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컨트리 로드.-2-
아버지는 2남2녀 가정의 막내였다고 한다.
주아 하나만 있어도 내 인생이 이토록 고달픈데 동생도 아니고 손위 형제만 세 사람이라니, 얼마나 인생이 힘들었을까 싶지만, 옛날에는 의외로 평범한 거였다던가.
친가 자체도 제법 알아주는 지주였기에 별다른 불편함 없이 자라셨다고.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사업의 자본금을 집에서 대주었을 정도라고 하니, 어지간한 부잣집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한다.
왜 그리 남 일 말하는 것 같은 말투냐 묻는다면, 실제로 전부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기 때문이다. 애당초 아버지랑 대화를 나눈 기억 같은 건 거의 없다고 봐도 좋으니까. 사실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사진이야 갖고 있긴 하지만 자주 챙겨보는 것도 아니니까.
뭐 아무튼, 덕분에 나에겐 한 분의 큰아버지와 두 분의 고모가 계신다. 거기다가 아직 정정하신…… 아니, 정정하시다는 조부모님까지.
얼굴이 잘 기억 안 나는 건 누군들 마찬가지지만 직접 뵈면 곧 익숙해지겠지. 사람 얼굴 외우는 건 의외로 특기라서. 사실 후천적으로 길러진 직업병이긴 하지만 말이다.
창가 자리가 좋다며 앉았다가 서늘한 내벽이 싫다고 어머니에게 기대어 자는 주아와 그런 녀석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 어머니의 모습.
기차 바깥에선 이제야 산골짜기 사이로 태양이 제 모습을 수줍게 드러내는 게 보인다. 새삼 우리가 얼마나 일찍 집을 나섰나 느끼게 된다.
'거 참, 할아버지는 난데없이 무슨 일로 우리가 보고 싶으시다고 그러시는 건지.'
가만히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노래가 하나 생각났다.
음악 감상 취미는 없지만, 같이 일하던 미국 출신 동료 놈이 질리지도 않고 흥얼거리던 노래가.
"Country roads, take me home……."
자기 입으로 나는 시골 촌동네에서 온 촌놈이라며 으스대던 녀석의 얼굴을 되새기니 이 지겨운 노래도 반갑게 느껴졌다.
'공감이 되는 노래는 아니지만.'
애당초 고향도 아니고.
만약 이 시골길을 반대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었다면, 아마 조금은 공감이 됐을지도.
머리는 그런 우습지도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어째 입은 이미 튀어나온 곡조를 멈출 생각도 없이 흥얼거리기 바빴다.
그나마 원곡보다도 느린 이 템포가 내 마음을 대변해줄 뿐이었다.
***
기차를 내려 택시로 갈아탄 지 어느덧 30분 정도가 지났다.
버스도 괜찮다고 타박하신 어머니였지만, 뭐 이제 택시비 몇만 원 못 낼 형편도 아니었고.
지나다니는 차도 별로 없는 시골길을 막힘 없이 내달려 도착한 할아버지 댁.
너무 오랜만에 본 탓인지 생소하리만치 낯선 전통적인 한옥의 전경에 벌써부터 골이 아파진다.
"우리가 가장 먼저 왔나?"
"그런 것 같은데요?"
대문은 닫혀 있고 차도 보이지 않는다. 안 그래도 외져서 한 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가 전부인 동네. 누군가 먼저 왔다면 집 앞에 차 한 대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우와, 여기가 할아버지 집이야?"
"…… 주아 넌 와본 거 처음이냐?"
"응! 오빠는 와봤어?"
"그랬…… 을걸?"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곰곰이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던 중, 어머니가 나서서 내 말을 정정했다.
"둘 다 와봤지. 주아는 아기 때라 잘 기억 안 날 거야. 아들은 주아가 뱃속에 있을 때도 왔는데, 기억 안 나니?"
"음……."
그랬나? 애당초 그때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대략 50년 가까운 시간차가 있어서 기억하려 해도 못 한단 말이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며 어머니가 웃으신다.
부산이나 상하이에 갔을 때에도 신세를 진 가방을 끌고 집으로 다가가던 그때, 마치 기다린 것처럼 집의 대문이 얕은 나무 갈리는 소리를 깔고 열리기 시작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깜짝 놀라 문을 바라보는 우리.
이윽고 반대편이 보일만치 대문이 활짝 열린 뒤에야, 우리는 문을 연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 어머님!"
"할머니?"
"차 소리가 나서 나왔는데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짐마저 내팽개칠 기세로 달려오는 어머니를 맞으며 할머니가 웃었다.
"잘 왔다. 오느라 고생했지?"
"고생은요. 너무 오래 못 찾아봬서 죄송해요. 그간 안녕하셨어요?"
"아무렴. 이 나이 먹고 너무 건강해서 탈이지."
"건강하면 좋은 거죠. 자, 너희도 얼른 와서 인사드리렴."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어머니를 따라 우리도 고개를 숙인다. 주아 녀석은 특히 나보다 어색해하는 게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냐. 우리 새끼들 이리 와봐라."
숙인 내 얼굴을 양손으로 집어 든 할머니가 마치 인형이라도 매만지는 것 마냥 내 얼굴을 이리저리 주무른다.
"아이고, 얼굴이 지 아빠 어릴 때를 똑 닮았네!"
"그, 그래요?"
"그래 이놈아. 우리 손녀도 한번 보자."
닮았다고? 어머니도 종종 그런 말을 하실 때가 있긴 했다. 어릴 때 아빠 사진 같은 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주아 또한 나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간신히 풀려났다. 격한 환영인사에 얼떨떨해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추운데 어여 들어와. 불 지펴놔서 따뜻할 게다."
"아, 예."
어째 익숙한 상황은 아닌데.
뭔가 예상하던 것과 다른 상황에 당혹스런 마음을 숨기며, 우리는 할머니의 안내를 따라 할아버지가 계신 안방으로 발을 디뎠다.
요즘에는 보기 힘든 좌식 방. 전통적인 한옥이라는 걸 생각하면 당연하지 싶다.
온돌의 따스한 기운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방은 창호지 한 장으로 막힌 바깥에 비하면 기적적일 정도로 따뜻하다. 날 선 바람에 곤두섰던 털이 다시 내려앉는 기분.
그 방 한편에서 이부자리를 편 채 신문을 보시던 할아버지가 우릴 향해 고개를 돌리셨다.
"…… 왔구나."
"아버님. 안녕하셨어요."
"그래."
단답형. 생활한복. 안경을 썼음에도 쉬이 가려지지 않는 곤두선 눈매.
뭐라고 해야 할까. 스테레오 타입이셨다. 여전히 말이다.
할아버지는 쉽게 말하자면 그 시대의 강한 가부장적 면모를 여전히 간직한 분이시다. 깐깐하고 무뚝뚝한 그런 것 말이다. 당연히 성격도 만만치 않은 분이시기도 하고.
이제는 동작마저 어색한 큰절을 올린 뒤에야 우리도 자리에 앉았다.
"오빠…… 나 다리 뜨거운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
"참아."
"실화?"
"아 좀."
그 와중에 무릎 꿇은 정좌가 어색한 세대인 주아 녀석은 현대식 보일러의 온도 조절 기능이 얼마나 큰 혁신이었는지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국의 정은 온도로 말하는 법이다. 사람을 익히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하는 K-정성에 익힌 갑각류 껍질마냥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녀석에게 방석을 건네줬다.
그러는 사이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시기 바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머니의 근황보고를 할아버지가 짧게 대꾸하는 수준이었지만.
끼어들지도 못하는 나와 주아가 찜통에 들어간 게를 이해하는 시간을 넘어 그 원통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시점이 됐을 때쯤이 지나서야 우리는 간신히 방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남은 이야기는 다른 놈들도 다 온 다음에 하자."
장남, 장녀씩이나 돼서 늦게도 온다며 인상을 찌푸리는 할아버지의 말이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안방을 나서기 무섭게 다시금 할머니가 얼굴을 내보이셨다. 아무래도 근처에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우리를 집 끄트머리에 있는 방 앞으로 안내해주셨다.
"방은 저쪽을 쓰렴. 원래 상준이가 쓰던 방이야."
아버지가?
들어간 방은 예상과 다르게 굉장히 깔끔했다.
바닥은 물론이요 청소하기 힘든 책장이나 책상 위도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했고, 오래된 집 특유의 숨길 수 없는 퀴퀴한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자주 청소하고 계신 건가…….'
뭐라고 해야 할까. 누가 사용한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데도 묘하게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아버지의 흔적?…… 글쎄, 잘 기억이 나질 않으니 뭐라고도 못 하겠다.
"흐아으. 따뜻하다…… 아까는 너무 뜨거웠어. 여기가 딱 좋은 것 같아."
"엄살은. 야 난 내 방석도 너한테 줘서 데인 것 같다."
"오빠는 바지 두껍잖아. 나는 치마라 맨살 닿는단 말야."
"지도 스타킹 두꺼운 거 신었으면서."
"그거랑 이건 다르지!"
꼬우면 너도 바지 입던가. 고맙다는 말을 할 줄을 몰라요.
"누웠다고 자면 안 된다. 좀 있으면 큰아버지나 고모들도 오실 테니까."
"으응…… 알겠어……."
목소리가 벌써 늘어졌으면서 잘도 안 자겠다.
주아 녀석이 노곤해진 목소리로 어느새 꺼내온지 모를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렸다.
"여기 조용하구 좋다. 방도 되게 넓은데 따뜻하고, 멍멍이도 귀엽고."
"그러냐."
"우리 왜 자주 안 온 거야? 좀 자주 왔으면 좋았을 텐데."
너는 차도 없이 이 먼곳을 자주 오겠냐.
뭐, 이 녀석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시골이란 건 그 자체로 뭔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느낌이 있단 말이지. 이틀 이상 있으면 편의점도 없단 사실에 미칠지도 모르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내가 왜 그토록 이 집에 오기 싫어했는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음. 확실히 이게 끝이었다면 나도 그렇게 꺼림칙하진 않았겠지.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이 녀석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다.
"으으, 배고프다."
"아침도 안 먹고 나왔으니까. 대신 기차에서 간식 사서 먹었잖아."
"그래도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 간식이 김밥이지 않았나 싶지만, 어차피 그래 봤자 아무 말이나 덧붙여서 난리를 피울 게 분명하다.
'그 꼴을 보고 앓느니 죽지.'
하는 수 없나. 마침 어머니가 할머니를 따라 자리를 비운 것도 곧 도착할 친척 일가를 비롯한 우리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일 테니, 적당히 가서 도와드리는 겸 이 녀석 옆에서 떨어져야겠다.
'솔직히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돕기 싫다거나 귀찮아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있지만.
"어차피 오래 숨길 일도 못 될 테고."
"응?"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얌전히 있어."
"뭐야. 어디 가게?"
"배고프다며. 부엌에 잠깐 다녀올게."
"진짜? 땡큐! 근데 오빠, 여기 부엌 어딘지 알아?"
"…… 오다가 봤어."
거짓말이다. 점점 떠오르기 시작한 옛날 기억 덕에 조금씩 집의 구소가 생각났을 뿐이다.
"그래? 난 못 봤는데. 암튼 잘 다녀와!"
"아주 그냥 내가 지 식모야 무슨."
한동안 푸닥거리를 안 했더니 오빠 보기를 만만하게 본다. 아니, 원래 그랬나?
작게 한숨을 내뱉고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부엌이라. 사실 친척이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발을 안 들이는 게 최선이겠지만…….
'언젠가는 밝혀질 일로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겠지.'
그럴 바에 차라리 당당하게 나서서 인식이 바뀌길 기대하는 게 낫겠지.
'아니.'
기대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인식을 바꾸는 거다.
지금이 그 기회라는 것을, 나는 이유도 모르게 직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