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이별의 날.-1-
새해 첫날.
오늘도 어김없이 나와 할머니, 그리고 각 가정의 어머니 일행이 합심하여 만든 아침밥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식구들은 잠깐의 휴식 후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차근차근 끝마쳤다.
준비할 게 그리 많지는 않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열 명이 넘어가는 식구가 각자 분주하게 움직이니 소란스럽지 않을 겨를이 없었다. 꼭 시장바닥 같은 소란스러움. 하지만 그다지 거슬리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람 사는 집은 소란스러운 게 좋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내조의 달인들께서 당신의 아들딸과 배우자를 그야말로 제 손발처럼 다루며 현장을 통솔하는 동안, 나는 또 따로 빠져서 내 나름대로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아이고, 이게 다 뭐니?"
"아, 할머니. 별건 아니고 반찬 몇 개만 살짝 해놨어요. 아마 저희 가고 며칠 정도는 넉넉하게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아니 얘도. 며칠이 뭐니. 보름은 먹겠구나. 이런 건 우리가 챙겨줘야 하는 건데."
"에이, 뭘 또 챙겨주신다고 그러세요. 아무튼, 식사하실 때 두 분이 잘 드시던 반찬을 봐놨거든요.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그건 특히 좀 더 만들었어요. 아, 이건 만드는 법 적어둔 노트에요. 번호도 같이 적어뒀으니까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세요."
떠나보낸 자식의 가정까지 뒷바라지하신다고 고생하신 분들이다. 나든 어머니든 하다못해 이런 거라도 챙겨드려야 마음의 짐을 좀 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할머니만이 아니라 두 고모, 거기에 큰어머니까지 번호와 요청한 레시피를 몇 가지 적어드렸다. 한두 개면 몰라도 사람이 늘어나니 쓸 것도 많아져서 손가락이 아프다.
그래 봐야 맨날 하던 짓이라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긴 하지만. 사실 이 정도면 그냥 엄살이지.
거기다 이 정도 장난스런 아픔을 감수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얼마나 큰데. 아주 황밸이다 황밸. 내 주챔이 갑자기 떡상 버프를 먹었을 때와 비견될 완벽한 밸런스야.
그 외에도 골목 레스토랑 MC 사인 좀 받아줄 수 없겠느니 하는 철없는 잡스런 부탁도 몇 번 들었지만 그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애당초 그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만나겠는가.
사실 여타 친척들보다 가장 시끄러웠던 건 다름 아닌 주아 녀석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냐며 사람을 무슨 들깨 볶듯 하루 종일 들들 볶아대느라 귀청이 나가는 줄 알았다. 어머니가 중재해주셔서 다행이지.
아무튼, 그런 소란을 거치고 점심이 되어갈 때쯤이 돼서야 우리 가족을 비롯한 일가는 할아버지 댁을 뒤로 하고 귀성길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주아 녀석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잠들었다. 시끄럽게 굴지 않아 귀찮지 않은 건 좋지만…….
"한 것도 없는 게 잠은 제일 잘 자요."
"계속 걷느라 주아도 피곤했을 거야."
주아를 변호하듯 나선 어머니가 쓴웃음을 지으신다.
"아들도 고생 많았어. 덕분에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많이 칭찬 많이 받았지 뭐니."
"별거 안 했어요."
"별거야. 적어도 엄마한테는 굉장히 큰일이었어."
"……."
저도 모르게 차창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내 관자놀이 부근을 찌르는 시선이 느껴졌다. 차창에 반사된 어머니의 시선은 내가 고개를 돌리든 말든 날 곧게 향하고 있었다.
곤히 잠든 주아의 숨소리와 덜컹거리는 기차의 쇳소리, 다른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웅성거림.
소음의 틈바구니에서 홀로 조용한 공간이지만, 쓸쓸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태양이 머리 위로 뜨는 정오. 자길 가리는 구름 한 점 없는 겨울 하늘은 놀랍도록 높았다.
살찐 마음이 식곤증에 잠을 청하는 계절이었다.
***
2020년이 끝나고 2021년이 되었지만 세계에 커다란 변화 같은 건 오지 않았다.
꼭 새해 목표로 잡은 금연이나 금주, 다이어트 계획표 따위가 며칠 만에 구깃구깃 구겨져 쓰레기통 직행 코스를 타는 것처럼, 내 일상에도 그다지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오랜 휴무를 거친 뒤에도 손님이 줄기는커녕 늘어나 버린 사장님의 가게에서 알바를 뛰며, 쉬는 날에는 공부나 운동을 하거나 종종 친구들과 연락이나 나누는 나날.
물론 그런 평탄한 일상도 아주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 기억에 남을만한 사건이 몇 가지 있기는 했으니까.
예를 들어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시장에 다녀온 날을 끝으로 만나지 못했던 우상구 사장님이 별안간 우리 가게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어떤 일로 찾아오신 건가 여쭤보니, 내가 낸 과제를 푼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그 말 자체로도 제법 놀랐는데, 거기에 더해 박종원 선생님에게 마지막 평가를 받기 전에 내게 먼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이유였다.
또 다른 걸 가르쳐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만든 걸 먹고 평가해줄 수 없겠냐는 간단한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흔쾌히 수락했고, 21년 시즌 1호 감탄을 뱉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와, 아니 이거, 똑같네요?"
"저, 정말로?"
"예. 레시피 재현에 성공하는 사람이 진짜 나올 줄은 몰랐어요."
아무리 내가 꽤 직접적인 힌트를 줬다지만 여기까지 재현해낼 줄이야. 그것도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운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 놀라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엄청나게 노력했겠지. 언젠가 봤던 엉망진창이 된 주방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분명 남다른 각오가 있는 사람이다. 아마 무엇을 하든 될 사람이란 건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겠지.
"이 정도면 박종원 선생님이래도 단박에 합격이라고 해주실 거예요. 정말 잘 하셨어요."
"진짜지? 내가 제대로 한 거 맞지?"
"정말이래도요. 다른 메뉴도 꽤 공들여서 만들었으니까 사장님이라면 충분히 소화하실 수 있을 거예요."
내 호언장담에 우상구 사장님은 희희낙락 웃으며 그간의 고생을 풀어놨다. 해가 바뀌는 당일에도 새벽이 다 되도록 연구하느라 집에서 된통 깨졌다느니 하는 웃픈 이야기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우상구 사장님의 분식집은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길목을 오가며 살핀 바로는, 다른 가게보다 훨씬 스타트를 늦게 끊었음에도 현장을 찾는 고객들 사이에서는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는 소문이다.
물론 내가 가르쳐드린 건 어디까지나 요리를 하는 법이지 장사를 하는 법이 아니기에 아직 조금 헤매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거야 박종원 선생님이 어떻게든 해결해줄 문제겠지.
시간이 그쯤 지나니 이미 난 남의 걱정을 할 때가 아니게 되고 말았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골목 레스토랑 때문이다. 할아버지 댁에서 예고편을 보고 2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본격적으로 내가 출연한 분량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날 방송이 끝난 직후, 내 전화는 말 그대로 불이라도 난 것처럼 전화벨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철정이 녀석을 비롯한 반 친구 녀석들의 전화에 더해 대회반 선배들, 함께 일했던 쿡들이나 우연찮게 방송을 본 선생님까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곳에서 전화가 빗발쳤다.
한때 유명인은 피곤한 법이라며 울상을 짓던 연예인을 보며 저런 게 바로 기만이라는 건가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로 그 생각을 철회하게 됐다. 아니, 진짜로.
'유명하다는 게 생각보다 좋기만 한 건 아니구나…….'
그래도 뭐, 어차피 한 번 반짝이고 말 유행일 테니 크게 걱정할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문제가 된 건 가게 쪽이었다.
내가 거의 방송 시간의 반 정도를 잡아먹은 편이 방영된 바로 다음 날, 우리 가게로 향하는 손님의 수가 거의 배에 가깝게 늘어난 것이다.
"…… 야, 이건 심각한데."
"어떻게 좀 해봐요. 광고해 달라고 땡깡 부린 건 사장님이잖아요."
"아니, 약빨이 잘 먹혀도 좀 과하게 잘 먹힌 거 아니냐?"
이 정도면 과잉진료로 의료소송을 내도 승소할 거라며 당황스러워하던 사장님의 얼굴을 나는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그러게 욕심을 좀 작작 부리시지 그러셨어요.
뭐, 이래나저러나 결국 나도 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인 건 똑같았으므로 거의 연좌제에 가깝게 함께 고생하는 처지가 됐다.
…… 아니지, 이 경우 이렇게 된 원인은 대부분 나한테 있으니 오히려 사장님 쪽이 나한테 딸려서 고생하게 된 격인가.
가게 매상을 늘려주는 알바생이라니, 무슨 카페 간판 미남 알바면 모를까 식당이란 업종에서는 아마 세계 어딜 가도 찾아보기 힘든 유형이리라.
일이라는 이름의 지옥에서 매출이란 이름의 행복을 쟁취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내일은 좀 나으리라 믿음을 가져보지만, 그 믿음을 보답 받지 못하는 지옥불 위에서 쳇바퀴를 돌리는 것 같은 일상.
참으로 우습게도,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나는 그저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하다는 나의 이점과 한계를 이용하여 한발 먼저 그 지옥에서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기다려라, 찬혁아! 너라면 될 수 있어! 이 골목 밥집의 왕이 될 수 있다! 너라면 될 수 있단 말이다!"
"안녕히 계세요, 사장님. 저는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학교로 떠납니다. 사장님도 행복하세요!"
"찬혁아! 가지 마라! 날 여기 두고 가지 말아다오오!!"
…… 뭐, 좀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긴 했지만 쉽게 말해 결국 시간이 다 됐다는 뜻이다.
"방학도 벌써 끝이구나……."
벌써 같은 말을 쓸 만큼 긴 시간은 아니긴 해도 요 한 달 남짓 동안 한 일을 되새기면 충분히 밀도가 높은 시간이었다.
까놓고 말해 내가 벌여놓은 일만 주르륵 나열하고 보면 '이게 고작 한 달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라는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다.
막상 일이 이렇게 된 계기가 '그냥 집 근처에서 일하면서 푹 쉬고 싶다.'라는 얼빠진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니, 말해봤자 아무도 안 믿을 것 같은데.
뭐, 어떻게 시작된 일이 어떻게 끝났든 간에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이미 전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남은 건 다시 그 정겹고도 그리운, 또 반대로 다시 가자니 저절로 구토가 나올 것 같은 학교라는 이름의 전쟁터로 다시금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짐은 잘 챙겼니?"
"예. 며칠 전부터 혹시 까먹은 거 없나 꼼꼼히 보면서 잘 챙겨놨어요."
"그래. 잘 했다. 가는 길 조심하고. 밥 꼭 챙겨 먹고. 할머니가 너무 마른 거 아니냐고 걱정하시더라."
"할머니는 제 몸무게가 세 자리가 되도 그러실 걸요."
내 농담에 어머니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웃으셨다.
"조심해서 다녀오고. 자주 연락하렴. 오고 싶으면 언제든 오고."
염려를 내비치시는 어머니를 걱정하실 거 없다며 안심시킨 뒤 집을 나선다.
자, 이만 돌아갈 시간이다.
***
"이 길도 오랜만이네……."
실로 오랜만에 되돌아온 헐벗은 가로수가 줄 선 길. 누군가 꾸준히 내리고 쌓인 눈을 치우고 있는지 길가에만 쌓인 눈더미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잿빛으로 물들었다.
황량한 분위기가 깔린 길을 걸어 도착한 기숙사.
기숙사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당연한 일이다. 애당초 난 다른 아이들에 비해 꽤 일찍 돌아왔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부한 안내서에 적힌 기숙사 입소 일자보다 이르게 돌아온 것이기에 학생의 일탈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멍청이는 아니다. 학교에 보고는 확실하게 한 지 오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보고하기 이전에 저들은 이미 내가 복귀했다는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내 이른 복귀를 먼저 요청한 건 다름 아닌 학교 측이었으니까.
대회반의 직위가 해제되는 시점은 3학기가 끝날 때. 다시 말해 봄방학 시작 직전이다.
그 전까지 내 신분은 아직 대회반이며, 그렇기에 학교의 얼굴로서 학교의 행사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1, 2학년의 방학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때. 3학년은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학창시절 최후의 대형 행사를 앞두고 있다.
짐을 두고 길을 되돌아가 학교의 교문 앞에 선 나는, 그 행사를 앞두고 학교의 교문을 장식한 커다란 간판을 마주했다.
[2020년도 성심조리과학고등학교 졸업식]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제, 정든 인연을 하나 곁에서 떠나보낼 때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