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21화 (221/403)

221. 발런티어 사가.-4-

서현우와 이하늘은 약 5년 전, 이 서산희망원에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버려졌다고 함이 옳겠지.

아직 6살. 만으로는 이제 고작 5살밖에 되지 않은 두 사람이지만, 이 아이들은 참으로 기구한 인생을 살아왔다.

두 사람은 둘 다 같은 해, 비슷한 시기에 보육원 앞에 버려졌다.

함께 있던 거라곤 갓난아기를 감싼 모포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가 남긴 편지뿐. 편지에는 아기의 이름과 생일, 그리고 아이를 향한 사죄와 잘 부탁한다는 말만이 쓰여 있었다.

서로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나, 우연찮게도 같은 과정을 거쳐 서산희망원에 들어온 두 사람은 마치 친남매처럼 5년의 세월을 함께 자랐다.

서산희망원에 있는 아이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몇 명의 아이들을 빼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희망원에서 자란 두 사람.

서로 비슷한 과거를 가진 동갑내기란 이유 때문일까, 두 사람은 이 보육원의 어느 누구보다도 돈독한 친구이자 형제자매로서 함께 자랐다.

밥 먹을 때도, 놀 때도, 보육원 일동이 다함께 소풍 따위를 나갈 때도 꼭 붙어 다니던 두 사람.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파국의 위기를 맞았다.

"입양이요?"

"예. 어느 불임 가정에서 와보시곤 입양 의사를 밝히셔서요."

"잘됐네요! 보육원이 부족하단 건 아니지만, 어느 아이든 가정을 가질 권리는 있잖아요."

"예. 저희도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원정율과 대화하던 교사는 아직도 식당에서 식판에 담긴 음식을 깨작거리고 있는 남자아이, 서현우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아하, 과연…….'

그렇게 된 거구만. 원정율은 그 눈짓에 담긴 속내를 눈치채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정에 불과했던 입양이 확실시된 이후, 두 절친의 사이에는 메꾸기 힘든 도랑이 파이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 지내리라 믿었던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갑자기 곁을 떠난다는 건. 그것도 자기가 바라마지 않던 새로운 부모의 슬하로 혼자 들어가게 됐다는 건 고작 6살 아이 입장에서는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원래는 입양 직전까지 되도록 주변 아이들에게는 알리지 않는 게 관례인데, 아무래도 하늘이랑 현우가 서로 너무 친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얘기한 것 같아요."

"녀석들…… 평소엔 찰떡처럼 붙어 다니던 것들이 오늘따라 뚱하더니만……."

이후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만큼이나, 때로는 어른보다도 더 복잡한 마음과 생각에 번민할 때가 있다. 다만 충분히 사회성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그 표현이 직설적일 뿐이다.

어떨 때엔 그 꾸밈없는 모습이 좋게 작용할 수도 있으나, 이번에는 그것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두 사람의 골을 더더욱 깊게 만들고 말았다.

"흠……."

자초지종을 들은 원정율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보육원 아이가 새로운 가정을 찾게 된 건 분명 좋은 일이다. 어떤 시대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가정이니까. 하지만 이 사태는 좋지 않다.

이번에 헤어지면 다음에 만날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서로에게 앙금을 남기고 떠나게 된다면 분명 마음에 상처로 남게 될 것이다.

원정율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앞으로 살면서 틀림없이 더욱 많은 상처를 받게 될 아이들이다. 어제의 추억으로 오늘의 상처를 견뎌야 할 아이들이 추억마저 상처로 남겨서는 안 된다고, 원정율은 생각했다.

"저, 선생님. 혹시 제가 애들이랑 이야기를 좀 해볼 수 있을까요?"

"정율 씨가요?"

"예. 저도 나름 경험자니, 뭔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럼 염치불구하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하늘이 이 서산희망원을 떠나는 날은 일주일 뒤. 평화 급식소가 다음에 오기로 예정된 날의 바로 다음날이었다.

'남은 일주일 동안 애들끼리 화해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나마도 자신이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앞으로 30분 남짓.

두 사람은커녕 아이 하나와도 깊은 대화를 나누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누구한테 갈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원정율이 깊은 고민에 빠진 그때, 두 아이의 이상한 점을 먼저 발견하고 원정율에게 알린 뒤로 가만히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찬혁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원정율 영양사님. 혹시 현우라는 남자애하고는 제가 얘기해 봐도 될까요?"

"뭐?"

원정율이 놀란 눈으로 찬혁을 바라봤다.

무언가 생각이 있는 듯 보이는 진지한 얼굴.

도통 고등학교 2학년으로는 보이지 않는 눈빛에 원정율의 시선이 저절로 끌려가듯 향했다.

원정율의 이성이 말한다.

맡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곤 해도 서른 줄을 넘긴 원정율이 보면 6살이나 17살이나 똑같이 어린애니까.

심리라는 건 아무나 건드릴 수 없는 분야다. 괜히 심리상담사 자격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어쩐지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안면을 튼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음식을 만들 때 보여준 요리 솜씨, 일하는 태도, 말하는 자세.

또래 애들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이 아이는,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가 아스팔트 도로를 뚫고 피어나는 새싹처럼 의심의 벽 너머로 솟아올랐다.

긍정과 부정. 원정율이 그 망설임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을 눈치챈 찬혁이 다시금 추격을 가했다.

"한 번만 믿어주세요. 짐작 가는 게 있거든요."

"짐작?"

"예."

찬혁의 말에 원정율은 의아한 시선을 보냈으나, 찬혁의 눈은 그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식당 벽에 걸린 큼지막한 달력을 향해서.

***

보육원의 하루는 단순하다.

남아, 여아로 나뉜 3인 1실의 방.

교사들이 그 방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깨우고, 씻긴 뒤,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은 뒤엔 초등학생 이상은 등교. 유치원에 다닐 나잇대의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직접 교육을 받는다.

점심을 먹고 잠깐 놀면, 그다음은 또 공부 시간.

저녁이 되어 하교한 아이들끼리 저녁을 먹으면 이후에는 자유 시간. 그리고 청소 후 수면.

이런 일과를 쳇바퀴처럼 반복한다.

그중에서 서현우는 내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로 예정된 남자아이다.

사실, 보육원 아이들 사이에선 초등학교란 일종의 귀문으로 통한다. 어느 부모든 입양할 아이를 고른다면 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를 고를 테니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정도면 이제 입양될 일은 없다고 봐도 좋다'라는 게 그 이유다.

어린아이의 생각이라고 보기엔 뒤숭숭한 점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육원의 아이 중 누군가가 다른 가정에 입양된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를 지나서 입양된 아이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서현우는 딱히 그런 일을 신경 쓰는 아이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입양되지 않는 편이 이하늘과 더 오래 함께 있을 수 있었으니까. 입양 따위는 서현우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서현우와 이하늘 사이엔 그만한 우애가 있었다.

"…… 치."

그런데 정작 이하늘은 그렇지 않았던 걸까. 서현우는 요즘 들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연필을 노트 위로 내팽개쳤다.

자유 시간 때 공부방에 오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해봐야 시험을 눈앞에 둔 중학생, 고등학생 형들 정도. 그나마도 그런 상황을 눈앞에 둔 아이들은 교사가 붙어 따로 공부를 가르치는 일이 많기에, 지금 공부방에는 오로지 서현우 한 사람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게 꼭 앞으로 자신이 느낄 감정일 것 같아, 더더욱 공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자신의 옆자리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난 것은.

"오, 공부 중이었구나. 대단하네. 혼자 공부도 다 하고."

"……?"

처음 보는 사람, 아니. 아까 본 사람이었다. 방금, 평소 오던 판다 아저씨 원정율과 함께 배식을 해주던 사람.

"반가워. 나는 류찬혁이야. 그리고 너는 현우. 맞지?"

"……."

"…… 음, 너무 일렀나."

살짝 몸을 뒤로 빼는 서현우의 행동에 찬혁이 멋쩍은 듯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찬혁은 다시금 호기심을 보이며 서현우를 본채로 책상에 몸을 기댔다.

"무슨 공부 하고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 영어, 요."

경계심 어린 서현우의 대답에 찬혁이 작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오, 영어? 벌써? 그럼 한글은 다 뗐나 보구나?"

"응."

"똑똑한데."

그렇게 감탄하곤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찬혁이 이상한 서현우였으나, 이윽고 놓았던 펜을 다시 잡곤 공부를 이어나갔다.

평소에 몇 번이고 반복하던 단어장 받아쓰기.

알파벳을 외운 뒤에 시작한 단어 공부. 복사한 영단어사전을 필사하며 외우는 간단한 공부였다.

A로 시작하는 단어. Apple 사과, Agree 동의, Actor 배우, Animal 동물, A…… A…….

"Adopt……."

입양하다.

─까득!

"아."

생각지도 못한 단어의 등장에 서현우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쥐었고. 그 탓에 애꿎은 연필심만 부러지고 말았다.

노트 위로 흩어진 흑연가루를 털어 버리고, 필통에 있던 연필깎이로 다시 연필을 뾰족하게 세운 서현우는 기분 나쁜 단어가 섞인 페이지를 치우고는 다음 페이지로 장을 옮겼다.

이번에는 B로 시작하는 단어였다. Buy 사다, Break 부서지다, Bring 데려오다, Book 책, Bear 곰. B…… B…….

"Birthday……."

"생일. 그런 단어야."

"…… 알고 있어요."

갑작스런 찬혁의 참견에 서현우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답했다.

'안 되겠다.'

오늘은 아무래도 날이 아닌 것 같단 생각에 서현우는 노트를 덮었다.

갑자기 이상한 사람이 오질 않나, 단어장에는 사람 기분을 망치는 단어만 있다. 싫은 하루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찬혁은 책상에 기댄 채 턱을 괴고 물었다.

"오늘은 그만 하게?"

"응."

"그래. 그럼 잠깐 형이랑 이야기 좀 하지 않을래?"

"이야기요?"

이상한 사람. 이상한 사람이지만, 서현우는 찬혁에게 그다지 나쁜 느낌을 받진 않았다. 항상 오던 판다 아저씨와 함께 온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도 잘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자유 시간이니, 잠깐 이야기를 하는 것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뭔데요?"

"현우 너, 하늘이랑 싸웠다며?"

"…… 그 이야기면, 안 할 거예요."

물론, 화제에 따라서 사정은 달라지겠지만.

새침하게 고개를 휙 돌리는 서현우를 보며 찬혁은 옅게 웃었다.

"그럼 형이 말할 테니까 잠깐만 들어볼래?"

"……."

보통 다른 어른은 이렇게 반응하면 굳이 더 캐물으려 하지 않았는데, 서현우가 고개를 반대로 돌린 채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찬혁은 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말이지, 형한테 되게 소중한 사람이 있었어. 형은 요리사거든. 형한테 요리를 가르쳐주고, 착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지. 훌륭한 분이었어. 난 아버지가 안 계셔서, 꼭 아버지 같다고 느낄 때도 많았고.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저씨를 못 만나게 된 거야."

"…… 왜요?"

"돌아가셨거든."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서현우와 달리 찬혁은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이래저래 깜짝 놀랐지.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엄청 건강하셔서 언제든, 몇 번이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보고 헤어질 때도 '다음에 또 만나요' 같은 느낌이었고. 근데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다니까, 안 놀라는 게 이상하지."

"……."

"아마 살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때를 고르면 틀림없이 그때일 거야. 돌아가셨단 걸 알게 된 뒤로는 손에 잡히는 일이 없었거든. 며칠 동안은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였으니까."

옛날 추억을 떠올리듯 찬혁은 턱을 괸 채 허공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슬슬 충격이 가실 때쯤 됐을 땐, 계속 후회되는 일만 생각나더라고."

"후회가 뭐예요?"

"지난 뒤에 아쉬워지는 거. 예를 들면 같이 놀러 가지 못해서 아쉽다거나, 같이 하고 싶던 일을 못 해서 아쉽다거나. 아니면……."

허공을 바라보던 찬혁의 시선이, 갑작스레 서현우의 눈을 직시했다.

"생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아쉽다거나."

"……."

"아까 식당에 걸린 달력 봤어. 다음 주에 하늘이 나가는 날, 하늘이 생일이지?"

"…… 응. 맞아요."

"잘 들어둬. 사람은 살면서 무슨 멍청한 일이든 할 수 있어. 까딱하면 다칠지도 모를 장난을 칠 수도 있고, 자기가 아니라 남을 다치게 만들 수도 있지. 하지만 제일 멍청한 일은 후회할 걸 뻔히 알면서 고집을 부리는 거야. 현우는 똑똑하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지?"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찬혁의 시선에 서현우는 고개를 내리깔았다.

"나, 하늘이 생일이 올 때마다 꼭 멋진 선물을 준다고 약속했는데, 매번 못 지켰어요."

"응."

"그래서 내년에는 꼭, 내년에는 꼭 지켜야지, 생각했는데. 갑자기…… 갑자기 못 보게 된다고 해서, 근데 너무 좋아하니까, 나도 모르게 화내서…… 나 못 보는 게 그렇게 좋냐고……."

"그랬구나."

"그래서 싸웠어요. 맨날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고, 계속 같이 있었는데……."

서현우의 눈에 물방울이 맺히고,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울먹이는 아이의 목소리는 이어질수록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을 정도로 흐트러졌지만, 그럼에도 찬혁은 그저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래도 말 거는 게 무서워서……."

"그래. 알아."

"형. 나 어떡해야 돼요? 헤어지기 싫은데…… 화해도 하고 싶고…… 근데 하늘이가 날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무서워서……."

"사람은, 언젠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날이 와."

"……."

"하지만 그게 꼭 슬픈 이별일 필요는 없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을, 꼭 울면서 보낼 필요는 없는 거야."

찬혁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는 서현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형이 마법을 부려줄게."

"마…… 법?"

"응. 마법. 평생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마법."

"어떻게요……?"

"형이 다음 주에 다시 올 거야. 하늘이가 떠나기 전날에. 그때, 세계에서 제일 멋진 선물을 같이 가져올게. 그러니까 현우 너도 힘내자. 적어도 서로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 행복한 모습일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 응!"

"좋아. 역시 현우는 똑똑하구나."

어느새 울음을 뚝 그치고, 붉게 부어오른 눈으로 당당한 표정을 짓는 서현우를 보며 찬혁은 웃었다.

"형만 믿어. 형은 요리사지만, 요리사만 부릴 수 있는 마법을 보여줄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