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188화 (188/403)

188. 대리기사.-2-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무수한 손님의 요청.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모였는가는 알 수 없는 일이었고, 그 많은 사람이 하필 지금 막 문을 연 이 가게로 들이닥친 이유는 불가사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업무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나로서는 조금 일이 잘 풀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와, 야 저기 카메라 있다."

"어디? 오, 진짜네. 손 좀 흔들어 봐. 네가 하면 방송 나갈 수 있을 듯."

"뭐? 왜?"

"얼굴이 웃기잖아. 완전 예능 페이스."

"지랄하네. 됐으니까 주문이나 하자. 뭐 먹을래?"

"분식집에 뭐 떡튀순말고 더 있냐. 대충 시켜."

"그럼 그거에 오뎅 넣어서?"

"그러던가."

"엉. 사장님! 여기 주문이요!"

"예! 갑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 탓에 주문조차 알아듣기 힘들 지경인데 뭐가 잘 풀리는 거냐고 묻고 싶겠지만 나는 꽤 진심이다.

우선 말해둘 게 있다면 내가 이 대리 운영으로 누군가에게 본이 될 수 있는 부분은 가게의 운영이 아닌 주방의 운영. 요컨대 전략보다는 전술이란 거지.

애당초 내 특기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치중되어 있다. 내가 나서서 가게 운영을 따지려 해봐야 직접 사업체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박종원 선생님에 비하면 훨씬 밀린다.

그러나 그건 반대로 말해서 주방의 운영은 단연코 평생 현역으로 경험을 쌓은 내 쪽이 더 뛰어나다는 뜻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홀이 손님으로 가득 찬 이 상황은 이상적이다.

고객이 없다면 주방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보여줄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이 말은 즉, 고객이 이토록 많다면 내가 가진 노하우를 한계까지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내가 하는 걸 제대로 보고 배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장담한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리라.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걸 배우는 게 쉬웠으면 내가 왜 성심고 같은 사람 피 말려 죽이는 곳에 들어가서 그 생고생을 하겠어.

한평생 몇 번이나 찾아올지 모를 전…… 아니, 미래의 미슐랭 셰프의 현지 특강. 부디 이 기회를 보는 이가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그런데, 과연 내 행동에 담긴 의미를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참가자 중에 있을까……?

뭐, 그건 박종원 선생님의 특기 중 하나인 해설이 빛나기를 기대해보자.

***

대단하다.

화면 너머 찬혁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참가자들의 감상은 오로지 그뿐이었다.

홀과 가판대 양쪽을 점거하다시피 몰려든 고객을 침착하게 상대하며, 어떤 주문이 들어오든 5분 안에 모든 메뉴가 나간다. 물론 실수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정확도로 말이다.

그건 마치 문외한의 눈으로 프로기사가 바둑을 두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이 보기에 찬혁의 행동은 그저 평범하게 주방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다음 수를 두기 위한 포석.

지식은 없더라도 직감으로 그 사실을 느낀 참가자들의 표정이 어둡게 물든다. 그중에서도 그들 사이의 한 사람. 현재 화면 너머로 보이는 분식집의 사장인 우상구는 특히나 아연실색한 얼굴로 화면에 머리를 박을 듯 들이댔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같은 주방에서 같은 메뉴를 만들어 같은 장소에서 판매한다.

바뀐 것이라곤 오로지 하나.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뿐.

그렇다면 결과도 대동소이해야 함이 맞다. 애당초 저 가게가 잘 안 나가던 건 전부 입지 때문이었다. 그저 저 소년의 운이 좋을 뿐이다.

…… 라고, 혼자 멋대로 납득하기엔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나도 다르다.

처음 가게를 찾은 손님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려 들지 않는다. 부정적 의사라면 더욱 그렇다. 아무리 고객과 제공자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 면전에 '이거 맛없어요.'라고 말하는 건 상당한 심적 부담을 요하는 일이니까.

그러나 그런 고객의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초능력? 아니다. 심리학? 아니다.

그보다 훨씬 단순한 것. 그건 바로 고객의 상 위에 올라갔던 접시다.

맛이 없는 요리가 나갔다면 당연히 잔반이 남는다. 우상구는 가게를 개업한 뒤로 잔반이 남은 접시를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심할 때엔 떡이 단 한 개만 사라진 떡볶이만 남은 적도 있다.

가장 가슴에 사무친 순간은 한 개도 아닌 한쪽 귀퉁이만 살짝 뜯어먹은 떡이 건드리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는 떡볶이 접시 위에 덩그러니 올라가 있는 것을 봤을 때였던가.

"……."

과거의 한 장면을 환시한 우상구의 눈길이 화면의 한구석을 쫓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쁠 때 고생 많다며 직접 접시를 정리해서 찬혁에게 정리하는 고객들의 모습.

그 손에 들린 접시는 건더기는커녕 소스와 국물조차 남지 않았다. 누가 먼저 설거지라도 한 것 마냥 반들반들하게 반짝이는 100매에 2만 원짜리 싸구려 접시.

고객의 태도와 접시. 어느 쪽이든 우상구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뒤이어 가게가 굴러가는 모양을 보고 또 봐도 오히려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손이 빠르고 요령이 좋아도 물리적인 한계라는 게 있다. 여기서 우상구가 지적하는 한계는 다름 아닌 만들어놓은 음식의 양.

오픈을 시작한 지 어언 두 시간가량이 지났다. 그동안 가게 앞에 몰린 고객의 추이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많고, 변함없이 길다.

한때 회사의 회계를 맡았던 그의 머리가 돌아가며 계산을 시작했다.

홀에서 고객 한 사람이 들어왔다 다시 나가는 시간이 대략 15~20분. 가판대에서 포장하는 고객이 5분마다 바뀐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까지 팔린 떡볶이는 대략 어림잡아 최소 90~100인분 내외.

그렇다면 떡볶이는 물론이고 다른 메뉴까지 진즉 떨어지고 다시 만들어야 했을 터고, 그렇게 된다면 고객에게 음식이 나가는 시간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방에는 여태껏 그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오픈했을 때와 거의 변하지 않은 속도로 음식이 나가고 있다.

말도 안 된다. 떡볶이는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리는 요리다. 물이 끓을 시간, 양념이 풀어질 시간, 떡이 익을 시간, 소스가 졸고 떡에 배어들 시간.

거기에 국물이 생명인 오뎅 또한 다시 만들어 육수가 우러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요리.

짧은 시간 안에 만들 수는 있다 쳐도, 그렇게 만들었다간 맛의 질이 떨어지는 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음식을 먹는 고객의 반응에는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찬혁의 요리를 먹을 수 있어서 만족한다는 듯 웃을 뿐이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분명 뭔가 이상하다.

다른 참가자가 자신을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조차 개의치 않고 줄곧 혼잣말을 되뇌는 우상구의 눈에 핏발이 선다.

그러던 찰나, 참가자들의 뒤에서 방관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던 박종원이 갑자기 그들이 앉은 자리 사이를 가로질러 앞으로 나섰다.

화면을 보고 있던 참가자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리자, 박종원은 잠시 손짓하여 영상을 정지하고는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재료 재고를 전부 소진했다고 하네요. 이제 곧 영업을 종료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또, 제가 보기에도 이 이상 관찰을 이어나가 봤자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더이상 관찰할 의미가 없다?

박종원을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시선에 의아함이 섞였다.

"아마 여러분은, 특히 우상구 사장님 같은 경우는 크게 깨달으셨을 겁니다. 고작해야 요리가 맛있어진 거 하나로 고객의 반응이 저렇게 천차만별로 변화할 수 있다는 걸요."

"…… 예."

우상구가 고개를 끄덕인다. 실력의 격차를 깨달은 참담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혹시, 방금 그 영상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찾으신 분 계시나요?"

"!"

다른 참가자들이 박종원의 생뚱맞은 질문에 고개를 갸웃할 때, 단 한 사람. 우상구만은 흠칫 몸을 떨며 놀랐다. 수그러졌던 그의 고개가 번개처럼 올라오고, 그 심경의 변화를 눈치챈 박종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뱄다. 그가 기대한 반응이었으니까.

"한 분 계신 것 같네요. 어떤 이상한 점이 있었나요? 방금 그 영상에서."

"……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우상구는 자신이 느낀 바를 어설프게나마 전달했다.

소비된 음식이 다시 만들어지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

그럼에도 고객의 만족도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

요리에 소모된 시간에 비해 음식의 질적 열화가 거의 없다는 것까지.

박종원의 얼굴에 핀 옅은 미소가, 어느새 깊은 만족스러움이 담긴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빙고.'

제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맞힌 답변이다.

"맞아요. 좋은 점을, 그리고 정확한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분식집 같은 시스템을 가진 주방에서 한 차례 만들어둔 음식이 소진되면 다시 재충전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해요. 특히 혼자서 운영해야 하는 주방은 더더욱. 그런데 영상에서는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죠. 그건 어째서일까요?"

"그건……."

그 답을 알면 자신이 이토록 고민하지도 않았겠지. 우상구의 떨떠름한 표정을 본 박종원이 말을 이었다.

"힌트를 드릴게요. 지금 저 주방에는 우상구 사장님이 운영하실 때와 비교해서 변한 게 딱 두 가지 있어요."

"변한 거…… 말인가요?"

"아, 참고로 레시피가 바뀌었다거나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애당초 지금 류찬혁 학생이 사용한 양념에 대단한 재료나 비법 같은 건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냥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겁니다. 단가를 맞추려고 화학조미료도 쓴 평범한 레시피에요. 제가 말한 변화는 그보다 훨씬 알기 쉽습니다. 그냥 보면 보여요."

이것은 사전에 찬혁이 직접 브이로그 식으로 촬영한 레시피 제조 영상을 받아본 박종원이기에 장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참가자들의 안색이 더더욱 혼란으로 물든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마법이 대체 저 주방 어디에 숨어 있단 말인가.

처음 이상한 점을 꼬집은 우상구조차 좀처럼 답을 하지 못하자, 결국 박종원은 스스로 그 해답을 내놓았다.

"답은 저겁니다. 보이시나요? 저 구석에 있는 화구에 올라간 들통."

다시 불이 들어온 화면. 박종원이 가리키는 곳을 카메라가 확대한다.

"저게 무슨……."

그의 말대로, 화면이 비춘 것은 화구 위에 올라간 제법 커다란 크기의 냄비였다. 냄비가 올라간 화구에서 작은 불빛이 눈에 띄었다. 불이 켜져 있는 것이다. 만약 저 안에 물이 들어가 있다면 끓어오르기 직전의 뜨거운 온도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미약한 화력.

모두가 그 들통의 정체에 호기심을 드러내자 박종원이 말을 이었다.

"저 안에 대단한 뭔가가 들어있는 건 아닙니다. 저 안에 있는 건 그냥 야채 육수에요. 대파나 양파 따위를 우려낸 육수요. 다만, 당장에라도 끓어오를 준비가 된 육수죠."

"…… 아!"

비로소 마법에 사용된 트릭이 무엇인지 눈치챈 우상구의 입에서 외마디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간단한 거였다고?'

그렇다. 보잘것없는 속임수다. 아니, 속임수라기보다는 준비라고 표현함이 옳을까.

요리에 맛이 밸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저 그 이전에 맛이 배어놓게 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마법의 정체였다.

'하지만, 고작 그게?'

"고작 그게, 라고 생각하셨죠?"

정곡을 찔린 우상구의 눈이 박종원을 향한다. 재미있다는 듯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은 그가 말을 이었다.

"고작 그게 퀄리티의 차이를 만듭니다. 거기다 이게 전부는 아니에요. 말했잖아요. 변한 건 두 개라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육수와 각 양념마다 사용된 전용 국자에요."

"전용 국자요?"

"예. 그냥 그 국자에 가득 채워 넣기만 하면 아무런 계량 없이 언제나 같은 맛이 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용량을 따져가며 준비한 국자. 이 두 가지의 변화로 류찬혁 학생은 여태껏 여러분이 상상도 하지 못한 속도로, 항상 같은 퀄리티의 요리를 뽑아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서 주방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떡볶이를 만들기 전에 들어갈 떡을 살짝 찐다거나 하는 잔재주는 센스의 영역이지만, 앞서 말한 두 요소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거죠."

아마 그것도 전부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운 찬혁 자신이 아니라, 앞으로 가게를 운영해나갈 사장을 위한 안배일 것이라며 박종원은 웃었다.

"저 육수 테크닉은 앞으로 메뉴를 더 늘리더라도 종종 쓸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라면을 끓여야 한다면 준비된 육수로 순식간에 끓일 수 있을 테죠. 육수로 끓인 라면이라면 양념장이나 부재료를 어떻게 추가하느냐에 따라 차별화가 더 쉬워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손님이 없을 때는 그냥 불을 꺼놓으면 돼요. 여유가 있을 때든, 없을 때든 내 일을 편하게 해주는 방법. 제가 봐도 참 대단하네요."

우상구는 전율했다.

설마 그런 부분까지 전부 계산하고 저 방법을 주방 운영의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라면, 적어도 이 일을 허투루 준비하진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토록 힘들어 보이던 본래 가게의 주방 일까지 겸하면서 말이다.

'…… 수준이 다르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건가…….'

태어난 이래 처음 재능의 차이라는 것을 실감한 그는, 절망감과 안도감이 뒤섞인 애매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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