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 스윗 쿡남.-6-
나는 개인적으로 평론가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
개인의 호오를 가리기 이전에 평론가라는 직업이 필요하다는 건 일단 인정하기 때문이다.
식당과 평론가는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몇몇 잘 나가는 업장은 둘째 치더라도 가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재료비와 임대료 준비하는 것만도 빠듯한 업장에게 잘 나가는 평론가의 칭찬과 덕담 한마디는 그야말로 천금과도 같은 가치를 지닌다.
평론가의 입장에서는 그런 가게를 발견해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커리어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 두 집단의 관계는 되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점만을 얻어갈 수 있는, 실제로도 그렇게 되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수준에서 교류해나갈 수 있다고 믿지만…….
'뭐, 세상이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돌아가는 곳은 아니지.'
생각대로 안 풀려서 인생이 더 재밌는 거 아니겠니? 재미는 개풀이. 생각대로 안 풀리니까 차은욱 같은 양반이 나오는 거다.
아아, 중성마녀. 너희들은 틀렸어. 사실 그 양반들도 5살짜리 꼬마가 엉덩이춤을 추면서 자기들 계획을 조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재밌지도 않았을 거고. 아니 뭐, 보는 사람은 재밌었다만.
아무튼 작금의 상황은 그 '이상' 뒤에 감춰진 폐해라고 보아도 되겠지.
수요와 공급, 간단한 산수가 그 집단의 불평등을 야기한다.
사람이 밥 먹을 식당이야 수두룩 빽빽하지만 그에 비해 평론가의 수는 너무 적다. 너무 적기에 오히려 희소성이 생긴다.
쉽게 말해 식당 하나 없어지는 거야 사람 한 명한테는 좀 아쉬운 일에 불과하지만 유명한 평론가가 하나 은퇴하는 건 사회에 주는 파급력이 다르다는 거다.
이미 온갖 것이 너무 풍부하여 풍요 속 빈곤을 겪는 현세대의 사람들에게 희소함이란 그 자체로 권력이 된다. 차은욱 같은 사람이 여태껏 띠꺼운 발언을 서슴없이 해대도 여태껏 아무 탈 없이 평론가 노릇을 계속해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지금까지는 할 만했겠지."
차은욱이 저렇게 어그로를 끄는 데에 망설임이 없는 이유는 본인의 유명세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부분의 업장이 전면적인 맞대응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싸움은 업장 측에게 불리하다. 한 문장의 거짓말로 이루어진 선동을 틀렸다고 증명하기 위해 논문이 필요하단 말도 있듯이,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업장에서 뭐가 좋다고 컴퓨터 앞에 매달려 논쟁을 이어나가겠는가.
적당히 '저흰 그러지 않습니다', '그건 사실과 틀린 내용입니다' 같은 말만 몇 마디 하다가 여론이 적당히 잠잠해질 때쯤이면 그냥 사건을 묻어 버리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차은욱의 유명세는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올라가고 말이다.
리뷰창을 가득 채운 별 다섯 개짜리 리뷰 사이에 낀 별 하나짜리 리뷰에도 손을 벌벌 떠는 게 식당의 주인이다. 그에 비해 차은욱 같은 양반은 악평이 끼든 말든 적당한 선만 지켜낸다면 그를 찾는 사람이 전국팔도에 줄을 섰고.
이런 불평등한 게임을 손해 봐가며 할 이유는 없다.
반대로 리스크에 비해 리턴은 어마무시한 어그로를 차은욱이 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그래, 그러니까 그랬겠지.
편하니까, 크게 잃을 것 없이, 무조건 이기는 도박을 하는 기분으로 그래왔겠지.
그런데 어쩌나.
사람을 잘못 건드셨어. 당신.
***
이튿날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오랜만에 주방이 아닌 사무실에 앉은 유민하의 얼굴에는 웬일로 수심이 가득하다.
출근만 하면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는 일이 극단적으로 적은 그녀가 이 고시텔 쪽방만도 못한 자그만 사무실에서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간단했다.
"…… 어쩐지 오늘 얼굴이 흙빛이더라니."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두 개의 모니터 중 한 곳에 그녀의 시선이 쏠렸다.
화면에 떠오른 것은 세간에 유명한 어느 sns사이트의 도메인.
우상단에는 언젠가. 정확히는 어제 보았던 건장한 체구의 장년 남성의 사진이 보인다. 차은욱의 계정이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짧은 문장에 주소 한 줄이 쓰인 단출한 멘션. 하지만 그 멘션에 달린 덧멘션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유민하는 딱히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저 주소로 들어갔을 때 대충 어떤 말이 쓰였을지도 감이 잡혔고, 그 글을 읽은 팔로워나 어그로에 긁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호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그건 말 그대로 모르는 사람일 때의 이야기고.
그녀와 면식이 있는. 아니, 그 수준이 아니라 제법 잘 아는 사람이 그 속에 섞여서,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잔뜩 받고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람. 채 끝맺지 못한 말이 입속에서 우물거리듯 튀어나왔다.
류찬혁. 화면 속에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 수십 개가 넘게 자리하고 있었다.
흔한 이름도 아니고, 프로필 사진도 본인 얼굴 그대로.
거의 10분에서 20분 단위로 계정주인 차은욱과 설전을 벌인 흔적은 자정을 넘어 새벽 다섯 시를 살짝 넘은 지점에서 끊겨 있었다.
그 내용을 아주 간단하고 짧게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너가 그렇게 요리를 잘 알아? 온새미로로 다시 와.
장장 30분에 걸쳐 찬혁과 차은욱의 논쟁을 눈으로 훑던 그녀가 잔뜩 구겨진 미간을 주물렀다.
'얘는 시키지도 않은 걸.'
화면 속 찬혁은 그야말로 부모 욕이라도 들은 사람마냥 차은욱에게 달려들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투견이 피를 보고 눈이 훼까닥 돌아가면 이러지 않을까 싶은 기세로.
그 와중에 웃긴 건 그렇게 눈이 훼까닥 돌아간 것 치곤 사용하는 어휘가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대화 사이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깊은 지식의 편린은 이 두 사람의 유치한 말다툼을 학계의 교수끼리 토론을 나누는 것처럼 탈바꿈시키고 있었다.
…… 뭐, 교수의 토론치고는 좀 너무 격렬하긴 했지만.
찬혁이 이토록 거세게 달려든 이유를 모를 유민하가 아니다. 사람은 자신과 관련 없는 사람의 일에 너무 큰 감정을 소모하기 힘든 존재다. 그 말은 즉, 찬혁이 온새미로에 그만큼 큰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겠지. 고작 요 며칠 일한 사람답지 않게 큰 소속감을 말이다.
솔직히 고맙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정직원도 아닌 견습이 가게 일에 완벽히 적응해서 소속감까지 가져준다니, 유민하의 한평생을 걸고 말하건대 그런 사람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이럴 때 가게는 기본적으로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게 옳다. 어차피 무어라 말을 해봤자 호시탐탐 눈을 빛내는 굶주린 짐승에게 먹이만 던져주는 꼴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걸 견습이라곤 해도 온새미로의 직원이 나서서 들이받아 버렸으니, 조금 난처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거기다 차은욱까지 얼씨구 좋다꾸나 똑같이 이쪽을 들이받았다. 이 정도면 그냥 시원하게 센터를 까고 전면전을 하자는 태도다.
'어쩐다.'
모니터를 끄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유민하가 길고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주방 일로 이렇게 머리가 아팠던 적이 얼마 만인지.
눈을 감은 채 잠시 고뇌를 거듭하던 유민하는 끝내 주방으로 이어진 무전기를 손에 쥐었다.
"아아, 주방 나오세요. 들리나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귀에 익은 딸의 목소리다.
─네, 넵! 들립니다. 무슨 일이세요?
한껏 당황했음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유민하가 평소와 다른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브레이크 타임 때 류찬혁 쿡 사무실로 보내주세요.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혀, 혁이. 아니, 류찬혁 쿡이요? 알겠습니다…….
할 말만 하고 딱 끊긴 무전기. 백예은은 제 조리복 앞치마에 매달린 무전기를 한탄스런 손길로 매만지다가, 이내 시야 한구석에 위치한 찬혁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 하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다.
백예은이 작금의 상황을 대강이나마 파악한 건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칠 때쯤이었다. 평소처럼 토스트로 조촐하게…… 라고는 해도 업소용 식빵 봉지의 반절 가량을 구운 분량이었지만. 아무튼 그것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치우며 핸드폰을 두드릴 때였다.
백예은도 이 나이대의 여자아이니만큼 sns 활동이 잦은 편이었고, 틈날 때마다 제 계정이며 실시간 인기태그 따위를 검색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왠지 굉장히 눈에 익은 이름 두 개가 실시간 인기태그 상위 1, 2위를 점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차은욱은 그러려니 했다. 어제 온새미로에 다녀가서 올린 글이 화제라도 됐겠지 싶었으니까.
그런데 그 아래, 류찬혁이란 이름은 그리 쉬이 넘어갈 수가 없었다.
"…… 혁이가 왜 거기서 나와?"
동명이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해시태그를 중점으로 식사까지 잊고 검색에 몰두한 그녀는 곧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상황이다.
'틀림없어. 엄마도 안 거야.'
안 그러면 갑자기 일 잘 하고 있는 애를 사무실로 부르겠는가. 부요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인 섹션 담당을 제외하면 일반 쿡이 사무실로 들어가는 건 오직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승진. 그리고 또 하나는 해고.
말 그대로 극락행, 지옥행을 판결한다는 염라대왕의 어전 그 자체인 장소.
그런 곳에 찬혁을 불렀다는 건, 굳이 앞선 두 가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정말, 어쩌려고 그래……."
백예은은 저 무덥다 못해 화끈한 디저트 섹션에서 잠도 안 자고 평소 모습 그대로 업무에 몰두하는 찬혁의 모습을 원망과 걱정이 섞인 기색으로 살폈다.
이제 어떻게 될지, 그녀도 정말 알 수가 없었다.
***
"하루 동안 근신하세요."
브레이크 타임.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유민하 셰프에게 들은 말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도 안다. 내가 꽤 거창한 사고를 쳤다는 것쯤은.
작금의 상황을 보면 이런 거다.
아직 정직원은커녕 인턴도 못된 사원이 회사 이름을 등에 지고 개인에게 싸움을 걸었다. 뭐, 먼저 시비를 턴 건 저쪽이니 하는 이야기를 다 제쳐두면 이게 바로 팩트다.
확실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습할 능력도 안 되는 견습이 이만한 사고를 쳤는데 하루 근신으로 끝나면 선방이지. 솔직히 현장학습 짤리는 것도 각오하고 있었다.
"…… 여태껏 쉬는 날 없이 일했죠? 어제는 잠도 안 잔 것 같은데, 머리 좀 식히고 와요."
유민하 셰프는 내게 징계를 내리는 것처럼 말씀하시긴 하지만 그 속내를 모르진 않는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하루 정도 일 생각 말고 푹 쉬고 오라는 뜻이다.
고마운 배려였다.
하지만 그 배려가 죄송하게도,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셰프, 혹시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죠?"
"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민하 셰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나를 향한 배려는 분명 감사하다. 근데 나는 못 한다.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아니,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융숭한 대접까지 해줬는데 싸대기 맞고 물러나라면 누가 그럴 수 있으랴.
중요한 건 내가 아니다.
온새미로란 이름이 그런 취급을 당하는 건 부당하다는 거다.
"온새미로는 셰프가 처음부터 여기까지 키우고 기른 곳입니다. 식당 영업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압니다. 이만한 가게가 하루이틀 만에 뚝딱 하고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도요. 아무리 제 경력이 미천해도 상식은 있습니다."
"그럼 지금 이게 상식적인 행동이란 뜻인가요?"
"아닙니다. 하지만 먼저 상식을 제쳐둔 건 차은욱 평론가 아닙니까."
"…… 말은 잘 하네요. 그래서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나요? 차은욱 평론가는 당장 다시 찾아와 결판을 낼 것처럼 굴던데요. 계속 이렇게 대립각을 세워봤자 저희는 잃을 것밖에 없어요. 류찬혁 쿡도 그걸 모를 만큼 멍청하진 않을 겁니다."
유민하 셰프의 정론을 내세운 말. 해결할 방안도 없이, 상대가 유리한 게임에 먼저 도전장을 내미는 건 분명 정신 나간 짓이긴 하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그 게임을 이길 방법이 있다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제 승리를 믿고 도박판에 앉은 타짜가, 사실 자길 뺀 노름꾼이 죄다 짰다는 걸 모른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걸 읽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건……."
내가 고작 키보드 배틀이나 뜨자고 내 소중한 수면시간을 포기하고 그 양반하고 질 떨어지는 언쟁이나 벌였을까?
날 우습게 여기지 말았으면 한다. 나도 다 계획이란 게 있는 놈이니까.
"어제 밤부터 준비한 레시피입니다."
"그건 보면 알아요. 이걸로 뭘 어쩌겠다는 건가요? 어차피 무슨 메뉴로 바꾸든 결과가 크게 달라지진……."
게슴츠레 뜬 눈으로 레시피 북을 팔랑이는 유민하 셰프의 말을 끊고 말했다.
"보시면."
"……."
"보시면, 압니다."
말을 끊은 것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것인지, 잠시 내 눈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주본 유민하 셰프가 그대로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레시피북을 펼친다.
좋다. 어디 한 번 보긴 해주마. 하지만 별거 아니라면 곱게는 안 끝날 줄 알아라. 그런 감정이 눈빛에 그대로 담겼다.
"……."
그런데, 그런 유민하 셰프의 시선이 레시피를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기묘하게 변한다.
어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페이지를 넘길수록 유민하 셰프의 얼굴이 다양한 감정으로 물든다.
─팔락, 팔락
서로 한마디 말도 없이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사무실.
잠시 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유민하 셰프가 내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허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류찬혁 쿡, 실례일 수도 있겠는데 하나만 물어볼게요."
"예."
"혹시 병원에서 인성검사 같은 거 받아본 적 있나요?"
"…… 예?"
무슨 뜻이냐는 듯 짐짓 당황한 척 과장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는 유민하 셰프의 얼굴은, 그런 나보다 더욱 당황스런 색채로 물들어있었다.
"받아본 적 없으면, 근신 중에라도 가서 받아보는 걸 추천할게요."
그렇게 말한 유민하 셰프의 손이 움직였다.
날 향해서가 아니라, 셰프의 사무실 탁자 쪽을 향해서.
"그거랑은 별개로, 이건 제가 맡아두죠."
"그럼……."
"재밌네요. 정말로."
유민하 셰프의 눈이 초승달처럼 휜다.
그게 꼭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닮아서, 나도 모르게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