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17화 (217/403)

217. 패스트 체인.-6-

교장 선생님과의 면담 이후, 나는 당장 근신이 해제된 보람도 없이 다시금 기숙사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학교, 기숙사, 학교, 기숙사.

마치 전기통닭이 돌아가는 것 마냥 같은 위치를 빙글빙글 계속 도는, 내 자신이 톱니바퀴가 된 것 같은 하루하루.

물론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러는 건 아니고, 이것도 전부 반성문을 쓰기 위해 시간을 냈기 때문이다.

반성문, 이라고 이름은 붙였어도 실질적인 내용은 반성문이라기보단 경위서, 혹은 회고록에 가깝다.

그때 어떠한 이유로 무슨 일을 했는지를 감성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풀어쓴 글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여태까지 한 일에 대한 대국적인 사죄와 날 용서해주려는 의지를 보여주어 고맙다는 이전 영상의 제보자를 향한 메시지가 섞인 글.

문제가 있다면 나는 보고서용 글은 조리 있게 쓸 줄 알아도 감성이 담긴 글은 잘 쓰지 못한다는 데에 있었다.

덕분에 쓴 글을 교사진에게 검사 맡고, 기숙사에서 그걸 수정한 뒤 다시 검사 맡는 생활의 반복.

성심고의 전기통닭 신세가 된 데에는 이러한 내막이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뭐, 딱히 숨겨진 것도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쳐 써낸 반성문을 낭독하는 영상은 참으로 감사하게도 학교에서 개설한 채널의 영광스런 첫 번째 자리를 가져갔다.

"딱히 영광이고 뭐고 없는 것 같은데……."

"나도 아니까 조용히 하자."

여기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다면 영상의 반향이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래 봬도 학교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아무 홍보도 없이 그런 영상을 찍어 올린다고 볼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렇기에 이쪽도 이쪽 나름 인맥을 동원하여 우리의 2차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는 골목 레스토랑의 메인MC인 박종원 대표님이나 처음으로 사건의 시작을 알린 5분 시사 채널을 통해서 조회수를 모았음에도 예상했던 것의 반의반도 채 나오지 않았다고.

"다 흥미가 떨어진 거지. 피라냐가 고기 한 점 없는 뼈에 달라붙는 거 봤냐."

"그런가?"

말을 해도 상당히 과격한 논조를 보인 김철정의 의견이었다.

나도 살짝은 동의하는 바가 없잖아 있었다. 어차피 인터넷판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흥미가 우선이다. 굳이 끝까지 진실을 찾아 헤매는 사람은 그중에서도 극소수겠지.

'그래도 이만큼 했으면 답변은 충분히 됐을 거야.'

그나저나 이번 사건은 꽤 사람 이목을 끌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식는 속도가 빠르단 생각이 드는 걸까?

내 경험상 보통 이 정도 사건이 터지면 적어도 보름에서 한 달 정도는 시끄러운 게 정상이다. 근데 이번에는 보름은커녕 열흘도 채 못 채우고 점점 사건이 잦아드는 느낌이 든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

내 생각보다 이 사건 자체가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묻을 만큼 크게 터진 또 다른 사건이 생겼다.

지금은 삭제된 첫 폭로영상의 조회수를 생각하면 전자는 아닐 듯하고, 그렇다면 후자라는 건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나나 지금 화제의 주인공이 됐을 그 사람이나.

이 정도로 큰 사건이 얼추 묻힐 정도로 어그로가 끌렸다면 결코 범상한 사건은 아닐 것이다. 나야 인터넷에서 하는 거라곤 올튜브에 올라오는 각 국가의 요리 채널에서 올라오는 레시피나 최신 조리기법 등에 대한 논문, 혹은 새로 발간된 책 따위를 사는 데에나 쓰기 때문에 그런 쪽은 잘 모르는 장르지만.

아무튼, 결론만 말하자면 이러했다.

나는 이번 위기를 예상한 것보다 스무스하게 넘어가 대회반에 다시 복귀했으며, 학교 측에서는 회의 후 내게 어떤 징계를 내릴지 통보해왔다.

"2학년 1반 류찬혁. 해당 학생에게 총합 24시간의 사회봉사활동과 4시간의 학교폭력방지교육 이수를 통보합니다."

사회봉사활동에 학폭방지교육이라…… 음, 이 정도면 적당한가.

아무 징계도 없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냥 넘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라도 생색을 내주는 편이 나나 학교, 양측에게 있어서 더 유리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저 징계 시간을 채우기 위한 여유를 이전에 미리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1학기 분량 과제는 얼마 전 다 끝냈고, 대회반도 1학기 할당량은 이전 대회로 채워뒀으니까.

"마, 니 또 얼굴 보기 힘들겠네?"

"어차피 학교에서 맨날 보잖아."

"그건 그런데…… 그건 언제까지 끝내야 되는데?"

"대충 1학기 끝나기 전에 채우면 돼."

교육 같은 경우 매주 한 번씩 찾아오는 외부 강사에게 한 회 2시간 씩, 2번 교육을 받으면 끝.

사회봉사는…… 뭐, 이것도 내 나름 생각해 둔 방도가 있긴 하다. 이쪽은 다 끝내려면 한 달 정도는 걸릴 것 같긴 하지만.

"야, 그래도 이 정도에서 끝난 게 다행이다. 말만 들으면 바로 퇴학 각이었는데."

"내가 각 싸움은 또 쉽게 안 내주거든."

"자랑이다…… 뭐, 어쨌든 고생했다."

"말했잖아. 믿고 있으라고."

"응. 믿고 있었어."

오랜만에 넷이 모여 학교 식당에서 석식을 먹은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사회봉사를 할 곳을 찾는 일이었다.

사회봉사도 이런저런 종류가 있다.

단순하게는 동사무소 등지에 가서 동네에 있는 불법 전단지를 뜯는 일이라거나, 아니면 근처 공공시설이나 문화재 시설 등의 간단한 청소 등을 하는 방법도 있고.

학교마다 인정해주는 시간이 다르게 먹히기는 하지만, 우리 학교 같은 경우에 직빵으로 먹히는 장소가 하나 있다.

그게 바로 이곳, 무료 급식소 봉사활동이다.

"여기가 꽤 쏠쏠하지."

회귀 전 대학교 진학 상담 때 꽤 많은 도움이 됐던 꿀 포인트다.

그때야 이미 난 이 학교 학생이 아니긴 했지만, 성심고 같은 조리과학 고등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런 업체와 제법 굵은 커넥션을 갖고 있다.

커넥션이라는 단어에 오해는 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딱히 편의를 봐준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각 단체의 창구 간 소통이 평범한 알선소보다 훨씬 개방적이라는 뜻이다.

한 번 자리를 잡고 제대로만 하면 언제든 할 수 있고, 시간도 제법 짭짤하게 줘서 금방 시간을 채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보통 그냥 학생한테는 배달이나 배식 정도만 시키지만…….'

조리과학고의 학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설에 직접 가서 조리를 돕는 걸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마침 다행히도 기숙사 근처에서 버스 타고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급식 조리소가 한 곳 있다. 당연히 학교와 커넥션이 잘 짜인 곳이다.

"여기가 딱 좋네."

배식 시간은 조, 중, 석식. 조식 준비는 대략 새벽 여섯 시쯤 시작해서 일곱 시 남짓 끝나니 새벽에 가도 좋고, 그도 아니면 주말에 제대로 시간을 빼서 꼴박하는 것도 좋겠지.

느긋하게 한다면 대략 6주. 새벽 시간이나 주말을 빡세게 굴리면…… 보름 정도?

이 정도면 아주 괜찮은 조건이다. 예전에는 봉사 시간으로만 80시간가량을 2, 3학년 내내 꽉꽉 채웠던 거에 비교하면 훨씬 할 만하지.

업체와 연결해주는 건 학교의 몫이지만, 근무시간을 업체와 조율하는 건 내 몫이다.

이곳으로 가겠다는 신청서를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제출한 뒤, 나는 조용히 컴을 종료했다.

아마 이번 학기 마지막 휴식 시간이 될지도 모르는 기간. 당분간은 얌전히 지내기로 마음먹으며 나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젠장! 시발! 대체 뭐냐고!"

추진웅은 요 근래 자신의 주변에서 무언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또한 그 일은, 장담하건대 결코 그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시작은 그의 빅스타그램 계정이었다.

평소에는 글을 올리면 해봤자 하루 평균 네다섯 개의 좋아요가 달리던 계정에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그 배, 아니. 서너 배에 달하는 숫자의 싫어요가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끝도 없이 쏟아지는 알람에 좋은 의미로 깜짝 놀란 추진웅이었으나, 그 경탄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평소 찍어 올리던 허세 가득한 셀카에는 이상할 정도로 싫어요와 조롱성 댓글이 수두룩하게 쌓였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친구들의 계정에서 자신이 찍힌 사진이 올라온 게시글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건 전주에 불과했다.

평소 그가 관심을 보이던 여학생은 갑자기 그의 계정을 친삭한 뒤 차단을 박았다.

DM창에는 친구들과의 메시지 대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욕설이 도배됐다.

한두 명 정도라면 똑같이 욕으로 맞상대할 수 있었다.

네다섯 명 정도라면 그러지 좀 말라고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열 명, 스무 명, 쉰 명을 넘어가기 시작하자 그는 빅스타그램 앱을 켜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이게 대체 뭐냐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생면부지의 사람이 양아치 새끼라며 DM을 보내고, 같은 동네에 살지도 않을 사람이 갑자기 패드립을 박았다.

─아이고, 양아치 새끼야! 그만큼 돈 뺏어서 다 어따 썼니?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냐? 병신이네 진짜ㅋㅋㅋㅋ

─애미애비가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그러니? 아? 혹시 없음? 그럼 ㅇㅈ이지 아ㅋㅋㅋㅋ

인터넷 세상은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

과산중학교.

추진웅.

고등학교 2학년.

이 세 가지 자료만 있다면 그의 얼굴, 주거지, 가족관계, 친구관계 따위를 알아내는 건 초등학생도 몇 분 만에 간단히 알아낼 수 있었다.

세상과 개인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알고리즘이, 지금은 개인의 급소를 세상 전체에 훤히 내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하루 종일 핸드폰에서 불이 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울리는 진동알림.

알림 설정을 꺼도 DM 따위의 메시지는 알림을 꺼놓을 수 없었기에 그 진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루에 쉰 명을 차단해도, 그다음 날 백 명의 사람이 찾아온다.

최후의 수단으로 계정을 삭제했으나, 이번에는 마스크북으로 장소를 옮겨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뭐냐고, 대체 왜 이러냐고!'

추진웅은 작금의 사태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자기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 수많은 인간들이 자신에게 이토록 개지랄을 떠는 건지, 그의 머리는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이 또한 업보라는 것을, 그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새로 계정을 만들어도, 모든 설정을 비공개로 바꾸어도 그것은 멈추지 않았다.

과연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이 올튜브 영상에 달린 하나의 댓글 때문이라는 걸 알았으면, 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니.

시작의 방아쇠를 가장 먼저 당긴 것이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면,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서글프게도 추진웅에게 그런 가능성은 아직까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이해가 가능한 사람이었더라면, 애당초 이런 사태에 당면할 리가 없었을 테니까.

얼마 뒤, 그는 핸드폰을 갖고 다니기를 포기했다. 와이파이를 끄고, 유심칩을 뽑고, 핸드폰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로써, 그는 간신히 세상과 단절될 수 있었다.

다만, 가상의 세상에 한정된 이야기였지만.

현실에는 아직도 더욱 지독한 사건이 많이 남아 있었고, 가상의 세상은 이 모든 사건이 완전히 잊힌 뒤에도 그의 뒤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겠지.

그런 끔찍한 사실을 당장의 고요에 안도한 추진웅은 알지 못했다. 여전히.

침대 이불 속 어둠에 웅크린 그의 몸에는, 오늘도 새로운 족쇄가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옭아매는 고치마냥 겹겹이 감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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