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14화 (214/403)

214. 패스트 체인.-3-

"야야, 빨리 꺼내봐. 불 챙겼지?"

"챙겼지. 이따 우리 반 체육인데 네가 좀 갖고 있어라. 담탱 새끼 맨날 반에만 들어오면 담배 냄새 난다고 지랄이야."

"병신아 작작 펴. 혼자 또 삥땅 쳐서 처피니까 담배 냄새 배는 거 아냐."

"뭐 시바. 네 거냐?"

"돈 모아서 샀잖아. 이 새낀 또라인가."

해가 머리 꼭대기로 올라간 정오. 일련의 학생 무리가 모여 있다.

머리수는 다섯. 교복을 입은 그들이 모인 곳은 학교가 아니라 그곳에서 조금 더 떨어진 어느 외딴 건물의 그림자.

큰길이나 바깥에서 잘 보이지 않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온 그들의 손에는 종이를 접어 만든 집게가 쥐어졌고, 그 집게의 끝에는 거의 필터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꽁초가 집혔다.

보면 알다시피 그들은 흔히 일진이란 말을 듣는 패거리다.

점심시간을 틈타 교사의 눈을 피해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적당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식후땡을 하는 게 그들의 일과.

"시바, 오늘은 좀 빨리네. 그 병신은 담배 이름을 가르쳐줘도 못 사 와서 그 지랄이야."

"거기 알바 새끼 지 닮은 찐따라 민증도 안 본다고 말을 해줘도 안 믿어요."

사람 눈을 피해 이런 행위를 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인 그들에게선 이런 일탈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 혹은 들킬까 염려하는 긴장감 같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탈이 일상이 된 그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매캐한 연기를 입으로 뿜어대며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며 킬킬대기 바쁘다.

"흐흐, 이 병신들도 키보드 누르는 재주는 있네."

그러나 그런 일진 무리 중 한 사람. 추진웅에게는 최근 들어 새로운 일과가 하나 생겼다.

평소 같았으면 구석에 쪼그려 앉은 무리 사이에 섞여 같이 대화를 나누었을 시간. 하지만 추진웅은 그 무리에서 홀로 빠져 핸드폰을 보고 킬킬대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

그런 그를 보고 무리 중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또 그거 보냐?"

"어."

"너 요즘 그것만 보는 것 같더라. 뭔데? 재밌는 거야?"

"존나 재밌지 그럼."

추진웅은 자신이 보던 영상의 코멘트에서 눈을 떼고 음습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람 꼴 받게 하던 새끼를 시궁창으로 추락시키는 게 이토록 재밌는 일이었을 줄이야. 추진웅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패거리를 앞에 두고도 좀처럼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처음 본 건 우연이었다.

어쩌다 TV를 보다가 낯익은 얼굴이 나오기에 봤더니, 정말 자신이 아는 그놈이었다.

어느 날 싸움이 난 뒤로 사사건건 자신의 일에 시비를 털던 놈이 그 시절보다 쓸데없이 밝아진 표정을 짓는 걸 보면 괜히 열불이 치솟았다. 그래서였다. 인터넷에 그놈. 류찬혁의 옛이야기를 올린 것은. 옛이야기라고 해도 반은 날조에 가까웠지만.

'하여간 멍청한 놈들이 사람 말을 의심할 줄 몰라.'

자신의 이름도 나오지 않은 졸업 앨범 따위의 증거를 믿고 미친개처럼 떼로 달려들어 사람을 물어뜯는 꼴이라니, 이만큼 우스운 일도 많지 않다.

'류찬혁…….'

추진웅은 찬혁과 같은 중학교를 나온 동창이다.

단순한 동창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더 깊은 관계였다.

부모님이 가진 술 따위를 훔쳐 같이 마신다거나, 어른 몰래 같이 담배를 피우며 일탈을 즐긴 같은 패거리의 불량학생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어느 날 골목에서 찬혁을 뺀 패거리와 함께 녀석의 뒷담을 하다 걸려 싸우고 경찰서까지 간 뒤, 그들과 찬혁 사이의 관계는 철저하리만치 무너졌다.

아예 아무것도 없는 평지보다 한 차례 지어졌다 무너진 건축물이 더욱 보기 흉하듯이, 그들의 관계도 같은 양상이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찬혁은 어딘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추진웅의 패거리가 반 애들한테 시비를 걸려 하면 방해하기 일쑤였고, 그렇다고 따로 불러내어 린치를 가해도 득 될 것이 없었다. 잃을 게 없는 놈이 정말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들의 중학교 생활은 흐지부지하게 끝을 맺었다.

같이 어울렸던 패거리는 각자 찢어져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추진웅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중학교 때와 같은 일탈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그런데 그날 TV에서 본 찬혁은 달랐다.

이미 추진웅 본인은 닿지도 못할 곳에서 제가 정한 길을 걷고 있었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건방진 거지새끼.'

그 모습이 눈꼴시었다. 그저 그뿐이다. 찬혁에게 재를 뿌릴 이유로는 그것 하나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 거짓 폭로는 그가 상정한 것보다 훨씬 큰 약발을 발휘했다. 그가 방금 전까지 보던 댓글 중 찬혁을 욕하는 글만 꼽아도 수백은 됐다.

조만간 그 녀석은 옛날과 똑같이 비루한 꼴로 돌아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웃지 않곤 배길 수 없었다.

"야, 들어가자. 슬슬 점심 끝난다."

"벌써? 몇 분이나 있었다고."

"걍 땡땡이칠까?"

"지랄 마. 다음 수업 담탱이라고 했잖아."

"가자, 그래. 가."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는 일행을 따라 추진웅도 자리를 나섰다.

새해가 되어 몇 달 동안이나 꿀꿀하던 기분이 거짓말처럼 나아졌다.

'진즉 이럴 걸.'

녀석도 이제 별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걸 왜 그동안 하지 못했는지, 추진웅은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일행과 함께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하지만, 그런 좋은 기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로 돌아가던 중 마주친 또 다른 무리 때문이다.

체육복 차림으로 학교 주변에 있는 길을 나란히 서서 뛰고 있는 무리. 그중 선두에 서 있던 한 명의 남학생과 추진웅의 시선이 마주쳤다.

동년배보다 한층 더 커다란 체구에 더불어 체육복으로도 채 가리지 못하는 탄탄한 근육이 얇은 옷감 위로 도드라진 남학생.

추진웅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향하던 그는 이윽고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자신의 무리와 함께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날카로운 기류를 읽은 일행이 추진웅에게 물었다.

"야, 쟤 뭐냐. 저번부터 눈깔을 기분 잡치게 뜨고 다니네."

"쟤네 그거 아니냐? 우리 담탱이가 고문 맡은 애들. 유도부였나?"

"새끼들 사람을 야리냐. 가서 후릴까보다."

"지랄하네. 존나 처맞겠구만."

"저거 다 물근육이야, 병신아. 뒤통수 한 대 후리면 정신 못 차린다니까?"

"그럼 가서 해보든가."

먹히지도 않을 허세를 부리는 그들의 대화에 추진웅이 가세했다.

"아까 그 야리던 새끼, 중학교 때는 원래 개찐따였던 놈이야."

"뭐야, 같은 학교였냐?"

"어. 원래 셔틀로 쓰던 새끼였는데 갑자기 몸만 존나 불렸잖아."

"그럼 뭐 뭣도 아닌 병신이네."

"그렇다니까. 한 대 맞음 벌벌 길걸?"

말은 그렇게 해도 정작 방금 그 남학생에게 굳이 시비를 털 생각을 하는 이는 일행 중 아무도 없었다. 추진웅은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비리비리하던 놈이 고등학생이 된 뒤로는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는 녀석이 되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저렇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시발.'

도통 마음에 드는 일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요즘이었다.

***

'저놈이다.'

부의 하루 일과 중 하나인 러닝을 끝낸 뒤, 운동장에 모여 유산소 후 스트레칭을 하던 이희정은 그렇게 확신했다.

'저놈이 제보한 거야.'

이희정의 뇌리에 얼마 전 보았던 찬혁과 관련된 영상이 떠올랐다.

찬혁의 옛 과거를 사실과 거짓을 섞어 날조한 내용을 고발이랍시고 떠들던 영상과 그 출처가 된 글. 그 글을 쓴 사람이 저 추진웅이리라는 것을, 이희정은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졸업앨범에서 저놈만 사진이 안 나왔어. 분명하다.'

찬혁이 함께 몰려다니던 일진 패거리를 가리켰던 사진에서 홀로 나오지 않았던 추진웅.

만약 그 글을 쓴 것이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면 그들 중 리더 역할을 하던 추진웅을 빼놓을 리가 없다. 그것이 글을 올린 장본인이 추진웅이라고 확신하는 단서였다.

무엇보다, 글쓴이가 그 패거리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류찬혁에 대해 그런 글을 쓸 리가 없어.'

이건 실제로 저들의 피해자였던 이희정 자신이 보장할 수 있었다.

찬혁은, 적어도 그들에게 말뿐인 속죄가 아닌 행동으로서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사죄를 했던 아이였으니까.

***

몇 년 전. 이희정은 흔히 말하는 빵셔틀이었다.

이름이 여자 같다는 이유였다.

지금 생각하면 별 같잖지도 않은 이유. 그러나 그건 일진 패거리가 자신들의 희생양으로 그를 지목하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됐다.

다른 애들보다 깡마른 체구는 더욱 그 이유에 살을 붙여주었겠지.

물론 그들의 희생양이 그 혼자만은 아니었겠으나, 그는 유독 학생들 중에서도 잦은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였다. 운이 나쁘게도 그들과 같은 반이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런 위치에서 약 1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를 괴롭혔다. 툭툭 치는 것 정도는 심심하면 하는 일이었고, 그가 받은 용돈을 뺏거나 구하기 힘든 학용품, 전자기기 따위를 가져가기도 했으며 핸드폰에서는 항상 강제로 들어간 톡방의 알람이 멈추지 않았다.

2학년이 돼서 반이 갈렸음에도 멈추지 않는 괴롭힘에 자살마저 고민하던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괴롭힘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걔네 류찬혁이랑 뭔 일 있냐?"

"저번에 보니까 걔네끼리 교실에서 싸우고 있던데."

그때는 몰랐지만, 그건 찬혁이 일종의 방파제가 되어 그들의 괴롭힘을 홀로 감당했기 때문이었다.

'류찬혁?'

이희정도 찬혁이 누군지는 알았다. 추진웅의 패거리 중 한 명이지만, 누굴 괴롭히기 보다는 잦은 싸움으로 매일 상처를 달고 다녀서 더 유명한 아이였다.

그때부터 학교생활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추진웅의 패거리는 누굴 괴롭힌다든가 하는 일에 흥미를 잃은 듯했고, 그럴 낌새가 보일 때마다 시비를 거는 찬혁에 의해 방해 받기 일쑤였다.

물론 아주 그런 일이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학교는 충분히 버틸만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고, 겨울방학을 조금 앞둔 어느 날. 이희정은 갑자기 자신을 찾는 류찬혁에게 불려나가 홀로 그를 독대하게 됐다.

"무, 무, 무슨 일이야? 할 말이라도 있어……?"

"……."

또 어디서 싸웠는지, 찬혁의 손 곳곳에 붙은 반창고를 본 이희정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맨날 날 선 표정만 짓고 다니는 찬혁이 손까지 엉망이니, 심약한 이희정은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좀만 더 있으면 졸업인데, 대체 왜 불러내는 거야? 제발 조용히 좀 졸업하자……!'

그러나 찬혁은 이희정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내 들었다.

"미안하다."

"…… 뭐?"

"받아."

뜬금없는 사죄와 함께 건네받은 봉투. 찬혁이 열어보라며 눈짓하자 이희정은 고개를 재빨리 끄덕이며 수긍했다.

"…… 돈?"

봉투에 들어있던 것은 돈이었다.

호박색 지폐가 십수 장. 약 50만원을 넘는 금액.

'무, 뭐야 이거?'

뺏은 건가? 아님 훔친 거? 나보고 숨기라는 거야?

중학생은 쉬이 만져보기 힘든 현찰을 손에 쥔 이희정의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설마 자신을 범죄에 가담하게 만들 생각인가.

그러나 찬혁은 거기서 한 번 더 예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돌려줄게."

"…… 돌려…… 줘?"

"추진웅 그 새끼가 뺏은 돈이랑, 빌려가서 안 돌려준 물건 값. 조금 부족할지도 몰라. 미안하다."

이희정은 당황스러웠다. 돈도 돈이지만, 그 패거리의 일원이었던 찬혁의 돌발행동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숨겨놔. 걔네가 보면 또 지랄한다."

"자, 잠깐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돌아가려던 찬혁을 이희정이 붙잡았다.

"이, 이거 뭐야? 어디서 난 돈이야? 훔친 건 아니지?"

"…… 훔치긴 누가. 알바해서 번 거야."

"알바……?"

"불법 아니다. 생일 지난 중3이면 알바 할 수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희정은 당혹감에 젖었다. 갑작스러운 찬혁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그러나 찬혁은 사죄할 의지는 있어도 설명이나 변명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세상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죄에는 물질적인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야, 야! 이거 진짜 줘도 돼? 이거면 내 1년 치 용돈인데?"

"그럼 아껴 써."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라……."

그때, 무슨 생각이었을까. 찬혁은 저도 모르게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그 돈이면……."

"뭐?"

"그 돈이면 방학 내내 헬스장에서 PT 받기 충분해."

"…… PT? 뭐야 그게?"

"운동하라고. 양아치는 만만한 놈들만 노려. 한 달에 뭐 얼마나 변할지는 몰라도, 헬스 다녀서 몸 좀 불리면 어지간해선 안 건들 거야. 괴롭힘 당하는 게 싫으면, 만만하게 보이지 마.…… 미안했다."

그 말을 끝으로 찬혁은 그냥 자리를 비웠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렇게 사죄와 돈을 받은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아마 찬혁은 추진웅 패거리가 괴롭힌 아이들 대부분을 찾아다니며 그런 식으로 사죄를 한 듯싶었다.

'자기가 혼자 그런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들 중에선 그나마 얌전하고, 누굴 건드렸다는 말은 없던 찬혁이다.

그럼에도 그들 대신 사죄를 하고 다니며, 대략 수백에 가까운 돈을 사용했단 소리를 들었을 때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회인에게 아주 큰 돈은 아닐지 몰라도, 평범한 중학생에게는 그야말로 꿈도 꾸기 힘든 거금이다.

그런 거금을 오로지 사죄만을 위해 모으고, 사용한 것이다.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엉망이던 손은,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흔적이겠지.

이후 이희정은 찬혁의 충고를 듣고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찬혁의 말대로 한 달간의 PT에 더해 세 달 동안 헬스장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그에게 의외로 체육의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는 때는 남자의 가장 큰 성장기.

그때에 맞춰 뼈와 근육이 자라기 시작한 이희정의 몸은 어느새 체육으로 대학 진학을 노릴 수도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쯤 되니 같은 학교로 진학한 추진웅도 함부로 그를 대하기 어려워했다.

찬혁의 충고를 들은 덕분이었다.

"……."

어느 의미, 그는 찬혁의 은혜를 입은 몸이었다. 그게 병 주고 약 준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단 건 알지만 적어도 병을 준 게 찬혁 본인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찬혁의 소식을 들었다.

몰라볼 정도로 대단한 위치에 오른 찬혁은, 그를 시기한 누군가의 음해로 위기에 처했다. 잘하면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한테 걔를 도와줄 의리는 없어.'

하지만, 그건 찬혁도 마찬가지였다.

찬혁도 하지 않아도 별로 상관없을 사죄를 하기 위해 여러명의 아이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손이 그토록 엉망이 될 정도로 노력했다.

그렇기에, 이희정은 이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혹시 5분 시사 채널 담당자 분 맞으신가요? 류찬혁 학생에 대해 제보할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비단 이희정 혼자만이 아니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과거는 그 사람의 몸에 묶인 사슬이 된다.

그러나 그 사슬이 사람을 물속에 옭아매 질식하게 만들 덫이 될지, 아니면 그 사람을 바다에서 끌어올릴 구명줄이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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