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라인 스왑.-5-
유민하가 서늘하리만치 날이 선 눈빛을 번뜩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데굴데굴 눈꺼풀 아래를 구르며 온 주방을 바라본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검술의 고수는 사람이 검을 휘두르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안다'고.
솔직히 터놓고 말해서, 이 말은 일정한 경지에 이른 달인에 대한 모종의 환상이 만들어낸 허황된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대체 왜 있겠는가? 평생 붙어살아도 모르는 게 사람 마음이다. 고작 검 서너 번 휘두른 걸 본다고 알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완전히 헛소리인가? 그것 또한 정답은 아니다.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일가를 이룬 달인은 자신의 분야에서라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해, 정확히는 그 사람이 배운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무술을 수련한 사람이 다른 이가 주먹을 내지르는 것을 보고 복싱의 펀치인지, 공수도의 정권인지, 중국무술의 발경인지를 구분하여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수십 년을 넘도록 칼밥을 먹은 요리사라면 그 사람의 사소한 버릇으로 그 사람이 어느 요리에 정통했는지를 대충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식칼을 다루는 법.
예를 들면 재료를 손질하는 법.
예를 들면 향신료를 사용하는 법.
정보, 정보, 정보.
달인의 눈에 띄면 그런 하찮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유민하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도 쉼 없이 움직이는 유민하의 눈은 마치 자율주행차의 레이더처럼 사방을 훑으며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다만 그녀가 보는 것은 개인의 조리가 아닌 주방의 현황.
백예은이 어떤 식으로 주방을 운영하는지, 검수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혹시 그녀가 놓친 것은 없는지.
격전지에서 물러나 전체적인 양상을 관망하는 지휘관처럼 정보를 수집한다.
백예은 개인에 대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유민하는 오히려 본론보다 그러한 부산물에 더더욱 큰 흥미가 일었다.
"82번 주문 메인 지금 나갑니다! 식사 세션 10분 이내에 끝내고 디저트도 식사 섹션에 맞춰서 속도 올려요!"
"예!"
"단체 요리도 시간 체크하면서 늦지 않게끔 준비! 소스 팀은 완성되는 대로 수비드 머신 중탕해서 드레싱 제외 각 소스 온도 50도로 유지해요!"
"예, 셰프!"
백예은의 주방 지휘는 유민하의 눈으로 보아도 부족한 부분은 있었으나 크게 흠잡을 곳은 없었다. 점수로 치자면 적어도 합격점 턱걸이에서 목울대쯤까진 올라온 정도일까.
친딸에게 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냉정한 평가였으나, 유민하는 오히려 놀라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어릴 적부터 그녀가 직접 가르쳤다곤 하나, 아니, 직접 가르친 딸이기에 더욱 주방장의 자리가 아직은 과분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조금 버벅대는 감이 있더라도 돌아가는 것 자체는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놀라운 것이다.
대충 아무렇게나 얼기설기 엮어 만든 기계가 멀쩡히 돌아가면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더더욱 유민하의 호기심을 돋우는 것은 백예은의 방식이 유민하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 아주 다르진 않아.'
유민하가 보기에 백예은의 기저에는 분명 자신의 영향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당연한 일이다. 백예은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요리의 기술 대부분을 가르친 건 유민하 자신이다.
거기에 더해 고등학생이 된 뒤로는 방학마다 그녀의 가게에 거의 상주시키다시피 하며 실무에 투입하는 것으로 각 파트에 대한 이해도를 올려왔다.
각 섹션에 대한 정확한 지시는 업무 이해도가 낮으면 할 수 없는 행위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다. 유민하는 백예은의 뒤에서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그림자를 느꼈다.
분명 지시를 내리는 판단의 근거는 유민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겠으나, 주방의 인원을 통솔하는 모습은 유민하와 비교하자면 너무도 다르다.
유민하라는 뼈대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살이 붙어 있다고 할까. 평소 같았다면 그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을 유민하였으나, 신기하게도 이번만큼은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불쾌함 대신 호기심이 그 자리를 차지한 탓이다.
'누구지?'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린다는 건 대강 어깨너머로 본다고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거리, 예를 들면 자기 자신이 그 지시를 받는 입장에 서서 직접 몸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이 있다.
만약 저것이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고, 그 본인보다 못한 수준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면, 적어도 그 누군가는 주방을 통제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경력을 가진 인물일 것임을 유민하는 직감했다.
아니, 감이 아니라 그녀가 눈으로 보고 알아낸 정보에 의한 분석이었다.
'교사들? 아니, 아닐 거야.'
교사는 어디까지나 학생에게 기술을 가르칠 뿐, 학습 현장에서 직접 나서는 일은 거의 전무했다.
설령 안영길이 직접 관리하는 대회반이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주체는 학생들.
'그렇다면, 학생 중에?'
설마. 유민하가 미심쩍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작년과 올해 대회반 신입생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이야기는 안영길이나 안상필을 통해 몇 번이나 들은 유민하지만, 저건 학생의 영역을 분명히 넘어 있다.
그녀도 이름을 기억하는 안효민 같은 경우 분명 특출난 학생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또한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 단체의 영역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게 안상필의 의견이었다.
그런 안상필의 말을 기억하는 유민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그것이 친딸을 너무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은 아비의 겸양이라 할지언정, 백예은의 통제 구석구석에서 나오는 어수룩한 완숙함은 분명 주방이라는 전쟁터에 뿌리를 박은 노병의 그것이다.
"……."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 상념에 빠졌던 유민하였으나,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정체 좀 알 수 없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유민하의 스타일과 그 정체 모를 스타일을 한 데 섞어,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내보이는 백예은이 대견하다면 모를까, 굳이 아직 안정성도, 매장량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땅에서 첫 삽을 떴다고 질책할 필요는 없다.
그런 건 나중에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유민하의 궁금증은 아직 멎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저 모든 것을 교사가 가르친 게 아니라면 용의는 소거법으로 자연스럽게 학생에게 돌아간다.
과연 그 학생이 누굴까.
반 친구? 너무 넓은 범위다. 백예은은 대다수의 동급생, 동갑내기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지녔기에.
그렇다면 대회반은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실력의 격차는 분명 있겠으나, 기존의 학급과 비교하면 무의미한 수준의 비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꼽으라면…….
"…… 저 아이인가?'
류찬혁. 유민하의 시선에 주방 구석에 있는 찬혁에게 닿았다.
찬혁은 여전히 백예은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데에 열중하고 있고, 분명 업무는 온새미로의 베테랑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히 처리하고 있으나, 좀처럼 앞서 말한 것 같은 실력은 현 상황에서는 볼 수 없으니 미심쩍은 마음만 강해질 뿐, 확인은 어려웠다.
'하지만.'
대회반의 부장 역할을 맡은 데에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일 터.
만약 백예은이 보여주는 통솔력의 원천이 정말로 찬혁에게 있다면, 그는 유민하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뜻이 된다.
"…… 포지션 재배치를 생각해봐야겠네."
유민하 본인의 가설이 맞는다면, 두 사람은 지금처럼 거리가 있을 때보다 주방에서 보다 가까이 붙어 있을 때 시너지가 더 잘 나올 테니까.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이윽고 끈질긴 태양을 간신히 거꾸러뜨린 달이 저를 따르는 어둠 패거리와 함께 하늘을 뒤덮는다.
온새미로의 공식적인 영업시간이 종료되는 시각.
놀랍게도, 이날 처음 주방의 지휘봉을 잡은 백예은 휘하 온새미로 크루의 실수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놀라운 사실에 크루 전체가, 심지어는 백예은 본인마저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때, 유일하게 웃고 있던 건 유민하,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
***
"죽겠다……."
새삼스럽게도 오랜만에 주방 일을 한 뒤로 몸이 뻐근하단 느낌이 빡세게 왔다.
주방 일이야 바쁜 곳이라면 어딜 가든 몸이 고된 법이라지만, 오늘은 사실 몸보다는 마음의 문제가 크게 느껴진다.
뭐라고 해야 할까, 경직된 분위기? 온새미로 주방 특유의 분위기는 어딘가 사람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있었다.
이른바 프레셔라는 녀석이다. 완벽 또 완벽. 항상 카탈로그 스펙 그대로 음식을 뽑아낸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당장 라면을 끓여도 어제 끓인 라면과 오늘 끓인 라면의 맛이 미묘하게 다른 게 사람인데, 라면보다 수백, 수천 배는 어려운 요리를 하면서 거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동일한 퀄리티를 연달아 뽑아내는 건 내 기준으로도 상당히 힘든 일이다.
"가끔 보면 학생인 것도 나쁘지만은 않단 말이지."
아니, 오히려 학생일 때가 좋다.
학교만 없으면 온갖 사회적 특혜는 대부분 받을 수 있는 위치고, 돈만 쉽게 못 번다뿐이지 칼퇴 하나만큼은 확실한 게 학생이란 지위니까.
솔직히 사회인일 때 가장 부러운 게 학생이다.
혹자가 말했다. '소년일수록 어른을 꿈꾸고, 노년일수록 소년을 꿈꾼다'고. 뭐, 이런 말을 한 사람은 달성하지 못한 이상이니 뭐니 이거저거 사족을 잔뜩 붙여가며 그런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려 애썼지만, 돌아온 나이기에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어른이 애로 돌아가고 싶은 건 그냥 애가 편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아니, 적어도 미성년은 강제로 야근시키면 법의 철퇴를 사정없이 맞기라도 하지 어른은 그런 것도 쉽지 않단 말이야.
뭐 아무튼, 나도 오늘은 그런 아이의 특권을 톡톡히 누렸다. 칼퇴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특권을 누린 건 나뿐만이 아니다. 그 주방에는 나 말고도 학생이 더 있었으니까.
"으으, 죽겠다……."
그래. 백예은 녀석 말하는 거다.
온새미로의 직원용 입구 쪽에서 서성이고 있자니, 두꺼운 방범철문이 묵직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미안, 많이 기다렸어?"
"뭐 얼마나 걸렸다고. 안 기다렸어."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백예은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왜? 안 갈 거야?"
"…… 뒤로 다섯 발자국만 물러나십시오, 휴먼."
"왜 또……."
말은 로봇인데 행동은 고양이처럼 머리털을 꼬리 대신 쭈뼛쭈뼛 세우려 들기에 재빨리 물러섰다.
그제야 문을 활짝 열고 나온 백예은이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섰다. 족히 1미터는 넘을 거리.
"뭐하냐."
"이미지 보호적 거리두기."
뭐라는 건지.
의아하단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니 이미 저 앞으로 앞서나간 뒤다. 등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달이 뜬 거리는 찌는 듯이 덥다.
이쪽을 본 채 뒷걸음질로 걷는 백예은이 내게 물었다.
"혁이는 이제 어쩔 거야? 집에 들어가?"
"어."
집이 아니라 호텔이긴 하지만.
"호텔? 뭐야 그거, 부러워."
"부러워하지 마라……."
한 사람 잘 침대랑 책상, 샤워실 딸린 화장실 하나 덩그러니 있는 비즈니스 호텔이니까. 그래도 고시원보다는 훨씬 넓다는 게 유일한 구원이다. 적어도 사람이 살만한 공간이다.
"그런 호텔도 있어?"
"있단다, 그런 호텔이."
잘 사는 양반은 좀처럼 경험할 일이 없겠지만 말이야.
내 허탈한 웃음에 녀석이 밝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 거기 여기서 가까워?"
"나름?"
"잘 됐다! 우리 밥 먹으러 가자!"
"밥?"
밥이라. 낮에 환영회랍시고 고기를 잔뜩 먹은 게 아직 소화가 덜 됐는지 그렇게 엄청 배고프진 않지만, 확실히 제법 출출하긴 하다. 근데 굳이 같이 먹으러 갈 이유는…….
"사줄게!"
"당장 가자."
있지. 당연히 있지. 돈은 언제나 옳다! 집게 사장님…… 당신이 옳았어요…….
평소엔 얻어 먹을 생각만 하던 녀석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갑자기 밥을 사준다는 건지 몰라도 이런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다. 아주 뼈까지 쪽쪽 빨아먹어 주겠다는 속내를 감추며 녀석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게? 어디 아는 곳 있어? 바로 갈 거지?"
"아니. 잠깐 집 좀 다녀올게! 30분 이따가 강남역에서 보자."
왜 굳이? 그런 질문을 채 할 새도 없이 녀석은 내 앞을 휙 떠났다.
"…… 대답은 좀 하고 가라고……."
모르겠다. 안 그래도 땀이 찝찝한 차였는데, 이렇게 된 거 샤워나…… 아.
…… 언젠가 들은 주아 녀석의 지적이 생각났다.
오빠는 여자 마음을 좀 아는 편이 좋다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