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 스윗 쿡남.-5-
일이 끝난 뒤, 나는 같이 저녁이나 먹자며 치근대던 백예은과 다른 쿡들의 권유마저 물리고 급하게 호텔로 돌아왔다.
"왜? 무슨 일 있어? 뭐가 그리 급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그런 게 있어. 오늘은 먼저 좀 들어간다."
그래. 무슨 일이 있긴 하지.
호텔 현관으로 들어온 나는 내게 고개를 숙이는 카운터 직원의 인사에 어설프게 고개를 꾸벅이고 서둘러 내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시계다. 이제 막 열 시를 넘어간 시침. 그렇다는 건…….
'차은욱이 다녀간 지 2시간 정도 지났다는 거지.'
6시 반 정도에 입점해서 8시가 되기 전에 디저트가 나갔으니, 아마 시간계산이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
자, 그럼 여기서 슬슬 내가 왜 그런 걸 신경 쓰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을 수 없다.
'왜긴 왜야. 전부 차은욱 때문이지.'
차은욱은 음식 평론가 중에서도 꽤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아마 잡지사 하나보다 개인의 이름값이 더 높은 몇 안 되는 평론가 중 한 사람.
그게 어그로와 찌라시에서 나온 유명세라는 게 못마땅할 뿐이지, 의외로 혀 하나만 놓고 본다면 실력 자체는 진짜 있는 사람이다.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진중한 평론에서 엿보이는 셰프 수준의 미각과 식당에 대한 관념은 실력이 없으면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었기에.
뭐,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갖췄든 사용하는 방향이 그래서야 다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요리사인 내 관점에서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적어도 그의 미식적 경험과 감각, 그리고 평론에 쓰이는 필력은 소비자인 독자들에게는 제법 큰 수요가 있었다. 차은욱 개인의 sns계정에 딸린 팔로워와 구독자의 숫자가 그 증명이다.
"그런데 이건……."
생각보다 좀 너무 많은데?
호텔에 구비 된 간단한 인터넷 서핑 정도나 간신히 가능한 저사양 컴퓨터가 고된 노동을 시키지 말라며 항의하는 듯 뻑뻑한 소음을 내며 돌아간다.
씻지도 않고 컴퓨터를 먼저 켠 보람이 없게 느껴질 만큼 느릿하지만, 아무튼 모니터에 뜬 계정과 해시태그 아래로 달린 수십만 단위의 숫자는 그런 불만을 절로 잊게 만들 정도다.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끝도 없이 늘어나는 멘션을 보면 숫자의 힘이라는 건 대단하구나 싶었지만, 그보다 내 시선을 끄는 곳은 다름 아닌 계정주, 차은욱이 직접 올린 메인 멘션에 적힌 글귀였다.
"오늘 저녁은 온새미로에서."
그리고 온새미로의 정문에서 찍은 사진이 한 컷. 올라온 시간을 확인하니 대략 6시쯤. 아하, 이건 우리 가게에 들어오기 직전에 찍은 사진인가. 무슨 카메라를 쓰는지 화질이 썩 훌륭하다. 구도도 좋고. 노을빛을 반사하는 온새미로의 하얀 외벽이 꼭 영국의 고성을 보는 것처럼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하긴, 요리 평론가한테 필수인 게 사진 찍는 실력이니.'
그다지 놀랄 것도 없지.
오히려 놀라운 건 그 아래로 끝도 없이 달린 멘션이다.
─와! 온새미로! 온새미로 아시는구나! 겁.나.비.쌉.니.다.
─온새미로 부모님 생신 때 갈까 고민 중이었는데, 평론가님 이야기 듣고 결정해야겠어요!
─진짜 태어나서 한 번은 가야지 생각한 곳인데…… 안 좋은 후기가 없잖아요, 거긴.
이런 식으로, 대부분은 호의가 느껴지는 말들이었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은 것도 그사이에 섞여 있었다.
─온새미로? 거기 뭐 순 비싸기만 한 곳 아닌가. 음식 모르는 사람은 가서 돈 버리는 곳 아님?
─자고로 음식은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이면 충분하지. 깍두기에 김치에 시원한 물에! 어? 국밥집 가면 반찬이 복사가 된다고! 하여튼 저런 데서 돈 펑펑 쓰는 애들은 철퇴로 인중을 찍어 버려야 돼.
─할 말은 한다, 차카콜라! 평론가님 또 시원하게 까주실 거죠? 기대합니다!
라는 둥의, 여하튼 좋고 나쁜 말이 뒤죽박죽 뒤섞여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아직 안 올라왔네?'
원래 차은욱이 그토록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특유의 빠른 손 때문이다.
하루에 세 끼를 먹으면 그 세 가게에 대한 리뷰를 당일에 올리는 속도. 그러면서도 세세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는 부분은 나름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한다. 근데 그것도 도를 지켜야 대단한 거지, 글 열 개를 싸면 그중 일곱에서 여덟 정도는 돌려 까고 풍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유독 그가 칭찬하는 내용을 남긴 식당이 있으면 그곳은 그 수혜를 톡톡히 보곤 했다. 왜, 맨날 맛대가리 없는 밥만 먹다가 가끔 면식 나오면 좋다고 먹지 않는가. 어차피 맛도 거기서 거긴데 말이다.
사람은 본래 가끔 보여주는 다른 면모에 쉽게 끌리는 법이다.
어쨌든, 그런 사람이니만큼 적어도 오늘 자정이 넘어가기 전에는 글이 올라오지 않을까, 혹은 이미 올라와 있지 않을까 하여 서둘러 귀가한 건데 아무래도 종친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을 들일 셈인가.'
하긴, 오랜만에 문 대형 떡밥인데 너무 빠르게 소모하기에는 아쉬웠겠지.
이럴 거면 얌전히 밥이나 먹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에 주린 배를 쓰다듬으며 '마지막으로…….'라는 심정으로 새로고침 버튼을 누른 그때였다.
"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팔로잉이 주르륵 달렸던 멘션이 사라지고 다른 것이 메인을 차지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단촐한 한마디와 링크가 걸린 주소가 한 줄.
이거다. 내 느낌이 그렇게 외쳤다. 애당초 안 봐도 뻔한 것이긴 했지만.
나는 지체없이 바로 그 주소를 클릭했다. 트래픽이 많은 사이트라 그런지 컴퓨터가 위이잉 하는 거친 소음을 내며 힘겹게 인터넷 창을 출력한다.
마치 구식 프린터가 인쇄하는 것 마냥 한 줄, 한 줄. 느릿느릿 떠오르는 페이지.
잠시 후, 간신히 로딩이 끝난 화면에는 이러한 제목이 쓰여 있었다.
─온새미로. 더할 나위 없는, 그러나 이름값은 못 하는.
…… 뭐?
이 양반이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지?
***
─한국 땅에서 한정식 식당을 꼽으라면 그야말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름이 나오겠지만, 그중 최고를 꼽으라고 한다면 반드시 들어가는 두 식당이 있다.
하나는 대령숙수의 혈통을 이은 안씨 가문에서 대대로 운영해온 한식당, 안가람.
또 하나는 바로 내가 오늘 찾은 식당이자 앞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을 온새미로.
이 두 식당은 재미있는 관계로 묶여 있다.
같은 강남땅에 자리한 두 가게는 각각 안상필 대가, 유민하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위치가 서로 가까우며, 비슷하게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가게지만 그 이념은 제법 큰 차이를 보인다.
안가람은 전통을 중시하며 옛 조선의 고급한식을 현대의 기술로 되살려 그 시대의 맛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면, 온새미로는 전통에 기반을 두되 여러 나라의 조리기술을 곁들인 퓨전 요리가 주력이다.
뿌리는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내놓는 두 가게는, 오히려 그 연관성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유명한 라이벌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나는 꽤 예전에 안가람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경험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돌만큼 감탄 일색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온새미로에도 굉장히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라이벌 관계가 아닌가?
베시가 있다면 로날두가 있는 것처럼, 라이거 우즈가 있다면 잭 니콜라우스가 있는 것처럼.
라이벌이라 함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대등한 관계를 뜻하는 말이니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그 기대는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다.
온새미로가 나에게 선사한 경험은 여태껏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던 안가람의 그림자를 그 순간만큼은 깔끔하게 지워내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선, 내 머리에 드리운 그림자의 반절 이상의 지분을 안가람과 온새미로가 차지했다. 라이벌이라 함은 허명이 아니었다.
"아니, 그러면 그 제목은 대체 뭐냐고."
기나긴 서론 아래로는 차은욱이 먹은 요리의 사진과 감상이 장황하게 쓰여 있었다.
과연, 실력은 있다. 사진을 보고 글을 읽을 뿐인데도 입에 군침이 돌게 만드는 필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지금 혀를 빼물었다간 침이 질질 흐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요리사로서는 기쁜 이야기가 잔뜩 쓰여 있었다.
이만한 메뉴를 준비하는데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었을지 짐작도 못 하겠다느니, 재료의 수준이 십 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려울 정도라느니 하는 말은 분명 듣기 좋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뒤로 이어진 글에 숨어 있었다.
─전채. 아니. 식전주부터 디저트까지. 대단하지 않은 메뉴는 장담컨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메뉴가 셰프의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작은 요소 하나하나까지 꼼꼼한 검산과 검토 후에 만들어진, 그야말로 예술품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마지막 디저트를 먹을 때 나는 조금 생경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가게의 이름인 온새미로는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긴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라는 뜻이 담긴 순우리말이다.
유민하 셰프는 가게에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적 있다. '설령 다양한 요리법이 합쳐진 메뉴라고 하더라도 그 속을 너무 쪼개서 이건 이 나라의, 저건 저 나라의 요리법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그저 접시 위에 놓인 하나의 요리로 보아달라는 바람이 담긴 이름'이라고.
그렇게 말한 유민하 셰프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것을 쪼개서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한식을 주체로 한 퓨전요리. 그것이 온새미로의 슬로건이고, 그것을 위시하기 위한 순우리말 간판이다. 하지만 온새미로에서 오늘 내게 보여준 이 요리가 정말 한식을 주체로 한 것이 맞을까?
나는 오늘 내가 맛본 요리에서 한식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무대 위에 K─POP이란 이름을 대고 올라온 걸그룹의 멤버가 전부 중국, 대만, 일본 등에서 온 외국인으로만 되어 있는 것을 본 기분일 따름이다.
전채로 나온 육회는 그 재료만 쇠고기를 썼다뿐이지 실상은 프랑스 요리인 타르타르와 다른 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메인으로 나온 모듬숙회와 뱃살 스테이크는 전통 일식이라고 내놓아도 무방했다.
식사 메뉴였던 도미맑은탕 국밥은 일본의 오차즈케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나온 디저트. 이것에서 나는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의도를 느꼈다.
참마를 섞어 만든 터키식 흑임자 아이스크림 위로 장식된 프랑스, 일본, 영국 과자들. 나는 이 메뉴로부터 그 어떤 한국적인 정취도 느낄 수 없었다.
오해는 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온새미로의 요리는 최고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걸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깊게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쪼개지 말고 하나의 요리로 보아달라는 말 뒤로 한식의 지분을 없애가는 것이 정녕 유민하 셰프의 참뜻이란 말인가?
그러하다면 온새미로라는 간판을 단 이유가 무엇인가.
식당은 맛있는 요리를 위생적이고 친절하게 고객에게 제공하면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 손에 꼽는 한식당이, 뒤에서는 한식을 손에서 놓아가는 모습이 나는 그저 참담할 뿐이다.
더 나아지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필요가 보인다.
그것이 내가 온새미로에게, 유민하 셰프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충고다.
"하, 하하."
그 글을 끝까지 읽은 내 입에서 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는다는 게 이런 건가. 하, 하하. 입에서 문장이 되지 못한 소리가 맥없이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이런 거였구나."
없던 싸움도 만들어낸다는 말의 참뜻을 이제야 알겠다.
솔직히 인정하자. 이 양반, 진실과 거짓말을 교묘하게 섞는 솜씨가 미치도록 뛰어나다.
이 리뷰를 본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곤 사진에 찍힌 겉모양과 차은욱이 쓴 글이 전부다.
그렇기에 유민하 셰프가 저 메뉴에 얼마나 한식의 정서를 담으려 했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아마 알고 싶은 생각도 없겠지. 사실 알 방법도 없다.
막말로, 이놈은 지금 정보의 불평등을 이용해 독자를 속이고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다.
그 꿍꿍이가 내 눈에는 훤하게 보였다.
이건 말 그대로 어그로다. 진지하게 대응해주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타입의 어그로.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내 두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본래 가입도 안 했던 sns계정을 파고, 실명과 프로필 사진마저 그대로 노출한 채 차은욱에게 바로 멘션을 박았다.
─개소리를 아주 천진난만하게 꾸미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회귀 전에도 느낀 적 없던 키보드 워리어의 피가 끓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