 유출하는 요리사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바지만 그 요리는 분명 대단한 기술이 가미된 요리였다. 대기업으로 보자면 공들여 개발한 최신기술을 사원이 멋대로 반출하여 세간에 공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온새미로는 이 횡포를 용서해선 안 된다.

합당한 지적이었고, 당연한 이야기였다.

세상에 어떤 기업이 저희가 돈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유출한 사원을 가만히 놔둔단 말인가.

그렇다.

'저희가 개발한 기술'이었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차은욱의 멘션이 다시 한번 뜨겁게 여론을 지필 때, 여태껏 가만히 있던 온새미로가 비로소 반응을 보였다.

온새미로의 오피셜 계정에 하나의 공지가 올라온 것이다.

─이전 유출된 레시피는 유출자인 류찬혁 쿡이 개인 혼자 개발한 것입니다. 저희는 해당 레시피를 류찬혁 쿡의 허가 아래 사용했을 뿐인 즉, 온새미로는 해당 레시피에 어떠한 권한도 가지지 않으며 해당 레시피를 어떻게 사용 방안에 대해서는 오직 류찬혁 쿡의 소관이므로, 저희는 해당 사안에 개입할 권리, 목적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뭐…… 라고……?"

그 레시피를, 혼자 개발했다는 건가?

오로지 자신을 엿 먹일 목적으로?

레시피라는 건 만들어야지 얍! 하고 주문 한 번 외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도 열 개 중 하나가 빛을 보면 다행인 것일진대, 그 모든 노력을 이 한 번에 배팅했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이쯤 되면 광기에 물든 인간이나 할법한 미친 짓이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몰아치자, 차은욱의 정신은 날로 피폐해져만 갔다.

완벽한 패배였다.

어쩌면 이미 정해진 결말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상대가 무슨 패를 가졌는지도 확실치 않은데 먼저 패를 깐 것은 차은욱이었으니까.

이런 와중에도 인터넷에서는 찬혁의 명성만이 날로 늘어갈 뿐이다.

─와, 얘는 미친놈 수준이 아니라 정신병자 아니냐? 삔또 상해서 이 빌드업을 짰다고?

─아아, 모르는 건가. 무능한 미친놈은 정병이지만 유능한 미친놈은 섹시한 사이코패스인 법이다.

─솔직히 얼굴도 좀 잘생긴 것 같아.

─'좀'? 아아ㅎㅎ 저 얼굴 보고 좀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잘 생기셨구나ㅎㅎ

─부디 죽어다오……

─사이코지만 괜찮은 것 같아. 이게…… 사랑?

─쌉소리 집어넣으세요 선생님. 저쪽은 안 괜찮아 보이십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적수마저 인정한 요리 실력을 가진 전무후무한 고등학생 요리사.

사람들은 그 타이틀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찬혁을 주제로 한 떡밥 굴리기가 한창인 이때. 찬혁은 때아닌 구박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아, 화상아! 일어나라고! 밥도 안 먹고 굴러만 다녀!"

"아 좀. 일도 겨우 끝내고 왔는데 좀 쉬자! 오빠 쉬는 게 그렇게 꼽냐!"

"엄마가 나만 심부름 시키잖아! 왜 나만 해야 되는데!"

"그냥 좀 해라, 어?"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가진 요리사래도, 찬혁 또한 평범한 여동생을 둔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파란만장한 여름의 끝은 언제나 가을처럼 소박하다.

그뿐인 이야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