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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43화 (243/403)

243. 라인 스왑.-3-

온새미로의 주방에 섰을 때, 유민하는 백예은을 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대로 백예은 또한 유민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이가 나쁜 모녀라는 뜻은 아니다. 그녀들도 집에서는 평범하게 웃고 떠드는 화목한 가정이다.

다만, 이는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디까지나 유민하의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공은 공. 사는 사.

공사구분이 너무나 뚜렷한 성격이 만들어낸, 온새미로의 특이한 모습 중 하나다.

'흐음.'

찬혁은 이런 환경의 내막을 아침에 있던 사건을 통해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은 그토록 눈치를 주던 백예은 때문이긴 했지만.

그러나 한 가지 느낀 게 있다면, 그런 태도가 막상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

'적어도 이런 시스템이라면 말이지.'

찬혁은 여태껏 많은 주방을 전전해왔지만, 그런 그조차 이런 주방은 처음이었다.

사람 말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주방이라니. 이 주방에 있는 쿡들이 마치 기계의 일부분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주방에는 온갖 기계와 조리도구가 부딪치는 쇳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쿡들은 그저 자신이 맡은 파트에서 주문 출력기가 뽑아내는 자그마한 인쇄용지에 적힌 문구에 따라 주어진 일을 할 뿐.

보통 이런 구조의 주방이라면 어딘가에서 한 번 정도는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이 주방 전체를 관조하는 유민하의 저력.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일의 흐름을 읽어내고, 누군가 실수를 했을 때엔 주방 전체에 차질이 생기기 전에 번개처럼 쳐낸다.

'…… 장난 아닌데.'

찬혁은 온새미로에 오기로 한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이토록 참신한 주방. 이곳에서 배워가야 할 것은 단순한 요리기술이나 레시피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으니까.

온새미로에서 배울 수 있는 것. 그건 다름 아닌 오너의 자세. 찬혁의 생각은 그러했다.

'이 정도까지 하는 건 좀 과한 것 같긴 하지만…….'

주방을 눈 한 번 까딱이는 걸로 지휘하는 통솔력은 언젠가 찬혁이 자신만의 가게를 갖게 된다면 필요한 능력이었으니까.

오늘도 찬혁의 두 눈에는 학습욕이라는 이름의 불이 붙는다.

***

찬혁이 눈에 불을 켜고 일에 매진하고 있는 한편, 그의 옆 파트에서 일하던 김정우는 정신없이 잡일거리에 몰두하는 찬혁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지 이 녀석?'

김정우는 온새미로에서 비교적 신참에 속하는 편이기에 아래 기수도 몇 없는 남자였으나, 그래도 나름 이 주방에서 한 해를 넘긴 숙련자였다.

일한 지 한 해를 넘겼는데 아래 기수가 몇 없다. 그것은 이 온새미로에 들어오는 신입이 적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 이 주방에 들어오고자 하는 미래의 스타셰프 지망생은 그야말로 발에 채일 만큼 많다.

그렇다면 그 많은 지망생은 지금 전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첫 번째로, 유민하의 깐깐한 선발과정에서 태반. 아니 그 이상이 갈려나간다. 김정우조차 간신히 통과한 유민하의 선발과정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과거 어떤 업장에서 일했는지, 어느 파트에서 일했는지, 자신이 맡고 싶은 파트는 어디이며 또 승진할 경우에는 어떤 파트로 나아가고 싶은지.

심지어는 이전 업장에서 어떻게 나오게 됐으며 그 와중 좋지 않은 사건 사고는 저지르지 않았는지까지.

능력, 이력, 인성, 비전. 그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게 검증된 사람만을 뽑는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온 이들이 열 명 있다고 친다면, 그중 여덟에서 아홉은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 안에 가게를 떠난다.

'그것도 제 발로 나가지.'

힘겹게 들어온 주방에서 다시 스스로 나가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

단순하다. 그냥 이 주방의 환경에 견디지 못해서.

말도 없고, 마치 자신이 기계가 된 것처럼 일해야 되는 주방 환경에.

이 주방에 들어온 신입은 대부분 무슨 일을 하던 사사건건 트집이 잡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주방장 유민하에게 말이다.

자그마한 실수 하나, 자그마한 결점 하나 쉬이 용납하지 못하는 그녀는 마치 공장의 검수기처럼 신입이 하는 실수를 잡아낸다.

보통 온새미로에 막 들어온 신입은 하루에 몇 번이고 실수를 반복한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유민하 기준의 실수지만 말이다,

다른 주방이라면 그냥 넘어갔을 사소한 실수. 신입이라면 충분히 할법한 실수임에도 유민하의 지적은 멈추지 않는다.

대부분의 신입은 결국 그런 일련의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오히려 익숙해질 기간을 갖도록 유예를 받았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견습 기간이 지나면 그냥 지적으로는 안 끝나니까.'

그것을 견디고 넘어서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요리의 지평이 있다. 김정우는 그것을 보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온새미로의 크루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찬혁은 달랐다. 무어가 다르냐 한다면, 우선 지적을 받지 않는다. 오늘 처음 일을 시작한 학생이, 천하의 유민하를 상대로 말이다.

유민하가 고작 학생이라는 이유로, 고작 딸의 친구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편애할 리 없다는 건 그 누구보다 온새미로의 크루가 가장 잘 안다.

그렇다면 작금의 상황이 뜻하는 바는 이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다.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는 건가?'

그것도 프로 눈에서 눈물을 뽑는 게 특기라는 말을 듣는 유민하의 성에 찰 만큼?

"아니, 아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김정우의 입은 그렇게 말했으나, 사실은 그도 이미 깨달은 지 오래였다. 류찬혁, 이 신입은 여태껏 그가 보아온 사람들과는 무언가 다른, 모종의 특별함이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김정우는 다시금 되뇌었다.

"그래, 응. 아직, 아직 첫날이니까……."

아무리 당장은 완벽하게 한다 해도 고작해야 채소를 손질하거나 물품을 나르는 잡일에 불과하다.

물론 자르는 규격을 콤마 단위로 지적하는 유민하의 성미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밑천이 드러났으리라.

김정우는 그렇게 믿으며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김정우 씨. 잠깐 저 좀 보죠."

"아, 옙!"

"이 소스, 점도가 너무 낮아요. 이래서 충분히 고기에 묻어나겠어요? 다시 만드세요."

"알겠습니다!"

그런 와중에 반대로 본인이 지적받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일어났지만, 김정우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브레이크 타임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류찬혁 쿡. 식사하기 전에 잠깐 저 좀 볼까요?"

"예, 셰프."

'설마?'

드디어 무언가 지적을 당하는 건가!

어딘가 잘못된 기대감으로 두근두근한 심정을 숨긴 김정우였으나, 이내 그 기대는 산사태에 휩쓸린 빈약한 펜스처럼 단박에 무너지고 말았다.

"류찬혁 쿡은 브레이크 타임 끝나면 다른 파트로 이동하세요."

"다른 파트요?…… 알겠습니다. 어느 파트로 가면 될까요?"

"그래요…… 소스 파트가 괜찮겠네요. 김정우 쿡과 잘 해보도록 해요."

"옙."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주방 일동이 찬혁을 대단하단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때.

그들 사이에,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한 김정우가 있었다.

'…… 1년, 걸렸는데.'

그의 인생에서 단 한 차례도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난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는 몰랐으리라. 모르는 게 좋았으리라. 이게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

"이야, 그럼 올해 초에 골목 레스토랑에 나온 게 진짜 너였어?"

"예, 어쩌다 보니……."

"작년에는 푸드 엑스포에 나가서 수상까지 했다고? 대단한데!"

"하하, 그건 안영길 선생님한테 거의 얹혀간 거죠."

"누군 얹혀서도 못 하는 거야! 진짜 난놈이네 이거."

"난 들어온 날에 한 번도 지적 안 받은 애 처음이야."

"그런가요?"

"그렇고말고! 셰프 얼마나 깐깐한지 모르지? 진짜 히스테리 제대로 터진 날에는 답도 없어."

"아하하……."

그런 말을 따님 바로 앞에서 하는 건 좀 어떨까 싶은데.

전반기 장사를 끝낸 뒤 브레이크 타임.

신입이 들어온 겸 환영회나 열자는 주방 고참의 말에 온새미로 주방 크루 일동은 근처에 있던 고기집까지 다함께 찾아왔다.

고기는 당연히 막내인 내가 구워야 맞겠지만, 환영회가 왜 환영회겠느냐며 고참 한 분이 내 손에서 집게와 가위를 앗아갔다.

덕분에 나는 황송하게도 국내 탑티어의 요리사가 손수 구워주는 고기를 아기새마냥 입에 쑤셔 넣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고 이런 분위기에서 정말 묵묵히 고기만 받아먹을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뭐라도 하자는 마음에 꺼낸 학교 이야기가 예상외로 그들에게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됐는지, 그들은 껄껄 웃으며 질리지도 않고 내 접시에 잔뜩 고기를 담아주었다.

'맛있어, 맛있는데…….'

거북하다. 아니, 그야 혀 수준이 어지간히 높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 점찍은 가게이니만큼 고기의 질도, 숯의 질도 대단했다. 굽는 기술까지 좋아서 엄청 맛있다.

거기다 소고기다. 이건 못 참지…… 라고 말하기엔, 작금의 분위기가 굉장히 거북했다.

이렇게 사람의 관심이 쏠린 상태에서 밥을 먹는 건 처음이기 때문일까. 아무튼 맛은 있었지만, 그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왜, 사람의 호의는 돼지고기까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소고기는 대가를 바랄 때 사주는 것이고, 이들이 바라는 것은 어쩌다 내가 온새미로에 견습으로 오게 됐는지에 대한 개인사를 이야기해주는 것이었다.

소고기 값으로는 크게 대단치 않은 것이지만, 말하랴 먹으랴 입이 쉴 새가 없다는 게 문제일까.

'그나저나 쟤는…….'

이 와중에 가장 압권은 화제의 곁다리로 살짝 빠진 백예은이었다.

내가 이야기 값으로 배가 볼록 튀어나올 만큼 먹은 내가 고작해야 세 접시 정도의 고기를 먹었는데, 지금 저 녀석 옆에 쌓인 고기 접시만 다섯 개가 넘는다.

저게 바로 사회생활의 슬기로움인가. 초등학교에서 아주 제대로 배웠구나. 슬기로운 생활 교과서가 아주 없어도 되겠어. 교과서 없이도 살 사람이야 그냥.

잠시 후, 우리는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가게를 나섰다.

그 와중에도 크루 고참들은 입구에 놓여 있던 탈취제를 들고 서로에게 뿌려주기 바쁘다.

"고기 냄새 남아 있으면 셰프 또 난리난다. 자, 너희도 냄새 안 나게 꼼꼼하게 뿌려."

"아, 예. 감사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주방에서 사람 몸에 남은 음식의 잔향을 맡을 정도면 대체…… 쓸데없는 부분에서 유민하 셰프의 대단함을 또 하나 안 것 같다.

주방으로 돌아가는 길, 살짝 뒤처져서 걷던 내게 백예은이 달라붙었다.

"나만 쏙 빼고 이야기하니까 재밌어?"

"누가 보면 오해할 소리 한다. 먼저 빠진 건 자기면서. 고기는 맛있더냐?"

"응!"

"…… 아, 그러냐."

그래, 좋아 보이니까 됐다.

온새미로 앞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소화 좀 시키고 온다는 핑계로 크루와 떨어져서 산책을 나섰다. 백예은 이 녀석도 뭔가 할 말이 있는 분위기였고 말이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사람 없는 보도를 걷던 그때, 백예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때? 우리 가게."

"응? 글쎄……."

무어라 평가하기가 애매하다. 대단하고 훌륭한 가게지만, 솔직히 말해 너무 빡센 면이 있다고 할까, 아마 평범한 감성을 가진 사람은 버티기 힘든 가게다.

"그런 것 치곤 잘 적응한 것 같던데."

"나야 평범하지 않으니까."

"뭐야, 자기과시? 난 대단하다, 그런 거야?"

"내가 지금 와서 내 입으로 평범하다고 해봤자 기만이지."

회귀 전이라면 몰라도, 회귀 후의 나는 이미 평범의 탈을 씌울 수 없는 인간이니까.

한때는 평범하다고 자조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꿨다. 난 평범하지 않다. 날 평범하지 않게 하는 것을 최대한 크게 활용해야, 정상이 더더욱 내게 가까워진다.

푸르른 나뭇잎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빠진 내게 백예은이 내게 물었다.

"혁이는 꿈이 뭐야?"

"내 꿈?"

내 꿈. 그건 간단하다.

"그야, 요리사가 되는 거지."

백예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요리사? 혁이는 이미 요리사잖아."

"으음…… 뭔가 설명이 어렵네. 돈을 잘 번다거나, 손님이 많이 찾는 가게라거나,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요리사가 되는 거. 그게 꿈이야."

"…… 잘 모르겠어."

"괜찮아. 나도 잘 몰라."

내 대답에 백예은이 웃었다.

"뭐야. 잘 모르는 게 꿈이야?"

"웃지 마라, 요 녀석아. 원래 사람 꿈이란 건 본인도 모르는 법이야."

아마 진실로 자기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테니까.

그 말에 백예은은 무언가 느낀 게 있는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내리깔았다.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 전, 온새미로로 되돌아갈 때까지, 그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후반 영업이 재개되기 직전, 유민하 쿡이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을 꺼냈다.

"예은아."

"예, 셰…… 프?"

유민하 셰프가, 백예은을 이름으로 불렀다.

직위나 성을 붙인 딱딱한 음색이 아니라, 어딘가 부드러운, 말 그대로 자신의 딸의 이름을 부르는 듯이.

"오후에는, 네가 내 대리를 해보겠니?"

"…… 예?"

"대리 주방장, 해보는 게 어떠냐는 뜻이야."

백예은의 눈이 황당함으로, 그리고 곤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건 나를 비롯한 온새미로의 크루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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