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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25화 (225/403)

225. Like DiCaprio.-2-

종종 호사가들은 유람선을 두고 이렇게 말하곤 한다.

바다 위의 도시, 떠다니는 섬.

난생 처음 이런 최고급 유람선에 타보고야 과연 그 말이 허풍이 아님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내가 지금 타고 있는 게 정말 배라 그거지?"

이 유람선은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모든 게 있다.

값비싼 호텔에 버금가는 객실은 기본. 배의 좌우로 나열된 객실 구역을 나와 선두부터 중심 라인을 타고 이어진 시설에는 다 둘러보는 데에만 며칠은 걸릴 것 같은 엄청난 설비로 가득하다.

영화관, 오락실, 극장, 식당, 헬스장, 파티장, 도서실, 컴퓨터실, 그 외 기타 등등!

선루프가 설치된 중앙광장은 야외 테라스로 이어진 통로가 뻥 뚫렸고,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푸른 바다는 보기만 해도 상쾌해진다.

솔직히, 지금 내가 어디 해운대에 있는 아파트 테라스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진짜 배에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배라는 게 이토록 진동 하나 없다니, 기술이란 건 굉장한 거구나.

나름 부자들의 감성에 제법 익숙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내가 이 정도인데 다른 애들은 말해 뭐하랴.

"와, 와! 야야! 바다! 움직여!"

"오진다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사용법이 좀…… 아니, 그게 맞나?"

같은 구역으로 방을 배정받은 남학생들은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배 탐험을 시작했다. 객실을 창문 쪽으로 받은 아이들 방에 들어가 바다를 구경하는 애들이나, 방마다 있는 TV에서 나오는 마제스틱 퀸 호 안내 영상 따위를 보면서 구경할 경로를 정하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해상 수학여행이라……."

이건 또 너무 획기적이어서 웃음만 나온다.

회귀 전에 학교에서 간 수학여행이라고 해봐야 제주도 정돈데, 설마 상륙조차 하지 않는 수학여행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진짜.

심지어 이 수학여행은 그 일정마저 파격적이다.

식사 시간과 아침 점호, 저녁 점호를 제외한 모든 시간은 자유 시간.

선내에 있는 시설 중 도박장 등의 성인 전용 구역을 제외하면 어딜 다니든 자유다. 어차피 반드시 교복을 입고 있어야 하니 그런 곳엔 들어가지도 못하겠지만.

그 외에도 학생증만 지참하면 수영복도 대여할 수 있기에 수영장이나 워터파크 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자유.

어차피 배 안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설의 이용료는 입장요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편의점 같은 시설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면 지갑조차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다.

"야, 얘들아. 식당 조 발표할 거니까 선생님이 모이래!"

그래, 저것만 빼면 말이야.

수학여행이 왜 수학여행이겠는가. 그 이름 그대로 학문을 갈고닦는修學 여행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학생이라면 그 본분은 배우는 것에 있으니까.

공자 왈 사람이 셋 있으면 그중 하나에게는 분명 배울 것이 있다 하는데, 하물며 사람 수천 명이 오가는 배에서는 배울 것이 없으랴.

'뭐, 선생님들 생각도 대충 그렇겠지.'

조금 내 예상을 크게 웃돈 사태에 잠깐 침착함을 잃긴 했지만, 슬슬 정신 차려야지. 미리 대비를 하고 있어야 무슨 일이 있든 괜찮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뒤, 채 모험의 첫 발자국도 내딛지 못해 아쉬운 표정을 한 아이들을 따라나섰다.

***

성심고 2학년의 총인원은 대략 120명 정도다. 총 다섯 개의 반이지만 총원은 꽤 적다.

"1학년 때 전학 간 애가 생각보다 많다나 봐."

"몇 명이나 갔더라?"

"한 10명 좀 더 될걸?"

안 그래도 특목고라 총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거기서 빠져나가는 숫자까지 적지 않으니 사람이 적은 건 오죽할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사람이 적어도 120명에 달하는 사람이 한꺼번에 이 배에서 현장학습을 하는 건 무리였나 보다.

"총인원을 셋으로 갈라서 한 반당 하루씩이라……."

"아무리 하루라지만 1000인분 식사를 삼시 세끼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이번 현장학습도 더럽게 힘들겠네, 진짜."

잔뜩 주눅 든 우리 반 아이들의 넋두리로 알 수 있다시피, 이번 현장학습의 조건은 제법 특이했다.

1반부터 5반까지, 각 반이 출석번호 순으로 세 조로 나뉘어 각각 하루씩 현장학습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게 또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호평이었다. 일단 하루만 빡세게 고생하면 이 럭셔리 크루즈에서 생활하는 남은 4일 동안은 완전한 자유시간이라는 뜻이었으니까.

"으으,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그냥 1조 하고 싶다."

"나도. 그냥 빨리 끝내고 놀고 싶어."

안 그래도 혈기왕성한 고등학생. 거기다 지금은 바깥에서 놀기 딱 좋은 초여름이다. 수영장이니 워터파크 같은 놀기 좋은 공간까지 있겠다, 아이들의 욕구가 노는 쪽으로 쏠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녀석들, 대부분 이번 현장 학습은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저렇게 맘 놓고 있다간 피 볼 텐데."

"응? 뭐가?"

"현장학습 말이야. 애들이 다들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 한숨 섞인 걱정에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딜 구경 갈까 들떠있던 김철정이 내게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왜? 할 만할 것 같던데. 뷔페야 작년에도 했었잖아. 그때랑 비교하면 애들 실력도 엄청 늘었고."

응. 바로 그게 문제다.

작년에 갔던 상천만향회와 이 마제스틱 퀸의 상황을 너무 비슷한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거.

"그게 왜? 살짝 보니까 음식 질은 비슷하던데."

"아니, 아마 상천만향회가 더 나을 거야."

거기는 한 끼에 여기 이틀 숙박비를 내야 하는 곳인데, 비교하긴 힘들지.

종류도, 질도 그쪽이 이곳 뷔페를 앞설 수밖에 없다. 다만 하루 방문객 숫자가 전혀 다를 테니 업무량은 이쪽이 많을 테고, 거기다 조, 중, 석식을 따로 구분할 걸 생각하면 조금 더 복잡한 부분이 있긴 하겠지만.

그 설명에 김철정이 더욱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다.

"뭐야. 그럼 별로 걱정 안 해도 되잖아."

"으음……."

글쎄,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과연 그 정도 고민도 안 했을까? 그 학생 굴리는 걸 지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뭔가 아직 이 시점에서는 알기 힘든 난관이 숨어 있으리란 예감이 머릿속 경종을 울린다.

"그 말은 나도 동의하지만…… 뭐, 고민해봤자 별수 없잖아. 당장 알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이렇게 심각한데 저런 태평한 소리나 내뱉는 김철정이 얄밉다가도, 나 또한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차피 무슨 꿍꿍이속이 있든 그걸 알아낸다고 시간이 멈추는 건 아니니까.

1반인 우리는 어차피 별수 없이 여행 2일차인 내일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될 테니, 지금은 그저 때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건 사실이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오늘은 속 편하게 놀자. 모처럼 여행 온 건데 가만히 속이나 썩히고 있을 필욘 없잖아."

"…… 하아, 그래."

김철정의 말도 어느 의미 정답이다. 굳이 놀러 와서 힘들게 머리 굴릴 필요가 있나.

가끔은 그저 오는 일에 순응하며 오늘을 즐기는 것도 그 나름 학생다운 모습이리라. 뭐, 나야 무늬만 학생이긴 해도.

"야야, 이따 수영장 가쉴? 점심 먹은 다음에 가면 사람 잔뜩 있을 텐데. 아까 들어올 때 보니까 예쁜 외국인 많더라."

"아서라 진짜."

이런 부분까지 남자 고등학생답지 않으면 좋았을 텐데.

하긴, 이건 좀 들어주기 힘든 부탁이려나.

억지로 게슴츠레한 웃음을 짓는 녀석에게 핀잔을 날리곤 객실 구역에 있던 카페테리아에서 일어났다.

슬슬 점심 집합 시간이다. 시간은 아껴 써야지.

***

결국 우리는 첫날 하루를 말 그대로 깔끔하게 유흥으로 탕진했다.

아니, 유흥이라고 말하니까 뭔가 어감이 안 좋긴 한데 평범하게 놀러 다녔다는 거다.

이 시설이 은근 재밌는 곳이 많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보는 재미도 있었고, 식후에 들른 헬스장 시설은 우리 학교에도 없는 기구가 있어서 제법 즐거웠다.

"아, 찬혁아."

"…… 넌 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나도 방금 왔어."

아니, 방금 온 것처럼 안 보이는데.

전용 스포츠웨어에 땀수건까지 지참해서 쇠질에 열중하는 나현주를 봤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 땀 흘리는 모양새가 유산소 사이클까지 진작 끝낸 모양새였다.

아니, 실습 전날에 쇠질하면 근육통은 어쩌려고 저러나. 그 정도는 알아서 컨트롤 할 수 있는 녀석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테니스 코트, 농구코트 따위가 모여 있던 야외 체육시설이나 실내에 있는 볼링장, 당구장 따위를 전전하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전부 가고 말았다.

"…… 왜 이렇게 건강한 하루를 산 것 같은 기분일까."

"그런 곳만 가서 그렇겠지."

다음부터는 수영장에 가서 선탠하며 디비 누워 쉬겠다는 열의 아닌 열의를 불태우는 김철정을 뒤로한 다음 날. 비로소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현장학습 날이 찾아왔다.

학교 조리복 위로 승무원용 급사모와 앞치마를 찬 일행이 주방에 들어가기 전, 교육을 받기 위해 모였다.

승무원용 홀처럼 보이는 장소. 나는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여태껏 보았던 마제스틱 퀸 호의 모습과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

'뭐지……?'

뭔가, 뭔가 다르다.

스태프 전용 복도의 모양새가 투박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곳까지 일일이 치장하기에는 들어가는 비용이 아까우니까.

하지만, 그 전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

이 홀, 뭐라고 할까…….

'좁아.'

비좁았다. 그것도 상당히.

분명 40명이 모여도 제법 빈 공간이 남는 홀이긴 하지만, 생각해 보라. 이 배에 탑승하는 승무원만 천 명이다. 그걸 파트 단위로 나눈다고 해도 우리 학생들 40명보다 적을 리가 없는데, 고작 홀에 40명이 모였다고 '제법 공간이 남는' 정도로 끝난다고?

'그렇다는 건…….'

본래 이 공간을 사용하는 승무원은 대체 여길 얼마나 비좁게 쓰는 거지?

여기에 60명이 모이면 꽤 답답할 것이다.

70명이 모이면 쉽게 옴짝달싹하기도 힘든 환경이 될 테고.

그게 80명, 90명이 되면…….

'숨쉬기도 힘들겠는데.'

아마 앞뒤로 몰린 사람들 탓에 몸이 짓눌릴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 이상함을 깨달았을 때, 한 남성이 우리 앞으로 나섰다.

얼룩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조리복에, 마치 솜이라도 잔뜩 넣어둔 것 마냥 구석구석 천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특이한 조리모를 낀 서양 남성.

마이크도 아니고 확성기를 든 남자가 말한다.

"마제스틱 퀸 호에 탑승한 걸 환영합니다. 난 뷔페주방 총주방장, 제프리 마빈입니다."

미국보단 영국식에 가까운 영어다. 통역가가 자신의 말을 되풀이하는 걸 기다리곤, 제프리 총주방장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을 제 크루로서 맞이하게 되어 영광입니다만, 현장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본 주방에서는 물 사용이 제한됩니다. 필요량을 철저하게 맞춰 사용도록 하십시오."

뭐? 아니, 잠깐만.

주방에서 들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제한사항에 잠시 넋이 나간 아이들 앞에서, 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둘째. 본 주방에서는 가스 사용이 제한됩니다. 필요량을 철저하게 맞춰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셋째. 본 주방에서 조리도구를 들고 이동하는 행위, 물품을 일정 이상 높이로 쌓는 행위는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십시오."

"넷째. 본 주방에서는 타박상, 멍 따위의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말하는 것 하나하나, 도통 쉬이 이해되지 않는 말투성이.

연륜이 쌓인 나도 이러는데, 다른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저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찡그린 아이들 앞에서, 제프리 총주방장은 마지막 주의사항을 끝으로 말을 맺었다.

"끝으로, 머리를 잘 간수하시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혹 나는 걸론 안 끝나는 수가 있으니까. 이 주방은 여태껏 여러분이 경험한 주방과 전혀 다른 공간입니다. 그 사실을 명심하시고 부디 주의하시길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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