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Like DiCaprio.-6-
예전에 내가 겪은 일화를 하나 말해볼까.
이건 내가 호텔의 연회 주방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 호텔은 국내는 물론이요 해외에서도 상당한 유명세를 떨치던 곳이었다.
그런 만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연중 스케줄이 빡빡하게 차 있었지.
물론 그 고객 중 대부분은 서구권 쪽 서양인이었다. 아무래도 위치 자체가 유럽에 있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가끔은 동양인이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는 예약객의 특별한 기념일이거나, 혹은 명절에 기분을 내러 오는 고객이 곧잘 오곤 했다.
이번에 내가 말할 것은 후자다. 그래. 춘절이었던가? 춘절이란 중국의 설날 비슷한 건데, 그 규모가 설날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때쯤에 공식 인구가 20억에 근접한 단일 국가에서 주 단위로 걸쳐 열리는 빨간 날이다. 5천만 명이 사나흘 정도 쉬는 거랑은 비교할 수가 없단 말이지.
아무튼, 그 춘절 시즌에 한 중국인 단체가 연회장을 약 사흘간 대절했다. 거기다 객실까지 2박 3일로 말이다.
솔직히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제법 놀랐다.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호텔은 숙박비, 연회장 이용료 등. 무엇 하나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서비스가 살벌한 수준의 금액을 자랑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사흘 동안 연회장을 대절하는 값이 분명…… 아, 그래. 2만 유로쯤 됐던가? 내 연봉보다 조금 못한 수준의 금액이었다. 객실 투숙료는 제외하고 말이야. 사람이 1년 동안 죽어라 번 돈을 사흘 만에 탕진하는 걸 보고 얼마나 충격이었던지.
어쨌든 고객은 돈을 지불했고, 우리는 그걸 받았으니 그 손님들의 요청에 맞춰 그들을 대접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그래서 그리 하였다.
평소 하던 것과 똑같이 시설 팀은 연회장을 꾸미고, 접객 팀은 고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주방 팀은 어떤 메뉴를 내놓을지 토의하여 식자재를 마련하고 주방 내에서 다시 한번 팀을 나누는 등의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예약 당일. 그 단체 고객이 호텔에 체크인 하는 날.
우리 호텔에, 지옥문이 열렸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이냐고? 솔직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그냥 지옥문은 지옥문이다. 이런 설명 말고는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서글플 뿐이지.
단테가 보았다는 지옥도 결코 이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솔직히 말해 그 단테보다 다른 단테가 필요했다. 아니면 격렬한 헤비메탈 사운드라던가.
고작 그 사흘 때문에 퇴사의지를 표출한 직원이 두 손으로 다 꼽지 못할 만큼 생겼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입사도 더럽게 힘든 이 호텔에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몇몇 직원의 동양인 혐오도 그때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 레이시즘을 나한테 표출한 놈들을 실드 칠 생각은 없지만. 실드로 친다면 모를까.
여하튼 그때 호텔은 모든 부서가 전체적으로 힘든 구석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주방 팀과 연회장을 관리하는 시설 팀, 청소 팀은 저 연옥 밑바닥에서 함께 훌라 댄스를 추고 온 기분이었더랬지.
"시바, 조졌네."
그러니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난 오히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지 않은 나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 참혹한 기억을 떠올리고 이토록 멀쩡하다니. 시간이 약이란 말은 사실이었던가. 내 경우에는 뒤로 흘러온 거지만.
그때 연회장을 대절한 중국 고객의 수가 대략 백 명 미만. 일종의 회사에서 지원한 춘절 파티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럼 이번은 더 심각한 거 아냐?'
생각해보라. 적어도 회사라는 상하관계의 끈으로 묶여 어느 정도의 통제가 먹히는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호텔 직원들에게 정신적 외상을 안겨준 그들이다.
근데 임재후 쿡의 설명을 듣자 하니, 이번 중국에서 탑승한 200명의 고객 중 절반 이상이 여행사의 기획으로 승선하게 된 개인 여행객이라고 한다.
요컨대 통제를 따를 이유가 거의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은 무리라는 것.
그런 사람들을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야 이제 저녁만 하면 끝이니까…….'
걱정할 건 우리가 아니라, 내일과 모레에 주방에서 현장학습을 하게 될 2조와 3조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번에 일을 하며 조금은 안면을 튼 마제스틱 퀸 호의 쿡들도 그 걱정의 범위 안에 있었다.
과연 그들이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글쎄. 내 의견은 부정적이다. 쿡들이야 이 환경에서 적잖이 근무한 프로라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마 해외의, 그것도 다수의 중국인 고객을 만날 일이 거의 전무 한 학생들이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은 그다지 현실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객실로 돌아온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육지의 모습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사방이 고요한 바다 위. 마제스틱 퀸 호의 육중한 경적이 정처 없이 떠도는 갈매기를 흩어놓고 있었다.
***
마제스틱 퀸 호가 항구에 정박한 지 어언 세 시간가량.
고객의 승선과 화물의 적재 등을 끝마친 뒤, 다시금 마실을 나갈 채비를 끝낸 아가씨가 천천히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무거운 옷을 걸친 탓에 발이 느린 아가씨지만, 품행의 단정함은 누구도 쉬이 따라 하지 못했다.
"화물 고정 완료. 시계 양호. 출항 코스 양호. 예인선 이탈 완료했습니다."
"기관 운전 시작. 주변 경고 후 출력 상승. 5노트 이하로 천천히 빠져나가."
"아이아이, 캡틴."
뱃사람은 언제나 바다 위에서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고 배운 그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항해 중 가장 긴장하는 때는 망망대해 한복판에 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육지가 가까이 있을수록 크게 긴장하며, 육지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출항 시, 그리고 정박 시에는 그야말로 심장이 터질 듯 긴장한다.
요즘에야 기술이 발달해 조타 정도는 자동운전이 알아서 처리해주는 부분이 많지만, 조타륜으로 배를 직접 조종할 시절엔 대체 이런 짓을 어떻게 했는지 간담이 다 서늘한 폴이었다.
마치 아가씨를 태운 마차를 모는 마부가 도로의 개구쟁이들을 쫓아내듯 우렁찬 경적을 토해낸 마제스틱 퀸 호가 천천히 그 거대한 스크류를 돌려 앞으로 나아간다.
수천 마력에 달하는 엔진이 뿜어내는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간 조그마한 요트 정도는 순식간에 뒤집히고 말기에, 다른 선박이 그 여파를 받지 않을 위치에 나갈 때까진 마음 놓고 프로펠러를 돌릴 수 없다.
연안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외해에 진입한 뒤에야 승무원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긴장되는 작업이 끝났기 때문이다.
"후우."
앤드류는 조여 놓았던 목깃을 풀어헤치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베테랑 선장이라도 어깨 위에 수천의 목숨이 걸려서야 긴장을 안 하곤 배기지 못한다.
여기까지 나왔으면 아주 극적인 사고라도 나지 않는 이상 자동항해 기능을 켜고 최소한의 인원이 선교에서 상황을 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선교는 3교대로 인원이 교대하지만, 선장만큼은 교대가 불가능하니, 그런 기능이 없었다면 과로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한숨 돌린 앤드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깔끔한 정복 외투로 갈아입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난 잠시 배나 둘러보고 오지."
"다녀오십시오."
배의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는 것은 분명 선장의 책무이긴 하나, 굳이 직접 나갈 필요는 없었다. 이것은 다만 앤드류의 행동 루틴일 뿐이었다.
책무를 다하는 겸 배를 직접 돌아다니며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것. 가볍다곤 해도 그 길이는 수 Km에 달했지만 말이다.
배를 돌아다닐 뿐임에도 그만한 길이의 산책로가 조성된다는 점에서 마제스틱 퀸 호의 규모를 간접적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구조상 선교와 가장 가까운 스카이라운지를 시작점으로 점찍은 앤드류가 발을 움직였다.
여타 승무원은 승무원 전용 통로를 이용해야 하기에 배 위에서 승객과 마주칠 일이 없으나 선장만큼은 예외다. 굳이 깔끔한 정복으로 갈아입은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지나치는 승객과 가볍게 눈인사를 하거나, 가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경례를 붙이는 어린아이들에게 경례로 응수하는 등의 서비스를 해준 앤드류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정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스카이라운지. 이상 없음. 파티 준비는 착실히 진행 중.
각 시설 또한 이상 무.
아무리 선장이라도 객실 구역까지 접근할 수는 없었기에 기관실 근처의 지하 구역을 돌아 갑판을 끝으로 산책을 마무리한 앤드류의 배가 가벼운 허기를 호소했다. 마침 시간도 저녁식사를 먹을 시간이었다.
"……레스토랑이나 가볼까."
본래 승무원의 식사는 그들 전용으로 마련된 식당에서 먹어야 하지만, 그들도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시설 중 몇 가지는 승객과 마주치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물론 이런 마제스틱 퀸 호쯤 되는 유람선의 레스토랑은 상당히 비싸지만, 선장으로서 제법 두둑한 급료를 받는 그에게는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가격이었기에 그는 큰 고민 없이 행선지를 결정했다.
정작 앤드류가 레스토랑에 출몰하자 기겁한 것은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승무원들이었다.
"셰프! 서, 선장님 오셨습니다!"
"뭐? 왜? 우리 뭐 저질렀냐?"
"아뇨. 그냥 식사하러 오셨다는데요."
"아, 씁. 빨리 테이블 세팅 해드리고, 식전 빵이랑 드링크 서두르고! 야, 너! 가서 애들 옷차림 확실히 하라 그래!"
"예, 셰프!"
선장이 밥을 먹으러 오는 게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담이 안 된다는 건 또 아니었다. 그들 입장에선 잘 일하다가 갑자기 배의 최상급자가 등장한 것이었으니까.
적당히 식사를 하러 왔을 뿐이기에 그들의 불평불만을 알 리 없는 앤드류는 그저 승무원에게 고생 많다는 등의 덕담을 건네며 얌전히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선교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팁을 거절하는 승무원에게 지폐를 몇 장 쥐어주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친 앤드류는 마제스틱 퀸 호의 식당가를 빠져나가다 저도 모르게 식당가에서 가장 큰 구획을 차지하고 있는 뷔페에 시선을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뷔페의 간판을 보자 문득 성심고 학생에 대한 것이 머리를 스쳤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 배 안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곳 중 하나가 바로 저곳이었다. 뱃일이라곤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학생들이 일하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아무리 일면식도 없는 학교와 학생이라지만, 일단 이 배에서 일하고 있는 이상 그의 크루. 그리고 크루의 업무 상황을 파악하는 것 또한 선장의 일이다.
'그래도 제프리 놈이 아직까지 별 말 안 하는 걸 보면 제법 괜찮은 것 같은데.'
앤드류의 10년 지기 직장 동료이자 마제스틱 퀸 호의 총주방장인 제프리는 그리 인내심이 많은 사내가 아니다.
제 눈에 들지 않는 부하가 있다면 가차 없이 쳐내기 일쑤고, 거기에 더해 팀 하나가 일하는 모습이 아니꼬우면 앤드류에게 어디서 저런 놈들만 받았냐며 불평을 쏟아내곤 했다.
안 그래도 선상 파티 준비로 속이 꼬여 있을 제프리가 아직도 조용하다는 것은 적어도 이번에 들어온 학생들이 그의 속을 썩이지 않을 수준은 된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납득한 앤드류는 그다지 큰 걱정 없이 뷔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보았다. 뷔페에 만연한 끔찍한 참상을.
"……음?"
순간, 앤드류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 시간마다 이 식당에 몰리는 고객을 위해 마련된 수많은 테이블 위에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쌓인 접시와 먹다 만 음식물 쓰레기.
마치 언젠가 들렸던 인도의 시장바닥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소음.
주방에서 음식을 진열대에 갖다 놓기가 무섭게 배치된 집게도 쓰지 않고 손과 접시를 주걱 대신 써서 퍼가기 바쁜 수십, 수백의 사람들.
평소 정갈하고 깔끔한 분위기가 매력이라 평가받던 뷔페에, 그야말로 이탈리아의 시인이 보았다는 지옥의 문이 열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Holy……."
앤드류의 입이 절로 신을 찾아 부르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