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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211화 (211/403)

211. 신학기.-5-

한 계단. 아니, 서너 계단을 단숨에 뛰어 버린 대회 준비 연습에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몰두하고 있자니 시간은 널뛰기라도 하듯 달력 위를 훌쩍훌쩍 뛰어넘었다.

본격적으로 연습의 난도를 올린 뒤부터 대회가 열리는 날까지 남은 시간은 약 한 달.

첫 주는 약간이나마 익숙해졌다 생각했던 연습에 시간제한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도입되어 혼비백산 날뛰기 일쑤였다.

이전에는 5분 안에 끝내야 하는 일이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그것을 4분 안에 해야 했고, 그것에 익숙해질 때쯤엔 3분. 그걸 다시 줄여 2분.

마치 코치가 육상선수를 닦달하며 달리기 기록을 재는 것처럼 고학년이 요구하는 제한시간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너무 빡세게 굴리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을 때에 돌아온 대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우리는 다 할 줄 아니까."

"……."

"아, 여준기 걔는 특히 좀 느려. 애가 갑자기 어디서 만화 보고 오더니 무슨 채 썬 야채로 탑을 쌓겠다고 난리더라. 웃긴 건 진짜 해냈다는 거야."

그 난리를 치고도 우리보다 빠르다고?

그 말을 들은 1학년 일행은 자기들 앞에 놓인 식판 위 점심이 식는 줄도 모르고 벌써 두 번째 식판을 들고 오는 여준기를 바라보며 점심시간을 지새웠다.

둘째 주에는 형편이 나아졌다.

제한시간에도 점점 익숙해져 더이상 선배들의 고함을 듣지 않게 됐을 때쯤, 1학년 일행은 본인들이 보기에도 스스로의 실력이 껑충 뛰어올랐다는 걸 느꼈다.

그 정도 실력이 갖춰지니, 이제 대부분의 단계를 끝낸 뒤에도 어느 정도 시간이 남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셋째 주에는 다시 지옥이 시작됐다.

본래 1학년이 맡고 있던 업무의 양을 1이라고 치면, 갑자기 그들에게 하달되는 그 업무량이 1.5 내지는 2 수준으로 늘어났으니까.

사유는 이러했다.

"너네가 우리 일을 좀 더 많이 맡아서 해줄수록 우리는 그만큼 다른 일을 늘릴 수 있거든."

"늘려요? 일을? 여기서 더?"

"응? 왜. 나 뭐 이상한 소리 했어?"

"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한 거 아니에요……? 이쯤 하면 그냥 평범하게 우승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게 벌써 빠져갖고 대회 우습게 보네. 거기다 평범하게 우승할 거면 우리가 왜 학교에서 돈을 그만큼씩 받으면서 여기 있겠냐. 쉴 시간은 관에 누운 다음에 챙기면 돼."

이 시점에서 그들은 류찬혁이라는 인간을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입으로만 이렇게 떠드는 인간이었다면 차라리 씹을 거리라도 있었겠지.

그러나 그는 입으로 말한 것을 그대로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요 한 달이란 시간 동안 힘겨운 과정을 견뎌낸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고학년 또한 대부분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잘 살피면 어딘가 지친 구석을 저도 모르게 드러낼 때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찬혁만큼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대회반에 있는 이들 중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쯤 되면 정말 같은 생물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1학년 일행은 느꼈다.

아, 여기 있으려면 제정신으로는 못 버티겠구나.

그 후, 그들은 정신줄을 잡은 손에서 힘을 뺐다.

느슨해진 손아귀 사이로 스르륵 스치는 정신줄의 촉감.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그들은 실제로 자신의 넋이 그렇게 빠져나가는 느낌이 실제로 든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아니,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올바른 방향성을 향한 광기.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집합이었지만, 그렇기에 이토록 끔찍한 것도 없었다.

올바른 방향으로 폭주하는 청소년을 막을 어른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대회 시작 전까지 단 일주일만을 남겨둔 4주차가 끝난 오늘.

놀랍게도, 대회반의 분위기는 극적일 정도로 호조를 달리고 있었다.

***

"뭔가, 최근 느낌이 좋네요."

"그래?"

"예. 연습도 막히는 거 없이 잘 되고 있고. 1학년 애들도 크게 어려워하는 거 없이 잘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아서요."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잘 따라오고 있긴 하지.

한 주를 마무리하는 날. 나와 효민 선배는 여느 때처럼 한 주를 결산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결산이라고 해봐야 별 건 아니다.

요 한 주간 소모한 재료의 총합이나 부상자의 유무, 시설의 이상, 대회반 부원의 건의사항 등을 정리하여 교사진에게 제출하는 일이다.

이렇게 우리 둘이 모인 것도 전 부장인 효민 선배에게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미 익숙해진 지금에 와선 팀장급 미팅 시간 비슷한 게 됐지만.

"흐응…… 크게 어려워하는 거 없이, 라고?"

"왜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본인이 모르면 됐다는 말과 함께 뒷말을 어물쩍 넘긴 선배가 말을 이었다.

"확실히 다들 태가 좀 사는 게 보이더라."

"그렇죠?"

선배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듯 보여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막 들어왔을 때랑 달리 이제는 자기들끼리도 자주 어울리고, 뭣보다 말하는 횟수가 늘어났어요."

주방은 항상 소통해야 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문화상 상급자나 연상자에게 먼저 말 거는 걸 조금 어렵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입을 꾹 닫으면 주방의 연계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응. 나도 그렇게 보이더라."

"저번 주부턴 특히 좀 더 그런 느낌이에요."

드디어 소통의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라 부장으로선 기쁠 따름이다.

최대한 편한 환경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한 보람이 있다.

"그런 거 보면 너희가 되게 신기했지." "그래요?"

"응. 너희만큼 대회반에 빨리 익숙해진 기수 몇 없을걸?"

그런가? 하긴, 생각해보면 우리는 선배들하고 되게 빨리 터놓고 지낸 느낌이 든다.

그 시절 3학년이야 아예 딴 곳에 틀어박혀서 얼굴 보기도 힘들었으니까.

지금처럼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가르쳐주시는 일도 몇 번 없었고. 3학년 케어하느라 바쁘셨지.

"선배 덕분이죠. 뭐, 우리끼리 친해지는 과정을 빨리 넘어가서 그랬을 수도 있고. 창민이도 있었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이번 애들은 동생 대하기 어려워했지."

"제 탓은 아닙니다."

첫인상이 안 좋았을 뿐이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백예은이라는 녀석 탓이야.

"아무튼 잘 됐어. 대회 나가기 전까지 계속 어색한 상태였으면 막막했을 거야."

"정말로요."

하지만 변했다. 그러면 문제는 없지.

사실 1학년이 팀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당장 작년만 해도 단 열 명이서 잘 해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같은 특이케이스가 있었고, 거기에 더해 그런 특이케이스에 맞먹는 솜씨를 가진 녀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기수 자체가 좀 특이한 구석이 많았다.

매해 그런 특이케이스가 나오기를 바라는 건 솔직히 과한 욕심이지.

내가 효민 선배에게 부장 자리를 대물림 받았듯, 대회반 또한 기수를 통해 대물림 되어야 한다.

대회반에게 있어 학기 첫 대회란 어찌 보면 인수인계를 위한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인 대회를 인수인계의 수단 따위로 여기는 게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인수인계란 대회와 버금갈 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생고생하면서 연습하지 않겠지.'

대회반이 된다는 건 그런 뜻이다.

한 학교의 위신을 지키는 일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우리가 잘하는 것으로 학교와 이 학교를 졸업할 학생들의 이력서에 새기는 한 줄기 문장의 무게가 달라진다.

어떤 의미로 말하자면 우리는 전교생 수백 명분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대회반이라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이 학교에 올 수백, 수천의 학생을 위해서.

'…… 뭐, 거기까지 가면 오히려 너무 거창한가.'

결론만 말해서 돈값을 해야 한다 이거지.

한해에 우리 열다섯에게 드는 비용이 천 단위에 이른다. 믿겨지는가? 고작 열다섯 명의 학생에게 그만한 비용이 투자된다.

그나마도 설비나 그런 부분을 제한 비용이 이 정돈데, 우리도 그만한 돈값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렴. 이게 다 우리 집 재산에서 나오는 건데."

"선배님 댁은 재단 쪽이랑은 별로 상관없지 않아요?"

"…… 안 물어봐서 몰라!"

그러면서 잘도 그렇게 말하는구나.

아무튼, 결국 우리가 돈에 답하는 길은 결국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밖에 없다는 거다. 그러니…….

"선배, 이번에는 어때요. 자신 있어요?"

"뻔한 걸 물어보니."

한 차례 방긋 웃은 선배가 답한다.

"당연히 없지."

"질 자신이?"

언젠가 나누었던 대화의 재현. 마치 엊그제 있던 일에 향수를 느끼는 것 같은 복잡한 감정이 샘솟았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라고, 부장님."

"…… 선배한테 그렇게 불리니까 되게 이상하네요."

"그래도 익숙해져야지."

"노력해볼게요."

대회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솔직히 말해서 이미 준비는 완벽한 수준이다. 아마 이 상태 그대로 대회에 나가도 별다른 변고가 없는 이상 결과는 확정됐다고 자신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연습의 페이스를 늦출 생각은 아주 안타깝게도 딱히 없다.

왜냐고?

나는 모든 걸 완벽히 해내자는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잘 풀릴 것이라 기대하는 낙천주의자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비관론자에 가깝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나쁘게만 여기는 타입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악의 경우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혹시 아는가? 어쩌다 대회 심사위원이 매수를 당했을 수도 있고, 어쩌다 프로가 나서서 상대 팀을 도울 수도 있다.

그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직하게 실력 하나로 밀고나갈 수 있게끔 단단히 키워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헤, 헤헤."

신난다, 너무 신난다!

또다시 아이들을 참깨처럼 들볶을 수 있단 생각에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 동생. 너 요즘 이상해진 거 알아?"

"예?"

"저번에 들었는데, 학점만 충분하면 강의 줄여도 괜찮으니까 될 수 있으면 줄이렴."

웃는 얼굴이 정신병자도 도망칠 것 같다며, 효민 선배가 눈살을 찌푸렸다.

…… 그렇게 이상했던 건가.

살짝 침울해지는 기분이다.

***

다시 시간이 흘러 일주일 뒤.

이변은 없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게 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증명하는 데에 쓰인 실험기구 신세가 되어 버린 대회반은 올해에도 수상 명부 가장 윗줄에 제 이름을 떡하니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했는데 최우수상이 아니면 심사위원을 엎어버려야지."

여준기 녀석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아까 요리할 때 이 녀석들이 지었던 그 악귀 같은 표정을 되새기면 누군들 그럴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이제 한 시름 덜어낸 우리의 표정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밝아져 있었다.

이번 학기의 할당량은 채웠으니 당분간 대회반의 스케줄표도 깨끗할 터.

이제야 간신히 여유를 되찾은 그들은 득도한 부처 같은 얼굴로 학교로 복귀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제 진짜 끝났다. 당분간은 좀 푹 쉴 수 있겠지.

부장인 나도 그 사실은 반가웠다. 슬슬 무리가 쌓여서 온몸의 관절이 삐걱대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놈의 세상은 나를 가만둘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학교로 복귀한 나를 박예휘 선생님이 따로 불러냈을 때였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찬혁아, 이걸 한 번 살펴봐라."

"예? 예…… 어라?"

박예휘 선생님이 건네준 태블릿을 받아든 나는, 이윽고 화면에 비친 어느 올튜브 영상과 그 제목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명 학생 류모 씨의 중학교 일진설? 명문고의 허상을 폭로한다!」

…… 아니,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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