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주방의 귀인.-6-
우상구는 뛰었다. 뛰고 또 뛰었다.
마치 바람처럼…… 이란 수식어는 도저히 붙이기 힘든 속도이긴 했지만, 그도 자기 나름 최선을 다해 달리며 시장 방방곡곡을 들쑤셨다. 물론, 거기에 매달린 카메라맨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저것들은 또 뭐시단가."
"뭐 하는 사람들이지?"
멀쩡하게 생긴 다 큰 성인 남성 두 사람이 시장을 질주하는 모습을 본 시장 상인들은 별 해괴한 놈 다 보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시장에서 사람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기 드문 건 아니라지만, 요즘에야 세상이 좋아진 덕에 상인들도 저마다 전동카트 한두 대씩은 가진 덕에 저렇게 짐을 싸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은 통 보기 힘든 모습이었던 탓이다.
"허억, 허억……!"
"헤엑, 흐힉……!"
물론, 이 두 남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이유야 뻔하다. 그저 생각에 돌릴 체력이 부족할 뿐이다. 서글픈 50대와 십수kg의 짐을 짊어진 막내의 서러움이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서도 우상구는 기억을 더듬어 찬혁과 돌아다니며 본 가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곳을 찾아 발걸음을 향했다.
'엄청난 내공을 가진 작은 가게' 따위의 판타지는 어디에나 믿는 사람이 꽤 많은 이야기다.
그리고 실제로, 이 조건에 들어맞는 곳 또한 제법 많다. 이 가락시장 안에도 찾아보면 그러한 가게가 제법 있다.
'하지만…….'
우상구는 그런 가게를 찾을 능력이 없다. 그렇기에 가장 신뢰성이 높다고 판단한 가게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가장 먼저 찾은 그 가게에서 단번에 목표했던 물건을 챙길 수 있었으니까. 단연 둘도 없는 양품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충분히 훌륭한 품질의 식자재.
거기에 더해 가장 질 나쁜 식자재 다섯 종을 각각 구입하는 우상구를 가게 사장이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듯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니, 산 걸 보니까 물건 볼 줄 모르는 아저씨는 아닌 것 같은데. 집에서 쓰려고 따로 모아둔 걸 잘도 찾아왔네. 진짜 그것도 살 거요?"
"아하하, 이유가 좀……."
"사겠다는 사람 쫓아낼 수도 없고…… 그거 상태 별로인 거 아는 거 맞죠?"
"예."
"난 말했어요. 반품해달라고 해도 못 받아줘요. 그런데 진짜 사겠다고?"
"산다니까요. 영수증만 잘 써주세요."
"거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알겠수다. 좀만 기다리쇼."
퉁명스럽게 대하긴 했어도 매장의 악성재고를 털어주니 상인으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렇다고 우상구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잠시 후, 약속한 30분이 채 지나기 전 차로 돌아온 우상구의 손에는 찬혁이 사 오라 말했던 각 식자재가 담긴 봉투가 들려 있었다.
"와, 포도송이 같다."
"사 오라고 한 건 너잖아……."
맥 빠지는 찬혁의 감탄에 안상구가 얕은 한숨을 흘렸다.
'이제 평가받을 차롄데…….'
분위기가 이래서야 쓴소리를 들었을 때 제대로 받아들일 수나 있을까. 고개를 저은 안상구가 손에 쥔 봉투를 찬혁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
"예?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 뭐?"
그러나, 찬혁은 그 봉투를 받지 않았다.
네가 사 오라 시키지 않았느냐고 얼빠진 표정을 짓는 안상구에게 찬혁이 말을 잇는다.
"이제 돌아가죠. 나머지는 가게에서."
"어, 어? 야!"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시 조수석에 몸을 싣는 찬혁. 추웠던 건지 들어가는 몸놀림이 잽싸다.
"……."
찬혁에게 팔을 내민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린 우상구의 눈앞에서, 그의 차 트렁크 문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운전석 버튼을 조작해서 열어준 것일 테지.
그 배려가 쓸데없이 친절해서, 우상구는 되레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
다시금 한 시간이 지나 일행은 가게로 돌아왔다.
차를 몰고 오는 동안 우상구는 몇 번이고 찬혁에게 대체 어떤 계획이 무엇인지 물었으나, 정작 찬혁은 말해줄 생각이 없는 듯 웃으며 그를 재촉할 뿐이었기에 우상구 또한 얌전히 포기하고는 차를 모는 데에 집중했다.
그렇게 정신적인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가게.
도착하기가 무섭게 가게 문을 열고 짐을 옮긴 찬혁이 웃었다.
"그래도 잘 생각하셨네요. 조금 많은 것 같긴 해도 좋은 쪽을 많이 사 오셨어요."
"쉽게 다시 갈 순 없을 테니까, 기왕 간 거 뽕은 뽑아야지."
"제 말이 그거예요."
가볍게 웃으며 동의를 표한 찬혁이 마지막 짐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았다.
"그럼 사장님. 이게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네요."
"음?"
"떡볶이 좀 만들어주실래요? 좋은 재료, 나쁜 재료를 전부 따로 써서요."
우상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재료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것이고. 또 그 차이가 클수록 자신이 고른 재료의 좋고 나쁨이 확실히 드러날 테니까.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우상구가 주방에 섰다.
화구 위에 두 개의 냄비가 올라가고, 조리대 위에도 각각의 재료가 쌍을 맞추어 올라온다.
우상구가 조리를 시작한다.
고추장, 설탕, 물엿, 대파, 마늘, 물, 고춧가루 등을 잘 섞어 양념을 만들고, 냄비에 물과 함께 떡, 오뎅, 파, 양파 정도의 간소한 재료와 물, 양념을 넣어 잘 끓인다.
떡볶이는 굉장히 단순한 요리고, 들어가는 재료도 대단치 않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고, 어느 지역을 가든 쉽게 찾을 수 있다.
괜히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이름이 붙은 요리가 아니다. 소울푸드란 한 집단이 공유하는 정서적 가치. 나라 단위의 집단이 같은 가치를 지니려면 얼마나 확산이 빨라야 할까.
적어도 떡볶이는 그것이 가능했던 요리다.
쉽지만, 쉽지 않은 요리.
이토록 정성을 들여 떡볶이를 만들고 있자니 우상구의 머릿속을 묘한 잡념이 채운다.
'사람이 집중하면 주변이 안 보이게 된다더니, 다 거짓말이네 이거.'
아니면 자신만 그런 걸수도.
많고 많은 장사 중에 왜 분식집을 선택했을까.
쉬워서? 그것도 맞다. 지을 수 있는 가게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 정도 요리밖에 할 수 없어서? 그것도 맞겠지.
하지만 그런 건 다른 가게도 얼마든 가능했을 터다.
기계만 있으면 나머지는 제품을 받아쓰기만 하면 되는 아이스크림 가게나, 그도 아니면 비슷하게 만들기 쉬운 토스트 따위를 만들어도 됐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건. 우상구 본인이 마음속 어디선가 무의식적으로 떡볶이에 끌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었지만, 그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시끄럽게 머리를 울리는 잡념을 떨쳐낼 때쯤, 비로소 떡볶이가 완성됐다.
완성한 떡볶이를 찬혁 앞에 내려놓자, 찬혁이 그에게 말했다.
"같이 드시죠."
"나도?"
"당연하죠. 드셔보셔야 뭐가 다른지 알 거 아니에요."
찬혁의 말대로 당연한 소리였다.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번갈아 떡볶이를 먹는다.
"이건 괜찮네요. 음, 어제 먹었던 것 보다 나아요."
"윽! 이건, 으으, 뭔가 아닌데."
"그래도 사장님이 예전에 만든 것보단 나을걸요?"
뼈를 찌르는 찬혁의 지적에 우상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막무가내로 만들었던 과거와 비교해 제대로 공부하고 연구해서 만든 지금.
과거와 현재의 우상구의 실력은 재료의 질로도 그 격차를 좁힐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실력이 별로여도 재료에 묻어갈 수 있다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좋은 고기여도 굽는 사람이 태워 먹으면 먹을 수 있게 구운 나쁜 고기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에 서글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우상구가, 새삼 놀란 눈으로 자신 앞에 놓인 두 접시를 살폈다.
"그나저나 정말 이 정도로 차이가 심할 줄이야……."
사실, 그 또한 이미 요리를 만들며 분명 차이가 있으리라고 납득하고 있었다.
껍질이 푸석푸석하고, 추운 날씨에 얼고 녹기를 반복한 탓에 세포가 파괴되어 만지기만 해도 진액이 흐르는 파와 양파.
마늘은 싹이 트고 보랏빛 멍이 들어 아리고 매운맛은 찾아볼 수도 없는 지경이었고, 생각은 속이 썩어서 향조차 제대로 배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재료로 만든 요리가 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애당초 요리 자체가 잘 진행되지 않았다.
파와 양파는 끓는 떡볶이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얼음이 녹는 것처럼 숨이 죽었고, 마늘과 파는 아무리 소스에 때려 넣어도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질 않았으니까.
그에 비해 최고의 재료를 몰아넣어 만든 떡볶이는 대단했다.
다지자마자 싱그러운 매운내로 주방을 가득 채운 튼실한 대파.
양념에 넣는 대신 직화로 불에 구워 삼겹살과 함께 직접 먹고 싶어지는 마늘.
마치 산에서 캔 참마처럼 칼로 쪼개자 중심에서 끈적끈적한 진액을 흘리던 생강.
속이 꽉 찬 수박같이 칼을 대기 무섭게 쩍 갈라지던 양파.
그 모든 재료가 한데 섞이니, 각 재료가 서로의 맛과 상호 보완하여 맛의 계단을 몇 단이고 위로 올려주었다.
우상구가 제 손으로 이것을 만들었다 믿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만큼 대단한 효과를 보였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고급 주방에 들어가는 재료는 이보다 더해요. 아침 경매 때 나간 것 중에 진짜 최상품은 대부분 수출이나 호텔 같은 곳에 직통으로 들어가거든요."
"이것보다 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면 아예 농가 자체와 계약을 맺을 때도 있는데…… 그건 뭐, 당장은 몰라도 되는 거고요."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놈들이 판을 친다며 찬혁은 진저리를 쳤다.
실제로 돈이면 뭐든 된다는 게 그를 체념케 하는 현실이었지만.
"아무튼 사장님도 되도록 좋은 재료를 골라 쓰는 게 좋아요. 이윤 생각하면 조금 힘들겠지만. 결국 고객도 알아보게 되어 있거든요.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 참 아는 게 많구나."
"이것만 공부해서 그렇죠. 사장님이 저보다 훨씬 똑똑할걸요?"
"글쎄."
고등학생 때의 자신이 이 정도로 걸물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기에, 우상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덕분에 많이 배웠다. 아직 네가 만들었던 거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길이 보인 느낌이야. 고맙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왜 사람을 보내려는 것처럼 말씀하세요?"
"응?"
우상구가 흠칫 놀라며 찬혁에게 고개를 돌리자, 찬혁은 검지로 자신 앞에 놓인 떡볶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성공하셨잖아요. 제가 드린 시험문제."
"어, 어. 그런 건가?"
"그런 거죠. 잘 골라오셨어요. 솔직히 이만큼은 안 될 줄 알았는데. 이거 사신 곳 사장님이 좋게 봐주셨나 보네요. 개인 자영업자 수준에서 구할 수 있는 것 중에선 상품 중에서도 상품이에요."
뭣보다 이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며, 찬혁이 영수증을 집어 그에게 내밀었다.
"아마 악성재고를 처리한 겸 서비스를 좀 해주셨나 봐요. 잘됐네요."
"어, 어."
"그럼, 저도 슬슬 출근하러 가봐야 하니까, 성공한 보상을 드릴게요."
보상? 그 말에 우상구의 귀가 쫑긋 섰다.
"사장님. 혹시 인스턴트커피 타놓고 하루 지난 다음 마셔본 적 있으세요?"
"뭐?"
인스턴트커피를 하루 지나서? 설마. 세상에 어느 사람이 커피를 그런 식으로 먹는단 말인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우상구에게, 찬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한 번 해서 드셔보세요. 끓인 물에 잘 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날 마시는 거예요."
그게 자신이 줄 수 있는 힌트다.
그 말을 끝으로 찬혁은 자신의 짐을 챙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가게에 남겨진 꼴이 된 두 사람은 그 뒷모습을 어벙한 얼굴로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수수께끼를 풀자마자 다시금 자신을 덮쳐온 수수께끼.
골을 울리는 불합리한 느낌에 우상구는 머리를 부여잡았으나, 몸은 이미 머리의 통제를 벗어나 움직이고 있었다.
─타탁. 화륵!
불붙은 화구 위로, 물이 가득한 주전자가 올라갔다.
***
이 이상 하면 거의 반칙에 가까워진다.
나는 그 사실을 알기에, 이 이상의 도움은 줄 수가 없었다.
'뭐, 여기까지 한 것만 해도 반쯤 반칙이지만.'
그래도 난 답을 알려준 건 아니다. 내가 한 건 어디까지나 요리학원 선생님이 학생한테 요리 기초를 가르쳐 준 거에 지나지 않으니까.
좋아, 이 정도면 충분히 합리화할 수 있겠지.
'잘 할 수 있으려나.'
이제 직접 만나진 않을 테니, 결과를 아는 건 남들과 마찬가지로 방영 후가 되리라.
하지만, 우상구 사장님의 배우고자 하는 태도는 분명 남들과 다른 필사적임이 느껴졌다.
빌런 밖에 없다는 평가를 들은 이번 골목 레스토랑의 참가자들.
아마 그가 방우석 PD님의 구세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으며, 나는 내 출근을 기다릴 가게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