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푸드 트랩.-1-
"젠장! 빌어먹을 꼬맹이가!"
─쨍그랑!
차은욱의 거친 고함과 함께 사무실의 새하얀 타일바닥 위로 화분이 나뒹군다.
정찬국이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준비한 제법 가격이 나가는 화분이었으나, 심신안정 아로마 효과가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차은욱의 울화는 도무지 막을 수 없었다.
"펴, 편집장님?"
그의 사무실과 바깥을 가르는 방음벽도 유리가 깨지는 소리는 차마 가리지 못한 것일까. 소리를 듣고 놀란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용태를 물었으나 차은욱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일 봐."
"아, 예……."
그의 비서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화분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 직전 얼핏 귓가에 들린 고함이 차은욱의 목소리였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얌전히 자리에 돌아가자,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진 차은욱은 울분을 토해내느라 씩씩대는 숨을 달래며 의자에 앉았다.
"하……."
흙투성이가 된 바닥을 치우지도 않고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게 다 그놈 탓이다.'
차은욱의 노트북 화면에는 그가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가 비치고 있었다. 평소 글을 쓰면 인터넷 여론을 알아보기 위해 종종 들르는 곳.
오늘도 차은욱의 목적은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지만, 이전과는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
찬혁. 도전자. 그것도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맹랑한 도전자가 차은욱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들의 눈에 띄고 말았다는 것.
기실 차은욱에게 도전자가 덤벼든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좋은 말로도 타인의 호감을 신경 쓰며 평론을 하는 타입이 아닌 차은욱에게는 팬의 숫자만큼 안티팬의 숫자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전의 도전자와 찬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전의 도전자들은 말이 도전자일 뿐, 그 대부분은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지식만 있는 어중이떠중이였다. 자신의 가게가 들은 평론에 반박을 펼치는 점주도 있었으나 그런 경우에는 이런 말싸움 자체가 오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아예 이쪽을 물어뜯기로 작정을 했는지 찬혁은 말 그대로 달이 저물고 아침 해가 뜨도록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다면 차은욱 본인도 적당히 반박하다가 어느 정도 시점에서 싸움을 그만뒀을 텐데, 이번만큼은 그럴 수도 없었다.
이전의 도전자들과 찬혁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
그건 바로 찬혁의 인지도가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는 것이다. 가히 차은욱과 비견될 정도였으니 무엇을 더 말할까.
단 하루, 그것도 24시간을 꽉 채운 것도 아니라 설전을 시작한 자정부터 이제 막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까지 한나절 남짓한 시간 만에 팔로워가 1만을 넘어 버린 찬혁의 계정을 보면 그 사실은 명백했다.
─얘는 누군데 차은욱한테 꼬박꼬박 말대꾸냐? 보니까 아직 급식 같은데. 어떻게 팔로워가 하루만에 1만이 늘어? 주작 아니냐?
─너 얘 누군지 모르냐? 모르면 닥눈삼 하라고 아ㅋㅋㅋ
─차은욱 홈페이지까지 찾아가서 평론 보는 놈이 얘를 모르네ㅋㅋㅋ
─아니 그래서 누구냐고
─당신은 혹시 손가락이 불구십니까? 알아서 찾아보세요
'대체 이 녀석이 뭐 하는 놈이기에?'
당초 그렇게 생각하고 찬혁의 신상을 얼추 조사한 차은욱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시배 청소년 요리경연대회 전시부 금상.
부산시배 요리대회 우승.
푸드 엑스포 요리대회 동상.
그 외에도 TV출연 기록이라거나 경력 등등. 도저히 고등학생 아이로 보이지 않는 경력의 연속.
설령 차은욱이 과거로 돌아가 요리계를 떠나지 않고 한평생 매진하였더라도 가능했을까 싶은 업적을 그의 반도 채 되지 않는 나이의 어린아이가 해냈다. 나이가 어리다고 흘려들을 수준은 한참 전에 지난 것이다.
'어쩐지 한마디를 안 지더라니…….'
그간 밤에 치렀던 치열한 설전을 되새긴 차은욱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봤을 땐 선생님이 한식을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와, 어떻게 일식 육수 내는 법이랑 한식 육수 내는 법을 구분을 못 하지?'
'그 국밥에 들어간 두부도 따로 콩부터 확인해서 발주하는 오더메이드 제품이라 한 모에 3만 원이 넘는데. 맛 구분이 안 되는데 평론가는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아까부터 한식 느낌이 전혀 안 난다 뭐 그러시는데, 그럼 코 막힌 사람이 향수 냄새가 안 난다 하면 향수가 맹물이라도 됩니까? 본인이 혀가 막힌 건 모르시고 왜 자꾸 생가게를 잡으셔.'
"…… 빌어먹을 놈 같으니."
아마 천재라 함은 이런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리라. 하지만 대체 왜 그런 녀석이 갑자기 자신을 들이받는단 말인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아침 9시 경에 찬혁이 올린 마지막 멘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아, 오늘 여까지만. 다음에 한 번 봤으면 하네요. 선생님이 자신 있다면.'
─얘 사진 하나 올리고 말이 없네. 지금 방학 아닌가? 키배 뜨다가 자러 간 거야?
─아니, 일하러 간 것 같은데. 가게 주방 아니야?
─밤새고 바로 출근하네ㅋㅋㅋㅋ거의 미친놈인데?
─ㄹㅇㅋㅋ그나저나 저 주방 뭐냐. 엄청 깨끗하네.
─진심. 주방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사진만 봐도 빛이 나는 것 같냐.
─아니 야, 벽 봐봐. 저거 온새미로 로고 아니냐?
─어? 진짠데? 온새미로 간판 사진 봤는데 똑같음.
─얘 온새미로 직원이라서 쉴드 치려고 투기장 열었던 거냐ㅋㅋㅋㅋㅋ
─근데 쉴드 친 것 치고는 너무 공격적이었다. 거의 방밀전사
─ㄹㅇㅋㅋㅋㅋ 캡틴이 방패로 후려쳐도 저거보단 덜 아팠겠다
─…… 너, 이따 보자
이게 무슨 우연의 장난인지. 이런 쌈닭 기질이 충만한 놈이 하필이면 이때 온새미로에서 근무 중이었을 줄이야.
"…… 후, 아니. 진정하자. 아직 끝난 건 아니야."
밤새 이뤄졌던 언쟁은 사실상 차은욱의 패배였다.
갑자기 찬혁 같은 유명인사가 저토록 강하게 공격해올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에 당황한 탓이다. 그렇다고 당한 채 가만있어야 하느냐? 물론, 그럴 필요는 없다.
"사회 경험이 모자라구나, 꼬마야."
전반전은 그의 패배였다. 이대로 물러섰다간 안 그래도 구겨진 체면이 더더욱 일그러지게 되겠지. 허나 다행스럽게도 아직 상황은 막히지 않았다.
찬혁은 멘션으로 말했다. 불만이 있다면 어디 다시 한번 온새미로에 와보라고.
'제 안뜰이라고 생각했나?'
천만의 말씀이다. 바로 그 안뜰이야말로 제 목숨이 위험한 지뢰밭임을 찬혁은 모른다. 차은욱이 온새미로에 다시 가게 된다면 오히려 활로가 뚫리는 것은 이쪽이 되리라.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아직 선택지가 남아 있으니까.
저쪽도 생각이 없지는 않을 테니 다음에 다시 온새미로를 찾을 때엔 바뀐 메뉴로 자신을 맞이하겠지.
그렇다면 차은욱이 고를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 바뀐 메뉴에 대해 칭찬하는 것.
그들이 자신의 충고를 듣고 다시 옛 면모를 되찾으려 노력한 성과가 보인다 칭찬한다면, 반대로 온새미로는 이전 차은욱이 내린 평가가 옳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둘. 바뀐 메뉴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며 비평하는 것.
이쪽은 기를 세우고 맞싸우는 길이다. 또다시 지지부진한 언쟁을 펼치게 될지도 모르나 그건 그것대로 좋다. 어차피 이런 상황이 몇 번이 반복되든 선택할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
두 선택지 중 어느 쪽을 고를지는 당일에 요리의 수준을 직접 보고 결정해야 하겠지만, 어느 쪽이 됐건 자신은 크게 잃는 게 없고, 온새미로는 득 없는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그쯤 되면 이 꼬맹이도 알아서 닥치겠지.'
가게에 피해를 주는 직원을 가만 놔둘 정도로 유민하는 다정한 여자가 아니다. 그런 세간의 평가를 차은욱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은 자신의 편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차은욱은 가슴속에서 용트림하는 울화를 어떻게든 억눌렀다.
─띠링 띠링
괜히 화딱지만 돋우는 노트북을 덮어 버린 채 관자놀이를 매만지던 그때, 책상 위에 있던 인터폰이 울렸다. 짧게 두 번. 비서에게서 온 콜이다. 차은욱이 수화기를 들었다.
"뭐야?"
─아, 편집장님. 편집장님 앞으로 전화입니다.
"전화? 누군데?"
─온새미로의 유민하 셰프님이라고 하십니다만, 바꿔드릴까요?
"!"
좋다. 기다려마지않던 연락이었다.
저도 모르게 수화기를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을 느낀 차은욱이 몇 차례 심호흡을 한 뒤 답했다.
"바꿔줘."
─예.…… 됐습니다. 전환하시면 돼요.
"그래. 수고해."
─삑
차은욱은 버튼을 눌러 통화를 전환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차은욱 평론가님 되십니까?
"예. 맞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실례합니다. 온새미로의 유민하 셰프입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안 그래도 지난밤 생각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는데, 아주 좋은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며 차은욱은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릴 생각도 않고 답했다.
"아, 유민하 셰프님. 안 그래도 지난번 대접을 너무 잘 받아서 감사하단 연락이라도 드릴 차였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신 손님을 대접하는 게 저희 일인걸요.
"이야, 역시 국내 최고라는 이름이 허명이 아닙니다. 저,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다름이 아니라 어젯밤 저희 직원과 불미스런 사건이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거요? 별일 아니었습니다. 전 괜찮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짓말이다. 부디 무거운 짐덩어리를 마음에 담아두었으면 좋겠다. 차은욱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본심을 숨겼다.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민하가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해당 사건은 전적으로 저희의 직원관리가 소홀한 탓이었습니다. 주인으로서 사과를 드리고 싶어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아니아니, 안 그러셔도 됩니다. 아직 어린 친구가 가끔은 실수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하!"
맞다. 이것은 너희의 실수다. 나는 관대히 넘어가는 척 해줄 테니 뭔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봐라. 차은욱의 눈빛이 독사처럼 번들거렸다.
─이러지 않으면 제 마음도 편치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번에 그 직원과 함께 사죄를 드릴 겸 다시 한번 온새미로에 방문해주셨으면 하는데, 혹시 괜찮으실까요?
물었다!
차은욱이 흥분한 목소리를 간신히 감추고 답했다.
"아……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만…… 그래야 속이 후련하시다면야. 예, 시간이야 언제든 괜찮습니다."
─…… 그럼, 내일 모레 저녁에 방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방문 한 시간 전에 연락드리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딸깍
전화가 끊기자마자, 차은욱은 기쁨을 채 만끽할 새도 없이 바로 통화를 전환하여 비서를 호출했다.
─예, 편집장님. 부르셨나요?
"김 비서. 내일모레 오후 스케줄 싹 캔슬해."
─예, 예? 모레 오후요? 자, 잠시만요. 확인 좀…… 아, 편집장님. 모레 오후에 편집자 회의 일정이…….
"캔슬하라면 캔슬해!"
─아, 예! 알겠습니다! 다른 날로 스케줄 연장하겠습니다!
─탕!
거의 책상을 내리치는 기세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차은욱이 주체할 수 없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빌어먹을 꼬맹이. 사회의 쓴맛을 보게 해주마."
싸움을 잘못 걸었단 걸 깨닫게 해주겠다. 그의 홍소가 사무실에 메아리쳤다.
***
"…… 하여간, 상종하기 힘든 사람이네."
조심스레 수화기를 내려놓은 유민하가 고개를 저었다. 속내가 참으로 뻔한 사내였다.
어차피 혼구녕을 내주겠다느니,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해주겠다느니 의기양양하겠지. 기회를 잡은 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걔가 무슨 함정을 파놨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생각을 정리한 유민하가 사무실 바깥으로 나오자 주방에서 일하던 쿡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였다.
하나, 둘, 셋…… 주방 인원이 전원 모였음을 확인한 그녀가 입을 연다.
"잠시 하던 거 멈추고 주목하세요. 내일모레 손님이 한 분 오실 겁니다."
꿀꺽. 어디선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주방에 모인 인원 중 간밤에 일어난 사건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기에 유민하가 말한 '손님'이 누군지 금세 짐작하고 긴장한 것이다.
긴장한 면면을 둘러본 유민하의 말이 이어진다.
"메뉴가 변경될 예정이에요.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전부."
메뉴 전부? 쿡들의 놀란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오로지 한 사람. 근신을 하루 앞둔 찬혁만이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레시피는 각자 연락처로 전송해뒀습니다. 모레까지 외우세요."
잠시 입을 우물거리던 그녀가 생각 정리를 끝냈는지 찌푸린 인상으로 말했다.
"아마…… 조금 색다른 레시피일 겁니다."
히죽. 수증기 그림자에 가려진 찬혁의 입가가 반달모양으로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