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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99화 (199/403)

199. 컨트리 로드.-3-

내 예상대로, 어머니와 할머니는 부엌에서 곧 찾아올 친척들을 비롯한 가족 모두가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그나저나 세상에, 아궁이라니.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기물에 잠시 눈이 쏠렸다. 구식…… 아니, 구식을 넘어서 가히 원시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물건에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단 말이지.

요리사적인 감상이라고 할까. 사실 요리사 이전에 남자이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한 번쯤 써보고 싶은 욕망 같은 것 말이다.

'두 분은 딱히 쓸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겉보기만 전통적인 한옥이지, 사실 온돌과 구들장, 아궁이 세트를 제외하면 이 집의 부엌도 그냥 평범한 아파트 부엌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바깥에 있는 가스통과 연결된 가스레인지나 오븐 외에도 전자레인지, 후드, 싱크대와 조명 등을 보면 평범하게 전기도 들어오는 집이다. 하긴 전기 없이 어떻게 살겠냐마는.

아무튼, 그런 좋은 문명의 이기를 놔두고 굳이 아궁이나 쇠솥단지 따위의 구시대 문물을 사용할 이유는 없다. 앞서 주방에 계시던 두 분도 같은 생각이신지 이쪽엔 등을 돌리고 가스레인지만 사용하고 계신다.

'그나마 난방 역할이라도 하고 있으니 아주 안 쓰는 건 아닌가.'

꼭 도태의 문턱 바로 앞에서 억지를 쓰고 버티는 것처럼 보여서 살짝 서글프다.

"흠흠."

"음? 누구니? 어머야, 내 새끼가 여긴 왜 왔을꼬."

문을 닫으며 살짝 인기척을 내자, 그걸 눈치채신 할머니께서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신다.

"혹시 배고파서 그러니? 잠깐만 기다리렴. 분명 구워둔 고구마가……."

"아, 아니에요. 배고파서 온 게 아니라 좀 도와드리러 왔어요."

배고픈 녀석은 따로 있는데 이러다간 내가 확대범의 술수에 놀아나 안락삶을 당할 것 같아 급히 고개를 저었다.

"도우러 왔다고? 아이고 내 새끼, 장하기도 해라. 그래도 괜찮단다. 들어가서 쉬고 있으렴. 어멈이랑 같이 하면 금방 해."

"에이, 어머니랑 할머니까지 나와 계신데 어떻게 혼자 방에서 쉬고 있어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제가 또 요리가 특기거든요. 그렇죠, 엄마?"

"응? 아, 그렇지. 우리 아들 솜씨 알아주지."

"어머, 정말이니?"

잠시 대견함과 미심쩍음이 섞인 표정을 짓고 계시던 할머니였으나, 어머니의 보증이 빛을 발했는지 순식간에 의심을 거두셨다.

"오냐, 그럼 찬혁이 도움 좀 받아보자."

오케이. 이걸로 됐다.

고작 밥 차리는 것 좀 돕는 게 무슨 대수냐고 이러나 싶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내게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요리를 자연스럽게 친척이 먹게 할 명분 말이다.

'이게 정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나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본격적으로 요리에 착수했다.

***

사람들이 흔히 시골집에 대해 말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뭐 시골집 개라든가, 정겹고 아늑한 풍경이라든가 하는 것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할머니의 정성이다.

온 세상의 할머니들은 손자를 살찌우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뭐 대충 그런 종류의 드립이지만 이게 아주 쉰소리는 아닌 듯싶다. 실제로 주방에서 준비하고 계시던 음식의 양은 친척 전원이 다 온다고 해도 제법 푸짐하게 먹을 만큼 많았으니까.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번 더 박차를 가했다.

정말로 손자를 살찌우다 못해 한 번 음식 맛을 보면 아주 여기에 눌러살고 싶어지게끔 전력을 다해 요리했다.

어지간한 업장에서 일하던 때보다 배는 수고를 들인 것 같다.

오죽하면 함께 요리하시던 두 분이 날 보고 놀랐을까.

"아이고, 내 새끼 정말로 잘 하네. 잘 하는데……."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할머니와 어머니의 눈에서 그런 당혹스런 감정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어머니 앞에서 요리한 것도 처음 아닌가?'

요리를 해 드린 적은 제법 많지만, 내가 요리를 하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여드린 건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갈비찜, 모듬전, 나물, 찌개, 부침.

그 외에도 다종다양한 요리가 시골 집밥과 한식 레스토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선타기를 하며 하나둘 완성되기 시작한다.

커다란 탁자의 귀퉁이를 시작으로 탁자 전체를 땅따먹기 하듯 올라가기 시작하는 접시.

탁자 위를 반 정도 채웠을까. 차의 엔진이 울리는 소리가 주방 바깥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꽤 여럿. 그냥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소리가 아니다.

'시간 됐나.'

아마 저 소리의 정체는 친척일 것이다. 도착 예정 시간이 된 것이겠지.

"할머니. 바깥에서 차 소리 나는데요?"

"그래? 다른 애들이 왔나보다."

"마무리는 제가 해둘 테니까 가보시는 게 어떠세요?"

"아이구 고마워라. 우리 아가만 고생시켜서 어쩌나."

"괜찮아요. 자주 하는 거라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 자주 한다고?"

할머니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하긴, 이만한 규모의 요리를 자주 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여기실 만도 하다. 할머니는 내가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모르시니까.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부엌을 떠나신 할머니를 배웅하자,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가 내게 질문하신다.

"아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니? 아들 요리 잘 하는 건 알지만 할아버지 집까지 와서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괜찮잖니."

"으음……."

글쎄. 내 생각은 반댄데.

할아버지 댁에 왔으니까, 그리고 거기에 친척들까지 있으니까 더욱 죽어라 임해야 한다.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건 아니나 이것도 다 필요한 일이다.

그래. 이 집안사람들이 가진 선민의식을 깨기 위해선 말이다.

***

내가 친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그냥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정말 그것뿐인 이유다.

'막상 보면 사람이 못 되먹은 건 아닌데 말이야…….'

솔직히 아주 인성이 되바라졌다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뭐랄까…… 그래. 앞서 말한 것처럼 선민의식 그 엇비슷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이 집안이 그렇게 대단한 곳이냐고 한다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평범하게 전답을 많이 가진 어느 정도 돈이 있는 가계다.

그렇기에 이 집안의 사람들은 다들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출가하여 독립할 때도 적잖은 지원을 받았다. 물론 우리 아버지도 말이다.

덕분에 가세가 줄어 지금은 조부모님이 남은 여생을 고생 없이 보내실 정도의 자산 정도만이 남았다고 들었지만, 그것도 요즘 세상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대단한 일이지.

아무튼 그건 제쳐두고.

덕분이라고 할지 아버지의 형제분들은 다들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부족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위치에 계신다.

그 자녀들, 즉 내 사촌들 또한 그런 삼촌들의 슬하에서 잘난 대학을 나와 잘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고. 요컨대 금수저라는 거지.

어릴 적의 우리 가정이 살짝 파탄 직전에 몰리긴 했어도 이렇다 할 생활고까지는 겪지 않은 것도 그런 친가의 도움이 컸다고 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시곤 했다.

내가 1년뿐이긴 하나 등록금이 비싸기로 유명한 성심고에 재학할 수 있던 것도, 주아가 예고를 멀쩡히 다닐 수 있던 것도 다 그런 바탕이 있었던 덕분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 다만, 아무리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말 없는 사람을 이유 없이 도와주진 않는 법.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친가에 꽤나 여러 번 도움을 청하셨다.

그래서일까, 가끔 친척 모임이 있을 때마다 우리 일가가 자리에 얼굴을 내밀면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은 적이 많다.

뭐, 그건 어쩔 수 없다. 나도 납득하는 바다. 그만큼 조부모님이나 일가에 끼친 폐가 적지 않으니까.

그러나 가끔은 참을 수 없는 일이 있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군대를 다녀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래서, 찬혁이 너는 지금 뭐 하고 있다고?"

"대학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요리?…… 그러냐. 그걸로 밥은 빌어먹을 수 있겠어? 공부를 좀 착실히 했음 오죽 좋았겠니. 응? 네 형처럼 말이다. 찬규는 이제 법학과 다니면서 검사 준비 중이라던데, 너는 요리사가 뭐냐, 요리사가. 아이고, 아버지도 참 의미 없는 일 하셨다. 주아는 또 그림 그린다며? 어떻게 남매가 쌍으로 공부를 망쳤대."

"그만해, 오빠. 애들이 괜히 그러겠어. 상준이도 없는데 올케가 오죽 힘들었으면 애들이 이러겠어."

"아니 난…… 하, 그래 그만두자."

…… 대충 이만하면 알겠지만, 뭐 그런 소리를 들었단 것이다. 그것도 제법 자주. 아마 만날 때마다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집안 내력인지 다들 술이 약해서 술만 마셨다 하면 돌림노래처럼 들었던가.

골때리는 건 이게 딱히 악의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마 큰아버지나 고모는 제법 진지하게 우리 앞길을 걱정해준 것이 아니었을까. 별다른 도움은 안 됐지만.

후에 나나 주아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뒤에는 그럭저럭 친척들 앞에서 가슴을 피고 다닐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여태껏 받은 상처의 흉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나나 주아의 꿈이 도매금 취급을 당한 건…… 뭐, 예체능을 얕보는 어르신이 적지 않으니 그렇다고 치자. 나에 이르러선 예체능도 아니고 실업의 영역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보다 신경 쓰였던 건 별다른 반박도 하지 못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온 어머니 쪽이다.

'대체 얼마나 상처가 되셨을지.'

내가 친척과 만나기 싫어한 이유가 이쯤이면 충분히 설명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시간이 좀 지난 뒤라면 모를까, 지금 그들의 눈에는 우리 가정이 회귀 전 그때와 별다를 것 없이 보일 테니까. 내실적인 의미로는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 사람이 타인에게 씌운 프레임이라는 것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내가 일가족이 먹을 요리를 그토록 죽어라 준비한 이유가 바로 이거다.

적어도 그들의 입에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수준의 요리를 집어넣어주면 조금은 그들이 우리에게 씌운 프레임이라는 놈이 흔들리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에서 나온 전력투구다.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내게 양천주가 특급요리사 수준의 신기가 깃들길 바라본다.

이렇게 된 거 옷에다가 미리 용이라도 하나 그려놔야 되나. 긴장해서 그런가 그런 우습지도 않은 생각만 든다.

"아가, 애들 인사도 끝난 것 같으니 우리도 얼른 준비하자꾸나."

"옙. 금방 내갈게요."

젠장, 주아 그 녀석은 지 오빠가 이렇게 노력하는 걸 알고는 있을까.

혼자선 들 엄두도 나지 않는 커다란 탁자.

그리고 그 위에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수두룩하게 깔린 접시를 일일이 쟁반에 담아 옮기며 부디 이 식사가 이어질 대화에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빌어보았다.

연말연시에도 요리에 매달려 오도 가도 못 하는 내 처지가 마냥 서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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