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95화 (195/403)

195. 주방의 귀인.-5-

"옛말에 '빨리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는 말 아시죠? 이게 이 업계에서는 조금 더 본질적인 의미로 먹히거든요."

"본질적인 의미?"

"예. 뭐, 쉽게 말해서 좋은 물건은 일찍 나와야 살 수 있단 뜻이에요. 안 그러면 뺏기거든요."

"뺏겨?"

"다른 요리사들한테요. 뭐, 그것도 다 먼저 일어나는 새가 있어서 생기는 일이지만."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요리사의 아침은 빠르다. 뭐, 당장 각 가정의 어머니들만 보아도 자식 아침 먹이려고 아이들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시지 않는가. 이 말도 한 번 더하면 백 번이겠다.

하지만 그런 요리사보다도 훨씬 이르게 아침을 맞는 사람들이 있다.

깜깜한 밤에 차를 몰고 나와 시린 입김을 뱉으며 출근하는 사람들.

"그게 바로 이 시장의 상인들이에요."

"처음 알았어……."

"그럴 수 있죠. 애당초 여긴 평범한 소비자가 오는 곳이 아니니까요."

보통 여기까지 와서 식자재를 구매하는 사람은 보통 두 종류다. 이곳에서 물건을 받아 동네 마트 등에 전달하는 중간 도소매업자. 그도 아니면 우리 같은 요리사가 일부러 발품을 팔아 가장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자재를 싼값에 사러 들르는 정도.

"예외가 있다면 김장철이나 명절 때 들르는 일반인 정도겠죠. 요즘은 차라리 인터넷이나 가까운 시장을 이용하는 게 훨씬 편해져서 그쪽도 많이 줄었지만요."

"허어……."

곡류, 두류, 채소, 청과. 모든 농산물은 수확한 그 순간부터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수확한 후 숙성시키는 후숙 과정을 거쳐야 하는 종류도 몇 가지 있기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고, 대부분의 농산물이 그 굴레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신선도. 이놈은 요리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상구 사장님은 고향이 어디세요?"

"나? 강원도 홍천인데. 그건 갑자기 왜?"

윽. 홍천이라.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을 들어 버리고 말았군. 후…… 그쪽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싸겠다고 마음먹은 게 벌써 언제 적 일인지.

아무튼, 그렇다면 조금 말이 통하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

"홍천이면 옥수수나 감자 같은 건 자주 드셨겠네요?"

"…… 그거 웬만하면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 않는 게 좋단다. 강원도 사람이라고 다 뒷밭에 감자랑 옥수수를 심고 사는 건 아니야. 우리 집은 길렀지만."

내가 아는 강원도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하더라. 아무튼 그건 둘째 치고.

"고향에서 드시는 옥수수랑 서울에서 사 먹는 옥수수, 맛이 굉장히 다른 건 아시죠?"

"그런…… 가? 그러고 보면 고향 집에서 따서 구워 먹는 게 지금 사는 집에서 가끔 쪄먹는 것보다 맛있긴 했지."

기분 탓인 줄 알았다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우상구 사장님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바로 신선도의 차이에요. 작물 중에서도 옥수수는 특히나 신선도의 하락이 빠르거든요. 아무리 빨리 포장해서 배송한다고 해도 운송 중에 맛이 다 빠져 버려요."

"그런 거였구나……."

최근에는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운송법도 제법 많이 개발됐다.

일부러 옥수수를 감싼 잎을 제거하지 않고 보관하거나, 혹은 영하 50~60도를 넘보는 초저온냉동고에서 급속냉동을 때려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결국 빠질 건 빠져 버리지만.'

"쉽게 말해 농작물은 기본적으로 시간 싸움이에요. 수확한 시점부터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때까지. 그 기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느냐가 농가의 생명을 결정하죠."

"호오……."

"그래서 여긴 이렇게 새벽에도 사람이 많아요. 당장 경매해서 나갈 것도 있고, 잠시 보관했다 팔 것도 있고. 뭣보다 이렇게 일찍 나와서 물품을 챙기지 못하면 다른 경쟁자들한테 좋은 물건을 다 뺏기거든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바로 이거다.

각 매장에서 경쟁적으로 끌어모은 양질의 식자재. 새벽의 시장에는 그런 물건이 말 그대로 발에 채이듯 굴러다닌다.

"한마디로 여긴 보물이 가득 쌓인 곳이라고요."

그것도 평범한 오프라인 마켓이나 마트하고는 비교를 불허하는 굉장한 가격으로 말이지. 고작 만 원에 대파를 열 단 가까이 살 수 있다면 믿겠는가?…… 네고를 좀 쳐야 하긴 하지만.

"뭐, 아무튼. 그런 곳인 만큼 여기는 재료를 직접 눈으로 보고 어느 게 좋고 나쁜 건지 확실히 배울 수 있어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거구나."

"바로 그거예요."

마음 같아선 못해도 스무 종류쯤은 직접 보여주며 가르쳐드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내가 그렇게 시간이 많은 편이 아니다. 출근 시간도 그리 넉넉하게 남진 않았고.

여기서 돌아갈 때 들 시간도 생각하면 앞으로 여기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대충 세 시간 좀 안 되겠네.'

오케이. 그 정도면 단기속성 강좌 한 타임 뛰기엔 충분한 시간이지.

"오늘은 사장님 가게에서 주로 사용되는 식자재 다섯 개만 빡세게 공부하고 가자고요."

대파, 양파, 고추, 마늘, 생강.

솔직히 말해 한식 하는 사람은 이 다섯 개만 확실히 볼 줄 알아도 밥값은 할 수 있다.

하루 배워서 이것만 잘 배워가도 수강료가 아깝지 않으리라.

…… 뭐, 수강료 같은 건 애당초 안 받지만.

"가요. 이제 슬슬 경매랑 수령하는 쪽도 해산하는 분위긴데, 슬슬 가야 안 늦을 거예요."

"그, 그래."

자진해서 나선 초과근무의 늪에, 나는 오늘도 스스로 발을 집어넣었다.

***

"우선 대파는요, 먼저 줄기랑 대가 1자로 꼿꼿하게 잘 서 있나 확인한 다음에 여기 이 하얀 곳을 살짝 눌러보면 단단하게 느껴질 정도로 되어 있는 게 좋은 물건이에요. 그리고……."

"조, 조금만 천천히 부탁한다."

두 사람이 시장을 돌기 시작한 지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우상구는 예고도 없이 숨 가쁘게 움직이는 찬혁을 쫓아다니며 열과 성을 다해 그 가르침을 자신의 머리와 몸, 그리고 노트에 빠짐없이 받아 적느라 정신을 차릴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찬혁을 향한 우상구의 존경심은 이를 데 없이 커져만 갔다.

'어른이 애한테 존경심을 갖는다고 하면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이 경우, 그와 찬혁 사이에는 이미 나이의 벽을 넘은 무언가의 연결이 존재했다. 무엇보다도 찬혁의 가르침은 이미 본인의 나이 같은 건 신경도 쓰이지 않을 정도로 방대하고, 깊었으며, 또 세심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이 경우에는 오히려 나이 때문에 더 돋보이게 된 건가?'

다시 보면 확실히 이상한 광경이긴 하다. 아직 성인도 안 된 학생이 세계적으로 통할 정도의 요리 실력을 가졌으며 지식과 인성까지 완벽하다. 거기에 더해 실무에도 적잖은 경험을 갖고 있다니.

'인생은 불공평하다더니…….'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새로 들어온 스펙 짱짱한 신입사원도 첫 몇 달 동안은 어수룩한 모습이 보였는데, 그런 당연한 것이 찬혁과는 상관없는 일일 것 같단 생각에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자신보다 백만 원을 더 버는 같은 회사의 동료를 질투하는 사람은 많아도, 1초마다 자기 연봉만큼의 돈을 버는 억만장자를 부러워할지언정 질투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까지 그걸 실감하는 건 처음이지만…….'

아마 찬혁을 향한 자신의 감각도 그와 비슷하겠지. 라며 우상구는 자조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던 것도 잠시.

그는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다. 잘 알고 있던 사실에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지적당한다 한들 그런 생각만으로 머리를 채우고 있을 여유는 없었으니까.

이미 그의 뇌에는 입주 예정자들이 너무 많다. 이제 와서 급처 매물을 구하는 사고를 받아줄 공간은 갖고 있지 않다.

"잘 기억하셨죠?"

"으음……! 어, 어떻게든……?"

"거기선 조금 더 자신감을 보여주셨으면 하는데……."

사실 찬혁도 이 질문에 '그래! 다 기억했어!' 같은 대답을 바랐던 건 아니다.

'뭐, 당연한가.'

오히려 자신을 의심하는 건 좋은 태도다.

고작 한 시간으로 사람 머리에 지식을 완벽하게 때려 박을 수 있었다면 대학교에 강의는 왜 있겠는가. SF영화에서나 나오는 지식 주입 장치라도 없는 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나저나…….'

우상구를 비롯하여 그들을 촬영하는 카메라맨까지. 두 사람의 살짝 지친 것 같은 표정이 찬혁의 눈에 들어왔다.

새벽 댓바람부터 나와서 이 추운 시장을 한 시간이 넘도록 돌아다녀야 했으니,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가장 어린 자신이 이토록 쌩쌩한데 조금 더 힘내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게 간단한 일은 아니란 것을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납득한 찬혁은 바깥 주차장을 가리키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일단, 밥이나 좀 먹으러 갈까요?"

자신을 향한 두 쌍의 눈이 정신없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본 찬혁이 웃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

시장에는 아침부터 일하는 사람이 많아 토스트나 붕어빵, 김밥 등의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곳이 제법 많다.

세 사람 또한 아침을 거르고 나온 건 매한가지였고, 특히 한 끼를 거르면 바로 반응이 오는 나이대인 두 사람은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기분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차에 대피시키고 온 찬혁은 직접 발품을 팔아 가장 익숙한 가게에 들렀다. 회귀 후에는 처음 와보는 곳이었으나, 이전에는 공부를 위해 제법 여러 번 들렸던 가락시장이고, 그만큼 단골이 된 식당도 몇 군데 있었다.

히터가 빵빵하게 틀어진 차량으로 돌아온 찬혁의 손에 들린 봉투에는 그 단골집에서 구매한 음식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건 뭐니?"

"아는 곳에서 산 거예요.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고맙다."

"고마워요. 류찬혁 학생."

"별것도 아닌데요 뭐."

봉투 속 내용물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 같은 푸짐한 햄버거였다. 거기에 더해 따뜻한 밀크티까지. 콜라도 아니고 밀크티? 신기한 조합에 의아해하는 두 사람을 찬혁이 재촉했다.

"잘 어울릴 걸요.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과연, 찬혁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케첩, 머스타드, 마요네즈 등을 섞어 버무린 양배추와 햄버그 스테이크와 비슷한 맛이 감도는 패티. 거기에 올라간 달걀과 베이컨, 그리고 토마토까지.

모양만 햄버거일 뿐이지 내용물 자체는 서양식 아침식사와 비슷한 구성이었고, 거기에 더해 밀크티는 기묘할 정도로 그 햄버거와 잘 어울려 얼마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와, 맛있다."

"이야, 이거 진짜 죽이네요! 우리집 근처에도 파는 곳 있었으면 좋겠다……."

걸신들린 듯 햄버거와 밀크티를 흡입하는 두 사람을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며, 찬혁도 제 몫의 햄버거 포장을 뜯었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일행.

분명 아침을 거른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우습게도 시곗바늘은 아침을 먹기 딱 좋은 시간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시간에도 저 안에 상인들은 일하고 있겠지…….'

우상구는 속으로 감탄하며 창 바깥으로 보이는 가락시장의 전경을 살폈다.

엄청난 크기. 저 네모반듯한 콘크리트 박스 안에서, 오늘은 대체 얼마나 많은 청춘과 열정이 제 몸을 불태우고 있을까.

'이렇게만 보면 회사랑 다를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잘 봐두세요."

"음?"

잠시 넋을 잃고 창밖을 바라보던 우상구는 귓가로 들려온 찬혁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조수석에 앉은 찬혁의 모습. 하지만 그런 그의 시선 또한 가락시장 위를 서성이고 있다.

"아마 사장님이 계속 그 가게를 해도 여긴 그리 자주 오진 못할 거예요."

"그러니?"

"예. 여긴 그냥 공부할 겸, 진짜 좋은 식자재가 뭔지 직접 확인하러 온 거죠. 여기서 식자재 구해 쓰려면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물건 사러 오셔야 하는데, 하실 수 있겠어요?"

"그건……."

힘들겠지. 우상구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에요. 그냥 이 근처 상인들이 운이 좋은 거죠. 뭐, 여기가 한 사람만 쓸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인 것도 아니니 경쟁자도 그만큼 이득을 보기야 하겠지만."

"맞는 말이구나."

그렇다면 이곳에 배우러 온 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나? 찬혁은 그 의견에 부정을 표했다.

"적어도 뭐가 좋고 나쁜지를 아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아는 게 힘이라고 하잖아요? 새로운 걸 익히면 새로운 선택지가 생겨요.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고요. 적어도 내 돈 떼먹힐 일은 없게 해주거든요."

보통 도시의 식당은 직접 시장에 나가기보다는 계약한 상인을 통해 식자재를 공급받는 일이 많다. 이건 아주 편한 일이지만, 그만큼 주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상인은 신용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라지만, 신용을 지킬 상대를 철저히 가늠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실수로든 고의로든 신용에 하자를 만드는 상인이 있다면, 그런 상인에게서 요리사 본인을 보호할 수단은 그저 자기 자신이 철저히 알고 관리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두 사람 사이에 다시금 침묵이 흐른다.

찬혁은 그저 속으로 이 다음에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울 뿐이었으나, 우상구는 달랐다.

'대체 이 나이에 무슨 일을 겪었길래…….'

그도 여태껏 살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보인 찬혁의 옆모습은, 세상의 쓰고 단 맛을 수십 년은 겪어본 것 같은 초로初老한 남자 그 자체였다.

'……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어른스럽다지만 설마 그 정도일까. 자신의 마음속 믿음과 불신의 저울이 믿음 쪽을 향해 쏠리는 것을 억지로 무시하며, 우상구가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게 진실이라는 것을 그가 알 리는 없겠지.

마침내 식사와 짧은 휴식을 마친 일행은 다시금 차를 나섰다.

다시 공부를 위해 가는 건가?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은 두 사람에게, 찬혁은 그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과제를 안겨주었다.

"사장님."

"응?"

"지금부터 테스트를 하나 해볼게요."

시장을 향해 있던 우상구의 몸이 흠칫 떨리더니, 천천히 찬혁을 향한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얼굴. 찬혁은 그저 웃음으로 그 긴장감 가득한 얼굴에 화답했다.

"30분 드릴게요. 그러니까…… 아. 8시 반쯤 되겠네요. 그때까지 제가 가르쳐드렸던 식자재 다섯 종류. 각각 가장 질이 좋은 거랑 나쁜 걸 직접 판단해서 사 와주세요."

아, 과연.

우상구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배움의 성과를 확인하기에 이만한 과제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직감한 것이다.

"영수증은 꼭 챙겨 오시고요. 자, 그럼. 준비…… 땅!"

"…… 으아아!"

외마디 함성과 함께 단거리 주자 부럽지 않은 속도로 땅을 박차고 달리는 우상구. 그리고 그 뒤를 카메라와 함께 힘겹게 쫓는 카메라맨.

찬혁은 그저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그 뒤를 배웅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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