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스윗 쿡남.-3-
'평론가는 기생충이다.'
차은욱의 오랜 지론이다.
태어나 45년. 요리사로서 5년. 평론가로서 15년.
자그마치 인생의 3분의 1가량을 쏟아부은 직업에 대한 평가치고는 너무도 박한 대우였으나, 차은욱은 한 치의 흔들림도, 주저도 없이 자신의 직업을 그렇게 취급했다.
조금 더 젊은 시절, 지금 떠올리면 드문드문 빈공간이 남은 과거의 기억 속의 차은욱이 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꺼낼 때마다 돌아오는 반감은 만만치 않았다.
"기생충? 야 인마, 너는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하냐. 그럼 뭐, 우리는 다 거머리고, 연가시야?"
"그럼. 틀립니까?"
"아니, 이 새끼가 진짜."
"애당초 평론이라는 게 뭔데요? 남이 해놓은 거에 잘난 잣대나 들이미는 거 아닙니까. 남이 만든 게 없으면 자기 먹고살 길도 불분명해지는 생물이 기생충이 아니면 뭡니까?"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마다 어떨 때는 욕을 듣고, 어떨 때는 무시당하고, 어떨 때는 얻어맞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은 여태껏 변치 않았다.
'우스운 짓거리지.'
평론評論.
잘잘못을 살피어評 말하는論 것.
고로 평론가란 남의 잘잘못을 살피어 말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 말은 즉, 잘잘못을 살필 대상이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차은욱은 이런 것이 직업으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직업이 있다는 것은 어떤 경로로든 그 직업이 생산해내는 것을 소비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어째서 남이 평가하는 것을 돈까지 써가며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지 젊은 날의 차은욱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만을 넘어 수십만에 달한 팔로워와 구독자를 보유한 차은욱은 아직도 팬이랍시고 자신을 추종하는 그들의 머릿속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업계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라면 질릴 만큼 알게 됐다.
자신의 가게를 부흥시키고 싶은 이들. 반대로 남의 가게를 몰락시키고 싶은 이들. 그 외에도 자신의 생각에 동조해주는 누군가를 원한 이들이 돈을 지불한다.
본래 단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며 그걸 알리고픈 마음을 간직했던 순수한 청년은 그런 세계에서 살아오며 차츰차츰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전철을 밟았다.
원하는 기사가 있으면 그것에 맞춰 집필하고.
어떻게든 이름을 알리기 위해 찌라시로 어그로를 끌고.
그렇게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온 20대 청년은 어느새 45세의 차은욱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인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인지는 그 본인조차 모른 채로.
***
좋은 시대였다.
차은욱은 자신이 이만큼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시대의 공으로 돌렸다.
그 말을 들은 차은욱이 소속된 잡지사의 후배가 추임새를 넣는다.
"에이, 다 선배님이 잘 하신 덕분이죠."
여리여리한 체구에 족제비 같은 인상을 둥그런 무테 안경으로 가린 남자, 정찬국이 날린 아부에 차은욱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50년 전만 해도 남이 만든 요리에 이래라저래라 잔소리 좀 늘어놓고 칭찬 몇 마디 해주는 걸로 먹고 사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인간이 역사라는 걸 쓰기 시작한 지 만 년이 지나서야 가능해졌지."
"그리고 그게 다 독자들 덕이라고요?"
"…… 알면 말을 가리면서 해라. 저번에 사석에서 헛소리 늘어놓다 걸릴 뻔한 건 벌써 잊어먹었냐."
"에헤헤, 죄송합니다."
마치 자신의 말을 신봉하는 독자들을 위하는 것 같은 말이었으나, 그것이 본심이 아니라는 건 청자인 정찬국도, 화자인 차은욱 자신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이는 자신에게서 눈을 돌린 차은욱을 백미러를 통해 곁눈질한 정찬국이 신호에 따라 핸들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온새미로라니, 제법 큰 건수 아닙니까? 여태껏 취재목적으로 예약을 넣어도 전부 퇴짜만 맞았잖아요. 고작 음식이나 만들어 팔면서 모가지 한 번 더럽게 빳빳해요."
"늙은이들한테 비싼 술 사 먹인 보람은 있었다는 거지."
"하여간 골방 늙은이들. 식당으로 재미 좀 봤으면 됐지 무슨 협회를 한다고."
"그 덕에 건수가 생긴 거 아니냐. 골방 늙은이어도 서울 땅에서는 제법 끗발이 서는 양반들이다. 이 업계에 계속 있을 거면 알아둬서 나쁠 거 없어."
"알겠습니다. 저기 근데, 선배님?"
"왜."
"이번에는 어떻게 쓰실 생각이십니까?"
차은욱은 자신의 의중을 떠보는 정찬국의 속셈을 알았다.
온새미로는 벌집이다.
함부로 건들면 벌떼가 튀어나와 온몸을 쏘아대지만, 제대로 깨부수면 그 속에 가득 들어찬 꿀을 양껏 빨 수 있는 위험하지만 맛좋은 먹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리턴을 얻느냐, 혹은 리턴을 포기하고 리스크를 없애느냐.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면 애당초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터다.
그렇다고 벌떼에 쏘이는 것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녀석도 그게 싫어서 이러는 거겠고.'
사람이 벌에 쏘이지 않고 벌집을 따려면 머리를 써야 한다.
낙엽을 모아 연기를 피워 벌을 쫓아내든, 벌에게 쏘여도 멀쩡할 보호복을 입든.
하지만 곰이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두꺼운 털가죽은 벌에게 몇 번을 쏘이든 아무 문제 없이 멀쩡할 테니까.
인간 정찬국은 연기를 피울 시간도, 안전한 보호복도 없다.
그러니 벌에 쏘여도 멀쩡한 곰, 팬이라는 털가죽을 두른 차은욱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요컨대 곰이 재주를 부리면 떨어진 콩고물이나 주워 먹자는 생각이겠지.
'이놈도 역시 기생충이다.'
그리고 차은욱 자신 또한 기생충이다.
좋은 시대다.
통신기술의 발달로 개인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지자, 사람들은 지식의 충족이 아닌 관계의 충족에 매달렸다. 그야말로 광적으로.
차은욱은 말하자면 매개체다. 물을 찾는 짐승이 호수로 모여들듯이 자신을 이해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맨 이들의 호수.
차은욱과 그 주변에 모인 이들을 자신의 이해자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을 채우는 그들 또한 똑같은 기생충이 아닐까. 차은욱이 냉소했다.
그렇다. 기생충이 만연한 시대다. 그렇기에, 같은 기생충이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대다.
만약 그들과 차은욱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기생충이라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그리고 기생할 상대를 제대로 판별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뿐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기생충이 있다.
하나는 그저 숙주에 달라붙어 목숨을 연명할 뿐인 것.
다른 하나는 숙주의 생명마저 먹이 삼아 제 우화의 제물로 쓰는 것.
차은욱은 그 양면을 자유로이 오가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어떤 국면에 어떤 숙주를 택하여 어떻게 기생할지를 판별할 줄 안다.
"시끄럽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에이, 알려주시면 덧납니까?"
"쓰읍."
"아, 예이예이.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털어놓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장사 밑천을 까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불만을 웃음 뒤로 감춘 정찬국을 힐끗 노려본 차은욱이 차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그저 공허하게 차은욱의 망막을 스쳤다.
잠시 후, 일행이 탄 차는 어느덧 온새미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조명에 비친 외벽이 꾹 닫힌 조개껍데기처럼 보였다.
'자, 저걸 어떻게 해야 할까.'
단단한 껍데기 속 속살만 파먹을지, 그 속에 숨긴 진주까지 꺼내 갈지, 혹은 그 껍데기마저 자개의 장식으로 쓸지.
차은욱의 냉철한 시선이 바쁘게 견적을 뽑기 시작했다.
***
"얘들아, 왔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던 메인 담당, 기창대 쿡이 주방에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소리쳤다.
유민하 셰프가 들었다간 눈살을 찌푸렸을 만큼 커다란 외침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마침 자리를 잠시 비우신 참이었기에 빈자리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메인 서브 조영규 쿡이 입을 열었다.
"깜짝이야! 깜박이 좀 켜고 다녀요! 오긴 누가 와요?"
"셰프가 말했던 중요한 손님 있잖아! 지금 왔다고!"
"아니, 그게 뭐요. 올 사람이 온 건데 뭐 놀랄 거 있나."
조영규 쿡의 말이 맞았다. 결국 해봤자 예약 손님이 왔을 뿐인데 저렇게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은 그런 내 생각을 뒤바꾸기엔 충분한 파급력을 갖고 있었다.
"같이, 같이 온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안 봤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왜요. 누군데요?"
"차은욱! 차은욱이 왔다고!"
"…… 예?"
뚝.
나를 포함해 주방에 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마치 공장의 비상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것마냥 동시에 멈췄다.
"…… 차, 차은욱?"
"잠깐만요. 그거 혹시 내가 아는 차은욱인가?"
"맞다고! 그 차은욱이라고!"
차은욱. 나도 잘 아는 유명한 음식평론가였다.
'유명한 게 안 좋은 쪽이라서 문제지.'
칭찬할 때는 칭찬을 하지만, 신랄한 독설과 직설적인 말투로 인기와 악평을 동시에 얻은 양반이다.
그냥 딱 그 정도면 좋았을 텐데, 문제는 업자 입장에서 보면 부당한 지적 또한 분명 많았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너무 과한 악평 탓에 실제로 매출에 손해를 본 가게 또한 제법 됐다는 것이겠지.
커뮤니티에 그 사람과 관련된 글이 올라가기만 하면 댓글창에서 빠와 까가 서로를 물어뜯기 바빴다.
회귀 전에도 몇 차례 들어본 적 있는 이름. 프랑스에서 지내던 내 귀에 이름이 들어올 정도면 어느 수준이었는지 짐작이 가는가? 공신력은 둘째 치더라도 화제성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아무튼, 적어도 외부 평판에 관심을 가진 점주는 차은욱을 굉장히 꺼려했다.
그렇다고 취재 요청을 거부하거나 하면 특유의 어그로로 고객을 가려 받는 식당이니, 켕기는 게 있어서 저런다느니 하는 딱지를 붙여 팬의 공격 대상으로 만드는 일도 흔했고 말이다.
뭐, 본인이야 '난 그저 억울함을 토로했을 뿐이다. 내 팬들이 민폐를 끼친 건 미안하지만 그건 결코 의도가 아니었다'며 발뺌하기 일쑤였지만.
'어쩐지 뭔가 불안하더라니…….'
아침부터 좋지 않은 느낌이 들던 건 이걸 예견한 것이었나.
이럴 거면 차라리 특기를 살려서 점쟁이가 되어 좌판을 까는 게 낫지 않을까 헛소리를 머리로 되뇌고 있을 때쯤이 돼서야 주방의 소란이 가라앉았다.
"다들 뭐 하는 건가요?"
자체적으로 수습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개입 덕분이었지만 말이다.
"셰, 셰프."
"예약 손님 오셨으니 바로 준비하세요. 곧 주문 들어옵니다."
"옙!"
들어오자마자 레이저 같은 눈빛과 싸늘한 몇 마디 말로 단숨에 상황을 정리한 유민하 셰프가 백예은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왜 이렇게 되도록 통제를 못 하고 있었냐는 의미겠지.
죄송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백예은의 모습에 난 고개를 저었다. 쯧쯧, 거 참. 엄격한 교육도 좋지만,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분명 주방 통제는 셰프의 덕목이지만 아직 어린 애한테 너무 많은 짐을 얹어주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윽고 시선을 거둔 유민하 셰프가 박수로 쿡들의 이목을 끌며 외쳤다.
"평소대로 합시다, 평소대로! 그러면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글쎄, 그건 어떨까.
내 기억 속 차은욱은 화제가 커진다 싶을 때엔 없던 싸움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남자로 남아 있다.
과연 그런 양반이 온새미로라는 미끼를 물지 않고 얌전히 밥만 먹고 돌아갈까?
…… 솔직히, 나는 좀 부정적으로 본다.
'거기다…….'
이 묘한 느낌. 신발 밑창에 자갈이 들어간 것 같은 이 거슬리는 감각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