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패스트 체인.-4-
"이건 또 뭐야!"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운 추진웅은 얼마 안 있어 제 손에 들린 핸드폰을 저도 모르게 집어 던졌다.
거친 소리를 내며 벽에 모서리를 제대로 찍은 핸드폰의 액정이 쩍 하고 갈라졌으나, 지금 그런 건 그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그의 행동을 폭발시킨 것은 단 하나. 바로 지금 깨진 액정 아래로 비치는 어느 영상이었다.
'어떤 새끼지……!'
'류 모 학생 추가 제보'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온 그 영상은 이전의 영상과 판이하게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히 액정보다는 훨씬 상태가 멀쩡한 스피커가 영상 속 남자의 목소리를 재생했다.
***
"류모 씨의 학교 행실이 이전 말씀드린 것과 전혀 다르다는 제보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사과를 먼저 드려야 할 것 같네요.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제보 내용은 이러합니다. 제보자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류모 씨와 같은 중학교를 나온 학생들입니다. 예, 여럿이죠. 이 학생들의 제보 내용은 일괄적으로 비슷합니다.
류찬혁 학생이 중학교 때 일진 무리와 어울린 건 사실이 맞다. 하지만 일반 학생을 상대로 폭력, 또는 금품갈취 등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른 적은 없다. 여기에 더해 현직 경찰분의 제보도 있었습니다.
비슷한 무리의 학생과 서로 자주 싸운 것은 맞다. 그러나 폭행으로 경찰서까지 갔다는 말은 논리의 비약이다. 해당 사건을 직접 담당했을 당시 류모 씨는 타 학생 다수에게 혼자 집단폭행을 당한 정황이 있었고, 부상의 경미함과 각 가정의 학부모가 사건의 확대를 서로 원치 않았기에 훈방조치로 수사는 종결됐다. 허, 참."
한 차례 혀를 찬 그는 마치 보고서를 읽듯 담담한 목소리로 대본을 이어 읽었다.
"2학년 때 그룹에서 빠진 이후 그들이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입히는 걸 솔선하여 막았고, 졸업 전에는 자신이 속했던 무리에게 피해를 입은 학생을 하나하나 찾아가 그들이 다른 일진 학생에게 빼앗긴 금품이나, 혹은 가져간 물품의 값어치에 달하는 금액을 자신이 일한 돈으로 배상하고 사죄했다. 70에…… 40, 55, 30…… 제보가 들어온 것만 합쳐도 200이 넘는데, 이보다 더? 중학생이 모으기엔, 상당히 과한 돈인데. 이걸 알바를 뛰어서……."
평소 채널명에 맞춰 5분이라는 시간을 꽉 채워 쓰기 위해 빠른 템포로 대사를 뱉어온 남자는 정말로 오랜만에 침음을 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비로소 남자는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신 대로, 이 제보는 해당 학생의 중학교에서 피해를 입었던 학생이 직접 제보한 내용입니다. 제가 사회 고발 영상을 제작한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피해자가 가해자 용의가 있는 사람을 두둔하는 제보가 온 경우는 처음이에요. 제보 몇 개는 직접 통화까지 해서 들은 내용이니 본인은 분명하고요."
남자가 잘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이 경우에는 앞선 제보가 틀린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판단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기레기 기사 수준이에요. 사실을 살짝 섞은 날조요. 뒷말을 하기 앞서 시청자 여러분 및 이전 영상의 당사자인 류모 씨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관계 확인이 덜 된 내용을 함부로 다루었습니다. 해당 영상은 삭제 후 정정된 영상으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깊게 머리를 숙인 남자가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사건이 조금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분명 잘못한 일이 있긴 하지만, 그걸 어떻게든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한 학생. 시청자 여러분의 의견도 많이 갈리리라 생각합니다. 제 사견을 붙이자면, 저는 이 학생이 대견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일을 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저 나이에 아르바이트로 수백 버는 거?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 새벽부터 저녁까지 알바 뛰면서 돈 한 푼 안 쓰고 반년은 꼬박 모아야 간신히 모을 돈이에요.
그걸 오로지 사죄를 위해 쓴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심지어 자기가 뺏은 돈도 아닌데 말이에요.
이 학생은 분명 잘못된 길을 갔습니다. 하지만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오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했어요. 학생의 신분으로는 최선 중 최선을 다한 사죄였다고 전 생각합니다. 피해자가 먼저 나서서 두둔하는 점에서 볼 때, 다른 학생은 몰라도 류모 씨 개인에 대한 사죄는 받아들이고 용서했다고 봐도 될지도 모릅니다. 이건 피해자 개인의 문제니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요."
남자가 말을 잇는다.
"남은 판단은 시청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다만, 맹목적인 비난을 잠시 멈추고 한 번쯤 깊이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게임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선하게 태어나는 것과 타고난 악함을 극복하고 선해지는 것. 어느 쪽이 더 위대한가? 물론 현실은 게임이 아니지만, 이 상황에는 고민해볼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방송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이렇게 두루뭉술한 마무리를 하네요. 성심고의 대처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어떤 새끼야 대체!"
"얘, 무슨 일이니?"
"아무 것도 아니야!"
핸드폰이 부딪치는 소리에 놀라 문을 노크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호통으로 내쫓은 추진웅은 깨진 핸드폰을 뒤로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에 바탕화면이 뜨기 무섭게 올튜브 사이트에 들어간 그는 마우스를 부술 듯 눌러대며 방금 본 영상을 찾아 들어갔다.
"……이, 시발."
코멘트 창은 한마디로 표현하여 가관이었다.
올라온 지 이제 막 네다섯 시간을 지난 영상에 달린 댓글이 벌써 수백.
피해자 쪽이 용서했으니 저 정도면 됐지 않느냐는 의견과 그래도 잘못은 잘못인데 두둔해서 안 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추천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득세하고 있는 쪽은 전자.
추진웅은 작금의 상황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병신새끼들이……!"
'5분짜리 영상 하나에 개떼처럼 달려들어서 물어뜯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착한 놈 행세를……!'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그렇게 쉽게 열기에 몸을 맡기는 시청자이기에 의견의 전환도 빠른 것이라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그에게 그런 판단을 내릴 냉정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추진웅은 이미 불판을 넘어 산불이 되어 버린 코멘트 창에 자신의 의견을 매서운 기세로 끼워 넣기 시작했다.
저런 양아치 새끼를 가만 놔두면 나중엔 어떻게 되겠느냐, 당한 피해자가 불쌍하지도 않느냐 등등, 그 말이 본인에게 돌아오면 어떻게 될지는 일말의 생각조차 하지 않은 뻔뻔함.
그러나 그런 의견을 계속해서 내세워 봤자 결국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했다.
코멘트 창에서 일어나는 대립에 여론은 점점 더 전자 쪽에 무게를 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피해자 본인이 됐다는데 제3자가 무어라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 이미 저울은 기울었다.
그럼에도 추진웅은 댓글을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런다고 자신이 득을 보는 것도 아님에도.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인간의 특징이지만, 누가 보아도 무모한 일에 얻는 것도 없이 죽자고 달려드는 것 또한 인간의 습성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 기질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폭발한 인간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시발…… 씨발……!"
몇 시간이나 이러고 있던 걸까.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입에 대지 않은 채 밤늦게까지 하얗게 빛나는 모니터 앞을 지키던 추진웅이 끝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여론을 선동하는 그의 비난 댓글에는 조롱만이 답변으로 남아 있었고, 여론은 찬혁을 호의적으로 보거나, 또는 성심고 측의 대처를 지켜보자는 중도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무엇 하나 얻지 못한 멍청한 짓.
끝끝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아니. 깨달으려 하지 않은 추진웅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씨발. 운 좋은 줄 알아라."
이번에는 이걸로 그만둔다. 마치 본인이 선심을 쓰듯이, 추진웅은 허탈한 심정을 냉철한 척 감췄다. 예상보다 적긴 했으나 찬혁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은 사실이고, 그 자신은 손가락 좀 아프고 시간 약간 버린 걸 빼면 아무것도 잃은 게 없다.
이른바 말하는 정신승리였다.
그러나, 그런 추진웅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마치 그처럼,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시간 버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그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군중은 언제나 비난의 화살을 향할 상대를 찾는다.
그게 타국이든, 자국이든, 정부든, 단체든, 개인이든.
익명성이라는 방패가 공격성이라는 괴물을 길렀다.
그 괴물은 탐욕이 많고, 항상 허기에 굶주렸으며, 그러므로 먹잇감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먹잇감을 눈앞에서 허탈하게 놓친 괴물은 다음 먹잇감을 찾아 눈알을 굴린다.
평소 같았다면 관계가 없는 또 다른 화제로 향했을 괴물.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괴물의 목줄을 잡고, 그 눈앞에서 미끼를 흔들어 여기까지 불러온 누군가가 있었다.
추진웅이라는 누군가가.
─야, 근데 저번 영상이 기레기식 날조면 그거 쓴 놈은 뭐 하는 놈임?
─그러게. 보니까 같은 학교 애면 대부분 아는 이야기 같던데.
─ㄴ맞음. 나도 그 중학교 나왔는데 그 이야기 애들 사이에서 유명함.
─ㄴㄴ쟤 돈 많은 애였냐?
─ㄴㄴㄴ아니. 완전 빈털터리. 내가 알기로 아버지인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렇게 잘 살진 않는 걸로 암.
─와, 그럼 진짜 알바로만 그 돈을 벌어서 다 딴 사람 줬다고? 진짜 미쳤네;;
─진짜 처음 저 글 쓴 놈은 뭐하는 애냐.
─나 누군지 알 것 같은데.
─뭐? 진짜? 누구?
─저번 영상 때 나온 글 가서 보면 졸업앨범 올린 거 있거든? 거기서 글 쓴 놈이 얘네가 일진 패거리였다고 모자이크 걸어서 접사 찍은 게 있음. 근데 유명했던 애 하나가 혼자 툭 빠졌더라. 걔가 그놈들 대가리였는데.
─와, 그럼 양아치 새끼가 지가 뺏은 돈 대신 갚아준 애 모함한 거임?
─아니, 꼭 걔라는 건 아닌데…… 아마 맞지 않나 해서. 걔 2학년 때 저 찬혁이란 애랑 진짜 뒤지게 싸운 적도 있음.
─그 새끼 완전 개 또라이 새끼네. 설마 지가 한 짓을 거꾸로 씌운 거냐?ㅋㅋㅋ
─걔 이름이 뭐임?
─뭐더라. 추…… 추…… 아, 맞다. 추진웅. 과산중학교 추진웅이었나, 그랬을 거다.
군침을 뚝뚝 흘리던 괴물이 비로소 그 두 눈에 먹잇감의 모습을 담았다.
이 사실을, 진즉 컴퓨터를 끄고는 자신이 집어던진 핸드폰의 깨진 액정을 보며 욕지거리를 뱉느라 바쁘던 추진웅은 알 방도가 없었다.
그저 그 괴물이 지척에 달하여 자신의 손발로 허기를 달랜 뒤에야 간신히 알 수 있게 되겠지.
하지만 그러는 편이 오히려 추진웅에게는 더욱 나을지도 모른다.
아는 건 힘이지만,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이렇게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재난이 닥칠 때에는 특히.
누군가와는 달리 자신에게 찾아올 미래를 알 리 없는 추진웅은 그저 내일도 똑같이 찾아올 일탈 섞인 일상을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한동안 쓰지 않은 타자를 신나게 두드리느라 뻐근해진 손가락을 스트레칭으로 푼 이희정은 PC방 선불시간이 종료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용한 금액은 대략 5천 원 정도.
언젠가 표정이 무서운 동창에게 받았던 70만원에 비하면, 껌값이나 다름없는 비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