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발런티어 사가.-3-
서산희망원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차를 타고 20분 정도일까.
도시 외곽 도로를 달리다 핸들을 꺾어 평화 급식소의 조리시설이 있는 부근보다는 조금 더 아파트 따위가 눈에 자주 띄는 주거 밀집 지역.
그중에서도 조금 후미진 곳에 차를 세운 원정율 영양사가 시동을 끄며 말했다.
"다 왔다. 근처에 주차장이 여기 밖에 없어서 조금 걸어야 되거든? 뒤쪽에서 전열기 먼저 좀 내려줘. 나는 카트 좀 가지러 다녀올게. 보육원에 맡겨둔 게 있거든."
"아, 예. 다녀오세요."
리모컨으로 트렁크 문을 열어놓고 떠나는 원정율 영양사의 지시에 따라 전열기를 먼저 꺼내기 편하게끔 꺼내놓고, 그 옆으로 급식이 담긴 보온함을 나란히 줄 세웠다.
보온함에 2중으로 담아 가져왔다곤 해도 식는 걸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막 만들어진 것처럼 따뜻하게 먹으려면 이런 전열기 같은 따뜻하게 데울 수단이 필요하다.
'시설에서 따로 챙기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평소에 트렁크에 넣고 다니는 걸까. 번거로운 일일 텐데. 대단한 사람이다.
잠시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원정율 영양사가 아스팔트에 바퀴 구르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아왔다. 보육원이 정말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나 보다.
"기다렸지. 오, 꺼내기 편하게 잘 해놨네. 잘 했어. 조금만 더 고생하자."
"네."
아무리 종류가 적어도 50인분쯤 되는 양이면 그 무게도 엄청나다. 국만 해도 30kg 남짓 되니까.
덩치 좋은 남자 둘이 힘을 합쳐 카트 위로 차곡차곡 물건을 쌓았다.
음식에 전열기, 식판 따위의 물건을 실으니 카트 손잡이로 느껴지는 무게가 장난 아니었다.
원정율 영양사가 앞에서 끌고, 나는 물건이 넘어가지 않도록 뒤에서 받치며 걷기를 몇 분. 이윽고 나는 서산평화원이라는 살짝 색이 바랜 간판을 발견했다.
"짐 끌고 오려니 맨몸으로 오는 것보다 훨씬 더 걸렸네."
"그래도 얼마 안 걸었는데요 뭐."
경첩 부근이 살짝 녹슨 철문. 청록색 방청 페인트의 까슬까슬한 촉감이 남은 손잡이를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꽤나 큼지막한 크기의 반듯한 2층 건물이 나를 반겼다.
"오……."
"어때, 제법 크지?"
"예."
음식을 50인분이나 준비할 때 생각보다 제법 사이즈가 있는 곳이구나 싶긴 했는데, 이건 내 예상 이상이었다. 얼핏 봐도 내 기숙사만 한 방이 10개는 너끈히 들어갈 것 같다.
"아마 이 근방에서는 가장 큰 시설일 거야. 주변에 보육원 시설이 몇 없는 대신 여기를 크게 지었대나."
보육원 건설에 반대하는 민원이 많이 들어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쓴웃음을 짓는 원정율 영양사의 말에 나도 좀 씁쓸한 기분이 됐다.
"굳이 크게 지을 필요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자, 이만 갖고 들어가자. 안에서 애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예."
***
둘이서 힘을 합쳐 식당으로 보이는 방까지 짐을 옮겼다.
'꽤 넓은데.'
하긴, 사람이 몇인데 좁아터진 방에서 먹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마지막 짐을 옮기고, 끝으로 원정율 영양사가 어디선가 가져온 리드선에 멀티탭을 연결하여 전열기 코드를 전부 연결했다.
그다음은 음식의 세팅.
밥부터 시작해서 반찬 네 가지, 계란국, 바나나와 딸기, 끝으로 플레인 요거트까지.
둘이 합심하여 세팅을 마치고 위생모와 앞치마, 마스크를 착용한 뒤에야 모든 준비가 끝났다.
"여보세요? 아, 예. 지금 준비 끝났습니다. 이제 오시면 돼요.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간신히 한숨을 돌리는 원정율 영양사. 앞치마를 살짝 들춰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그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자, 슬슬 들어올 거야. 배식해본 적은 있니?"
"어…… 예, 뭐."
많이 해봤지. 더럽게 많이. 특히 나보다 상급자 상대로 배식해본 적이 가장 많다.
"그럼 알겠네. 배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양 조절?"
"정답. 바로 나오는 거 보니까 꽤 해봤구나?"
그 질문에는 쓴웃음 말고 돌려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시설 정원은 선생님들까지 합쳐서 33명이야. 나이는 5살부터 17살까지 다양하니까 배식하는 양은 철저히 지킬 것. 추가 배식은 다 준 다음에 할 것. 떼쓴다고 들어주지 말 것. 알겠지?"
"네."
"좋아. 자, 여기 서고."
원정율 영양사는 내 몸을 어깨로 장난스레 밀며 내 위치를 조정해주었다. 감자조림과 야채볶음 앞. 원정율 영양사는 떡갈비 앞에 섰다.
배식할 때 가장 힘든 자리는 메인 반찬 앞이다. 누구든 더 달라고 조르는 곳이니까.
물론 아이들이 넉넉히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오긴 했어도 양을 조절하려면 상당히 힘들 것이다.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여길 몇 번이나 왔는데. 걱정 마. 온다. 준비해."
문 바깥에서 말소리, 발소리가 섞인 소란이 들려오는 것을 날카롭게 캐치한 그가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거."
"예?"
"웃어. 애들이 떼써도 되도록 인상은 쓰지 말고."
"…… 예."
그게 내가 가장 자신 없는 일인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싫다고 뺄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부디 내 얼굴 근육이 마비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
"아, 판다 아저씨다!"
"판다 아저씨, 안녕!"
"'안녕하세요'라고 해야지."
"안녕하세요!"
"오냐."
"우와, 고기 엄청 커! 판다 아저씨! 나 두 개, 아니다. 세 개 줘요!"
"안 돼. 한 사람 당 하나야. 다 먹고 또 먹어."
"하나만 더 주면 안 돼요? 진짜 딱 하나만!"
"안 돼."
"치사해. 어른이면서!"
"어른은 치사한 거야. 자자, 얼른 받고 가서 앉아. 다음 사람도 받아야지."
"네엥."
정신이 하나도 없네.
활력으로 넘쳐나는 아이들의 모습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단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회귀한 뒤로 젊은 피, 젊은 피 노래를 부르며 다니지만, 진짜 젊은 피는 이길 수 없다는 건가? 아무리 큰 행성이든 블랙홀 같은 초질량체의 인력에는 속절없이 끌려가듯, 내 활력이 저 어린 활력의 덩어리들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선생님 세 분을 합하여 총원 33명에게 배식하는 내내 입을 멈출 줄 모르던 초등학생 나잇대 애들과 그나마 묵묵히 받아가며 고맙다는 인사만 건네던 중, 고등학생들.
전원에게 배식을 끝낸 뒤, 그들이 자리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하는 틈을 타 우리는 잠시 땀을 식힐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어때. 생각보다 힘들지?"
"그러게요."
머리 굵은 성인들한테 배식하던 때보다 몇 배는 힘들었다. 더 주면 안 되냐 보채지, 싫다고 조금만 주면 안 되냐 묻는 것도 정량대로 주고 돌려보내는 건 더 힘들었다. 편식은 안 좋은 일이다. 특히 저 또래 애들한테는 말이다.
"그나저나, 판다 아저씨는 뭐예요?"
"응? 아, 그거. 여기 애들이 나한테 붙인 별명이야."
그렇게 부르는 건 어린애들 밖에 없지만, 이라며 원정율 영양사가 뿌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과연, 저 다크서클이 꼭 판다 같다고 생각한 건 나만 그런 게 아닌 듯하다.
"한두 번 오신 게 아닌가 보네요."
"그렇지. 주에 한 번은 꼭 오거든. 애들 밥이야 저기 선생님들이 어떻게 준비하는 게 있긴 해도 서른 명 먹이고 재우는 게 보통 힘든 일은 아니니까. 한 끼라도 편하게 드시라고 노력하는 거지. 큰 도움은 안 될 테지만."
"아뇨. 분명 아이들한테는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예."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고."
결여 된 아이들은 많은 것을 참고 살아간다.
군것질을 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장난감을 갖고 싶은 마음을 참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어리광부리고 싶은 마음을 참는다.
참는다는 행위는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참는다는 건 그런 욕구를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쌓는 것이다.
마음이란 이름의 자그만 방에, 욕구라는 이름의 짐을 쌓아나간다.
그렇게 짐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어느새 방에는 남는 공간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걸 보고 우리는 마음에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여유가 없는 삶은 괴롭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자신의 마음속에서 정작 자기 자신이 편히 누울 공간 하나 없다는 것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다.
마음의 창(눈)에는 그늘이 생기고, 마음의 통로(입)는 닫히게 된다. 마음이 병들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된 아이를 낫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다. 정이다.
우정, 애정, 모정, 부정, 진정, 순정, 진정, 인정.
그런 마음이야말로 타인의 마음속에 생긴 병을 낫게 하는 만병통치약.
원정율 영양사, 그리고 아까 조리시설에서 함께 요리한 봉사자야말로 그런 만병통치약을 처방하는 의사이자 만들어내는 약사다.
그렇기에 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온 힘을 다해 돕지는 못할지언정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랐다. 내 주치의였던 사장님처럼 말이다.
'뭐, 그런 것도 자기 건강을 못 챙긴 다음 할 이야기지.'
"그나저나, 대체 얼마나 다크서클을 달고 다니셨으면 애들이 그런 별명을 지어드렸대요? 불면증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본업이 좀 힘든 일이거든."
"본업이요? 급식소 영양사가 본업 아니셨어요?"
"영양사가 본업은 맞는데, 평화 급식소가 직장은 아냐. 학교 급식업체 영양사로 일하고 있거든."
"그럼 평화 급식소 일은……."
"나도 봉사 활동으로 하는 거지. 너무 자주 나와서 소장님은 반쯤 직원 취급 중이지만. 저번엔 월급까지 주려고 하시더라니까."
거 참, 적재적소에 딱 맞는 재능기부가 아닐 수 없다. 그 정도면 다크서클을 달고 다니는 것도 이해가 간다.
"잠은 좀 주무시면서 하세요."
"그래, 충고 고맙다."
내 말을 웃어넘긴 원정율 영양사가 다시 위생모와 마스크를 착용했다. 안에서 들려오던 기도소리가 멎은 참이다. 누군가는 곧 다시 배식받으러 올 테니 우리도 슬슬 다시 들어갈 시간이다.
"자, 또 고생 한 번 하자."
"네."
***
오늘 만들어온 급식은 아이들에게서 폭발적인 반항을 이끌어냈다.
본래 메인 메뉴인 떡갈비만이 아니라, 내가 담당한 감자조림이나 아이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야채볶음마저 더 달라며 아우성치는 애들이 넘쳐났다.
"와, 갖고 온 게 싹싹 비었네. 이런 적은 되게 오랜만인데."
예전에 스파게티를 급식으로 가져온 날 이래 이만큼 아이들의 반응이 좋은 건 오랜만이라며 원정율 영양사는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나도 제법 놀랐다. 아무리 요맘때 애들이 한창 식욕이 왕성할 시기라고는 하지만 서른 명이서 50인분에 달하는 음식을 전부 먹어치울 거라곤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식당에는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먹은 걸 소화시키기 위해 늘어진 아이들이 태반이었고, 수저를 부지런히 놀리며 아직도 식사를 끝내지 않은 아이들이 나머지 반이었다.
좋아. 아주 좋다.
어떨 때는 어른보다 배는 까다롭다는 아이들의 입맛을 성공적으로 장악했다. 이건 요리사인 나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스트레스 해소법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나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는 건 그만큼 아이들의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은 사라졌다는 뜻이니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지.
"음?"
우리가 만든 음식을 먹는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흡족한 미소를 짓던 그때, 내 눈에 감히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 포착됐다.
"……."
"……."
기다란 식탁의 양 극단에 앉은 아이 두 명.
어린 유치원생 또래로 보이는 두 아이가 어딘가 신통치 않은 표정으로 먹지도 않은 떡갈비를 깨작거리는 모습이.
'…… 뭐지?'
깨작거려? 고기를? 둘씩이나? 저 어린애들이?
뭔가 냄새가 난다.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