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Like DiCaprio.-4-
선상 주방이라는 장소는 확실히 이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특이한 장소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꼭 '넌 여기서 도수체조나 해라.'라고 말해놓곤 사람을 청소도구함에 박아놓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줄넘기를 쥐여 주고 사람을 대변기 칸에 처박은 다음 쌩쌩이를 돌려보라고 권유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튼 뭔가 안 될 것 같은 걸 억지로 시키는 기분이 든다 이말이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기 전, 곰곰이 주방을 둘러본 나는 그 생각에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 주방. 자세히 보니 그저 그 사이즈가 상상 이상으로 좁을 뿐이지 설비까지 엉망은 아니다.
주방 한쪽 벽을 거의 통째로 차지하다시피 한 대형 오븐이나 완제품을 다시 한번 튀기기 위해 설치된 튀김기 등의 조리도구는 최신형만 아닐 뿐이지 주기적으로 교체된 흔적이 남았고, 주방의 구조도 요리사가 움직이기 힘든 상황임을 충분히 가정하여 제법 편의성이 배려된 설계가 눈에 띈다.
벽마다 꼼꼼히 설치된 식수용 수도꼭지 같은 게 그 증거다. 조리 시 물이 필요할 때마다 번거롭게 움직일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 외에도 처음엔 좀 기괴하게 느껴질 만큼 벽에 다닥다닥 붙은 조리도구 거치대도 지금 보면 외관만 기괴할 뿐이지 실사용은 제법 편리했다.
식자재 보관용 냉장창고와 엘리베이터가 거의 정반대에 위치한 구조 또한, 식자재를 조리하여 식당으로 운반할 때의 동선을 철저히 계산한 티가 난다.
'오호라…….'
이 주방. 여태껏 내가 일한 그 어느 주방과도 다르지만, 내가 '아는' 주방 중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옛날 패스트푸드 식당 주방이랑 비슷해.'
약 70년 전, 어느 식당이 '패스트푸드'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30분이 걸릴 요리를 30초 만에 완성하여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
그 원동력은 바로 철저한 분업화였다. 사람이 기계가 된 것처럼, 서로 정해진 루트를 정해진 타이밍에 통과하며 각자의 업무만을 한다.
그건 이미 일종의 공장화라고 봐도 좋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만 하는데, 그게 어느 순간 조립되어 하나의 요리로 변신한다.
빨간 아프로 헤어 삐에로를 마스코트로 사용 중인 그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전신이 된 가게. 그 주인인 형제가 만들어낸 시스템.
그 주방의 형식은 이미 기술 등의 발전으로 요즘에는 찾아볼 수 없지만, 이런 어쩔 수 없는 제약이 뒤따르는 주방이라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건가.
'요점은 알았다.'
이 주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분업이다. 누구 하나가 책임을 지고 끝까지 요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업무를 하여 마지막에 부품을 조립해 완성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부품을 만드는 게 중요한 주방.
이거 제법 힘들겠는데. 설령 어느 정도 잔뼈가 굵은 프로라도 확실한 가이드라인 없이 맨땅에 헤딩했다간 고생 좀 할 거고, 하물며 우리 같은 학생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분업을 위해 필요한 건 분석력이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조립 설명서처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누가 무엇을 할지 나눌 수 있으니까.
스테이크라는 요리가 있다면 단순히 고기, 소스, 가니쉬 수준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누구는 고기를 간하고, 누군가는 굽고, 또 누군가는 적당히 레스팅 하여 자르는 수준의 분업을 지시할 수 있는 수준의 분석이 가능한 이가 40명의 크루를 이끌어야 한다.
아무리 수재만 모아놓은 학교라 해도 보통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말이다.
누누이 말했다시피, 나는 보통 놈이 아니다.
***
"와오……."
임재후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40인의 합작 공연에 글자 그대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성심고 학생들이 맡은 일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 정도다.
하나는 빵 굽기.
하나는 계란과 고기 굽기.
마지막 하나는 샐러드 준비.
나머지 메뉴는 다른 주방에서 마제스틱 퀸 호의 주방 크루가 담당하고 있기에 간단한 메뉴만 남긴 했어도 천 명이 먹을 먹거리를 40명이 준비하는 건 절대 쉽지 않다. 그것도 이런 환경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임재후의 그런 생각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차질 없이 조리를 이어나가고 있다.
빵을 굽는 팀만 보아도 그 능숙함이 일목요연하게 다가온다.
크로와상 용 냉동 생지는 판 모양이다. 그걸 사람들이 흔히 아는 크로와상 모양으로 구우려면 총 세 가지의 작업이 필요하다.
반죽을 삼각형으로 자른 뒤, 자른 반죽을 둥글게 말아서 계란물을 발라 굽는 것.
그 과정을 학생들은 완벽히 분업화하여 처리하고 있다. 한 사람이 반죽을 자르고 다음 사람한테 넘기면, 그 사람은 반죽을 둥글게 말아 또다시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오븐을 담당하는 인원은 그 위로 계란물을 바르고 오븐 안에 들어간 빵을 확인하며 굽는다.
재료의 입고부터 완성품의 출고까지. 꼭 빵공장의 기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동을 최소화하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모습은 임재후가 여태껏 해온 선상조리의 정석 그 자체.
비단 빵 뿐만이 아니라 다른 메뉴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런 걸 어디서 연습해봤을 리도 없을 텐데 그들은 꼭 오랫동안 창고에 박아두었던 자전거를 꺼내 타듯이 업무를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거……."
임재후는 자신의 입장을 떠나 그 모습에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성심고의 교육 능력과 학생들의 수준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그가 10년 동안 이 길에 매진하여 성장한 것처럼 성심고 또한 그때보다 더욱 교육 능력을 길렀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이 후배들의 실력이었다.
사실, 그건 어느 의미 찬혁이라는 너무 커다란 변수로 인해 발생한 착각에 불과했으나, 임재후는 그저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조금 진도를 빠르게 나가도 되겠는데.'
임재후는 그들의 사수다. 그들이 업무에 익숙해지는 데에 도움을 주기만 하는 게 그가 할 일의 전부가 아니다. 그들의 성과를 보고 업무의 경중을 꼼꼼히 따져 부과하는 것 또한 그가 맡은 일.
조식 준비가 끝난 뒤, 중식이나 석식 때는 어떤 업무를 부과해야 할까.
과연 저 아이들이 그 업무를 얼마나 잘 해낼까.
임재후의 머릿속에 고민과 기대감이 소용돌이쳤다.
***
한편, 아침 업무가 슬슬 끝나가는 과정에 놓인 학생들은 임재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애당초 알 방법이 없긴 했지만.
새벽 6시부터 일을 시작한 지 어언 3시간. 슬슬 조식 제공 시간이 끝날 때쯤이 돼서야 그들에게 오는 추가 주문이 하나둘 끊기기 시작했다.
공장의 부품이 된 것처럼 일하던 학생들도 그제야 간신히 한숨을 놓았다.
"와, 더럽게 힘드네 진짜."
"제자리에 안 움직이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리얼 인정이다."
그 말에 동의를 표하는 김철정의 투정을 들으며 찬혁이 속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원래 가만히 서 있는 게 걷는 것보다 힘들어."
"진짜? 원래 그래?"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으면 말이야."
찬혁은 근육과 젖산에 대한 설명을 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원래 사람 다리가 걷다 보면 양쪽이 번갈아서 쉬고 일하고를 반복하는 거거든. 가만히 서 있으면 양쪽 다 쉴 틈도 없이 일하는 거라 더 힘들게 느껴지는 거야."
"너 진짜 별걸 다 안다."
"운동은 좋아하니까."
하지만 찬혁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다른 아이들만큼은 아니어도 그 나름대로 제법 큰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업무 지시에 더해 몸까지 같이 움직인 찬혁이다. 그렇게 혹사했으니 멀쩡한 게 오히려 이상하리라.
"진짜 대단하네……."
"응? 뭐가?"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말이야."
성심고 학생들이야 하루 일하면 땡이지만, 그들은 일 년 내내 이런 환경에서 찬혁 일행과 비슷한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여기는 망망대해 위. 퇴근하면 집에 돌아가 사적인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는 육지와는 달리 그들은 일이 끝나든 말든 결국 몇 달 동안 직장에서 떠날 수도 없는 신세다.
'소름 돋네…….'
그 엇비슷한 조건을 가진 장소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는 찬혁은 온몸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이런 근무지에서 정년을 채운다? 상상조차하기 싫었다.
우둘투둘 닭살이 돋은 팔을 쓰다듬은 찬혁이 뒷정리를 끝마칠 때쯤, 주방을 둘러보며 안전 점검을 하던 임재후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어때, 힘들긴 해도 나름 할만하지?"
"어……."
조리 과정 자체야 간단한 게 많긴 했지만, 그럼에도 쉬이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찬혁을 보며 임재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힘들었겠지."
"선배님 같은 승무원 분들은 여기서 숙식하시면서 근무하시는 거죠? 대단하시네요."
"나였으면 절대 못 버텼어. 게임도 못 하잖아."
"하하, 그래도 페이는 좋거든.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페이가 얼마나 되길래요?"
"나 같은 경우는 기본급이 2천 불 정도 되지."
"2천 불이요?"
한화로 치환하면 220만 원 정도 되는 금액. 근무 환경에 비하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지 않은가 싶어 의문스런 표정을 짓는 찬혁에게 임재후는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거기다 내 부서는 보너스가 있거든. 계약 명시된 걸로."
"아하."
무료로 이용 가능한 뷔페와는 달리 유료로 돌아가는 레스토랑은 매출에 따라 보너스가 지급된다. 몇몇 중요 시설에 근무하는 승무원의 특혜 중 하나다.
"어때, 관심이 좀 생겨? 너 정도면 레스토랑도 금방 올라올 수 있을 텐데."
"아뇨. 저는 그냥 육지에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임재후가 은근히 꼬드겼으나 찬혁은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집에 돌아갈 자유가 없는 생활은 대한민국 남자에게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래도 관심 생기면 언제든 말해. 뭐가 필요한지 꼼꼼히 알려줄 테니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임재후가 찬혁의 눈에는 꼭 개미지옥처럼 보였다.
"그런데 승무원은 계속 업무 대기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 기본적으로 세 시간 일하고 쉬었다가 다시 일하는 식으로 돌아가지. 선상 업무는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거든."
쉰다고 해봤자 고시텔만한 방이 전부라며 아련한 표정을 짓는 임재후를 보며 찬혁은 다시금 배에는 오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자, 그럼 너희도 이만 가서 쉬어. 다음 업무 시간 때 보자."
"네. 그런데 선배님은 따로 안 쉬세요?"
후배의 배려가 반갑다는 듯 임재후가 웃었다.
"나? 나도 쉬지. 근데 그 전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누구요?"
"우리 총주방장."
***
잠시 후, 임재후는 승무원 사무실에서 마제스틱 퀸 호 뷔페의 총주방장인 제프리와 얼굴을 마주했다.
"오늘도 일을 잘 처리해줘서 고맙네. 전반적으로 음식 퀄리티가 좋았어."
"감사합니다."
"어떤가. 그 학생들은 좀 쓸만했나?"
"예. 오히려 제가 할 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알아서 잘 하더군요."
"겸손은. 육지 사람이 뱃사람 일을 할 때면 뭐든 어색하기 마련이지. 아무튼, 고생했네."
임재후의 말이 동양인 특유의 겸양이라 생각한 제프리는 실소를 보였으나, 임재후로서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기에 두 사람의 대화는 좀처럼 맞물리지 못했다.
공치사를 덕담처럼 몇 마디 얹어 건네는 제프리의 말을 임재후가 어색한 웃음으로 받기도 잠시. 제프리는 임재후를 부른 본론을 꺼내 들었다.
"학생들 교육이야 자네에게 일임했으니 그건 됐다 치고. 이제 곧 예정일인 건 잊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선상파티 같은 중요한 이벤트를 잊을 리가요."
보름 간격으로 날씨가 좋은 해역을 골라 펼쳐지는 선상파티는, 마제스틱 퀸 호의 옥상이라 볼 수 있는 가장 상층의 스카이라운지에서 열리는 파티다.
유료 입장이 원칙인 스카이라운지에서 열리는 선상파티는 배의 VIP 대부분이 참여하는 행사. 당연히 파티 식사 등의 준비는 레스토랑 팀의 승무원이 차출된다. 임재후는 그 행사에 참여할 메인 스태프 중 한 사람이었다.
"교육도 좋지만 중요한 게 뭔지는 잊지 않도록 해."
"예, 셰프."
신신당부하듯 말하는 제프리였으나 임재후는 그다지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선상파티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중요한 일이기에 이전에 이미 많은 신경을 쏟았기 때문이다.
스카이라운지는 벌써 파티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고, 파티용 식자재의 재고 물량도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 사건이 발생하긴 어려울 것 아닌가.
그도 벌써 근속 년수만 5년. 이 정도는 이제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이번에도 별일 없을 겁니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임재후를 마주한 제프리 또한 그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